[2010 한국일보 신춘문예 동시 당선작] 지리산의 밤 / 최수진
지리산의 밤 / 최수진 지리산에 밤이 왔어요엄마가 빨래 걷는 것을 깜빡 잊었어요다람쥐 오소리 곰 멧돼지 산토끼 아기들이엄마 몰래 마을에 내려와빨랫줄에 걸린 옷을 하나씩 입었어요토끼는 귀에 아빠 양말을 하나 걸치고아기곰은 내 팬티를 입었어요오소리는 누나의 보들보들한 블라우스를 입고다람쥐는 엄마 모자를 꼬리에 걸치고아기멧돼지는 할머니 통치마를 입었어요서로 쳐다보며 하하하하 웃었어요아기동물들을 혼내지 마세요빨랫줄에 앉은 아기새는 모른 척웃고만 있었어요 지리산 아기동물들이 보내준 선물 저는 걸음이 느립니다. 친구들은 항상 빨리 가자고 재촉합니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저만치 뒤따라오는 저더러 느림보라고 놀립니다. 하지만 저는 친구들보다 더 많은 것을 봅니다. 길에 핀 꽃과 나무와 다람쥐와 나비와 풀벌레와 새,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