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경인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핑고 / 황정현
핑고 / 황정현 극지의 순록은 우아한 뿔을 가졌다거친 발굽으로 수만 년을 걸어왔다 죽은 자식을 동토에 던지며 발길을 돌려야 했고비틀걸음으로 얼음산을 넘어야 했고 살점을 떼어 어린 자식의 배를 불려야 했고뿔을 세워 침입자에 맞서야 했고 온몸을 쏟아 무리를 지켰다죽어서도 흙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치열한 싸움에서늘 이기고 돌아오는 것은 아니었다 당신은 무덤을 등에 지고 돌아왔다무덤은 살고 당신은 죽었다 무덤 속에서 얼음이 자라고 있다얼음은 흙을 밀어 올려 산이 될 것이다 얼음의 계절이 오면 순록은바늘잎나무숲으로 순례를 한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당신의 길이 보인다. "작은방 낡은 의자에 오래도록 앉아있었다" "이 자리에 제가 앉아도 괜찮은가요?"/미안해요 여기/당신이 앉았던 자리인가요//접혀 있는 페이지는/당신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