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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레시피 / 정운균

 

당면은 물에 불려 쓰렴
볶을 때 간장은 조금
시금치는 살짝 데쳐 쓰렴
생갈비 핏물을
뺄 때는 소주에 담구고
압력솥이 기적소리처럼 우렁찰 때
약불에서 10분 더
코를 간질이는 참기름 냄새가
새하얀 접시 위에 담기고
달콤한 갈비양념 냄새가
군침 돌게
혀에 닿은 노하우들은 하나같이
얼굴에 미소를 피웠다
당신도 나도 웃었다

당면을 물에 불리고
당면과 살짝 데친 시금치와 함께
간장 조금
달달 볶는다
소주에 담가 핏물을 뺀 갈비를
양념에 재워 압력솥이
비명 지를 때 약불로 10분
참기름으로 번들번들한 잡채를
목기에 조심히 담고
너무 익혀 너덜해진 갈비찜도
목기에 담아
당신 앞에 놓는다

당신의 레시피를 그대로 해도
행복해지지 않는 맛
나는 웃지 못하는데
사진 속 당신은
활짝 웃는다


 

 

  <당선소감>

 

   -


  엄마, 나 시를 써서 상을 받아요. 엄마가 몹시 더 보고 싶은 날이네요. 시간이 지나도 아직도 나는 사소한 것 하나하나에서 당신을 떠올려요. 엄마 옆에서 병간호 하던 나날들이 아직은 추억이 아닌 눈물로 남아있는데 벌써 몇 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네요. 그렇게 눈물 한 방울에 한 자를 적었던 시가 나만의 위로가 아닌 다른 이에게도 위로가 될 수 있는 것 같아요. 이 소식을 들은 엄마가 어떤 표정을 지을 지 어떤 말을 해줄 지 날 안아주는 포옹이 얼마나 따스할지 점점 생각이 나질 않아요. 엄마를 잊지 않기 위해 시를 썼고 앞으로도 쓸 거예요.

  엄마. 엄마가 하늘에서도 지금 나를 보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사랑했고 사랑하고 사랑할 겁니다. 보고 싶어요, 엄마.

  아빠. 늘 내 뒤에서 믿어주고 말없이 밀어주는 아빠. 나 상 받는다고 말했을 때 기뻐이 아빠의 꿈을 아들이 대신 이뤄줬다는 그 말을 나는 잊지 못해요. 시간을 흘러가고 나는 여전히 방황하고 있지만 언제나 내 등에는 아빠의 손바닥이 닿아있음에 감사해요.

  신춘문예에 꼭 시를 내보라고 했던 하진이. 너 없었으면 이렇게 감사하게도 엄마에게 사랑한다고 다시 말할 수 없었을 꺼야. 너무 고마워.

  나의 길을 함께 하고 응원해주는 나의 친구들 나의 선생님 모두 고마워요.

● 거창고등학교 졸업
● 한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심사평>

 

  

  감정을 언어로 잘 형상화한 작품들

  친절하게도 신문사에서 직접 전달해준 응모작 전부를 읽었다. 그야말로 산더미 응모. 어떻게 저걸 다 읽나? 처음엔 그랬는데 하룻저녁 읽고 하룻저녁 고민하고 나서 심사평을 쓰게 되었다. 예상했던 대로 산문 투의 문장들이 많았고 사실이나 생각을 생경하고도 장황하게 늘어놓은 글들이 많았다. 오히려 시적인 문장을 제대로 갖춘 작품을 찾기가 힘들었다.

  문제는 시의 소재인 감정의 형상화다. 감정이란 모양도 소리도 촉각도 향기도 없는 투명하고도 무정형인 그 무엇이다. 그것을 어떻게 언어로 형상화해서 읽는 이에게 잘 전달하느냐가 시의 관건인데 애당초 거기서부터 발걸음이 빗나가 있었던 것이다.

  하기는 시라는 장르가 지극히 주관적인 문장이라서 누가 심사를 보았느냐에 따라 근본부터 달라질 수 있겠다. 말하자면 나태주가 심사를 맡음으로 이미 읽지 않은 작품 더미 가운데에서 선정될 작품이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란 것이다. 그렇게 해서 찾아낸 작품이 세 작품이다.

  서호식 씨의 「간이역에 사는 사람들」 외 4편. 정운균 씨의 「레시피」 외 4편. 박마리아 씨의 「비릿한 엄마 냄새」 외 4편.

  첫 번째 작품 「간이역에 사는 사람들」 외 4편을 낸 서호석 작가는 시적인 공력이 만만치 않은 분으로 전편의 수준이 고르고 독립적으로 완성되어 있어 신뢰가 갔다. 시적 대상을 직시하면서 짐짓 흥분이나 격앙이 아닌 차분한 대응으로 맞서는 유연성에 대해서도 호감이 갔다.

  두 번째 작품 정운균 씨의 「레시피」 외 4편은 매우 신선하고도 젊은 목소리를 담은 작품들이었다. 얼핏 보면 문장이 덜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이러한 점이 바로 이 작가의 특성이라 하겠다. 문장이 툭, 끊어지는 그 부분에서 반전이 일어나고 감정의 선이 바짝 긴장한다.

  세 번째 작품 박마리아 씨의 「비릿한 엄마 냄새」 외 4편은 시적 대상을 다루는 솜씨가 섬세해서 읽는 이로 하여금 살가운 정감을 갖도록 유도한다. 어투 또한 정갈하고 맑아서 시를 읽는 사람 마음을 자연의 한복판이나 인생의 현장으로 데리고 가 준다.

  하지만 세 번째 작품은 몇 가지 사소한 흠결이 있어 아쉽게도 이번 당선작에서 제외됐다.

  응모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리며, 두루 좋은 글을 많이 읽었음을 감사한다. 

심사위원 : 나태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