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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뜨는 화석 - 천마총에서

황외순

 

소나무에 등 기댄 채 몸 풀 날 기다리는

천마총 저린 발목에 수지침을 꽂는 봄비

맥 짚어 가던 바람이 불현듯 멈춰선다

 

벗어 둔 금빛 욕망 순하게 엎드리고

허기 쪼던 저 청설모 숨을 죽인 한 순간에

낡삭은 풍경을 열고 돋아나는 연둣빛 혀

 

고여 있는 시간이라도 물꼬 틀면 다시 흐르나

몇 겁 생을 건너와 말을 거는 화석 앞에

누긋한 갈기 일으켜 귀잠 걷는 말간 햇살

 

<당선소감>


당선이 주는 구속마저 즐길 것

 

집 안에 작은 화재가 있던 날이었습니다. 달리 재산상의 손해를 입지는 않았지만, 가재도구에 달라붙은 그을음을 닦아내야 하는 막막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때, 우리 집 큰아들인 현준이가 위로의 말이랍시고 제게 건넨 말이 있습니다.

엄마, 우리 교수님이 그러시는데 불난 적이 있는 집은 무조건 사고 봐야 된대. 복이 넘쳐서 불이 나는 거래.”

웬 복? 싶은 맘 없지는 않았지만, 어쩌면 좋은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을 저버리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하루가 다 지나가기도 전에 당선 소식이 날아들었습니다.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큰 복이 제게로 왔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자꾸만 두리번거리는 저를 보게 됩니다. 보이지 않는 시선들이 함께 따라왔나 봅니다. 천둥벌거숭이 같은 제게 품이 넉넉한 올가미가 씌워진 것 같습니다. 이것마저도 시조를 닮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젠 당선이 주는 이 구속마저도 즐겨야 할 것 같습니다. 돛도 없이, 표적도 없이 갈팡질팡 노 저어온 시조의 길. 아직은 갈 길이 더 멀다는 것을 압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말라고 응원의 손길 보내주신 두 분 심사위원님과 동아일보사에 감사드립니다. 믿음직스러운 시인이 되겠습니다.

아울러 힘든 고비마다 제 눈물 닦아주시고, 지친 등 쓸어주신 우리 쪽방 식구들과 여러 친구들, 따뜻한 내 남편과 두 아이들에게도 고맙다는 말 전합니다.

 

1968년 경북 영천 출생 한국방송통신대 청소년교육과 졸업 경주문예대학 수료 문열공 매운당 이조년 추모 백일장 장원 청풍명월 전국 시조백일장 장원 전국 가사·시조 창작공모전 우수

 

<심사평>


상상력 깊은 역사 읽기 돋보여

 

해마다 신춘문예에 문단의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신인들에 대한 기대치 때문이다. 그들에게서 내일을 이끌어나갈 뜨거운 열정과 새로운 생각과 올곧은 문학정신을 보고자 함에서다. 아직은 그들이 보여주는 사유의 깊이가 얕고 표현이 서툴더라도 남다른 발상과 용기와 도전이 장차 이 땅의 문학을 풍요롭게 해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예년에 비해 응모자 수나 작품의 수준이 풍요로운 가운데 오직 한 사람의 숨은 보석을 가린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따라서 새로운 재목을 찾는 기준으로 기성문단의 흉내 내기와 시적 동기가 취약하면서 언어 기교에 치중한 작품을 배제하고 시조단의 내일을 이끌어나갈 건강한 시정신에 주목하였다.

그런 기준에 의해서 마지막까지 남은 작품이 심순정의 삼각김밥’, 송인영의 물구나무, 멀구슬나무’, 조예서의 어머니의 가을’, 황외순의 눈뜨는 화석등 네 편이었다. 먼저 삼각김밥은 비유의 새로움에도 불구하고 주제의식이 모호하다는 점에서, ‘물구나무, 멀구슬나무는 가락의 유려함을 받쳐 주는 메시지 부재로 배제되었다. ‘어머니의 가을은 어머니의 삶과 가을을 일체화시킨 공감대에도 불구하고 소재의 진부성을 떨쳐내지 못하였다.

마지막으로 남은 눈뜨는 화석은 감각적인 언어 구사와 상상력 깊은 역사 읽기를 보여줘 당선작으로 선택하였다. 부장품과 화석을 일체화시키는 과감한 비약마저도 현장시의 한계를 보완하는 역량으로 읽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색깔 있는 자기 목소리를 기대한다.

심사위원 : 한분순, 민병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