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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인을 기다리며

양해열

 

끽해야 20광년 저기 저, 천칭자리

한 방울 글썽이며 저 별이 나를 보네

공평한 저울에 앉은

글리제 581g*!

낮에 본 영화처럼 비행접시 잡아타고

마땅한 저곳으로 나는 꼭 날아가리

숨 쉬는 별빛에 홀려

길을 잃고 헤매리

녹색 피 심장이 부푼 꿈속의 ET 만나

새큼한 나무 그늘에서 달큼한 잠을 자고

정의의 아스트라에아,

손을 잡고 깨어나리

비정규직 딱지 떼고 휘파람 불어보리

낮꿈의 전송속도로 밧줄 늘어뜨리고

떠돌이

지구별 사람들

하나둘씩 부르리

*생명체가 존재하기에 적합한 조건을 갖춘또 다른지구가 골디락스존 (GoldilocksZone)에서 최근에 발견되었다.

 

<당선소감>


독학은 막막했다나는 참 운이 좋은 사내다

 

"달이 오르면 배가 곯아 배곯은 바위는 말이 없어/ 할일 없이 꽃 같은 거 처녀 같은 거나/ 남몰래 제 어깨에다 새기고들 있었다// 징역사는 사람들의 눈 먼 사투리는/ 밤의 소용돌이 속에 파묻힌 푸른 달빛/ 없는 것, 그 어둠 밑에서 흘러가는 물소리// 바람불어……아무렇게나 그려진 그것의/ 의미는 저승인가 깊고 깊은 바위 속 울음인가/ 더구나 내 죽은 후에 세상에 남겨질 말씀쯤인가"

가락이 살아 있는 가곡, "기다리는 마음(장일남 작곡)"의 노랫말을 쓰신 고 김민부 선생님의 1958년 신춘문예 당선작 "균열"의 전문이다. 이 시()에서 신운(神韻)을 느끼신 어느 대시인께서 어느 날 나에게 시조를 권하셨다. 그때 나는 판소리 서사시를 쓰면서 중중모리 휘모리 등의 빠른 박자에 4·4(3·4)조와 7·5(5·7)조의 결합을 시도하고 있었다. 먼저 그분의 시조 사랑과 혜안에 고개 숙여 감사의 말씀을 올린다.

독학은 힘들고도 막막했다. -이건 결코 혼자의 힘으로 무엇을 해보겠다는 치기 어린 오기가 아니다.- 나는 시() 속의 섬, 전남 순천만 근처에 살고 있다. 소위 '중앙'이란 곳에서부터 너무 멀어 '눈 도둑질'해가며 혼자 공부할 수밖에 없었다. 부족한 작품을 올려주신 심사위원 선생님과 조선일보사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너무 기뻐하시는 아버님과 '수수'라고 부르는 사랑하는 두 딸과 아내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나는 참 운이 좋은 사내다.

 

1963년 전남 순천 출생순천대학교대학원 국문과 석사 수료

 

<심사평>


환상을 현실적으로 녹이는 힘이 일품

 

신춘의 고열이 식어갈 즈음, 누군가는 비상을 할 것이다. 온갖 갈망과 절망과 희망의 교신 끝에 터진 시를 물고. 물론 시조는 정형이라는 제련을 다시 뜨겁게 거쳐야 살 수 있다.

그런 열병의 궤적을 읽는 즐거움이 컸다. 부적절한 말의 넘침이나 개념 없는 형식의 어긋남이 간간 보였지만, 율격과 이미지의 자연스러운 조합과 활달한 시상을 펼쳐낸 응모작이 많았다. 특히 박성규, 윤지후, 이병철, 이윤훈, 조예서의 작품은 끝까지 고심을 거듭하게 했다. 다양한 제재와 참신한 발상 등 새로운 시조 세계를 열어갈 준비가 충분히 되어 있었다. 하지만 시상과 형식의 밀도 있는 구조화나 세계 인식의 폭, 균질성 등에서 당선작에 조금씩 못 미쳤다.

당선작은 현실인식과 상상력의 결속이 시원 발랄하다. 이미지와 율격의 능숙한 조직으로 구()와 장()맛을 살리며 단형의 구조미도 돋운다. 환상을 현실적 맥락 안에 녹여내는 힘 또한 일품이다. 거기에 비정규직 딱지 떼고 휘파람 불어보리에 머물지 않고 떠돌이/지구별 사람들/하나둘씩 부르리로 나아가며 노마디즘 정신 같은 꿈의 건강성과 낭만성을 곁들였다. ‘초인아닌 외계인을 기다리는 오늘을 살면서 배제당한 현실 속의 또 다른 외계인같은 떠돌이들과 함께하려는 자세와 신인다운 패기도 크게 보았다.

당선을 축하한다. 양해열 시인, 부디 시조단의 새로운 글리제 581g’으로 힘차게 날기를!

심사위원 : 정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