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당선작>

 

   다이브 / 신윤주

 

등장인물

선민 유완 라이프가드 시설관리장


예년보다 기온이 높은 12월 초. 이른 오전.


무대

수영장 안. 잠깐 장외경기가 벌어지는 홀이 되기도 한다. 극 중 인물은 물 밖과 수중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다. 흰 조명과 푸르죽죽한 조명을 두어 차이를 드러낸다.


1장

싸한 약품 냄새, 교대 시간임을 알리는 종. 라이프가드가 지정석에서 일어나 호루 라기 분다. 푸르죽죽한 조명 속 선민의 모습이 드러난다. 맥 빠진 소리 두어 번 더 들리고 나서야 수면 위로 얼굴 내민다. 가드 말없이 나오라는 듯 손짓한다. 선민이 코마개를 빼며 물 밖으로 나온다. 목에서부터 아래로 서서히 걷히는 파란 빛. 이제 흰 조명만이 무대 전체를 밝히고 있다. 곧장 가드 중앙 출입구로 퇴장한다.

선민이 어색하게 주위 살핀다. 그러다 오른쪽 창고의 작은 문 발견. 안을 뒤적이더 니 매트 가지고 나와 그 위에서 자세 취한다.

선민 (해설위원 흉내 내며) 동작 매끄럽게 이어나가면서, 벤니.

점퍼 차림의 유완 등장. 타일 벽면 따라 물안경으로 툭 치며 수영장 한 바퀴 크게 돈다. 벤치에 수영모, 물안경을 던져두고 종종 선민을 흘긋댄다. 선민은 눈을 감고 자세 잡는 데 열중하고 있다.

< 시설 안내 및 비상시 대피 경로 지도 >

유완, 그 앞에서 한참 지도와 수영장 내부를 번갈아 보며 체크한다.

유완 수심 3m 풀장에, 출발대랑 레인 쭉 설치돼 있구. 저 노란 건 뭐야? 입간판? 똑바루 세워놓지두 않았네.

선민 이번엔 발레레그죠. 정지스컬 하면서 한쪽 다리를 천장 향해 90도로.

유완 다음은 대피 경로, (출입구 너머 내다본다) 들어올 때 보니까 저 오른쪽 통로는 막 혀 있던데.

선민 한 다리는 직각, 남은 다리는 구부린 상태에서 종아리 한가운데가 수직으로 위치하 도록.

유완 (라이프가드의 공석 발견하고) 제때 앉아 있긴 하는 건지.

선민 플라밍고처럼 우아하게, 소화해냅니다.

유완 벌써 세 가지나 되네. 저건 또 뭐야?

유완은 풀 가까이로 향한다. 수면에 물안경이 둥둥 떠다니고 있다. 최대한 몸을 뒤 로 뺀 상태에서 팔을 뻗어보지만 역부족. 유완, 익숙하게 창고로 가더니 기다란 뜰 채 하나 들고나온다.

선민 마침내, 아티스틱 스위밍 솔로 부문의 우승을 이뤄냈습니다!

피날레와 동시에 둘은 마주친다. 두 손 뻗으며 자세 유지하고 있던 선민이 흐트러 진다. 유완은 물안경을 건져내다가 미끄러질 뻔 한다. 엉겁결에 선민이 손을 내밀 지만, 뜰채로 지탱해 알아서 중심 잡는다.

선민 (멋쩍게 손을 거두며) 교대 시간이라 들어가면 안 된대.

유완 그러려던 건 아냐. (사이) 근데 발가락만 담그는 것두 안 돼?

선민 장난치다 혼날걸.

유완 뭐 어때. 저렇게 자리 비우는 게 더 문젠데.

선민이 라이프가드의 공석을 본다. 유완은 뜰채를 바닥에 두고, 건져낸 물안경의 물기를 대충 턴다. 점퍼 주머니에 쑤셔 넣음과 동시에 접힌 종이 쪼가리를 꺼낸다.

유완 (종이 펼치며) 칸이 두 개네. 진로 희망 조사. 부모님 희망 직업, 학생 희망 직업, 월요일까지 제출 바람. 에이 씨. 귀찮게 시리.

구기듯 접어 도로 점퍼 주머니에 쑤셔 넣는다.

유완 가드 언제쯤 오는지 알아?

선민 글쎄. 곧 오지 않을까.

유완 나갈 때 뭐라 안 했어?

선민 별말 없었는데.

유완 그냥 나갔다구?

선민 물속에 있느라 못 들었을 수도 있어.

유완 교대 시간인 건 어떻게 알았는데?

선민 눈치껏.

유완 여기 오래 다녔나 봐.

선민 오늘 첫날이야.

유완 되게 익숙해 보이는데.

선민 워낙 이곳저곳 많이 옮겨 다녀서 그런가. (사이) 얼른 들어가고 싶어서 그래?

유완 아니, 절대.

선민 그러면?

유완 다른 할 일이 있어. 물에 들어가는 건 별루 내키지두 않아.

사이.

유완 (풀 바라보다가 한 걸음 물러나며) 파란 게 꼭, 실험 용액처럼 생겼잖아.

선민 그저 타일 색이 비치는 것뿐인데.

유완 말이 그렇다는 거지. 나도 알아. 뭐랄까, 보이는 것부터가 싫다는 거야. 그리구 너 손 한번 펴 봐봐. 손바닥이 위로 오게끔.

선민, 시키는 대로 양손 내밀어 쫙 핀다. 어리둥절한 모습.

유완 봐. 이렇게 손가락 불어터지는 것두. 느낌 진짜 이상하지 않아? 또 물에 들어가 면 눈도 따갑구, 피부도 간지러운 거 같구, 이 소독약 냄새두.

선민 다 이유가 있네.

유완 그냥 싫다는 건 말이 좀 안 되니까.

유완이 주머니 속 물안경, 수영장 내 지도, 쓰러진 입간판, 라이프가드의 공석을 차례대로 짚는다. 알 수 없는 행동에 선민은 고개를 갸우뚱하다 입간판을 발견하고 는 바로 세운다.

유완 (다급하게) 그거 세워둘 필요 없어.

선민 응?

유완 그래야 증거가 된단 말야.

선민 1번 레인은 나 혼자 사용하는 거라 표시해둬야 되는데.

유완 단독으루?

선민 응. 연습해야 돼서 대관했거든.

유완 일단은 급할 거 없으니까 아까처럼 놔둬.

선민, 입간판을 도로 바닥에 눕혀 두고 다시 매트 위로 올라간다. 유완은 그 모습 을 주시하다가 입을 연다.

유완 선수인가 봐?

선민 그래 보여?

유완 엉. 근데 무슨 종목?

선민 아티스틱 스위밍.

유완 좀 낯설다.

선민 수중발레나 싱크로나이즈드는 들어본 적 있어?

유완 얼핏.

선민 명칭만 다르고 종목은 같은 거야.

유완 아아, 나 티비에서 본 적 있다. 여자들이 막 단체로 하는 거.

선민 남자 선수도 있어. 몇 안 되지만.

유완은 대충 끄덕거린다. 선민이 서서히 몸을 풀기 시작한다.

유완 그래서 말인데 이왕이면 다른 곳으로 옮겨. 그게 나을 테니까.

선민 왜?

유완 여긴 안전하지 않거든.

선민 (의아해한다) 그래?

유완 자세한 건 이따 알게 될 거야. 라이프가드가 오고 나서.

유완, 출입구 쪽을 틈틈이 살핀다. 선민도 따라 고개 휙 돌려본다. 아무도 없다. 선민은 스트레칭을 병행하며 자세 연습 이어나간다.

유완 (하품하면서) 연습 안 지루해?

선민 그럴 틈이 없어.

유완 왜 없는데?

선민 신경 쓸 게 한두 가지가 아니라. 표현력이랑 자세의 정확성 말고도 음악에 맞춰 움 직이고, 숨 오래 참고, 표정 짓고……

유완 표정까지?

선민 응. 얼굴이 물 밖으로 드러나 있을 때 계속 웃음을 유지해야 하거든.

유완 힘들어 죽겠어두?

선민 못 하면 감점이야. (자세 바로 하며) 근데 할 일 있다 하지 않았어?

유완 (다시금 하나씩 짚어본다) 얼추 끝났어. 이젠 물어볼 사람이 필요하지.

선민이 잠시 숨을 고른다. 유완, 갑자기 무언가 떠오른 듯 크게 손뼉 친다.

유완 나 좀 도와주라.

선민 어?

유완 너한텐 아주 간단한 거야.

선민 연습 계속해야 되는데.

유완 잘됐네. 연습할 겸 그냥 물에 뛰어들면 돼.

선민 들어가라고?

유완 엉. 지금.

선민 아직 교대 시간이라 안 되잖아.

유완 뭐 어때. 레인 한 줄은 통째루 빌린 건데.

선민 그렇지만 규칙에 어긋나잖아.

유완 하지 말라면 더 하구 싶지 않아?

선민 굳이 그럴 필요 있나.

유완 더 안 기다리구 물속에서 연습할 수 있잖아.

선민 난 그렇다 해도, 너는?

유완 이곳의 안전을 확인할 수 있어. 한 가지 실험을 통해서 말이지. 너가 물에 뛰어들 면 나는 사람이 빠졌다구 외칠 거야. 그렇게 대략 몇 분 몇 초 만에 라이프가드가 달려오나 보는 거지.

선민 거짓말까지 해서?

유완 그냥 하나의 해프닝으로 끝이야. 실제로 누가 다치거나 위험해지는 건 아니니까.

선민 그래도 이건 좀,

유완 어차피 우리보다 가드가 더 깨질걸? 자릴 이렇게나 오래 비우고 있는데.

선민 아닌 거 같아.

유완 아까 말했다시피 나는 물을 싫어한단 말야. 드넓을수록 더욱. 게다가 그뿐만이 아 냐. 이어달리기 바톤, 고장 난 스크린, 투구게의 피…… 파란빛을 띠는 건 전부 진 저리가 난다구.

선민 물은 파란 게 아니라 투명한 건데.

유완 그래, 물은 무색. 암튼 너가 도와줘야 성공적인 계획이 된다니까? 딱 한 번만. 어?

선민 글쎄.

유완 됐어. 그럼. (구시렁거린다) 그 사람들 분명 교대 시간이랍시구 휴게실에서 티비나 보고 있을걸. 우리가 어떻게 되든 안중에두 없는 거지. 아예 담배 피러 밖에 나갔 을지두 몰라. 만약 이러다 진짜 위험해지면…… (선민에게) 너는 너 할 거나 해. 나 혼자서라두 할 수 있으니까.

유완, 점퍼를 벗어 벤치에 두고 풀 앞에 선다. 몸을 푼답시고 이리저리 산만하게 움직인다.

유완 (끝내 망설이다가) 아무래두 순서를 바꿔야겠어. 일단 소리치구 인기척이 들리면 들어가는 걸루.

선민 괜찮겠어?

유완 안 괜찮을 건 또 뭐야.

그렇지만 자신 없어 보인다. 선민, 유완의 곁으로 다가간다.

선민 채비라도 하면 훨씬 수월할 텐데.

유완 됐어.

선민 가져온 수영 도구도 저기 있잖아.

유완 머리까지는 못, 아니 안 들어갈 거야.

선민 (머뭇대다가) 아니면 상상이라도 해보는 건?

유완 (구시렁댄다) 이 와중에 무슨 상상이야.

선민 그러니까…… 누구와 함께 물속에 있다고 떠올려 보는 거야. 혼자인 게 느껴지지 않게끔. 꼭 사람일 필요는 없어. 동물이나 식물, 아끼는 물건 같은 거. 친구가 될 수 있다면 모두 가능해.

유완 그래 봤자 가짜잖아.

선민 생각보다 마음이 가다듬어져. 어느 순간에는 두 눈으로 직접 보는 느낌이거든.

유완 솔직히 오버 아냐?

선민 도움 되니까 알려주려는 거야.

유완 그럼 너가 떠올리는 건 뭔데?

선민 스텔러바다소.

유완 스텔러바다소?

선민 응. 스텔러바다소는 몸체가 굵고 고래와 비슷한 꼬리가 있어. 덩치가 엄청나게 크 지만 무섭진 않아. 타고나기를 온순하고 동료애가 깊거든. 그래서 우리는 금세 친 구가 돼. 나란히 헤엄치고, 경주하면서 함께 물속을 누비는 거야. 이기고 지는 건 상관없어. 그때만큼은 힘들기보다 즐겁거든. 아주 사소한 제약도 없으니까.

유완 어쨌든 상상만 하면 된다구? (눈을 굴리며) 전혀 안 되는데?

선민 방법이 있어. 먼저, 눈을 감아봐. 이 상태에서 온몸의 힘을 느슨하게 푼다고 생각 해. 긴장하지 않는 게 중요한 포인트거든. 그런 다음, 찬찬히 빚는다는 느낌으로 형상을 떠올리는 거야. 저 멀리 무언가 어렴풋이 보인다면 자연스레 물의 흐름을 따라가면 돼. 팔다리를 부드럽게 젓다 보면 서서히 나아가는 느낌이 들 거야. 그렇 게 내가 상상하는 대상과 점점 가까워지는 거지. 그러면 결국 만날 수 있어. 이제 물속에서도 편안함을 유지하는 거야.

유완이 눈을 질끈 감고 상상해본다. 그러나 도통 집중하지 못한다.

유완 (눈을 뜨며) 그려지기는커녕 어둠뿐야.

선민 틈날 때마다 조금씩 연습하다 보면 익숙해질 거야.

유완 그냥 포기할래. 그나저나 아직두 생각 없어?

선민 단순히 들어가는 게 아니니까.

유완 나는 너가 시키는 대루 다 했는데?

선민 좀 이상하잖아.

유완 뭐가

선민 내가 하는 운동의 기본이 물속에서 숨 참으면서 계속 움직이는 건데, 빠졌다고 하기가 조금……

유완 아님 당장이라두 물에 뛰어들고 싶게끔 만들어줄 테니까 할래?

선민 어떻게 하려고.

유완 너두 있을 거 아냐. 무작정 그러고 싶을 때가.

선민 그런데?

유완 이럴 때 계속 담아두지만 말구 꺼내 봐. 홀가분하게 털어놓으라구.

선민 괜찮아.

유완 괜찮긴 뭐가 괜찮아. 너 설마 없는 거 아냐?

선민 있기는 있어.

유완 언제?

선민 그다지 떠올리고 싶지는 않은데.

유완 아, 뭔데.

선민 뛰어들고 싶게끔 한다는 게 이거였어?

유완 (당당하게) 엉. 맞아.

선민 만약 다 말하고 나서도 그럴 마음이 안 생기면?

유완 그땐 안 되는구나, 하구 그만두지 뭐.

유완, 벤치에 있던 자신과 선민의 점퍼를 들고 온다. 선민은 부러 뭉그적거린다. 그사이 유완은 매트와 뜰채를 질질 끌어 한쪽으로 치우고 있다. 라이프가드 지정석 근처에 물건이 널브러져 있는 모습.

유완 (손을 털며) 됐다.

선민 방금 뭐한 거야?

유완 나름의 환경을 조성해봤지.

선민 환경?

유완 더 편하게 얘기하라구. 걸리적거리는 거 없이. 하도 생각이 많아 보이길래 주변이 라두 좀 정리했어.

선민 잘 모르겠어.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유완 그냥 막 되는 대루 해. 그때 있었던 상황 말함 되지.

선민 어디서부터 꺼내야……

유완 아까 해설위원 흉내는 잘 내더만. (뭔가 생각난 듯) 아님 이런 식으루 할까?

둘은 대화를 주고받으며 상의한다. 이윽고 어떤 반주가 어렴풋이 흘러나온다. 선민 이 몹시 당황했는지 주위를 살핀다. 유완은 태연하게 선민의 등을 떠밀며 함께 퇴 장. 그와 동시에 반주 끊긴다. 무대 어두워진다.

 

2장

같은 곡이지만 이번엔 반주가 아닌 정식 음악과 함께 무대 밝아진다. 유완이 넓은 보폭으로 들어와 한쪽에 선다. 누군가와 이야기하듯 고개 돌려가며 입을 벙긋거린 다. 뒤이어, 선민이 쭈뼛대며 등장. 상황에 따라 무대는 수영장이 되기도 경기장 로비 홀이 되기도 한다.

선민 (관객석을 바라보고) 어…… 첫 경기를 마치고 나왔는데요. 여기서도 시합 때 썼던 음악이 계속해서 들리는 거 같아요. 아직 실감 나지 않아서일까요? (유완을 보며) 저쪽, 로비 홀에 사람들이 무언가를 중심으로 둥글게 모여 있네요.

유완이 여러 방향으로 몸을 돌리며 홀로 원을 표현한다.

선민 저는 내키지 않았지만 제 발로 다가갈 수밖에 없었어요. 노랫소리의 근원지가 바 로, 저기인 듯했거든요. 더불어 귀에 익은 목소리도 함께. 그 어깨 너머로 마치 경 기의 연장선인 마냥 대화가 진행되고 있어요. 선수의 측근으로 구성된 판이요.

유완 (선민의 엄마 역 - 부러 호들갑 떨며) 왔어, 우리 아들? 너무 수고 많았어.

유완이 두 팔을 활짝 벌리지만, 선민은 옆으로 피해 선다.

유완 (선민의 엄마 역 - 캠코더를 들어 보이며) 기다리는 동안 경기 영상 모니터하구 있 었어. 아, 배고프지?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말해봐. 엄마가 다 사줄게.

선민 (조금 놀라며) 방금 진짜 우리 엄마랑 비슷했어.

유완 뭐야 벌써부터. 집중해, 집중.

선민 (다시 관객석을 바라보며) 어, 저는 얼른 돌아가 쉬고 싶을 뿐이었어요. 경기장 로 비에서 더 시간을 흘려보내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엄마를 데리고 서둘러 이 자 리를 벗어나야겠다 싶었는데……

유완 (선민의 엄마 역) 정말 대단하지 않아요?

선민 제 등장이 오히려 발화점이 된 거죠.

유완 (선민의 엄마 역) 글쎄 아티스틱 스위밍 시작한 지두 얼마 안 됐어요. 경력? 이제 막 반년 넘었구요. 오늘이 첫 경기였는데. 네, 듀엣. 다들 보셨죠? 가볍게 본선 올 라갔잖아요. 다음번엔 또 얼마나 잘할지 벌써 기대된다니까요.

선민 엄마가…… 자랑을 늘어놓기 시작했어요.

유완 (선민의 엄마 역) 책임감은 어찌나 넘치는지. 지금까지 하루두 연습을 거른 적이 없어요. 저 나이대 남자애들은 학원 빼먹고 몰래 놀러 나가는 게 일상이라던데 그 런 거 구경 한 번 못 해봤잖어요. 애가 워낙 우직해서.

선민 엄마를 한번, 그리고 나를 한번. 훑어보는 시선이 적나라하게 느껴졌어요.

유완 (선민의 엄마 역) 아휴, 잔소리해 본 적두 없어요. 그저 잘할 거라 믿는 거죠. (선민의 어깨에 손 올리며) 알지?

선민 점점 더 이목이 쏠렸어요. 아마도 출전 선수 중에 유일한 남자여서 그런 거라고 속 으로 되풀이했어요. 그렇지 않으면……

유완 (선민의 엄마 역) 영재. 그래, 유망주까지. 기사 난 거 봤죠? 호평뿐만이 아니라 벌써 다양한 타이틀두 얻었다니까요?

사이.

선민 이때였던 거 같아.

유완 엉?

선민 당장이라도 뛰어들고 싶었던 순간.

유완 그래그래. 아직 다 안 끝났으니까 마저 할까?

선민 이만하면 된 거 같아.

유완 (기대에 찬 눈빛으로) 지금 뛰어들래?

선민 아직 그 정도까지는 아닌데.

유완 그럼 계속해. 흐름 끊기면 안 되니까. 시작.

사이.

선민 (다시 관객석을 바라보며) 견제와 자랑 같은 것들이 뒤섞여 오고 갔어요. 엄마는 다른 사람에게 공감하는 척 제 자랑을 하고, 그러지 않을 때도 제 자랑을 덧붙였 죠.

유완 (선민의 엄마 역) 맞아요. 파트너 운도 굉장히 중요하죠. 중간에 바뀌면 엄청 고생 하는 거구. 우리 아들은 파트너랑 틀어지는 거 없이 잘 지내서 다행이지, 뭐예요.

선민 ……끊임없이.

유완 (선민의 엄마 역) 뒷바라지 여간 힘든 게 아니죠. 진짜 돈은 돈대로 들구. 건강 이랑 몸 상하지 않게 잘 챙겨야 하구. 애보다 한발 먼저 움직여서 예약하구 연습 데려다주구, 영상 찍어서 모니터링해야 되구. 그래도 쏟아부은 만큼 결과가 나오 니까 다행이긴 해요.

선민 이제 그만하자.

유완 (선민의 엄마 역) 곡 선정하는 데에두 제가 좀 일조하지 않았나 싶어요. 우리 애가 잘하면서 어울리는 느낌으로 딱. 파트너도 단번에 오케이 하더라니까요? 센스 있 다구. 이거 하나 찾으려구 장르란 장르는 다,

선민 (말 자르며) 제발 그만.

그제야 유완은 말을 멈춘다. 선민, 한동안 멈춘 듯 가만히 서 있다.

유완 내가 연기를 좀 잘하긴, 하나 봐.

선민 한 중간쯤부터 목소리가 겹쳐 들릴 정도였어.

유완 기분이 썩 좋진 않네.

선민 생각보다 별거 아니지.

유완 뭐가?

선민 그 순간 말이야.

유완 너가 별거라고 생각하면 별거인 거지.

선민 그런가.

유완 이젠 어때? 좀 뛰어들고 싶어졌어?

선민 조금.

유완 마침 물두 딱 눈앞에 있네.

유완, 선민이 점퍼 벗자 얼른 가져가 든다. 지켜보는 모습이 조금 들떠 보인다. 선 민은 코마개를 착용하며 풀 앞에 선다.

유완 준비됐지? 3, 2, 1.

물속으로 가볍게 들어가는 선민. 순식간에 파란 조명이 몸 전체를 감싼다. 유완은 기다렸다는 듯 냉큼 외친다.

유완 누가 물에 빠졌어요! 도와주세요! 네? 누구 없어요? 아, 위험하다구요. 얼렁요.

목이 터져라 소리치지만 돌아오지 않는 반응에 유완, 당황한다. 그럼에도 연기 톤 으로 주절주절 말을 잇는다.

유완 어떡하지? 뭐 던질 거라도 없나. 저기요, 누구 없어요? 라이프가드는 어딜 간 거 야? 나 수영 못 한다구요. 당장 일루 좀 와 봐요!

아무도 달려오지 않는다. 유완이 안절부절못하다가 점퍼를 벗어 발치에 둔다. 고민 끝에 풀 사다리를 부여잡고 겨우 몇 칸 내려간다. 유완의 무릎쯤에서 일렁이는 물. 이때 선민이 수면 위로 고개 내민다.

선민 (깜짝 놀라며) 너 왜 그러고 있어?

유완 오기 생기잖아.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데도 어떻게 안 올 수가 있냐.

선민 괜찮은 거야?

유완 아직은. (사다리 한 칸 더 내려가며) 아, 몰라. 금방 오겠지?

이제는 유완의 허리춤까지 차오른 물.

유완 아씨. 죽겠네. 벌써 2분도 더 된 거 같은데. (다시 소리친다) 아, 사람 살려요!

선민 나 혼자 있어도 되니까

유완 (속사포로) 버텨볼 거야. 어떻게 들어온 건데.

그것도 잠시. 유완, 견디지 못하고 급히 나와 주저앉는다. 선민은 난간에 상체를 기댄 채 풀 속에서 유완을 살핀다.

유완 (숨 고르고는) 확실해졌어.

선민 응?

유완 그만둘 수 있겠다구. 이제 더 억지로 안 다닐 거야.

선민 잘 된 거지?

유완 어. 그렇다 쳐. 와, 근데 아무리 사람 뜸한 아침이라두 그렇지. 진짜 너무한 거 아 냐? 아예 신경 안 쓰는 게 말이 돼?

선민 그러게.

유완 역시 예상이 제대루 들어맞았어. 여긴 안전하지 않아. 아니 안전 따위 없는 걸 지두. 너두 내 말 잊지 말구 꼭 옮겨.

선민 나는…… 못 옮기지 않을까 싶은데.

유완 상황 다 알면서 그냥 다니겠다구?

선민 규격에 맞는 풀 찾기도 쉽지 않고. 이미 많이 옮겨 다니기도 해서.

유완 불안하지두 않아?

선민 ……하지.

유완 근데 이걸 망설여?

선민 워낙 여러 가지를 고려해봐야 하니까. 허락도 받아야 되고.

유완 (점퍼 주머니 뒤적여 구겨진 종이를 펼친다) 원래 나두 이거 다 채워서 내야 되거든?

선민 진로 조사네.

유완 엉. 근데 안 할 거야. 꿈 없으면 이상한 취급하는 거 같잖아. 기분 나빠. 꿈이 꼭 있어야 되는 것두 아닌데. 여기 보면 부모님 희망두 물어본다. 진짜 웃기지?

헛웃음 짓는 둘. 조용해지자 자연스레 창 너머 바라본다. 묘하게 다른 시선. 바깥 에서는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다.

선민 비 오나 봐.

유완 아침 뉴스 일기예보에선 분명 오후에 눈이랬는데. 맞는 게 하나 없네.

선민 내리는 도중에 녹은 걸지도 모르지.

 

3장

새로운 라이프가드 등장. 아까와는 다른 인물이지만 한 명이 연기해도 무방하다. 편안한 복장에 특징이라곤 하나 없어서 지정석에 앉는 걸 보고 나서야 라이프가드 임을 눈치챌 수 있다. 유완이 벤치에서 벌떡 일어나 곧장 그에게로 간다. 선민은 몸을 어정쩡하게 일으키기만 한다. 라이프가드, 지정석에 다리 꼬고 앉아 핸드폰만 보고 있다.

유완 왜 이제 오세요?

가드 (슬쩍 보고는) 교대 시간이었잖아.

유완 아까…… 계속 부르는 소리 못 들었어요?

가드 교대 준비하느라.

유완 교대만 하구 바로 온 거 맞아요?

가드 중간에 처리할 일이 잠깐 생겨서 좀 늦었다.

유완 무슨 일이요?

가드 위에서 시키는 일이지.

유완 그니까 그게 뭔데요?

가드 내부 일은 함부로 말하면 안 돼. 일해야 하니까 방해 말고 가서 수영이나 하렴.

유완 저 노란 입간판두요.

가드 저게 어쨌다고?

유완 다시 제대루 세워 두셔야죠.

가드 지 혼자 넘어갔겠지.

유완 누가 걸려 넘어지기라두 하면 어쩌려구요.

가드 알았다. 곧 세워둘게. (말과 달리 움직이지 않는다) 요즘 애들은 참, 알아서 잘 피 해 다닐 것이지.

라이프가드가 저리 가라고 손짓한다. 유완, 출입구를 또다시 내다보더니 힘 빠진 듯하다. 벤치 앞에 어정쩡하게 서 있는 선민을 부른다. 이번에는 같이 라이프가드 앞으로 향한다.

유완 오른쪽 통로 아직두 막혀 있던데요?

가드 아, 그거. 천장에 물이 샌다던가.

유완 뭐 더 안 하세요? 겨우 테이프만 쳐 놨던데.

가드 그게 돼 있는 거잖니.

유완 대피 경로가 하나 줄어드는 건데 안내문이라두 붙여야죠.

가드 여기선 그럴 일 없단다.

유완 아무 때나 일어날 수 있는 거잖아요.

가드 복도 천장서 물새는 걸 어쩌겠니. 시간이 지나면 낡는 거고, 낡으면 새는 거란다. 누가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 유난 떨 것도 없지.

유완 저기요.

사이. 선민, 유완과 라이프가드 사이에서 난처해 보인다.

유완 저 사실 물에 들어갔었어요.

가드 (그제야 유완을 제대로 쳐다본다) 뭐라고?

유완 교대 시간 때 말예요. 여기 풀장에.

가드 들어가면 안 되는 건데?

유완 전 타임 라이프가드가 별말 안 했다는데요. (선민에게) 아까 그 사람 어떻게 했나 설명 좀 해줘 봐.

선민 어, 호루라기 소리가 들리길래 물 밖으로 얼굴 내미니까 나오라고 손짓한 게 전부 였어요.

가드 제재했네.

유완 교대 시간이니 물에 들어가면 안 된다, 말루 해줬어야죠.

가드 말했을지도 모르지.

유완 그리구 물속에 있었다는데 그걸 어떻게 들어요?

가드 호루라기 소리는 들었잖아?

선민 겨우 들은 거예요. 물속에 있을 때는 밖에서 나는 소리가 어느 정도 차단돼서 잘 안 들리거든요.

가드 갑자기 나오라고 손짓하는데 적당히 눈치챘어야지. 어차피 암만 규칙 좀 지키라고 말 늘어놔봤자 다들 귀담아듣지도 않으니. 다음부턴 그러지 마라.

유완 그게 다예요?

가드 아, 그리고 이 매트랑 뜰채 너희들이 쓴 거면 저리 좀 치울래?

가드가 발로 살짝 민다. 유완이 뜰채를 주워 막대 부분으로 바닥을 딱딱 치는 동안 선민은 매트를 만다. 둘은 각자 썼던 물건을 창고에 넣어놓고 나온다. 라이프가드 는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나 출입구 쪽으로 걸음 옮기고 있다.

유완 이번엔 어디 가시는 거예요? 벌써 또 교대인가?

선민 물에 들어가면 안 되나요?

가드 어. 안 된다. 일이 생겨서 이만 처리하러 가야 해.

선민 레인 대관 어쩌지.

유완 맞네. (가드에게) 얘, 레인 빌려놓고 아까부터 지금까지 제대로 쓴 적두 없어요. 대관은 시간으루 따지던데 그냥 돈 날리라는 거예요?

가드 (쩝 소리 낸다) 한 명은 물에 들어가도 좋아. 대신 다른 한 명이 지켜보고. 다른 사람 오는 거 같으면 안 들어간 척해라.

라이프가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간다. 유완과 선민, 어이없어한다. 다시금 비어 있는 지정석. 유완이 그 자리를 노려보며 다가간다. 털썩 앉아본다. 앉은 상태로 자꾸만 엉덩이 들썩거리며 고개 치켜든다. 이번에는 선민이 앉더니 유완과 똑같이 행동한다. 동시에 고개 젓는다. 갑자기 라이프가드가 급히 달려온다. 아까 보지 못 했던 빨간 모자 쓰고 조끼를 부랴부랴 입는다. 잠시 후, 시설관리장의 등장.

관리장 별일 없지요? 오는 길에 보니까 통로 하나가 막혀 있던데.

가드 (지정석에서 일어나며) 오셨습니까. 아, 통로는 안 그래도 제가 시설관리부에 연락 해두려고 했는데.

유완 하긴 개뿔.

관리장 했는데?

가드 당장 다녀오겠습니다.

관리장 됐어, 급할 거 없어. 하던 일은 계속해야지요.

가드 예. 그럼 이따 교대할 때 바로 일러두겠습니다.

관리장 그래요. (수영장을 샅샅이 살핀다. 조명으로 훑고 지나가는 듯한 효과) 근데 저기 쓰려져 있는 건 뭐죠?

가드 (달려가 입간판 세우며) 거치 다리가 약한지 자꾸 쓰러지지 뭡니까. 제가 계속 주 시하며 바로잡고 있습니다.

유완 진짜 뻔뻔스럽긴.

선민 좀 소름 돋았어.

관리장 저게 뭔데요? 입간판?

가드 그렇습니다.

관리장 강습 중. 누가 강습 중인가?

가드 (선민을 가리키며) 아, 그건 아니고 저 친구가 레인 하나를 대관해서요.

관리장 그 아크로바틱 한다던?

선민 아티스틱 스위밍이에요.

관리장 말이 헛나왔네. 그래요. 연습하기에 참 훌륭한 환경이지요?

선민 네? 그게……

유완 (냉큼) 별로에요.

선민 조금 그렇긴 한데.

관리장 (듣지 않고 고개 돌리며) 민원은 당연히 없었겠죠?

선민 저기요.

가드 (끼어들지 말라는 눈빛으로) 물론입니다. 라이프가드가 받는 훈련이 워낙 체계적이 지 않습니까. 그러다 보니 현장에서도 군더더기가 나오지 않는 편입니다.

유완 (선민에게) 너두 별로라는 말 아녔어?

선민 그렇다고 한 건데 물어봐 놓고 안 듣네.

관리장 조만간 안전 인증받을 곳인데 당연히 그래야 하지 않겠어요?

가드 예. 그렇습니다.

유완 안전 인증 같은 소리하구 있네.

관리장 회원들한테 규칙은 잘 숙지시키고 있고?

유완 저기요.

가드 (목소리 점점 커지며) 예. 틈틈이 하고 있습니다.

관리장 잠깐. (유완 보며) 얘기 중인 거 안 보여요?

유완 민원 있어서요. 사실 아까 교대 시간에 물에 들어갔었거든요.

관리장 그럼 규칙 위반 아닌가?

유완 그치만 라이프가드가 들어가지 말라는 말두 안 했구.

선민 별말 못 들었어요.

관리장 (가드에게) 사실이에요?

가드 그게, 제 타임이 아니라 직접 보지는 못했습니다만 가이드라인이 있으니 분명 제재 했을 겁니다. 자꾸 말을 안 해서 들어갔다 하는 게 못 미더워서……

유완 봐요. 아직 물기 남아 있잖아요. 라이프가드는 거의 내내 자리 비우고만 있었구요. 그 사이에 무슨 일이라도 일어났으면 어쩌려구 그래요?

관리장 들어가지 않았으면 아무 문제 없었겠지요.

유완 막 소리쳐도 안 오던데요? 한참 기다렸는데. 저기요부터 시작해서. 누구 없냐구. 도와달라구. 사람 살리라구.

사이.

유완 전부 문제투성이라구요.

관리장 (한숨 쉰다. 가드에게) 따라와요.

유완 저희한텐 할 말 없으세요?

관리장 다른 사람들 귀에 들어가지 않도록 해요.

유완 이렇게 넘어간다고요?

관리장 나도 지금 넘어가 주잖아요.

유완은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 숙인다. 관리장, 가드에게 계속 이야기하며 밖으로 나가려 한다. 선민이 그런 유완의 어깨를 두드리며 속삭인다.

선민 나, 뛰어들고 싶어졌어.

유완이 찬찬히 고개 들며 손가락 싸인 보낸다. 선민, 풀로 뛰어든다. 이내 유완도 사다리를 부여잡고 들어간다. 관리장과 가드가 출입구 앞에서 고개 돌림과 동시에 무대 어두워진다. 조명이 유완과 선민만을 비추고 있다. 유완은 사다리 잡은 손까 지 완전히 놓아본다. 하지만, 수심이 깊어 발이 닿지 않자 서둘러 난간을 부여잡는 다. 이제는 목선까지 차오른 물. 유완의 호흡이 불안정해진다. 선민이 재빨리 다가 간다.

선민 아까 내가 말했던 거 기억나지? 지금 그렇게 상상해보는 거야.

유완 (눈을 꼭 감고) 저건가. 애매하게 보이긴 하는데.

선민 보여? 그럼 그 친구의 이름을 불러 봐. 더 빨리 만날 수 있게.

사이.

유완 나 좀 위로 올려주라.

선민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풀 밖으로 나오는 유완. 바닥을 기다시피 움직이며 물 과 거리를 둔다. 그들의 곁으로 관리장과 가드 뛰어오고 있고 암전.

 

4장

다시 밝아지는 무대. 유완과 선민, 점퍼를 걸친 채로 벤치에 나란히 앉아 있다.

선민 아직도 많이 힘들어 보여.

유완 물 공포증 있어서 그래.

선민 발 안 닿아서 더 버티기 어려웠을 텐데.

유완 죽는 줄 알았어. 수영장 꽤 오래 다녔는데 아직두 물 무서워하는 거 이상하지.

선민 아니. 물속은 들어갈 때마다 매번 다른 느낌이잖아.

유완 나 그래도 아까 봤어.

선민 어?

유완 상상 속에서 말야.

선민 가까이서 만났어?

유완 어. 투구게.

선민 (돌림노래 하듯) 투구게.

유완 사진으로만 몇 번 봤지, 눈앞에서 움직이는 건 처음이었는데 얘두 생각보다 헤엄 못 치더라.

선민 그래?

유완 할 수는 있는데 거의 걸어 다니더라구.

선민 그럼 같이 걸어 다녔겠네.

유완 그랬지. 근데 너무 짧았어. 갑자기 저 위에서 그물 같은 게 내려와가지구 재빠르게 도망쳐야 했거든. 보이지 않게 잘 숨었겠지? 잡히면…… 강제로 파란 피를 뽑히게 될 텐데……

선민 안 잡혔을 거야.

사이.

선민 요즘 말이야. 나 상상하는 거 실패하기도 해.

유완 스텔러바다소?

선민 응. 잘 안 그려지더라고. 사실 아까도 그랬어.

유완 나한테 알려주느라 그랬겠지.

선민 단순히 그런 게 아닐 수도 있어. ……사실 스텔러바다소는 멸종된 지 오래거든. 사 람들에게 발견되고 나서 고작 몇십 년 만에.

사이. 수영장 창 너머 바라본다.

유완 비 다 그쳤네.

선민 뭔가 속 시원해진 거 같아.

유완 홀가분하지?

선민 어. 근데 한편으로는 계속 나올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드네.

유완 아직두 걱정돼?

선민 그냥 자연스레 떠오르는 거지.

유완 어차피 어디로든 갈 거잖아.

선민 그렇겠지.

유완 또 영재인데 뭐, 하루 정도야.

선민 (허탈하게 웃으며) 놀리는 거야?

유완 뭐라 부를까 하다가.

선민 이름 알려줄까?

유완 아니? 스텔러바다소라구 부를 건데.

유완이 장난스레 웃는다. 선민도 따라 웃음 터진다. 다시 수영장 바깥을 바라보는 둘.

막.




  <당선소감>


   "한동안 내버려둔 것들을 꺼내볼 차례"


다듬어지지 않은 부분을 내보이게 될 때가 있습니다. 이런 순간은 몸에 익지 않아서 저는 잊고 지내려 애를 써봅니다. 고민 끝에 투고 한 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일상을 그렇게 보내던 참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 한 통이 걸려 왔습니다.

그걸 기점 삼아 우선 곁에 있어 준 이들의 안부를 물었습니다. 갑작스러운 연락에도 대신 울어주던, 정장이라도 한 벌 맞춰야 하지 않겠냐고 하던, 사진으로는 티가 많이 나니 뿌리염색 고민해보라던 그 목소리들에 또 웃을 수 있었습니다. 생일에도 어색하게 넘어가곤 하던 축하 노래를 불러준 가족에게도 고맙습니다.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단 마음을 품게 된 건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서였지만,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던 건 각자의 톤으로 제게 무언가를 건네주던 손들 때문이었을 겁니다.

한동안 내버려 두었던 것을 꺼내 볼 차례입니다. 서랍 속 편지와 사진, 영수증, 메모 뭉텅이. 그중에서 노란 포스트잇을 골라 책상 앞 거울에 붙여 놓았습니다. 동기의 응원은 여러 번 붙였다 떼었다 했음에도 아직 접착력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제가 썼던 희곡을 다시금 열어 보았습니다. 부족함 속에서 가능성을 발견해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감사를 전합니다. 희곡을 쓸 수 있도록 이끌어주신 전성희 교수님께도 이 소식을 전할 수 있어 기쁩니다.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생각하며 계속 써보겠습니다.

눈을 감고도 감지 않고도 자주 떠올리고 싶은 얼굴이 있습니다. 몇 안 되기에 더 소중한 모습을 모아 서서히 빚으며 오래도록 안녕을 빌어봅니다.


  ● 1998년 인천 출생
  ● 명지전문대 문예창작과 졸업


 

  <심사평>


  함축성 있는 대사로 이미지 구체화


올해 신춘문예희곡에 응모된 작품은 총 58편이었다. 서너 편을 빼고는 무대에 대한 구조를 인식하고 쓴 희곡들이란 점이 반가웠다.

소재며 접근방법이 다양한 작품 가운데, 자신의 몸에 낙서를 하는 엄마 이야기를 감각적으로 풀어 낸 ‘식빵을 사러 가는 소년’은 무심한 듯한 내면으로 인물들 간의 긴장을 만들고 극을 진전시키는 힘이 있었지만 극의 후반이 다소 모호했다.

또한 내용이 진부한 부분은 있지만 인간 본질에 대한 질문으로 설득력이 있는 ‘활의 노래’ 에피소드가 작위적이긴 해도 극의 호흡이 좋고, 구성인물들 사이의 정서가 잘 녹아있는 ‘3분전 12시’ 동화 헨젤과 그레텔을 소재로 삼은 '축축한 숲'은 일상적이지만 서늘한 시각으로 인물들을 살아있게 만든 작가의 재능을 확인하게 해준 작품이다.

다소 허황된 이야기이지만 극의 제목처럼 그로테스크한 극적 설정이며 인물들 성격이 독창적인 ‘시체가 툭’ AI가 지배하는 세상을 흥미롭고도 매력적으로 풀어 낸 ‘존경하는 미음’ 이 최종후보에 올랐음을 밝힌다. AI라는 소재가 너무 많이 소비되고 있는 세상이라 희곡의 가치를 고려한 측면에서 아쉽지만 제외시켰다.

당선작으로 뽑은 수영장과 수중 상황을 무대로 삼은 ‘다이브’는, 간결하지만 함축성 있는 대사만으로, 이미지를 구체화 시키는 묘사가 돋보였다.

당선을 축하하며 계속 정진하기를 바란다.

심사위원 : 정복근, 한태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