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경남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랩타임 - 김태선 랩타임 / 김태선 서킷은 한산했다. 차창을 열자 아침공기가 얼굴을 스친다. 영상 14도, 좋은 온도다. 수온과 싸우지 않아도 된다. 패독에 대기 중인 자동차들이 눈에 들어온다. 메인 컨트롤 타워에서 표를 끊고 시계를 보니 주행을 준비할 수 있는 약간의 여유가 있다. 타이어 공기압을 한 번 더 체크하며 시합 날 아내 현주가 응원석에 있는 모습을 상상한다. 운전석 버킷시트에 앉아 4점식 벨트의 버클을 채운다. 양쪽 어깨에서 내려온 벨트의 끈을 잡아당기자 엉덩이와 척추가 시트에 딱 달라붙는다. 시트가 나를 뒤에서 끌어안는 기분이 드는 순간 맥박이 조금 빨라진다. 벨트가 맞물리는 소리는 의식을 전환시키는 신호탄과도 같다. ‘딸깍’ 소리와 동시에 낙하산을 메고 산과 하늘을 배경으로 떨어져 내리는 기분이 된다. 자.. 좋은 글/소설 11년 전
[2014 경남신문 신춘문예 동화 당선작] 다섯 번째 마트료시카 - 황지나 다섯 번째 마트료시카 / 황지나 수업종소리가 교실에 울려 퍼졌어요. 하지만 교실엔 여전히 떠드는 소리로 가득해서 누가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조차 알 수도 없었어요. 지금은 수요일 6교시 미술시간이에요. 하지만 선생님은 아직 교실에 오시지 않았어요. 앞문이 쾅 소리를 내며 세게 열리는 소리가 들렸어요. 떠드는 소리가 멈췄어요. 선생님이 두 손 가득 커다란 종이 상자 하나를 힘겹게 들고 오셨어요. 상자가 너무 무거워 보여서 선생님이 넘어질까 봐 모두 가슴을 조마조마하며 바라보았어요. 선생님은 교탁에 상자를 ‘쿵’하고 내려놓으셨어요. 그리고 더우셨는지 선생님의 팔목에 걸려있는 노란 고무줄을 입으로 빼내서 어깨까지 길게 늘어뜨린 긴 머리를 묶으셨어요. 선생님은 아무 말 없이 상자에서 꺼낸 손바닥 크기의 오뚝이 .. 좋은 글/동화 11년 전
[2014 경남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체면 - 오서윤 체면 / 오서윤 막, 죽음을 넘어선 지점을 감추려서둘러 흰 천으로 덮어놓고 있던 익사자 최초의 조문이 빙 둘러서 있다 발을 덮지 않는 것은 죽은 자의 상징일까 얼굴은 다 덮고 발을 내놓고 있다 다 끌어올려도 꼭 모자라는 내력이 있다 태어날 때 가장 늦게 나온 발 저 맨발은 결국 물을 밟지 못하고 미끄러졌다 복사기처럼 훑던 흰 천 끝내 남은 미련을 뚝 끊듯 발목에 걸쳐져 있는 체면 가시밭길을 걷고 있거나 아니면 용케 빠져나와 눈밭을 지났거나 물길을 걷다가 수습되어 왔을 것이다 발은 죽어서도 끊임없이 걷고 있어 덮지 않는 것일까 만약에 발까지 덮어놓았다면 자루이거나 작은 목선 한 척이었을 것이다 경계는 저 물 속이 아닌 신발을 가지런히 벗어둔 곳인지 모른다 발이 나와 있으므로 익사자다 고통도 화장도 다 지워.. 좋은 글/시 11년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