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한국경제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당산에서 / 신나리
당산에서 / 신나리 비 오는 새벽 요강을 몇 번이나 비워낸 할머니는 내가 잠에서 깰까 아침이면 부엌에 가 우두커니 앉아있었다 약을 많이 멋어 몸에서 쓴 내가 났다 나한테는 미묘한 매실 냄새가 비가 퍼붓는데도 두 냄새가 멈추지를 않았다 푸른 논을 보기만 해도 가슴이 뚫린다던 엄마는 절대 할머니 곁으로 돌아갈 생각이 없다 시골에 살면 우울증에 걸린다나 나 어릴 때 친구 하나가 너희 엄마 불 꺼진 매장에 혼자 앉아있더라 전해 준 적이 있다 할머니는 방에 걸린 무수한 액자들과 함께 살고 있어 나는 양심이 없으므로 엄마에게 몇 마디를 했다 얼마나 불쌍한지 외로운지 결국은 심심한지 할머니가 엄마는 고집 있고 성질 나빠 아빠랑 살기 어려웠을 거래 우리는 웃다가 콧물을 흘렸다 다음날 어떻게 잘 지낼지 생각하느라 도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