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도배를 하면서 / 권영하
도배를 하면서 / 권영하 악착같이 붙어 있는 낡은 벽을 뜯어내고 벽지를 살살 풀어 재단해 붙여보면 꽃들은 뿌리내리며 벽에서 피어난다 때 묻고 해진 곳에 꽃밭을 만들려고 온몸에 풀을 발라 애면글면 오른다 흉터를 몰래 감싸고 생채기를 보듬으며 직벽도 척추 없이 단번에 기어올라 천장에 땀 흘리며 거꾸로 매달려도 서로를 응원하면서 깍지 끼고 버틴다 보일러를 높이거나 햇빛살 들이거나 실바람 끌어다가 방 안에 풀지 않아도 팽팽히 힘줄을 당겨 꽃동산을 만든다 우리는 모두 인생 써내리는 작가이자 시인 종이 울리자, 국어 교실의 문을 열고 아이들이 와르르 쏟아져 들어왔다. 새파란 웃음을 토해내며 밀물처럼 새싹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어쩌면 저 새싹들이 모두 작가이고 시인이 아닐까. 수업 시간에 아이들에게 시, 시조를 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