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경남신문 신춘문예 수필 당선작] 반쪽 지구본 / 안은숙 반쪽 지구본 / 안은숙 거리를 배회했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다만 느리게 아주 천천히 걸었다. 저녁 어스름에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 갔다.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게 어쩌면 참 다행이라 여겨졌다. 골목 어귀에 들어서자 누군가 내다버린 반쪽의 지구본이 시선을 잡아끌었다. 우묵하게 파인 반쪽의 지구본, 마치 분화구 같기도 하다. 그 안엔 반나절 동안 내린 빗물이 얌전하게 고여 있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지구본 속엔 온갖 난파된 배와 격렬한 해전들이 오래전부터 있었다는 듯 고요했다. 내가 알고 있거나 다녀온 나라들은 없었다. 모국을 찾아보려고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봤지만 나머지 반쪽의 지구본은 어디에도 없었다. 고인 빗물은 쏟아버리고 나는 반쪽의 지구본을 품에 안았다. 집으로 가져왔다. 기울여도 기울여 봐.. 좋은 글/수필 8년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