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부산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주제넘기 / 이예린
주제넘기 / 이예린 정숙은 아까부터 택시기사의 퉁명스러움이 신경 쓰였다. 룸미러로 시선이 마주칠 때마다 눈에서 미세한 경멸이 읽혔다. 차선을 바꿀 때는 깜박이를 틀지 않았고 핸들을 홱홱 돌려대서 정숙의 몸이 자꾸만 양쪽으로 번갈아가며 쏠렸다. 이 오밤중에 무슨 일이 있느냐는 물음에 어물쩍 넘긴 게 문제였나. 제대로 대답하지 않고 ‘최대한 빨리 좀 가주시라’고 요청했던 게, 입 다물고 운전이나 하라는 의미처럼 들렸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그러나 정숙은 기사에게 무례하게 굴려고 했던 것도 대답하고 싶지 않았던 것도 아니었다. 정말이지 조금도 아는 바가 없었고 또 조급한 마음이 들었을 뿐이다. 혹시나 추가로 온 연락이 있을까 싶어 정숙은 휴대폰을 꺼내들었지만 대화창은 아까와 같았다. 관리소장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