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한라일보 신춘문예 시 가작] 김영란 / 링거 속의 바다
링거 속의 바다 김영란 온 몸이 글썽거린다 아득한 바다냄새 어쩌면 이 신열은 오래 전의 길 하나 열어줄지도 몰라 세상은 바다가 낳은 미지근한 비망록일거라고 아니, 그 비망록이 낙서들의 끝에 부려놓은 삽화일거라고 네가 나른한 힘을 얘기했던 곳으로 지금 나는 가고 있는지도 몰라 내가 너의 힘을 빌려 나에게 이르지 못할 때마다 변명처럼 꺼내든 바다가 아닌 방금 전 내 몸의 한 모퉁이로 들어오던 링거액 같은 바다 그러나 나는 지금도 잠깐의 외출로 조회할 수 있는 너를 믿지 않지 너의 웃음이 우리가 기억할 수 없는 날들 속에서 조난의 느낌 하나만으로 바람을 이끌고 오고 폭풍을 이끌고 와 끝내 범선 같은 고백을 숨겼던 것처럼 나 지금도 먼 옛날의 너를 믿지 않아 기억이란 몇 방울의 망각으로 걸어나갔던 오랜 신열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