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동아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 당선작] 발굴하는 토피아(topia), 복권되는 생활 ―이현승의 '생활이라는 생각'과 고두현의 '달의 뒷면을 보다' - 문신
발굴하는 토피아(topia), 복권되는 생활 ―이현승의 '생활이라는 생각'과 고두현의 '달의 뒷면을 보다' / 문신 1. 기율들 여기 신분증 하나가 있다. 이 신분증에는 우리의 사진이 인쇄되어 있고, 우리의 존재를 증명하는 시간적 기호(생년월일)와 공간적 점유(주소)가 표기되어 있다. 우리는 신분증 하나로 현실의 거의 모든 일을 해결할 수 있다. 심지어 신분증은 우리 없이도 우리의 일을 처리해낸다. 신분증의 위력은 우리가 존재하지 않는 가상 세계에서도 유효하다. 그렇기 때문에 원본인 우리는 우리의 권리를 신분증에게 양도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사실을 안다. 기꺼이 우리는 신분증에게 우리를 의탁하고 스스로 은폐되고자 한다. 신분증이 활보하는 거리에서 우리는 익명의 존재가 된다. 그러므로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