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전남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정경희 / 위풍당당 분필氏
위풍당당 분필氏 정경희 강의실에 상주하는 분필씨는요 평소엔 친절함 속에 뿔을 감추고 있지만 앉기 거부하거나 행동지침을 어기면 밑줄 좍좍 그어가며 날 길들이려 하죠 동강동강 제 몸 관절 부러뜨리며 어김없이 날카로운 뿔을 꺼내 위협해 와요 나는 뿔이 무서워 의자에 몸 구겨 넣고는 고분고분 말 잘 듣는 순한 양이 되어요 묻지도 않았는데 분필씨 생각대로 답하고 분필씨 습관대로 따라 행동하죠 가끔 경직되고 고루한 생각에 내 뿔 꺼내 맞서볼까 생각도 하지만요 그의 뿔은 워낙 완고해 내 같은 여린 뿔로는 감히 어림 없다나요? 그래서 나만의 대항 법을 터득했는데요 강의 내용 자장가 삼아 잠 계단에 비스듬히 앉아 있거나 창 밖 딴 세상 꿈꾸면서 그 뿔 숫제 무시해보죠 그러다가 뿔을 타고 밖으로 나가 강 건너고 구름 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