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전북일보 신춘문예 수필 당선작] 뜨개질 - 한경희
뜨개질 / 한경희
의자에 앉아 뜨개질을 시작했다. 먼지가 햇빛의 그물망에 갇혀 온 방을 떠다닌다. 내 유년의 엄마가 햇빛 드는 창가 쪽에 앉아 뜨개질을 할 때도 그랬다.
먼지는 엄마 손끝에서 머리까지 이리저리 부유했다. 엄마는 해가 떨어질 때가 돼서야 숙인 고개를 들었다. 뜨개질을 멈추면 엄마 주변에 갇혀있던 먼지도 풀려났다.
책상 후미진 곳에 쌓인 먼지가 보인다. 내 손가락이 움직이는 데로 무늬가 새겨진다. 그 무늬에는 어떤 과거가 갇혔을까. 밤사이 풀려난 먼지는 내 낙서 위에 고요로 덮였다.
그는 목이 유난히 길고 추워 보였다. 나에게 여섯 살 때 헤어진 엄마 이야기를 했다. 내 손으로 감쌀 수 없는 그의 목에 꼭 맞는 목도리를 뜨기로 했다. 내가 뜬 목도리가 그의 목을 데워줄 생각을 하면 내 가슴이 훈훈해졌다. 절로 손이 빨라졌다.
벌집무늬는 난해하다. 잠시라도 정신을 팔면 무늬가 흐트러진다. 틀린 코를 풀어 다시 바늘대에 끼우기를 반복하며 마지막 코를 마무리했다. 목도리를 내 앞자락에 펼쳐보았다.
엄마는 뜨개질 도중에 간간이 나를 불렀다. 미완의 뜨개옷을 내 가슴에 대어보며 길이를 가늠했다. 한 코로 시작한 스웨터는 날마다 옷의 형태를 갖추어갔다.
내가 백 점을 맞아 온 날이었다.
“아이고, 우리 딸 잘했네. 일주일만 기다려.”
엄마의 손놀림은 더 빨라졌다. 엄마는 계획한 일주일을 다 채우지 않았다. 이틀 먼저 내 옷은 완성되었다. 내게 새 스웨터를 입히며 함박웃음을 거두지 못하던 엄마 얼굴이 행복해 보였다.
엄마를 생각하다 벌집무늬가 흐트러졌다. 잠시 눈을 감았다.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그를 불러 세우고 싶다. 목도리로 그의 목을 폭 감싸고 싶다. 언제나처럼 나를 보며 웃는 모습이다. ‘넌 참 좋은 내 친구야.’ 그의 말이 들리는 듯하다. 감은 눈 속에서만 또렷한 그다. 눈을 뜨면 이내 사라지는 그.
내 목에 목도리를 둘러보았다. 길이는 짧고 폭이 너무 넓다. 거울 앞의 내가 목에 깁스를 한 것 같다. 좀 더 따뜻하라고 두 겹으로 떴더니 너무 뻣뻣했다. 마감한 코를 죄다 풀어 되감기를 시작했다.
엄마는 늦가을이 되면 집안을 거두는 일 외에는 늘 뜨개질이었다. 내 옷을 뜨는 엄마 주변을 나는 기분 좋게 맴돌았다. 헐렁한 옷 대신 날선 맵시의 스웨터를 빨리 입어보고 싶었다.
엄마는 항상 조금 큰 새 옷을 사왔다. 키가 클 것을 예비해서다. 하지만 뜨개옷만은 내 몸에 꼭 맞게 떴다. 뜨개옷은 되풀어서 다시 짤 수 있다.
쌀쌀한 바람이 불면 한 해 동안 자란만큼 내 뜨개옷은 작아져 있었다. 엄마는 작아진 스웨터를 풀어 실뭉치로 감았다. 라면발 같은 실을 끓는 주전자 뚜껑에 끼워 주둥이로 뽑아냈다. 스팀을 받은 털실은 다시 살아 곧게 펴진다. 실뭉치를 풀어주는 건 내 몫이었다.
꽈배기 무늬 유행이 벌집무늬로 바뀌면 내 스웨터는 또 풀렸다. 유행에 쳐진 털옷은 입어 본 적이 없다.
실을 펴는 주전자의 뜨거운 김은 엄마의 가슴에 고인 한숨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굽이굽이 마음속에 쌓인 한숨은 무엇으로 곧게 펼까.
다시 떴던 목도리가 완성되었다.
“그냥 심심해서 떠 봤어. 실뭉치가 굴러 다니 길래……”
그의 덤덤한 표정이 맹꽁이 같다. 그래도 나는 추운 날 항시 그의 목에 감겨있기를, 그리고 잠시라도 내 생각을 하며 목에 두르기를 바랐다. 그를 향한 내 마음을 목도리 올올에 담았다면 거짓일까.
그날 전화선을 타고 온 그의 목소리가 내 심장을 무섭도록 쿵쾅 찧었다. 그가 긴 여행을 갔다 온 후 처음으로 넘어 온 전화 목소리였다. 즐거운 긴장이 몰려와 내 주변의 공기가 팽팽해지는 걸 느꼈다. 반가운 김에 내 응답이 떨렸나보다.
“목소리가 왜 그래? 감기 들었니?”
“아니 그냥. 저…….”
“아, 그래. 뭐 하나 물어볼 게 있어. 그 친구 전화번호 바뀌었더라. 네가 친하니 알 것 같아서……”
“……으응……”
내 심장은 이내 끝을 모르는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 같았다. 친구의 새 번호를 더듬더듬 알려주었다.
며칠 후 친구가 전화를 했다. 그 사람이 ‘고백을 했다.’고 설레는 목소리였다. 내가 그를 처음 보았을 때 내 눈에는 뭍사람들 속에서 그만 보였다. 그가 나에게 건넨 말 하나하나가 커다랗게 다가왔었다. 나는 내 마음의 방 속에 그의 말들을 꽁꽁 가두고 수시로 꺼내어 들었다.
그를 알고부터 무의미했던 내 삶에는 생기가 돌았었다. 의미가 커질수록 그의 방도 커져갔다. 그 방에 푸른 물이 점점 차오르더니 넘실대며 아름답게 빛났다. 그때부터였다. 그리움이란 당의정이 내 입 속에 들어온 것은. 달달한 맛에 빠져들었다가 그 쓰디쓴 약의 속살에 치를 떨곤 했다. 다시 뱉고 싶었지만 이미 내 속은 달고 쓴 맛으로 꽉 차 있었다.
그는 전화 이후로도 나를 보면 그전과 똑같이 환하게 웃었다. 나는 내 속의 모든 것들을 금방 비우지 못해 허덕이고 있었는데…….
나는 대바늘이 아닌 코바늘로 자동차 방석을 뜨기로 했다. 엄마에게 일부러 복잡한 무늬를 부탁했던 내 마음을 그는 짐작이나 할 수 있었을까. 너무 어려운 무늬였다. 1분 1초라도 설사 그게 그에 대한 생각일지라도 다른 생각을 하면 뜬 만큼 다시 풀어야 했다.
마지막이라 생각해서였을까. 한 줄이 완성되기도 전에 무늬는 흩어졌다. 생각의 조그만 포말은 파도가 되어 어느새 내 머릿속을 휘저었다. 한참을 허우적거리면서도 손가락이 일정한 리듬을 타기 시작했다. 나는 자동인형처럼 코를 떴다. 절정에 이른 파도가 힘을 다하여 사구(砂丘)를 밀쳐 내고는 바다로 되돌아갔다. 그러면 또 내 손에는 엉망으로 뒤틀려버린 무늬만 남아 있었다.
방석을 다 완성하기까지 나는 수 없이 풀고 다시 뜨기를 반복했다.
해가 져도 아빠가 돌아오지 않을 때면 엄마의 뜨게 무늬는 사정없이 흩어졌다. 아빠는 술 속이 좋지 않았다. 술을 마신 날은 집안이 시끄러웠다. 엄마는 돌부처처럼 몇 시간을 꼼짝하지 않았다. 그런 날의 엄마는 굳은 표정으로 뜨개질만 하였다. 한숨소리에 실을 엮었다.
엄마는 뜨개질을 하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생각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며 뜨개질을 했다는 걸 나는 방석을 뜨면서 깨달았다. 털실과 바늘대와 손놀림의 반복, 그 이외에 다른 어떤 것이 끼어들면 스웨터고 방석이고 무늬는 엉망이 된다.
코와 그 옆의 코가 맞닿아 무늬가 되기까지 나는 실을 짜는 게 아니라 생각을 하나하나 끄집어내어 짜고 있었다. 점점 머릿속은 비워지고 그에 대한 감정이 다 정리될 때쯤 내 생각의 너비만큼 큰 방석이 완성되었다.
나는 방석을 그의 차에 깔아주었다. 비로소 그를 향한 내 마음도 실려 보냈다. 그에게 방석을 준 후 열네 번의 봄이 스쳐 지나갔다. 아마 그에게 줬던 방석이 낡기도 전에 그는 나를 잊었을 것이다.
방안의 먼지가 햇빛의 그물망에 걸려 끝없이 떠돈다. 이리저리 부유하다 언제든 내 속에 들어와 뿌옇게 자리 잡을지도 모른다. 그럴 때면 나는 다시 뜨개바늘을 잡을 것이다.
[당선소감] "묵묵히 내면의 여정 따라 달릴 터"
언제부터였을까. 마음속에 빈방 하나가 생겼습니다.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허기였습니다. 점점 커져 저를 집어삼킬 것만 같았습니다.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는 절박함 속에서 수필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잊혀진 기억들을 찾아 헤맸습니다. 밥을 먹으며 책을 읽으며 거리를 걸으며 찾고 또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만 포기해야겠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젖혔을 때 아픈 지난날들이 어둠 속에서 별이 되어 빛나고 있었습니다. 저에게 수필을 쓴다는 건 그 별을 하나씩 따서 허기의 공간에 들이는 일이었습니다.
매번 뒤엉켜 있는 단어의 뭉치에서 실 한 가닥을 뽑기까지 쓰고 지우기를 수없이 반복했습니다. 그 실로 남루한 나의 일상을 기웠습니다. 다시 꿈을 꾸었고 오래 기다릴 생각이었습니다. 당선 소식은 준비운동을 채 끝내기 전에 울린 마라톤 출발 신호 같았습니다. 설레면서도 두려웠습니다. 묵묵히 내면의 여정을 따라 성실하게 달리겠습니다.
오늘의 저를 만들어준 모든 인연들이 고맙습니다. 사랑하는 내 동생들 지연, 상율이와 고마운 시댁어른들께도 이제 면목이 섭니다. 응원해 준 임정, 현정, 순희, 세영, 소현 씨, 미숙 언니, 승미 언니, 나의 소중한 벗들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귀한 가르침을 주신 박영학 교수님, 채규판 교수님과 문우들께 감사드립니다. 신공 카페 회원들과 영광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힘들어 할 때마다 용기 주시던 박시윤 수필가님께 고마울 따름입니다. 손잡아 주신 심사위원님들과 전북일보사에 깊이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남편에게 참 미안하고 고맙습니다. 마지막으로 나보다 더 기뻐할 유일한 사람, 엄마에게 못했던 말을 전합니다. 엄마 고마워, 사랑해.
[심사평] "한땀 한땀 '뜨개질 구성' 돋보여"
붓 가는 대로 쓰는 것이 수필이라고 했다. 옳은 말이되, 사실은 그렇지 않다. ‘붓 가는 대로’ 쓰다 보면 제대로 정돈되지 않은 주관적인 감상이나 관념을 장황하게 나열하기 십상이다. 이야기의 전후맥락을 살피지 않고 신변잡기를 단선적으로 풀어놓기 일쑤다. 읽는 맛을 낸다고 멋스러운 단어를 고르는 일에 집착하기도 한다. 자신이 쓴 글로 읽는 이와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며 어깨동무를 하고 가야 하는데, 제 흥에 도취되어서 멀찍이 앞서가는 우를 범하기도 한다. 그러니 읽는 이는 감동을 얻기 어렵다.
적잖은 공을 들여서 썼을 것으로 짐작되는 박금아(가명)의 <유산>, 박세정의 <슬픔은 내 삶의 원천>, 허숙영의 <화로>, 윤미애의 <박>, 전성옥의 <가로수의 마지막 여름>, 박시윤의 <빗살무늬토기>, 이정인의 <마당>을 읽으면서 든 생각이 그랬다. 이 일곱 편의 수필을 쓴 이들은 하나같이 사물을 바라보는 눈길이 깊고 따뜻하다. 문장력도 웬만큼 갖추었다. 그건 분명 수필가의 중요한 덕목 중 하나다. 그런데 이 작품들에는 읽는 이의 마음을 울릴 수 있는 삶의 진솔한 얘기가 부족했다.
당선작으로 고른 한경희의 <뜨개질>은 그런 점에서 앞선 일곱 편과 달랐다. 제목 그대로 이 작품의 글감은 ‘뜨개질’이다. 작중화자가 어린 시절에 곁에서 보았던 어머니의 뜨개질하는 모습과, 과거에 자신이 사랑했던 남자를 위해 손수 뜨개질했던 일을 한 땀 한 땀 ‘뜨개질하듯’ 구성한 점이 돋보였다. 한때 ‘그’를 사랑했던 작중화자의 애잔한 감정에 어린 시절 어머니에게서 보았던 인고의 시간을 교차시켜서 잘 녹여내었다. 읽는 이에게 들려주고 싶은 얘기를 조금 더 유연한 문장으로 빚어낼 수 있는 능력만 보완한다면 앞으로 좋은 수필을 쓸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심사위원 : 송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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