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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밭 / 박진홍


나는 나비를 한참이나 눈으로 쫓아다녔습니다

참 예뻤어요, 다른 건 다 시커멓고 흐릿해 싫은데

나비만 또렷하게 예뻤어요

나는 마음먹었습니다마당에 꽃밭을 만들기로요

 

우리 집은 무척 낡았습니다. 뒷산 언덕에서 내려다보면 얼마나 초라한지 몰라요. 한쪽 지붕이 주저앉아서, 꼭 짜부라진 자라 등껍질 같아요.

 

그 주저앉은 지붕 아래는 바로 내 방입니다. 천장이 낮고, 햇빛이 잘 안 들어서 낮에도 어두컴컴해요. 벽지는 여기저기 벗겨졌고, 얼룩덜룩한 것도 많이 묻었고요. 내 방에서는 책도 보기 싫어요. 그래서 나는 되도록 마루에 나가 있습니다. 몹시 추울 때만 빼고요. 하지만 마루도 군데군데 썩어서, 걸을 때마다 삐걱삐걱 소리가 나요.

 

뭐니 뭐니 해도, 내가 우리 집에서 가장 싫어하는 곳은 부엌이에요. 통째로 불에 탄 것처럼 여기저기 시커멓게 그을렸습니다. 더욱이 부엌에는 쥐가 살아요. 내가 들어서면 찍찍거리며 잽싸게 달아날 때도 있고요. 쥐도 살 곳이 없어서 들어왔겠지만, 우리 집이 깨끗한 새집이었으면 안 왔을 거예요.

 

그래서 나는 집에 있기 싫습니다. 만날 만날 밖에서 놀고 싶어요. 놀다가 집에는 늦게 오고 싶고요.

 

'오늘은 집에서 어떻게 빠져나갈까.'

 

한참 고민하고 있으니, 때마침 엄마가 참기름 좀 사오라고 했습니다. 나는 신 나서 밖으로 나갔어요. 일부러 천천히 걸어가서 참기름 사고, 말숙이랑 선주 만나서 고무줄놀이 좀 했어요.

 

돌아오는 길에, 집 짓는 공사장을 지나왔어요. 하얀 집인데, 참말로 크고 말끔해 보였습니다. 서울 사람이 별장을 짓나 봐요. 요즘에는 우리 동네에 사람 안 사는 낡은 집이 한둘 없어지고, 예쁘고 깨끗한 새집이 들어서곤 합니다. 서울 사람들은 일 년에 몇 번밖에 안 오면서 집을 왜 짓나 모르겠어요. 어쨌든 나는 그 하얀 집을 오랫동안 구경했습니다.

 

집에 돌아오니 엄마는 밭에 나가고 없었어요. 나는 참기름 병을 부엌에 갖다 놓고, 마루에 앉았습니다. 그렇게 앉았다가 누웠다가 하며 마당을 멍하니 봤어요. 흙바닥에는 잡풀이 듬성듬성 나 있고, 누렁이는 졸고 있었습니다. 자기 집 옆에 여기저기 똥을 막 싸놨습니다. 많이도 싸놨습니다. 마당 끝에 답답하게 선 벽에는 금이 짝짝 가 있고, 퍼런 이끼가 올라와서 참 보기 싫었습니다. 저러다 무너지면 어쩌나 싶기도 했어요.

 

그런 우중충한 걸 계속 보고 있으니, 집에 올 때 본 하얀 집이 떠올랐습니다. 그러니 우리 집이 더욱 싫었어요.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습니다.

 

기분이 안 좋아서 낮잠이나 자려는데, 어디서 하얀 나비 한 마리가 마당에 날아들었습니다. 나비는 팔랑대며 흙바닥 위로, 퍼런 이끼 아래로, 엎드린 누렁이 위로 사뿐사뿐 날아다녔습니다.

 

나는 나비를 한참이나 눈으로 쫓아다녔습니다. 참 예뻤어요. 다른 건 다 시커멓고 흐릿해 싫은데, 나비만 또렷하게 예뻤어요. 그때, 나는 마음먹었습니다. 마당에 꽃밭을 만들기로요. 진달래, 제비꽃, 개나리, 이 꽃 저 꽃 심어서 나비랑 꽃이랑 만날 보고, 같이 놀고 싶었습니다.

 

나는 벌떡 일어나서 마당에 내려갔습니다. 먼저, 잡풀을 뽑았습니다. 뿌리가 깊은 건 힘껏 당겨도 잘 안 뽑혀서 나는 자꾸 뒤로 자빠졌습니다. 무척 힘들었어요. 그래도 다 뽑고 나니 속이 시원했습니다.

 

찬물을 좀 마시고, 꽃 심을 땅을 팠습니다. 아주 정신없이 팠습니다. 땀이 막 났어요. 한참 파고 있으니, 끼이잉, 대문 여는 소리를 내며 아버지랑 엄마랑 들어왔습니다. 대문도 온통 녹슬어서 소리가 크게 나요. 엄마는 부엌으로 곧장 들어가고, 아버지는 땅 파던 나랑 파인 땅이랑 꼬리를 세차게 흔드는 누렁이를 번갈아 보다가, 내게 물었습니다.

 

"뭐하노?"

 

"땅 파예."

 

"땅을 와?"

 

"꽃 심을라고예."

 

"꼬옻?"

 

". 꽃밭 만들라꼬예."

 

아버지는 잠깐 뜸을 들이더니, "고마 치아라" 하고는, 수돗가에서 손을 씻었습니다. 내가 풀도 뽑아놓고, 땅도 파놓고, 꽃 심는다고 하면 아버지도 좋아할 줄 알았는데, 꾸지람 들으니까 기분이 이상했습니다. 그래서 더 대꾸 못 하고 가만있으니 갑자기 눈물이 났습니다. 처음에는 조그맣게 울다가 갈수록 서러워서 크게 울었습니다. 아버지는 그런 나를 보고 말했습니다.

 

", 이래 다 파 뒤집어서 꽃 갖다 심고 며칠 좋다 하다가 금세 다 말라 죽일 거 아이가? 그라고, 그런 거 해봐야 소용없다. 가을에 이사 갈 낀데."

 

나는 아버지 말은 하나도 안 들리고 눈물만 났습니다. 내가 계속 우니까 아버지가 "시끄러버 죽겠네. 수도꼭지 열렸나" 했습니다. 나는 미워서, 아버지가 너무 미워서 가자미눈을 해가지고 아버지를 한참 째려봤습니다. 엄마는 그냥 하게 두라고 했지만, 아버지는 들은 체 만 체 방에 들어갔습니다.

 

나는 한참 우니까 땀도 식고, 배도 고파서 밥을 먹었습니다. 밥알이 입안에서 까끌까끌했어요. 밥을 다 먹을 때쯤 엄마가 알려줬습니다.

 

"느그 아부지, 말숙 아부지한테 장기 일곱 판 내리 졌다 칸다. 그래 내는 기다."

 

나는 그 말을 들으니 더욱 분했습니다.

 

다음 날, 학교 마치고 오니 집에 아무도 없었습니다. 나는 또 꽃삽 들고 마당에 앉았습니다. 아버지가 아침에 ", 파논 거 다 메까놔라" 했지만, 나는 말 안 듣고 계속 파기로 했습니다. 어제 파던 거 마저 팠어요. 다 파놓고, 좀 쉬었습니다. 이제 꽃씨 구해다가 심고, 다시 덮으면 됐어요.

 

나는 꽃씨를 어디서 구해야 할지 생각하다가 밖에 나갔습니다. 아버지 만날까 봐 우리 밭 반대쪽으로, 말숙이네 밭 쪽으로 걸어가 봤어요. 말숙이네 원두막에서 아버지가 장기 두고 있어서 진짜 깜짝 놀랐습니다. 허리를 숙이고, 몰래 되돌아왔습니다.

 

우리 밭을 지나서 걷다 보니 민들레가 여기저기 피어 있었습니다. 쪼그리고 앉아서 살펴봤지만, 씨가 어디 있는지 영 안 보였어요. 통째로 파다 심을까 하다가, 그러면 아버지한테 바로 들키니까 관뒀습니다. 군데군데 이르게 핀 씀바귀도 살펴봤지만, 꽃씨를 못 찾았습니다.

 

나는 어떻게 할 줄 몰라서 선주 어머니를 찾아갔습니다. 선주네는 온실에 꽃이랑 나무랑 키워서 팔거든요.

 

"안녕하세요."

 

"혜미 아이가. 우얀 일이고? 선주 요 없는데."

 

"알아예. 뭐 쫌 여쭤 볼라꼬예."

 

"뭐를?"

 

"마당에 꽃 좀 심을라 카는데예, 씨는 어디서 구해예?"

 

"꽃씨? 니는 구하기 어려울 낀데."

 

"그래예? 안 그래도 길에 민들레 씨가 암만 봐도 없데예."

 

"그거는 벌써 씨가 다 날리서 꽃 핀 거 아이가."

 

", 그래예? 그라모 다른 씨는 어디서 구하는교?"

 

"니는 몬 구한다카이. 내 쫌 주꾸마."

 

"참말로예?"

 

"하모. 뭐 주꼬?"

 

"지는 잘 몰라서예. 꽃씨 아무거나 쪼매만 주이소. 빛깔이 골고루 있어야 예쁠 낀디."

 

"내 알아서 쫌 주께. 쪼매 기다리래이."

 

선주 어머니가 꽃씨를 챙기는 사이, 나는 온실에 핀 꽃을 구경했습니다. 우리 집에도 이런 예쁜 꽃이 가득 필 모습을 떠올리니 참 좋았어요. , 선주 어머니가 작은 봉지를 몇 개 줬습니다. 그 안에는 쇳가루처럼 생긴 채송화 씨앗 조금, 패랭이꽃 씨앗 조금, 나팔꽃 씨앗이랑 맨드라미 씨앗 몇 알이 들어 있었습니다. 고마워서 인사를 몇 번 했나 모르겠어요. 나는 꽃씨를 들고서 한달음에 집에 돌아왔습니다.

 

집에 오자마자, 나는 땅 파놓은 데다가 씨를 조금씩 뿌리고, 흙을 덮어 나갔어요. 아버지 들어올까 봐 가슴이 막 뛰는데, 참고 계속했습니다.

 

그러고 얼마 있으니 아버지가 딱, 끼이잉, 문소리를 내며 들어왔습니다. 아버지는 대문도 안 닫은 채 멈춰 서서 소리를 버럭 질렀습니다.

 

"니 자꾸 말 안 듣고 그칼래?"

 

나는 겁이 덜컥 났지만, 그래도 대꾸했습니다.

 

"벽이 숭한데 꽃 좀 심을라꼬예."

 

"산에 들에 꽃이 천진데, 뭐 할라꼬 이 난리고!"

 

"아부지는 와 그라는데예! 꽃 많으면 좋잖아예!"

 

"이기 어디 쫑알쫑알! 가을에 이사 간다 캤나 안 캤나? 당장 몬 메꾸나!"

 

꽃 좀 심는 게 뭐 그리 잘못이라고. 하지만 아버지는 "니 울어도 소용없다" 하고는 방문을 쾅 닫고, 방에 들어갔습니다. 오늘도 내기 장기 몇 판 졌나 싶었습니다. 만날 지면서 장기는 뭐하러 두나 싶었습니다. 나는 분하고 속상해서, 질질 울면서 계속 씨를 심었습니다.

 

잠깐 이따가 아버지가 방문을 벌컥 열더니 "고마 몬 하나! 내 다 메까뿐다!" 하고는 나를 계속 지켜봤습니다. 그래서 나는 어쩔 수 없이 판 땅을 도로 메웠습니다. 씨는 더 못 심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모릅니다. 땅 메우기 전에 나팔꽃 몇 알 심었습니다. 얼마 안 되지만, 그거라도 심어서 다행입니다. 잊지 않고 물을 꼬박꼬박 줘야겠어요.

 

파랗고 조그만 싹이 톡톡 올라오고, 보랏빛 나팔꽃이 활짝 피면, 그거 보고 어디 다 뽑아버리기야 하겠어요. 아버지한테 뭐라고 말할지 미리 생각해둬야겠습니다.

 

나는 손 씻고, 눈물 닦고, 내 방에 들어가 기분 좋게 한숨 잤습니다.




[당선소감] "단 한 번만이라도칭찬받고 싶었다"


절망으로 여는 새해. 나는 늘 그렇게 1월 1일을 맞았다. 상이 소중한 게 아니다. 칭찬받고 싶었다. 단 한 번만이라도, 내가 쓴 글로 다른 사람에게 다정한 말을 듣고 싶었다. 스스로 그럴 수 없었던 탓이다. 좋은 글을 쓰지 못했으니까. 그래도 여태 써온 까닭은 자존심. 그것뿐이다.

나는 부활이요, 나는 빛이라.

나는 오직 나에게만 허락된 길이 있음을 알았다. 시답잖은 저항. 초라한 생활. 내 글은 좋은 글일까. 내가 모른다면 아무도 모른다. 나는 내 마음에 묻기로 했다.

이번에 처음으로, 그렇게 쓴 글을 보냈다. 초조하지 않았다. 기대하거나 기다리지 않았다. 그래서 이런 이상한 당선 소감을 쓰게 되었다.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게 훨씬 쉬우니까, 가보면 아, 역시, 아주 오래전에 다 끝났구나. 울 수도 없다. 나는 내던져졌다. 길 위에 서서 앞을 본다. 새로움뿐, 나머지는 아무것도 아니다.

▲1977년 부산 출생
▲협성대 문예창작과, 동국대 문화예술대학원





[심사평] 현실과 아이 심리 대비 간결하고 힘 있게 표현


올해 동화 부문 응모작은 총 211편(응모자 202명)이었다. 그러나 꾸준한 습작을 거친 것으로 보이는 작품은 그리 많지 않았다.

응모자들의 연령이 14세부터 81세까지 다양했는데 50대 이상의 중장년층이 다수이고 70대 이상도 꽤 눈에 띄었으며 남성 응모자도 많아 보였다.

이는 동화 작가 지망생이 아이를 기르는 엄마나 초등 교사가 절대다수이던 과거 추세에 비해 크게 달라진 점이라 모종의 변화를 예감하게 한다.

최종심 후보 작품으로는 다음과 같이 5편을 골랐다. 김장수의 정신지체 엄마를 둔 아이 이야기 ‘그래도 엄마다’는 간결하고도 감동적인 게 장점이지만 커다란 물건을 작은 그릇에 담으려는 것처럼 이야기를 다루는 힘이 부족했다.

엄상미의 ‘안녕이라 말할 때’는 엄마의 죽음을 다루고 있다. 힘든 주제를 우연성에 기대 서사 중심으로 써 내려가 너무나도 중요한 상실 문제가 제대로 다루어지지 못한 것이 아쉽다.

이신율의 ‘아부의 지존’은 유쾌하고 재치 있는 솜씨가 돋보이지만 아들과 아빠가 엄마의 환심을 사서 자기 욕망을 채우려는 해프닝이 문학작품이라기보다 시트콤처럼 보였다.

김은선의 ‘그림자 손님’은 동화적 감각이 빛나지만 꿈과 현실의 관계 설정이 모호해서 주제가 잘 드러나지 않았다.

당선작으로 결정한 빅진홍의 ‘꽃밭’은 간결하고도 힘 있는 문체로 객관적 실재와 아이의 심리적 현실을 대비하는 데 성공한 차분한 작품이었다. 어른과 아이의 경계가 분명하면서 사투리의 맛이 살아있는 대사도 좋았고 아주 작은 것으로 그 뒤에 있는 큰 것을 보게 만드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당선자에게 기대를 걸며 큰 축하와 격려를 보낸다.

(심사위원 : 최윤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