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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란 / 이대연



두 달만에 알에서 깬 너는 새가 아닌 고양이였다
날개 없는 너 대신 날아다닌 것은 하얀 털이었고
청소기와 장난치는 너와의 시간은 즐거웠다

너는 알에서 태어났다. 예단부와 둔단부가 뚜렷한 우윳빛 알이었다. 적당히 거친 표면은 갱지의 질감을 떠올리게 했다. 둥글게 반죽해 건조시킨 종이죽 같았다. 가벼웠다. 난각의 단단함과 유별난 크기에 비해 무게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달걀이라기엔 지나치게 컸으므로, 나는 어느 조류의 알일 거라고 짐작했다. 너의 알을 백열등에 비쳐본 것은 검란을 위해서였다. 유정란인지 무정란인지 확인을 해야 했다. 발육이 멈춰버린 중지란일 수도 있었다. 검란에는 간단하지만 특수한 장비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몰랐다. 역광 때문에 알은 단지 검게만 보였다. 그때 너는 아직 흰 점으로만 존재했다. 난황과 난백을 양분으로 하여 성장할 배자에 불과했다. 나는 검은 알이 점등을 기다리는 백열전구 같다고 생각했다. 너는 그 어둠 속에 잠들어 필라멘트처럼 가늘고 섬세한 생명의 줄을 고르며 탄생을 꿈꾸었다.

너의 알은 거미줄에 매달려 있었다. 내가 이사한 첫날이었다. 오래된 연립주택의 지하창고로 내려가는 계단은 좁고 어수선했다. 바퀴가 빠진 세발자전거와 뚜껑 손잡이가 떨어져나간 보온밥통을 건너뛰고, 전자레인지를 얹은 소형 냉장고와 세탁기 사이를 비집고 내려가 철문을 열었다. 변기 물 빠지는 듯한 소리가 났다. 시간의 숙변일지 모를 어둠의 일부가 쓸려 내려갔다. 지금 나는 지하창고로 내려간 이유를 기억하지 못한다. 아마 기억할 필요조차 없는 사소한 일이었음에 분명하다. 그 사소함 때문에 나는 곡예를 하듯 좁은 계단을 내려가 완강한 철문을 열고 빛과 어둠의 경계를 따라 지하창고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너는 그곳에 있었다.

거미줄은 중심으로부터 방사형으로 뻗어나간 기하학적 형태가 아니었다. 짐승을 포획한 그물이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는 모양이었다. 가늘지만 쉽게 끊어지지 않는 피아노 줄처럼, 거미줄은 알의 무게를 감당하기에 충분해 보였다. 너의 알과 거미줄은 한데 어울린 조소 작품 같았다. 어쩌면 평론가들은 이렇게 말할지 모를 일이었다. 이 작품은 백열전구가 전선에 길게 매달린 모습을 거미줄과 알을 이용해 비유적으로 형상화한 것이며, 이는 물질문명으로 인해 소외된 현대인의 초상이다. 나는 알을 잡으려다 그만 두었다. 그 밑에 푯말이 걸려 있을 것만 같았다. 손대지 마시오. 나는 반쯤 올렸던 손을 엉거주춤 거두었다.

푯말은, 말하자면 자연의 경고였다. 알은 거미의 소유였다. 자연은 쓸데없는 인정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나는 멋쩍게 두 손을 호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이삿짐을 풀기 위해 지니고 있던 사무용 칼이 잡혔다. 그 순간 나는 칼의 유용성이 단지 일상의 편리함 때문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문득 정체를 알 수 없는 용기와 위반에 대한 충동이 솟구쳤다. 머릿속이 가벼워지고 너의 알이 백열전구처럼 환하게 빛났다. 자연의 질서와 내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나는 주머니에서 칼을 꺼냈다. 보통 거미줄보다 굵고 튼튼해 보이기는 해도 칼을 사용해 끊어야 할 만큼은 아니었다. 내가 정말 끊고 싶었던 것은 나를 묶고 있는 보이지 않는 줄이었는지 모른다. 칼로 거미줄을 제거하고 알을 받아들자 젖무덤 같은 온기와 촉감이 느껴졌다. 알을 볼에 대자 저절로 눈이 감겼다.

눈을 뜬 건 소리 때문이었다. 아니 소리라기보다는 느낌에 가까웠다. 매우 작고 희미해서 귀로 들었다고 하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소리. 그것은 직감적으로 알아챌 수 있는, 수상한 느낌에 대한 경계였다. 눈을 뜬 나는 하마터면 알을 놓칠 뻔했다. 이열종대로 늘어선 여덟 개의 홑눈이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나는 소스라치며 뒷걸음질 쳤다. 엉겁결에 알을 쥔 손을 뒤로 감추는데 날카로운 느낌이 손등을 할퀴고 지나갔다. 날을 세운 채 다른 손에 들고 있던 칼에 손등을 베인 때문이었다. 따뜻하고 축축한 느낌이 손등에서 손가락을 타고 흘렀다. 그제야 정신이 들며 나를 바라보는 시선의 전체적인 윤곽이 잡혔다.

거미였다. 거미는 다리 한 쪽의 길이가 30㎝나 된다는 골리앗 거미 타란툴라 만했다. 쥐를 잡아먹기도 한다는 타란툴라의 서식지는 이탈리아나 남미 쪽이었다. 비좁고 어두운 지하창고에 있을 놈이 아니었다. 시력이 거의 없다는 거미의 눈은 생각보다 훨씬 날카롭고 섬뜩했다. 머리에 달려 있는 집게에는 맹독이 있을지 모를 일이었다. 줄을 타고 서서히 바닥으로 내려온 거미는 땅에 발이 닿자마자 튕겨나듯 뛰어올라 내게 달려들었다. 순식간이었다. 결코 가깝지 않은 거리였건만, 단 한 번의 점프로 충분했다. 나는 간신히 거미의 공격을 피하며 문 쪽으로 내달렸다. 두 걸음. 아니면 세 걸음쯤? 나는 곧 용도를 알 수 없는 금속 파이프에 걸려 넘어졌다. 손이 바닥에 닿으며 알이 미끄러졌다. 다행히 깨지지는 않았지만 알은 또르르 굴러 반쯤 열려 있는 철문 밖으로 나갔다.

거미는 매우 성급하고 흥분돼 보였다. 나는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구르다 철문 밖으로 벗어나는 알과 거미를 번갈아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일어났다. 거미는 다시 한 번 도약을 하려는 듯 천천히 몸을 낮게 깔며 자세를 잡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입구가 가깝다는 사실이었다. 거미가 뛰어오르는 것과 동시에 나도 몸을 날렸다. 2루를 훔치는 야구선수처럼 날렵하게. 철문을 지나 지하창고를 벗어난 나는 서둘러 철문을 닫고 빗장을 질렀다. 안에서 거미가 철문에 몸을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나는 숨을 몰아쉬며 알을 집어 들었다. 손등에서 흐른 피가 조금 묻어 있었다. 흥분한 거미는 몇 번을 더 철문에 몸을 부딪쳤다.

이사를 마치자마자 나는 검란기를 만들었다. 전파사에서 할로겐램프와 소켓, 안정기, 스위치를 사고 주류전문점에서 와인상자를 사왔다. 나는 인터넷에서 본 대로 재료들을 조립했다. 소켓과 안정기를 연결한 할로겐램프를 구멍 뚫은 와인상자에 넣어 글루건을 사용해 고정한 후 선을 밖으로 빼내 스위치와 연결했다. 물론 스위치는 코드에 꽂을 수 있게 따로 전선을 이었다. 다행히 이사를 하며 사용한 전선이 조금 남아 있었다. 조립을 마친 나는 검란기 앞에 알을 놓고 스위치를 넣었다. 내용물 전체가 불그스름하게 보이고 기실과의 경계가 뚜렷하며, 배자는 혈관이 사방으로 뻗어 거미줄 모양으로 떠 있었다. 알의 내부는 1차 검란 시 발육란의 상태와 일치하였다. 너의 알은 살아있었다. 나는 작은 골판지 상자 내부에 백열등을 걸고 바닥에 물을 뿌리는 것으로 간이 부화기를 만들었다. 둔단부에는 기실이 있어 숨을 쉬므로, 알은 예단부를 밑으로 하여 놓아두었다. 하루 네 번 정도 알을 굴려주어야 건강한 병아리가 태어난다는 인터넷 상의 조언도 잊지 않고 시간에 맞춰 성실히 굴려주었다. 부화에 필요한 시간은 달걀이 21일, 오리 알이 28일이다. 너는 두 달 만에 태어났다. 너는 병아리도 오리 새끼도 아니었다.

네가 부화하기를 기다리는 데는 많은 인내심이 필요했다. 30일이 지나면서부터는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다. 나는 다시 검란을 했다. 일반 알에는 필요없는 4차 검란이었다. 알의 내용물 전체가 까맣고 기실 안쪽이 간간이 움직였다. 3차 검란의 상태와 동일했다. 단지 더딜 뿐, 여전히 발육 중이었다. 정상적으로 성장한다면 무사히 알을 깨고 태어날 것이었다. 그러나 그 반대일 수도 있었다. 어느 쪽도 확신할 수는 없었다. 지나친 기대는 금물이었다. 나는 마음 한편으로 체념을 연습했다. 거미가 실을 거두듯이, 알에 대한 애정과 기대를 조금씩 감아 들였다. 나는 고향집에서 가져온 두 개의 화분을 가꾸는 습관을 들였다. 다른 곳에 정을 붙이기 위해서였다. 두 달이 조금 넘은 어느 날 베란다에 내놓은 화초에 물을 주던 나는 부화기 안에서 미세한 소리를 감지했다.

네가 알을 부수고 나오는 순간 나는 깨진 백열전구의 날카로운 파편을 밟은 듯했다. 난각을 부수고 제일 먼저 밖으로 나온 건 발이었다. 하얀 털이 나있는 발. 그 다음이 머리였다. 귀는 뾰족하고 윤기 있는 코 양옆으로 각 네 개씩의 수염이 나 있었다. 알이 완전히 부서지며 너의 몸과 꼬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너는 세상의 어느 조류가 아니었다. 한 마리 고양이였다. 세상의 빛과 대기와 온갖 소음들과 처음 접촉한 너는 낮게 울었다. 가냘프고 애처로운 울음소리였다. 고막이 간지러웠다.

나는 너를 데리고 동물병원으로 갔다. 네가 조류인지 포유류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난생을 하는 고양이에 대해서는, 세계의 온갖 진기한 사건과 현상들을 취재해 방영해주는 케이블방송의 다큐 채널에서도 본 일이 없었다. 멀지 않은 곳이었지만 나는 차를 이용했다. 날씨가 쌀쌀해지고 있었다. 히터를 최대한 높였다. 수건에 싸인 채 너는 조수석에 놓아둔 쇼핑백 안에서 끙끙댔다. 동물병원에 도착할 무렵이 돼서야 차안에 온기가 돌기 시작했다.

너와 알껍데기를 받아든 수의사는 이상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뒤늦게 후회가 밀려왔다. 알껍데기와 새끼 고양이를 함께 내민다고 해서 그것이 고양이의 난생을 증명해주는 것은 아니었다. 간호사들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웃었고, 수의사는 난처한 표정으로 말을 얼버무렸다. 그는 새끼 고양이들에게 필요한 몇 가지 용품들과 분유를 추천했다. 너는 테이블에 펼쳐진 수건 위에서 낮고 간결한 소리로 추위와 배고픔과 낯선 환경에 대한 두려움을 호소했다. 너의 울음에는 어미 없이 태어난 애처로움이 묻어 있었다. 나는 분유통이 잔뜩 든 비닐봉지와 쇼핑백을 들고 동물병원을 나섰다. 너는 더 이상 울어대지 않았다. 간호사가 물려준 젖병과 씨름하다 잠이 든 너는 쇼핑백 안에서 고요했다. 어쩌면 날카로운 빛과 소음과 추위로 가득한 악몽을 깨고 알 속으로 되돌아가는 꿈을 꾸고 있었는지 모른다.

문을 나서기 전 수의사는 네가 암컷이라고 일러주었다. 그는 집에서 기르기 위해서는 적당한 시기에 중성화 수술을 해주는 것이 좋다고 덧붙였다. 그 순간 나는 한꺼번에 너무 많은 걸 하고 있었다. 서너 개의 비닐봉지와 쇼핑백을 모두 한 손에 옮겨들고 남은 한 손은 바지주머니에 넣어 차 키를 꺼내면서 어깨로는 통유리로 된 출입문을 밀고 있었다. 주머니에서 나오던 차 키가 손끝에서 미끄러지며 바닥에 떨어졌다.
"어떻게 보면 위험하고 잔인한 것 같지만 사람과 함께 살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수술이에요. 발정 때 냥이가 받을 고통과 스트레스도 그렇고, 그 때문에 성격에 장애가 올 수도 있거든요. 수놈보다 암놈이 비용은 좀 더 들어요. 하시게 되면 20만원에 해드릴게요. 그 정도면 싸게 해드리는 거예요."
그는 너를 '냥이'라고 불렀다. 나는 무릎으로 열린 문을 받친 채 조심스럽게 허리를 굽혀 차 키를 집어 들었다. 손가락에 위태롭게 걸린 쇼핑백이 흔들렸다.

분유는 네가 이유식을 시작하고도 몇 통이 더 남아 있을 정도였다. 의혹 가득한 수의사의 눈빛과 간호사들의 수군거림과 너의 울음소리에 떠밀려 얼결에 너무 많은 양을 사버렸다. 그러나 탓할 일은 아니었다. 고양이 용이라고는 해도 설탕을 조금 타면 먹을 만했다. 분유를 타서 함께 나누어 먹은 후에 나는 너의 등을 토닥여 주고 젖은 티슈로 항문을 닦아주었다. 배변을 잘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내가 등을 토닥여주는 동안 너는 내 베개 위에서 잠이 들곤 했다.

분유가 줄어가면서 너의 털은 자리를 잡아갔다. 부드럽지만 성긴 털에 윤기가 돌고 결이 매끄러워졌다. 연갈색 얼룩 하나 없이 새하얀 너의 털은 페르시안 종처럼 길고 풍성하지는 않았다. 그보다 짧고 탄력이 넘쳤다. 결이 고운 순백의 털을 가진 고양이. 나는 수시로 너의 옆구리나 등 쪽의 털들을 들춰보았다. 네가 성장하는 어느 단계, 어느 순간에 이르러, 그 어디쯤인가에서 날개가 돋아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럴 때마다 책상 서랍에서 네가 깨고 나온 난각을 꺼내 들여다보았다. 그것은 수의사의 지식으로는 알 수 없는 신비로움에 대해 내게 말해주는 듯했다. 나는 자유롭게 하늘을 나는 너를 상상했다.

날개는 자라지 않았다. 너는 날지 못했다. 너 대신 날아다닌 것은 너의 흰 털들이었다. 베란다를 통해 드는 볕을 쬐며 혀로 몸을 핥아 털을 고르는 네 위로는 깃털처럼 가볍게 날아다니는 털들이 보였다. 너의 몸에서 날개가 자라리라는 기대를 접은 건 아니었다. 다만 신경 써야 할 것이 하나 더 늘었을 뿐이었다. 청소기를 자주 돌리고, 외출 때마다 옷을 손질해야 하는 불편함에는 곧 익숙해졌다. 외투에 묻은 털은 넓은 청테이프로 쉽게 제거됐고 앞뒤로 오가는 청소기를 요리조리 피하며 장난을 치는 너와 노는 것이 재미있었다. 물론 무소음 스팀청소기로 바꾼 이후의 일이다. 청소기 소음을 무서워한 너는 전원 스위치를 넣기만 하면 열린 옷장으로 뛰어 들어가 두꺼운 이불과 이불 사이로 몸을 비집고 숨었다. 그렇잖아도 오래된 청소기는 성능이 시원찮았다. 나는 날을 잡아 가전제품 대리점에 갔다. 그곳에서 어머니의 부음을 들었다.

유리벽 안으로 들여다보이는 대리점 실내는 깔끔하고 정결했다. 마치 무균질의 우주정거장 내부 같았다. 그런 곳에서 파는 청소기라면 믿어도 좋을 듯했다. 너를 가슴에 안은 채 자동문을 통과하자 점원이 달려왔다. 그는 너의 출입을 통제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몰라 점장의 눈치를 살폈다. 점장은 장부를 확인하느라 미처 너를 발견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나는 너를 가슴에 더욱 꼭 안았다. 산뜻한 디자인의 전자레인지와 손바닥만한 가격표를 붙인 대형 냉장고와 세탁기와 벽걸이 텔레비전을 지나 마침내 동그라미와 직선이 조화를 이룬 듯한 청소기들 앞에 섰을 때 휴대폰이 울렸다. 이모부였다.

"어머니 돌아가셨다."

낮고 차분하지만 적당히 슬픔이 묻어 있는 음성이었다. 어쩌면 그는 부음을 전하기에 적절한 음색과 감정의 톤을 연습했는지도 모른다. 네가 내 품을 벗어나 바닥으로 뛰어내렸다. 한껏 기지개를 켜고 앉아 몸을 핥는 네 위로 몇 가닥의 털이 햇살 위로 떠오르는 것이 보였다.

너를 동물병원에 맡기고 내려간 고향에서 내가 할 일은 거의 없었다. 장례 절차에 관련된 일들은 몇몇 친지들이 도맡아 해주었다. 나는 빈소에 하릴없이 앉아 있다가 간간이 찾아오는 문상객들을 맞는 게 고작이었다. 자꾸 하품이 났다. 나는 화장을 원했지만 친지들은 생각이 달랐다. 멀쩡히 아들이 있는데 화장이 웬 말이냐는 주장은 온 국토가 장지가 돼버린 지금에도 여전히 유효한 듯했다. 어쩔 수 없이 근방 공원묘지에 묏자리를 썼다. 나는 장례를 마치자마자 곧 옷을 갈아입고 상경했다. 돌아오는 길에 고속도로 갓길에 잠시 차를 대고 담배를 한 대 피웠다. 그제야 아내에게 연락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비록 헤어졌다고는 해도, 생전에 어머니는 아내를 예뻐하셨다. 아내도 어머니를 무척 따랐다. 연락 못할 일도 아니었다. 다시 한 모금을 빨았다. 담배연기가 햇살 속에 날리는 너의 털 같기도 하고 어머니의 혼백 같기도 했다. 서울까지는 세 시간 반이 걸렸다.

너를 찾기 위해 동물병원에 들렀을 때 수의사는 내게 말했다.

"이제 곧 발정기인데요. 중성화수술은 안 해주실 건가요?"

나는 대꾸하지 않았다. 집 앞에는 주차할 곳이 마땅치 않았다. 연립주택 근방을 빙빙 돈 끝에야 간신히 차를 댈 수 있었다. 차에서 내려 한 팔로는 너를 안고 다른 한쪽으로는 검은 양복을 건 옷걸이를 든 채 집으로 향했다. 사흘 내내 땀과 향내에 찌든 양복에서는 퀴퀴한 냄새가 났다. 바지 양쪽 주머니는 아무렇게나 우겨넣은 삼베 두건과 완장 때문에 불룩했다. 삐져나온 삼베 조각의 누런빛이 햇볕을 받아 아지랑이처럼 번졌다. 어깨에 멘 가방이 자꾸 미끄러졌다.

현관 입구에 이르렀을 때 지하창고의 철문이 한 뼘쯤 열려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그 자리에 멈추고 말았다. 지하창고에서 새어나오는 어둠은 짙고 서늘했다. 그 음습한 어둠을 보며 나는 거미가 밖으로 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두려움을 느꼈다. 다시 비좁은 계단을 내려가 철문을 굳게 닫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열린 틈새로 보이는 문 저편의 어둠은 깊고 견고하게 느껴졌다. 어둠 속에 도사리고 있는 거미의 숨결이 느껴지는 듯했다. 이사 직후 신고를 하였지만 119대원들이 도착했을 때 그 어둠 속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모골이 송연해졌다. 계단을 내려가 문을 닫으려는 순간 거미의 숨결은 나를 그 어둠 속으로 빨아들일 것만 같았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철문 틈으로 보이는 어둠에서 나는 고향집의 우물을 떠올렸다. 지하창고와 우물 사이에는 제법 거리가 있었지만 이미 어머니의 하관을 보고 온 뒤였다. 밑을 받친 몇 개의 동아줄에 의지해 구덩이로 내려가는 어머니의 관을 보며 나는 두레박을 떠올렸던 것이다. 물론 처음부터 두레박을 떠올린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거미였다. 양쪽으로 뻗친 네 쌍의 동아줄은 지하창고에서 마주쳤던 거미의 다리 같았다. 어머니와 거미를 어울려 생각하기는 어려웠지만 매장을 위해 파놓은 구덩이와 음습한 지하창고는, 내게는 모두 어둠이고 검은 구멍일 뿐이었다. 나는 흙을 한 삽 떠 어머니의 관 위에 뿌렸다. 어둠 위로는 곧 봉긋한 봉분이 섰다. 어둠이 불룩하게 내 속에 차오르는 것 같았다. 나는 잠시 동그란 어둠 속에서 태어난 너를 생각했고 또 잠시 한 가닥 거미줄을 타고 스르르 미끄러져 내려오는 거미를 상상했다.

그 하강과 어둠의 이미지로부터 두레박은 떠올랐을 것이다. 재생고무로 만든 붉은 두레박. 우물 속으로 내려가다 내려가다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면 철썩, 하는 물소리만 났다. 어린 나는 우물에서 물을 긷는 게 무서웠다. 두레박이 길어 올리는 것은 한 바가지의 물이 아니라 깊고 서늘한 어둠인 것만 같았다.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 둥근 나무 덮개로 우물을 막아버린 후에도 두레박은 한동안 우물 옆에 매달려 있었다. 어느 겨울 매서운 추위와 바람에 부서져 자연스럽게 없어지기까지 두레박이 길어 올린 것은 내 마음 속의 어둠이었다. 나는 너를 안은 채 진저리쳤다. 지하창고를 향해 두레박을 던지면 거대한 어둠이 딸려 나올 것만 같았다. 잠들었던 네가 갸르릉 소리를 내며 고개를 들었다. 거의 어깨 끝까지 내려와 간신히 걸쳐진 가방이 불안했다. 옷걸이를 든 손으로 가방을 추켜올렸다. 양복에 배어 있던 향내가 스며 나오는 듯했다.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계단이 가파르게 느껴졌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쓰러지듯 잠이 들었다.

거미들이 얼굴을 기어 다니는 끔찍한 꿈을 꾸다 깨어났을 때 너는 까칠한 혀로 내 볼을 핥고 있었다. 아침이었다. 창문을 통해 들어온 햇살에 눈이 시었다. 개운치 않은 꿈의 잔상이 사금파리처럼 날카롭게 동공 위를 굴렀다. 너에게 사료를 준 후 청소를 하던 나는 고향에서 가져온 화분 중 하나가 죽은 것을 알았다. 그동안 물을 주는 것조차 잊고 있었다. 노랗게 말라죽은 줄기에는 아직 떨어지지 않은 잎이 하나 달려 있었다. 역시 물기 하나 없이 바싹 말라 있었다. 손을 대자 잎은 마른 낙엽만이 낼 수 있는 건조한 소리를 내며 부스러졌다. 생전에 어머니가 아끼던 화분이었는데 생각해보니 나는 그 화초의 이름조차 몰랐다. 조금 미안한 감정이 일었다. 하지만 그것이 어머니에 대한 것인지 화초에 대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나는 간신히 살아있는 화분 하나를 화원에 맡겼다. 화분을 맡기고 돌아올 때도 철문은 닫혀있지 않았다. 출판사에 들러 번역할 원서를 찾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화분을 찾아올 때도 역시 철문은 닫혀 있지 않았다. 나는 애써 철문을 외면하며 서둘러 계단을 오르곤 했다.

너는 빠르게 성장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장례를 치르고 화분이 죽고 내가 번역할 원고를 받아오고 불편한 마음으로 계단을 오르내리는 동안에도 너는 자라고 있었다. 언뜻 보면 그저 좀 날렵한 토끼 같기만 하던 너는 완연한 고양이의 모습으로 변해갔다. 예민한 귀와 섬세한 꼬리, 유연한 몸과 다리는 네가 더 이상 겁 많고 어린 고양이가 아님을 말해주고 있었다. 예전처럼 은근슬쩍 내 베개 위로 비집고 올라와 함께 잠을 청하는 일도 없어졌다. 그러기에는 베개가 너무 작아졌다. 나는 너만을 위한 새 베개를 구입했다. 그 위에서 너는 햇볕을 쬐거나 털을 고르거나 종종 무심히 하나 남은 화초를 바라보곤 했다.

 

빳빳해진 너와 흙으로 채운 화분은 충분히 무덤이었고
손끝에 닿은 화분은 얼음처럼 차갑고 황량했다
장례로 켠 촛불이 꺼지자 
눈물이 어둠에 스몄다
일주일이 지나고 그곳엔 새싹이 돋았다


그 날도 너는 베개 위에 앉아 있었다. 네가 마른세수를 하는 것을 보며 나는 방으로 들어가 전화를 받았다. 고향집이 팔렸음을 알리는 전화였다. 어머니의 유일한 재산이었다. 유산이라고 하기에는 그간에 진 빚이 너무 많았다. 부동산에서 온 전화를 받고 있을 때 네가 거칠게 울어대기 시작했다. 소리만으로는 괴로워하는 것인지 화를 내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급히 전화를 끊고 너에게로 갔다. 너는 몸을 낮게 엎드린 채 엉덩이를 치켜들고 숨이 넘어갈 듯이 울어댔다. 너의 첫 발정이었다.

고향으로 내려갈 준비를 하면서 이번에는 너를 동물병원에 맡기지 않았다. 중성화수술을 강권하는 수의사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다. 대신 사료를 충분히 따라놓고 부엌 쪽의 창문을 열어 놓았다. 이층이었지만 현관 입구의 캐노피를 이용하면 네가 충분히 오르내릴 수 있는 높이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네가 집을 찾을 수 있도록 창문에 작은 수건을 달아놓았다. 그러고도 염려스러워 연락처를 적은 목걸이를 걸어주었다. 너는 불편해 했지만 곧 익숙해졌다. 집을 나서며, 누군가 버린 낡은 책상을 캐노피 아래 화단에 갖다놓았다. 네가 쉽게 오르내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손에 묻은 먼지를 털며 나는 무심코 지하창고를 바라봤다. 철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집은 헐값에 팔렸다. 서울에서는 어지간한 전세를 얻기도 힘든 금액이었다. 낙후된 지방 소도시에서 집이란 재산으로서 그다지 큰 가치를 지니지 못했다. 집은 헐릴 예정이었다. 그 자리에는 오층짜리 상가 건물이 들어선다고 했다. 나는 마지막으로 고향집을 한 번 둘러보았다. 슬레이트 지붕을 얹은 단층주택은 볼품없었다. 어머니가 애지중지하던 작은 화단에는 잡초 하나 없이 마른 흙만 단단하게 굳어 있었다. 병중에 간혹 정신을 놓은 어머니는 불모의 화단에 물을 주곤 했다. 물을 머금은 흙은 더욱 단단하게 굳을 뿐이었다. 마당 한가운데 있는 우물로 다가가 덮개를 고정시킨 철사를 풀었다. 오래 전 개축을 하면서도 무슨 까닭인지 우물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 녹슨 철사는 풀리는 대신 어이없을 정도로 쉽게 끊어졌다. 덮개를 열자 서늘한 기운이 올라왔다. 우물 내벽에 낀 이끼가 보였다. 아직 물이 마르지 않은 모양이었다. 우물 안은 여전히 검고 어두웠다. 두레박으로 물을 길어 화단에 주던 젊은 어머니와 온갖 꽃들로 싱싱했던 화단에 대한 유년의 기억이 잠시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집채 가까이 가자 시멘트로 바른 건물 외벽이 군데군데 갈라져 금이 가 있는 게 보였다. 네가 깨고 나온 난각이 생각났다. 마치 지구본을 쪼갠 듯한 도법으로 그린 세계지도처럼, 부서진 채 마른 난막에 의해 간신히 서로 연결되어 있는 난각. 문득 고향집이 커다란 하나의 알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얼마 후면 이 알이 헐린다는 사실은 내게 어떤 감정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단지 빚과 세금을 제하면 내 수중에 남을 돈이 몇 백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서글플 뿐이었다. 그런데 마른 화단에 물을 주던 어머니는 어디로 날아간 걸까. 햇살이 질긴 스파게티 면발처럼 끈적하게 목덜미에 달라붙었다.

은행에 들러 대출금을 상환하고 나머지 금액을 예치한 후 상경했다. 세무서에서는 알아서 고지서를 보낼 것이었다. 거의 서울에 이르러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간단히 인사를 나눈 후 어렵게 만나고 싶다는 말을 꺼냈다.

"까짓꺼, 그러지 뭐."

전 화를 끊고 나서야 '까짓꺼'의 묘한 어감이 마음에 거슬렸다. 성급하고 충동적인 행동을 후회했다. 누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그게 여자라면 더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아내는 아니었다. 약속을 취소하려 다시 전화를 걸었다. 미안하지만 다른 약속이 있는 걸 깜박 잊고 있었다고 하자 아내는 괜찮다고 말했다. 괜찮아. 뭐가? 할 얘기도 있고. 나는 약속을 취소하지 못했다. 전화를 끊고도 줄곧 생각해 보았지만 뭐가 괜찮다는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아내는 십 분쯤 늦었다.

"생일 축하해."

파란 에펠탑이 그려진 케이크 상자를 내미는 아내의 손목에서 은빛 체인 팔찌가 반짝였다. 내 생일은 한 달 뒤였다.

"나 곧 떠나. 남편이 해외지사로 발령받았어. 당신 생일쯤에는 이곳에 없을 거야. 그동안 내가 당신 생일 챙겨줬는데, 이제 그럴 수 없게 됐네. 당신도 좋은 사람 생기겠지. 아무튼 여기는 답답해. 가능하면 안 돌아오고 싶어."

나 는 맥주를, 아내는 키위주스를 주문했다. 스트로에 붉은 립스틱을 묻히며 아내는 나와의 결혼생활을 추억했고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 애도를 표했으며 심하지 않은 비행공포증과 낯선 이국에서의 생활을 걱정했다. 나는 맥주를 홀짝이며 경청했다. 마지막으로, 아내는 아이를 갖지 않은 게 서로를 위해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주스잔이 비고 스트로에서 끓는 소리가 나자 아내는 출국 준비로 바쁘다며 일어섰다. 주스잔 바닥에 흰 키위 거품이 약간 남아 있었다. 나는 다시 맥주를 주문했다.

숙취 로 깨질 듯한 머리를 안고 일어났을 때는 집이었다. 혼자 장소를 옮겨가며 마셔댄 간밤의 기억들이 드문드문 떠올랐다. 얼굴이 둔탁하게 느껴지고 속이 다 빠져나간 듯이 허했다. 갈증이 났다. 나는 간신히 몸을 일으켜 술이 덜 깬 걸음으로 방문을 향했다. 그리고 둥근 문고리를 돌려 잡아당겼다.

내가 처음 본 것은 햇살이었다. 아침이었고, 여름에는 거실 커튼을 떼어 놓았으므로, 사선으로 비치는 햇살은 온 거실에 가득했다. 화분과 텔레비전 위에, 소파와 카펫 위에, 빛은 노란 파우더처럼 흩뿌려졌다. 그 속에 네가 있었다. 너는 고혹적인 자태로 허공에 떠서 걸어 다녔다. 보이지 않는 계단을 오르듯이 너는 공중에 떠서 자유롭게 걸어 다녔다. 나는 너의 몸에 드디어 날개가 돋아난 것이라 생각했다. 너의 날개를 확인하기 위해 다가가려는데 무언가 이마에 걸렸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뒤로 뺐다. 거미줄이었다. 그러고 보니 너는 날고 있는 게 아니었다. 너를 떠받치고 있는 것은 거실의 벽과 벽을 이은 방사형의 그물, 해먹 같기도 하고 서커스 공중곡예의 불상사를 대비해 설치한 안전망 같기도 한 거미줄이었다. 햇살의 눈부심과 너의 흰 털빛과 어울려 거미줄은 반짝이는 은실로 엮어놓은 장식물처럼 화려하고 아름다웠다. 불현듯 지금껏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거미가 알을 먹던가? 비로소 너의 알이 왜 거미줄에 매달려 있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너를 구해준 것이 아니라 빼앗은 것이었다.

나는 얼른 부엌으로 가 환기창을 닫았다. 거미든지 다른 무엇이든지, 아무튼 달갑지 않은 어떤 녀석이 내 집에 들어왔다 나간 것만은 확실했다. 욕지기가 일었다. 걸레를 들고 집안 구석구석을 훔쳤다. 벽과 문설주와 천장에 불결한 냄새가 배어 있는 듯했다. 끈적끈적한 거미의 분비물이, 녀석의 흔적이 집안 어딘가에 남아 있을 것만 같았다. 나는 닦고 또 닦았다. 마지막으로 스팀청소기를 이용해 바닥과 벽과 천장과 문설주와 소파와 식탁과 싱크대와 욕실과 카펫을 훑었다. 가구를 옮겼다가 제자리에 놓기를 반복했고 책과 식기와 옷들을 모두 꺼냈다가 다시 넣었다. 칫솔과 행주는 새로 구입했다. 그러나 거미줄을 제거하지는 않았다. 거실 벽과 벽을, 혹은 천장과 벽을, 바닥과 천장을, 벽과 바닥을 잇는 거미줄은 네가 하늘로 향하는 계단이거나 날개 같았다.

네가 조류가 아니라는 사실은 분명해 보였다. 더 이상 너의 몸에서 날개가 돋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나는 아침마다 거미줄에 물을 뿌려주었다. 밤새 늘어졌던 거미줄은 물기가 마르면서 다시 팽팽해졌다. 너는 간혹 거미줄에 맺힌 물방울을 핥았다. 혀를 내밀거나 때로는 코끝으로 물방울을 받는 네 모습은 매우 청량했다. 부드럽고 윤기가 도는 순백의 털과 아침햇살과 은빛 거미줄과 이슬처럼 맺힌 물방울과 허공을 걸어 다니는 네가 만들어내는 이미지의 환상. 나는 네가 천사 같다고 생각했다.

완구점을 돌며 유아용 천사의 날개를 사온 것은 날개 달린 고양이 사진 때문이었다. 인터넷에는 두 장의 날개달린 고양이 사진이 있었다. 하나는 호주의 어느 박제사가 고양이 박제로 만든 것이었다. 다른 하나는 중국 산시성에 사는 고양이였는데, 천사 고양이라 불리며 관심을 끌었지만 돌연변이로 작은 돌기가 돋아나 날개처럼 보인 것으로 밝혀졌다. 구입한 날개는 어린 아이들이 어깨에 걸칠 수 있도록 고안된 것이었다. 진짜 깃털은 아니지만 보들보들한 천과 실리콘 재질로 만든 것이어서 보기에 그럴듯했다. 차를 몰고 집으로 가며 어린아이보다도 폭이 좁은 너의 어깨에 맞추기 위해 날개를 어떻게 개조해야 할지 궁리했다. 흰 털에 흰 날개를 달고 거미줄 위를 걸어 다니는 너를 상상했다. 영락없는 천사 고양이였다. 그러나 나는 네가 첫 번째 발정 이후 조용하다는 사실에 대해 무심했다. 며칠 사이에 네 배가 공처럼 부풀었다는 사실을 나는 모르고 있었다. 어깨의 폭을 가늠하기 위해 너를 안다가 불룩한 네 배를 만졌을 때, 처음엔 살이 좀 오른 것이리라 여겼다. 다음엔 병이 난 것이 아닐까 염려했다. 그러고 나서야, 너를 이리저리 살펴보고 기억을 더듬은 후에야 눈치 챌 수 있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묘한 배신감이 들었다. 나는 사가지고 온 날개를 다용도실에 던져 넣었다. 너는 일주일 만에 세 개의 알을 낳았다.

완 구점을 돌며 유아용 천사의 날개를 사온 날, 차 안에는 한 가지가 더 들어 있었다. 케이크였다. 파란 에펠탑이 그려진 커다란 상자에 든 케이크. 구입한 날개를 넣기 위해 차 트렁크를 열다가 케이크를 발견했을 때, 하늘에 비행기 한 대가 떠있었더라면 아내를 떠올리기에 좀 더 그럴듯한 분위기가 연출됐을 것이다. 아쉽게도 습한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었다. 그 시간 아내는 아마 에펠탑이 있는 나라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더 넓고 광활한 곳을 찾아 떠났으니 자유의 여신상이 있는 나라나 춥긴 해도 레닌의 동상이 서있는 나라였는지도 모른다. 아무래도 마찬가지긴 했다. 구드도법으로 그린 지도처럼 지구를 깨고 날아가지 않는 한에야 어디든 지구본 안에 있는 나라일 테니. 그런데 어머니야말로 어디로 가신 걸까. 병들고 마른 육체와 아무것도 피지 않는 화단과 외벽에 금이 간 고향집을 두고…. 무더운 날씨에 며칠을 차안에 있었던 케이크는 열어보나마나였다. 아니, 열어보지 않는 편이 나았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생일초가 든 봉투와 두 개의 폭죽만 떼어내 책상 위에 던져놓고 케이크는 상자 째 쓰레기봉투에 넣어 버렸다.

세 개의 알은 색이 모두 달랐다. 하나는 희고 다른 하나는 누랬다. 나머지 하나는 메추리알처럼 흰 바탕에 검은 점이 있었다. 너는 꼼짝도 않고 알을 품었다. 네 작은 몸이 세 개의 알을 모두 덮을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널찍하고 푹신한 베개에 배를 깔고 엎드린 채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에 끼니때마다 사료 그릇을 네 앞에 놓아주어야 했다. 나는 종종 비아냥거렸다. 이거 완전 상전이군. 아닌 게 아니라 너는 상당히 예민해져 조금만 성가시게 해도 곧잘 화를 내곤 했다. 나는 무척 피곤했다. 베란다에 쭈그려 앉아 혼자 궁시렁대며 담배를 피우는 일이 잦아졌다. 그리고 재떨이에 꽁초를 버리고 일어서던 어느 날 두 번째 화분마저 죽은 것을 알았다.

잎과 줄기가 모두 까맣게 죽어 있었다. 네가 세 개의 알을 낳은 날이거나 다음날이었을 수도 있고, 아니면 그보다 훨씬 오래전이었을 수도 있다. 아무튼 화분은 죽어 있었다. 이번에는 물을 너무 많이 줬다. 흙을 파보니 뿌리가 썩어 있었다. 내가 천사의 날개를 사왔을 때도 아내를 만났을 때도 뿌리는 이미 썩어 있었는지 모른다. 물을 주면서도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는 사실이 당혹스러웠다. 나는 몹시 짜증이 났다. 모두가 너와 네 알 때문인 것만 같아 얄밉고 괘씸했다. 가자미눈으로 너를 흘기며 화분에서 익모초처럼 작고 동글동글한 비료들을 걷어냈다. 현관 입구 좌우에 있는 좁은 화단에 흙을 버리러 가면서 너를 발로 찼다. 결코 힘을 주어 찬 것이 아니었다. 너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표현하는 정도여서 발로 살짝 건드렸을 뿐이었다. 알을 품느라 신경이 예민해져 있던 너는 대번 털을 곤두세우며 신경질적으로 내 발등을 할퀴었다. 굵은 핏방울이 발등을 타고 흘렀다.

그 런 이유로 얼마간 치졸한 복수심이 있었을 것이다. 나는 간혹 너의 끼니를 챙겨주지 않았다. 아주 챙겨주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산란 전에 하던 대로 사료를 채운 그릇을 주방에 놓아두었다. 정 허기가 지면 제 발로 기어와 찾아먹으리라 여겼다. 사료 그릇은 간혹 비워지기도 하고 그냥 있기도 했다. 너는 눈에 띄게 야위었다.

알들을 갖다버릴 생각도 안 한 것은 아니었다. 더구나 알을 깨고 나올 것이 거미일지 고양이일지도 확실치 않았다. 수의사의 조언을 귀담아듣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그런데도 알을 버리지 못한 이유는, '차마'라고 해야 할 것이다. 차마 그럴 수 없었다고. 베개 위에 엎드려 온종일 꼼짝 않고 알을 품는 너의 정성과 기대어린 표정과 알에 대한 애정을 외면할 수 없었다. 모성 앞에서는 대부분 관대해지기 마련이니까. 나는 결국 체념하고 생각을 바꿔먹었다. 화해의 의미로 동물병원에 들러 너의 놀이기구들을 샀다. 교정지를 받으러 갔다 오는 길이었다.

그 날 예정에 없던 술자리가 있었다. 지난번 번역한 책의 반응이 나쁘지 않은 모양이었다. 출판사 직원들과 어울려 저녁을 먹고 가볍게 맥주를 한 잔 더 했다. 자리를 정리하고 맥주 집에서 나올 때까지 대리기사가 도착하지 않았다. 함께 기다리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택시를 타고 사라졌다. 혼자 남게 되자 문득 흡연욕이 일었다. 나는 주머니에서 담뱃갑을 꺼냈다. 째진 눈과 긴 꼬리가 인상적인 고양이 로고가 찍힌 담배였다. 문득 너의 사료 그릇을 채워놓지 않고 집을 나선 게 생각났다.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집으로 가는 길에 대리기사에게 양해를 구하고 동물병원에 들러 스크래처와 플라이어와 캣트리와 고무쥐 따위를 샀다. 네가 좋아할 것 같았다. 양손에 비닐봉투를 들고 차에 오르며 다시 네 앞에 끼니를 대령하리라 마음먹었다. 그러나 너는 더 이상 사료를 먹을 수 없었다.

마 지막으로 네가 먹은 것은 비료였다. 죽은 화분에서 걷어낸 작고 동그란 비료들은 거실 수납장 위에 놓아두었다. 배가 불룩한 너는 높은 곳을 경계했다. 그러나 불과 일 주일 정도였다. 산란 후 너는 다시 날렵해졌다. 끼니를 자주 거르고 온종일 알을 품느라 다소 야위긴 했어도 적당한 높이를 오르내리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내가 잊고 있었던 것은 너의 날렵함과 유연함이 아니라 죽은 화분이었다. 나는 네가 사료로 착각할 수 있는 동그란 비료들을 흙과 함께 화단에 버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왜냐하면, 죽음이란 쉽게 잊혀지기 마련이므로. 비료의 성분이 직접적인 사인이라고 보기는 힘들 것이다. 부검을 하거나 전문가에게 문의를 한 것도 아니니 그저 추측할 뿐이다. 허약해진 네 몸이 부적절한 성분의 섭취를 감당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이미 빳빳해진 네 주위에는 껌딱지처럼 토사물이 말라있었다.

나는 어머니의 장례에 사용했던 두건과 완장을 꺼냈다. 이음새를 트고 접힌 부분을 펴니 너를 염할 만큼은 될 것 같았다. 여름이었다. 곧 부패가 시작될 것이었다. 오래된 케이크를 버리듯 너를 쓰레기봉투에 넣어 버릴 수는 없었다. 냉장고에서 소주 한 병을 꺼내 너의 몸을 깨끗이 씻은 후 굳은 다리를 접어 삼베로 동였다. 생명이 빠져나간 너의 몸은 턱없이 작았다. 입관을 할 때 보았던 어머니도 그만큼이나 작게 느껴졌다. 그 왜소함이 어머니가 살아온 삶의 부피인 것만 같아 마음이 먹먹해졌었다. 염을 마친 뒤 다용도실에서 화분을 가지고 나왔다. 빈 화분의 밑바닥은 우물처럼 어둡고 깊었다. 손을 뻗으면 차갑고 서늘한 물이 손끝에 닿을 것 같았다. 너를 화분에 넣고 화단에서 흙을 퍼와 덮어주었다. 흙을 덮기 전에 거미줄과 난각도 함께 묻어주었다.

베개 위에 놓인 세 개의 알은 소리 내 울거나 슬픔의 어떤 표현도 하지 않았다. 제가끔 생명의 줄을 고르느라 분주한 알들은 너의 죽음에는 무심할 따름이었다. 나는 잠시 그것들의 거취를 고민하다가 작은 골판지 상자로 다시 간이 부화기를 만들었다. 부화를 돕는 게 너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라고 여겼다. 알들을 부화기에 넣을 때 문득, 너의 부화를 기다리던 시간의 설렘과 네가 알을 깨고 태어나던 순간의 아찔함이 기억났다. 세상의 빛과 대기에 처음 접촉해 낮게 울던 네 가냘픈 울음소리도. 나는 화분을 바라보았다. 애초에는 근방 야산이나 화단에 묻을 생각이었다. 일종의 옹관묘인 셈이었다. 그러나 화초 없이 흙만 채워 넣은 화분은 충분히 무덤처럼 보였다. 갑자기 맥이 풀렸다. 어둠이 불룩하게 내 속을 채우는 것 같았다. 나는 팔을 베고 거실 바닥에 모로 누웠다. 매끄러운 화분 표면에 반사된 형광등 불빛에 눈동자가 약간 시큰거렸다. 천천히 눈이 감겼다. 졸음이 밀려왔다.

꿈결에 너를 본 것 같기도 하고 어머니를 본 것 같기도 했다. 아내는 지구본을 깨고 새가 되어 날아가기도 했다. 나는 어머니의 무덤에 검란기를 대고 도굴꾼처럼 열심히 안을 들여다보려 애썼다. 할로겐 조명이 검은 구멍을 비출 때마다 거미의 긴 다리나 너의 꼬리가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거미줄마냥 방사형으로 혈관이 뻗어있는 배자가 보이는 것도 같았지만 대개는 불명확했다. 잠을 깨자 어수선한 꿈들은 썰물처럼 의식의 뒤편으로 물러갔다. 그리고 묵직한 현실감. 나는 모로 누운 채 화분을 더듬었다. 얼음처럼 차갑고 투명한 느낌이 손끝에 닿았다. 집안이 문득 황량하게 느껴졌다.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은 거미줄이 군데군데 흉물스럽게 남아 스산함을 더했다. 간간이 습한 바람이 불어왔다. 텔레비전 위에서 휴대폰이 뻐꾸기 우는 소리를 냈다. 확인하지 않은 문자메시지가 있으니 어서 들여다보라고 독촉했다. 나는 맥없이 일어났다. 고객님 생일을 축하합니다.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휴대폰 통신사와 카드사와 인터넷 쇼핑몰에서 생일을 축하해줬다. 그밖에 대출회사와 대리운전, 은밀하고 화끈한 대화를 권하는 060서비스에서 각각 한 통씩의 광고메시지를 보내왔다. '모두삭제' 버튼을 누르고 시간을 확인했다. 거의 꼬박 하루를 잤다. 즐겁게 보내라는 내 생일은 두 시간 남짓 남아 있었다. 나는 목욕을 하는 데 다시 한 시간을 보냈다.

욕조에 들어앉아 그럴듯한 이벤트를 계획한 것은 아니었다. 단지 목욕을 마치고 수건을 목에 건 채 로션을 놓아둔 책상 앞으로 갔을 때 그것들이 눈에 띄었을 뿐이었다. 나는 생일초와 폭죽을 집어 들었다. 시계를 보니 자정까지는 한 시간 정도가 남아 있었다. 그러나 막상 생일초와 폭죽만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이란 별로 없었다. 나는 머릿속으로 궁리를 하며 방을 나왔다. 거실 한가운데 놓아둔 화분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크고 작은 여덟 개의 초를 화분에 꽂았다. 우연찮게도 초의 개수는 내가 살아온 햇수이기도 하고, 네가 살다 간 달수이기도 했다. 전등을 껐다. 혼자만의 생일파티라고 해야 할지, 소박한 장례라고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둘 다일 수도 있었다. 어깨에 멘 흰 날개 때문에 움직임이 자연스럽지 못했다. 팔을 움직이기가 불편했다. 어깨에 메는 부분이 고무줄로 되어 있기는 했지만, 유아용이었다. 어깨가 약간 조이는 듯도 하였다. 성냥을 긋자 짙은 황 냄새가 콧속에 스몄다. 작은 불꽃에 덴 듯 옹주먹 만큼의 어둠이 물러갔다. 성냥을 가까이 대자 초는 차례로 빛을 빨아들였다. 하나씩 켜질 때마다 어둠이 한 발짝씩 뒷걸음질 쳤다.

마침내 여덟 개의 초들이 모두 불을 밝히자 우산 속처럼 작은 공간이 빛으로 가득 찼다. 아늑했다. 알 속에 들어앉은 듯 안온하고 평화로웠다. 나는 양손에 폭죽을 든 채 옹송그리며 깍지 낀 팔로 무릎을 감쌌다. 내 몸이 아주 작게 느껴졌다. 촛불이 마치 별자리 같았다. 국자 모양으로 꽂았으면 북두칠성이 됐을지 모른다. 큰곰자리. 그러면 남은 하나는 자연스럽게 작은곰자리가 됐을 것이다. 문득 어머니가 날아간 곳이 별자리는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물이 있는 작은 별에서 손 흔드는 어머니를 상상했다. 뒤따라 아내가 떠올랐다. 아내는 에펠탑 꼭대기에서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웃음이 났다. 입가를 위로 치켜올리고 눈꼬리를 가늘게 모아 웃으려고 했는데, 돌연 눈물이 났다. 웃으려고 한 것인데, 웃으려고 하면 할수록, 눈물은 더욱 걷잡을 수 없이 흘러 내렸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슬픔에 전염된 어깨가 낮게 흔들렸다. 등에 멘 날개가 무겁게 느껴졌다. 나는 무릎 사이에 고개를 파묻었다. 눈물이 볼로 흐르지 못하고 속눈썹에 맺혔다가 손등으로 떨어졌다. 차고 서늘했다. 마치 우물에서 금방 퍼 올린 물 같았다. 그 한기에 놀라 폭죽을 힘껏 움켜쥐었다. 휴대폰에서 자정을 알리는 신호음이 울렸다. 촛불이 사위어들었다. 눈물이 조금씩 어둠에 스몄다.

일주일쯤 지나 화분에 싹이 돋은 것을 알았다. 화단에서 퍼온 흙이었으니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씨앗이나 잔뿌리가 섞여 들어왔는지 모른다. 떡잎은 금세 한 뼘만큼 자라났다. 새끼손톱보다 작은 거미가 연녹색의 여린 이파리에 실을 걸고 앙증맞게 매달려 있었다. 화분은 햇살을 받아 환했다. 나는 마치 백열전구 같던 너의 알을 떠올렸다. 그때 예단부와 둔단부가 뚜렷한 우윳빛 알에서 검란기를 이용해 내가 보았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테이프를 가지고 미처 터뜨리지 못한 두 개의 폭죽을 화분 옆면에 붙였다. 며칠 후면 간이 부화기 안에 있는 세 개의 알도 부화할 것이다. 그날 너의 어둠이 피워올린 생명들은 폭죽처럼 깨어날 것이다.


 

 

[당선소감] "종착지 없는 여정 또 다른 시작점"

 

버스를 탔다. 처음 몇 번의 정차 이후에 종착지까지 쉬지 않는 시외버스였다. 군데군데 녹지 않은 묵은 눈이 보였다. 세상이 부식된 자국처럼 흉물스러웠다. 녹을 털어내면 세상 밖으로 통하는 구멍이 드러날지 모른다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또다시 도망치고 싶었는지 모른다.
당선이라는 말은 누전된 전선에 연결된 스위치 같았다. 불이 들어오는 대신 수상한 감정의 스파크가 일었다. 기쁨과 동시에 정체가 불분명한 어떤 공허감이 몰려왔다.
한동안 소설을 쓸 수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글을 쓰려 할 때마다 모니터의 하얀 불빛은 취조실의 백열구처럼 내게 자백을 강요했다.
그 불빛 앞에서 내 눈빛은 쉽게 흔들렸다. 끝까지 밀고 가기가 두려웠고, 내 무능과 무기력을 마주하기가 겁났다. 나는 당당한 최후진술을 하기 원했지만 언제나 허위진술에 불과했기에, 나는 끊임없이 도망치고 싶었다.
버스가 설 때마다 사람들이 타고내렸고, 아직 어둡지 않은 창밖으로 간간이 눈발이 날렸지만 쌓이지는 않았다. 버스는 마지막 정류장을 지나 이제 종착지까지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내릴 수 없다는 사실이 불안감과 안도감을 동시에 가져다 준다. 없던 용기가 생긴 것도, 마음속 깊이 자리한 머뭇거림이 사라진 것도 아니지만, 이제는 어쨌든 종착지까지 가야 할 것이다. 그곳이 어디인지는 몰라도. 당선이 면죄부가 되지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또 다른 시작점이 될 수는 있으리라.
황충상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소설이라는 것을 쓰기 시작할 때부터 많은 도움을 주셨는데, 송구하고 죄송스러운 마음에 자주 찾아뵙지 못했다.
단국대 김수복 교수님, 박덕규 교수님, 강상대 교수님, 최수웅 교수님, 그리고 경기대 안남연 교수님, 신아영 교수님, 박영우 교수님께 감사드린다.
사랑하는 가족들, 어머니와 누님, 매형, 그리고 선록이, 선준이, 선진이, 세 조카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마지막으로 부족한 글을 뽑아주신 심사위원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 약력 1972년 수원 출생 수원 수성고등학교 졸업 경기대 불어불문학과 졸업 경기대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졸업(석사과정) 단국대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수료(박사과정) 2012년 영평상 신인평론상 수상 2012년 플랫폼 문화비평상 수상 현 경기대 강사

 

 


[심사평] 임철우·최인석 "신인다운 생각과 의욕 당선값"

 

본심에 올라온 작품은 '빈 욕조'(권형백) 등 6편이었다. 전반적으로 인물과 서사에 대한 작가 고유의 탐구가 부족하다는 것이 심사위원들의 견해였다.
서사는 작품 내적으로는 인물과 그 관계로부터, 그리고 작품 외적으로는 세계로부터 비롯된다. 즉 인물과 그 관계, 그리고 세계에 대한 탐구야말로 서사가 현실성, 객관성, 설득력을 획득하는 데 가장 중요한 기반이다. 이에 대한 탐구가 없이 단순히 그럴 듯한 인물과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하여 그것으로 곧 소설적 서사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마지막까지 남은 두 작품은 '빈 욕조'와 '검란'(이대연)이었다.
'빈 욕조'는 미국으로 이민한 한국인과 베트남 사람이 문화적 차이와 오해 때문에 겪는 재난을 이야기한 작품이다. 한국인 노파는 동네 꼬마의 고추를 악의 없이 만져보다가 성추행으로 체포되고, 베트남 남자는 자신의 어린 딸을 목욕시킨 것이 화근이 되어 역시 체포당한다.
신문·방송·드라마 등을 통해 무척 자주 언급되는 이야기의 병렬적 구성으로는 소설적 진실에 도달하는 데에 역부족이었다. 무엇보다 작가의 생각이 무엇인지 찾아볼 길이 없었다.
'검란'은 알에서 태어나는 고양이, 그 고양이가 낳은 알 같은 비현실적·환상적 요소를 도입하여 한 남자가 처한 삶의 난감함과 고통을 그려낸 작품이다.
알레고리나 상징은 구체성을 띠지 못하면 무력하다. 소설적 재미도 현실적 설득력도 알레고리나 상징이 내포한 현실적 환기에서 비롯된다. 매력적이고 명증한 알레고리와 상징은 작가의 생각의 깊이와 상상력을 통해 빚어지고, 그것은 플롯과 서사를 이루는 중요한 뼈대가 된다.
구체성이 결여된 알레고리나 상징은 현실적 환기를 불러올 수 없고, 따라서 모호한 관념에 그치고 말 것이다. 이런 점에서 '검란'은 적지 않은 단점을 드러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사위원들이 '검란'을 당선작으로 내는 것은 이 작품이 지닌 신인다운 새로움, 그리고 문장에서 엿보이는 작가의 생각과 의욕이 당선에 값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정진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