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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하얀 짐승 / 한현정

 

순간 강바닥에 발이 닿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누군가 달려왔다…악착같이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

 

구제역 비상…방역복 입고 야간근무 중 전화벨 소리

“야야, 정근이가 며칠째 술 퍼마시다 죽는다고 난리다”

엄마는 오빠를 잃고 셋을 더 낳았다

악담과 분풀이를 견뎌야만 했던 나는 누구보다 남동생이 태어나길 바랐다

천신만고 끝에 막내 아들이 태어났다

 

언니는 도망치듯 시집을 가고 아버지가 갑작스레 돌아가셨다

스물셋 나에게도 봄날은 찾아왔다

자상한 남자와 결혼까지 약속했다

“저 가스나가 벌어 겨우 묵고 사는데 쟈가 시집 가뿔면 우린 굶어 죽는다”

그날 이후 남자는 점점 멀어져갔다

청춘의 봄날은 볼품없이 시들어갔다

 

사십이 넘도록 뒷바라지한 남동생…부초처럼 도시를 떠돌다 귀농결심

조상답 담보에 내 적금까지 깨서 밭에 축사 짓고 소를 사들였는데…



“이거 눈이 너무 많이 오는데요?”

하얀 방역복을 입은 이 주사가 빨갛게 코팅이 된 목장갑을 작은 석유난로 옆으로 들이밀며 말했다. 그를 따라 들어온 차가운 바람이 한바탕 컨테이너 안에서 펄떡이다 이내 잠잠해졌다.

“아무래도 길이 끊긴 것 같지?”

난로 곁을 지키던 김 계장이 종이컵에 든 소주를 급히 비우고 이 주사에게 잔을 건넸다.

“저, 술 못하는 거 아시면서 자꾸.”

“어허, 재미없게 왜 이래. 이거라도 마셔야 오늘밤을 날 것 아냐. 교대는 벌써 틀린 일이고. 술이나 먹자고.”

11월 중순 안동에서 시작된 구제역은 걷잡을 수 없이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초동 대처가 미흡했던 탓에 이미 20만마리가 넘는 소와 돼지가 살처분되었다. 비상근무 명령이 떨어진 공무원들은 벌써 한달도 넘게 방역과 살처분에 동원되고 있었다. 확산 속도가 조금 잦아들긴 했지만 언제 끝날지도 모를 재앙에 모두들 지쳐가고 있었다.

난로 위에 올려놓은 노가리에서 자잘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2명씩 조를 이룬 방역팀은 밤 10시가 교대시간이었다. 오늘 따라 일찍 도착한 김 계장은 작정이라도 한 듯 오자마자 술타령이었고, 대구에 살고 있는 송 주사는 눈을 핑계 삼아 아직 오지 않았다. 다들 오랫동안 보아온 동료이다 보니 서로 허물이 없기는 했지만 김 계장은 왠지 신경에 거슬렸다. 그는 10여년 전 여기 공무원 사회로서는 드물게 이혼을 하고 자폐증을 앓고 있는 아들을 돌보며 살고 있었다.

“이 짓도 그만둘 때가 됐지. 더러워서 못 해먹겠다니까. 이건 뭐 불나면 불 끄러 가야 하지, 홍수 나면 물 푸러 가야 하지, 이젠 소 새끼들까지 파묻으러 다녀야 하니. 머슴 노릇도 하루 이틀이지 원.”

소주 한병을 거뜬하게 해치운 김 계장이 또 다른 두꺼비를 잡아 익숙하게 모가지를 비틀었다.

“그저께는 덕곡1리 살처분 현장에 있었는데 정말 못 보겠더라고요. 송아지들까지 파묻고 이건 할 짓이 아니다 싶데요. 그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갈 때 네살 먹은 딸내미가 아빠 하고 품속으로 뛰어드는데 아, 내가 큰 죄를 짓는구나 싶어서 간이 다 철렁합디다. 제길, 요즘은 꿈자리도 뒤숭숭하고.”

이 주사가 소주 한잔을 더 들이켰다. 그도 어지간히 스트레스를 받는 모양이었다. 업무상 어쩔 수 없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방역요원들 대부분이 심한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특히 가축의 뒷덜미에 근육 이완제인 석시콜린을 찔러 넣는 것을 볼 때는 만감이 교차했다. 이 주사가 초소의 문을 열고 바깥을 내다보았다. 눈발은 여전한데 쌓이는 눈 때문인지 주변이 제법 환했다. 돌아갈 길이 막막한 것을 재차 확인하며 출근할 때 시어머니 품에서 발버둥을 치던 어린 딸의 모습을 떠올렸다.

“응, 엄마. 무슨 일 있어요?”

“무슨 일 없으마 딸내미한테 전화도 몬하나?”

다짜고짜 시비조다. 칠십 노인의 목소리가 제법 카랑카랑하게 들렸던지 소주잔을 돌리던 김 계장이 힐끔 돌아보았다. 휴대폰을 들고 초소 밖으로 나왔다. 갑작스러운 한기 때문인지, 노인의 목소리 때문인지 요의가 심하게 느껴졌다.

“지금 어데고?”

“구제역 때문에 비상이야. 지금 오사리 들어가는 쪽 다리에서 야간근무 중이고.”

“어데? 너그 오빠 죽은 그 다리 말이가?”

노인의 말에 울컥 가슴이 뜨거워졌다. 그리고 오줌보가 터질 듯 자극되었다.

“야야, 와 말이 없노?”

“엄마, 나 지금 바빠. 쓸데없는 소리 할 거면 끊어. 나중에 전화할게.”

“그게 아이고 야야, 정근이가 좀 이상하다.”

“뭐? 왜?”

“야가 며칠째 술만 퍼 마시디만 죽는다고 저 난리다.”

“……”

소변을 참느라 다리가 옹글렸다.

“내 말 듣나?”

“사, 상심이 커서 그렇겠죠. 내일 가볼게요.”

몸을 배배 꼬다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다리를 모으고 어두운 강둑을 종종걸음쳤다. 살을 베어낼 듯 매서운 바람이 휙휙 지나갔다. 전화벨이 다시 울렸지만 받지 않았다. 초소에서 그리 멀지 않은 어둠 속에서 허둥대며 바지를 끌어내렸다. 배설의 안도감과 함께 허연 김이 비릿하게 피어올랐다. 전화벨이 갑자기 멈추었다.

 

그날도 나는 강가에 있었다. 열한살의 미교도 물장구를 치며 수줍게 웃고 있었다. 햇볕에 그을려 등이 까맣다 못해 반질반질한 남자아이들 대여섯은 하얀 팬티만 입고 쪽그물로 물고기를 잡느라 시끌시끌했다. 미교와 나는 남자아이들과는 조금 떨어진 모래밭에다 얌전하게 신발을 벗어두고 물장난을 했다. 7월의 뜨거운 햇볕에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하얗게 증발되었다. 무릎에서 찰방거리는 맑은 물살이 간지러웠다. 하염없이 떠내려가는 강물을 두 손으로 움켜쥐어 보았지만 거뭇한 물고기들은 재빠르게 모래 바닥으로 몸을 감추었다. 강물에 몸을 담그고 드러누워 하늘을 보았다. 구름 한점 없이 깨끗한 하늘이었다. 잠수도 할 줄 안다고 까불거리는 미교보다 헤엄이라면 자신 있었다. 둘은 내기라도 하듯 좀 더 깊은 곳으로 개헤엄을 쳤다.

뒤돌아보니 어찌 된 영문인지 미교가 보이지 않았다. 순간, 강바닥에 발이 닿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겨우내 골재업자들이 모래를 채취하면서 생겨난 깊은 웅덩이가 죽음의 함정이 되어 있었다. 필사적으로 팔을 휘저었지만 도저히 벗어날 수 없었다. 사람 살려요. 은희가 물에 빠졌어요. 미교의 다급한 음성이 생의 건너편에서 들려오는 듯 아득하게 들렸다. 미교의 비명을 듣고 누군가 달려오고 있었다. 키가 크고 깡마른 몸매를 가진 남자아이였다. 그는 검은 물속으로 가라앉고 있던 내 머리채를 붙잡아 생의 이쪽으로 힘껏 끌어당겼다. 본능적으로 이제 살았구나, 이 사람을 붙잡으면 내가 살 수가 있겠구나 싶었다. 그래서 악착같이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

오줌을 누며 그 강을 바라보았다.

공해 때문일까, 영하의 날씨에도 이제 강은 얼어붙지 않았다. 4대강 개발 사업으로 여기저기 파헤쳐진 강바닥의 포클레인 흔적이 을씨년스러웠다. 흰 눈발 사이로 낙동강 줄기가 숨을 죽이고 있었다. 매서운 바람이 긴 휘파람 소리를 내며 하얀 포말을 일으킬 뿐이었다. 급히 바지를 추켜올리고 방역복의 지퍼를 목까지 단단히 채워 올렸다. 야무지게 팔짱까지 꼈지만 강에서 불어오는 칼바람에 떠밀려 종종걸음을 칠 수밖에 없었다. 쫓기듯 초소의 문을 열고 들어서자 후끈한 실내 공기가 얼어붙은 얼굴을 간지럽혔다. 뿌연 안경 너머 취기로 꼬인 김 계장의 목소리가 빙글거렸다.

“어이, 여사님! 뭔 전화를 그렇게 오래하시나?”

대답 대신 난로로 다가가 언 몸을 녹였다.

“아까 군청에서 보건소 김 여사 이야기 들었다. 중환자실에 있다던데 원래 지병이 있었더나? 서 여사보다 몇살 어렸던가?”

김 여사, 미교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간호조무사로 보건소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같은 마을에서 자라 국민학교도 같이 다닌 단짝 친구였다. 그녀가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가족이 모두 읍내로 이사를 가긴 했지만 몇년 후 여고에서 다시 만났다. 그녀의 아버지는 읍내에서 정육점을 했는데 그 덕분인지 형편이 좋아 보였다. 지역 유지들이 주는 향토장학금을 받지 못했더라면 학교 같은 건 아예 꿈도 꾸지 못했을 내 처지에서는 늘 부러운 친구였다. 수다스러운 친구였지만 나와 함께 있으면 꽤 진지해졌다. 스물셋 꽃다운 나이에 농촌지도소에 다니는 남자와 눈이 맞아 연애결혼을 했고, 벌써 장성한 아들이 둘이나 있었다. 어느 것 하나 빠짐없이 행복해 보이던 그녀가 쓰러졌단다. 어제 오전 관공서 직원들 사이에 퍼진 소문을 듣고 병원으로 달려갔으나 면회가 되지 않았다.

“며칠 전 개진면에 있는 농장에서 살처분 작업을 하고 와서 머리가 아프다며 쓰러졌다는데 꽤 심각한 모양이던데요?”

이 주사도 소식을 들은 모양이었다.

“어쩐지, 그날 김 여사 얼굴이 말이 아니더만. 파리하니 힘도 없고.”

김 계장이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소주잔을 기울였다. 노가리를 굽고 있기는 했지만 납덩이가 묵직하게 가슴을 짓누르는 듯했다. 농장에서 마지막으로 본 미교의 얼굴이 자꾸만 떠올랐다.

 

오빠는 공부를 잘했다. 그의 말 한마디면 남자아이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일 정도로 리더십도 있었다. 가난한 농사꾼에 내세울 것도 없는 살림이었지만 우리집 장남은 뭘 해도 크게 될 놈이다 엄마의 자부심만큼은 대단했다. 그런 그가 죽었다. 그가 죽고 내가 살았다.

오빠가 익사한 후 엄마는 한동안 정신줄을 놓고 살았다. 농부였던 아버지도 본업을 접고 술로 자식 잃은 슬픔을 달랬다. 그 모든 불행의 원인은 결국 나였다. 저것 때문에 내 아들이 죽었네. 쓰잘데기도 없는 가스나 때문에 금지옥엽 내 아들이 죽었네. 엄마의 통곡이 터질 때마다 나는 깜깜한 다락방에 숨어 귀를 틀어막았다. 밤마다 축 늘어진 오빠의 젖은 몸이 꿈에 나타났다. 사람 살려요, 은희가 물에 빠졌어요. 절박한 미교의 목소리가 들리고 오빠가 달려왔다. 그는 물에 빠진 나를 가만히 지켜보기만 할 때도 있었고 어떤 날은 내 목을 끌어안고 물속으로 가라앉기도 했다. 밤낮으로 가위에 눌려 비명을 질러대는 어린 영혼을 위로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가족 모두가 자신이 받은 상처를 감당해내기에도 힘겨운 나날이었다.

정신없이 뜨거운 여름을 보내고 찬바람이 돌 즈음 엄마는 겨우 정신을 차렸다. 새카맣게 기미가 끼고 몰라보게 수척해진 엄마가 죽은 오빠의 유품을 챙겨 언니와 나를 앞세우고 국민학교 쓰레기 소각장으로 갔다. 그곳에서 죽은 오빠의 옷과 신발을 태우고 그가 받은 상장과 상품으로 받은 공책이며 크레파스까지 불 속에 던져넣었다. 새 크레파스가 아까웠던 언니가 불길이 막 닿은 그것을 부지깽이로 끄집어냈을 때 잿더미 속에서 마치 역정이라도 내듯 매운 연기가 불컥 피어올랐다.


엄마는 아이 셋을 더 낳았다. 죽은 아이, 엄밀하게 말하면 아들을 보상받을 요량이었을 것이다. 가난한 살림에 무슨 애들을 그렇게 많이 퍼지르느냐는 동네 여자들의 주제넘은 비아냥거림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시시때때로 터지는 엄마의 악담과 분풀이를 견뎌야만 했던 나는 누구보다도 남동생이 태어나길 바랐다. 유독 내게만 나무토막 같은 엄마지만 사내아이가 태어나 준다면 달라질지도 모른다고 여겼다. 엄마는 쓰잘데기 없는 딸을 둘이나 더 낳고 천신만고 끝에 아들을 얻었다. 그 아이가 막내 정근이었다.

 

“그 여자는 말이야. 사람들 많은 곳에 가는 걸 싫어했어. 사람들 속에 있으면 오줌이 마려워서 죽을 것만 같다나? 가끔씩 시장이라도 다녀오는 날이면 오줌을 질질 싸면서 오더라고. 어린애처럼.”

김 계장이 말하는 그 여자는 아마도 이혼한 전 부인일 것이다.

“부모들 등쌀에 못 이겨 서둘러 결혼을 했지. 얼굴도 몇번 안 보고 한 결혼이라 그냥 무덤덤했어. 여자가 강박증이 있어서 그렇지 처음엔 꽤 싹싹했다. 이왕에 아들까지 낳은 거 마음잡고 살아 보고 싶었어. 그런데 그 놈아가 그 모양이라. 점점 애 엄마 우울증이 심해지면서 사이가 영 틀어졌지. 어쨌든 살아볼라꼬 무던히 애도 써보고 그랬는데…….”

김 계장의 눈가가 벌게지고 있었다. 빈 병이 늘어날수록 점점 수위가 높아지는 그의 횡설수설에 난감해지기 시작했다. 눈이 와서일까? 아니면 외진 곳에 고립된 상황이 주는 묘한 박탈감 때문이었을까? 그의 뜬금없는 무장해제가 당황스러우면서도 안쓰러웠다.

초소 안의 환경은 열악하기 짝이 없었다. 컨테이너로 만든 좁은 공간 안에 석유난로가 놓여 있고 그 옆으로 작은 책상과 의자 몇 개, 접을 수 있는 간이침대가 비품의 전부였다. 형편없이 취한 이 주사를 간이침대에 눕히고 담요를 덮어 주었다. 초소 바닥에 뒹구는 술병과 쓰레기를 치우기 시작했다. 김 계장은 마지막 남은 술잔을 의지 삼으며 의자에 앉아 주억거렸다.

“김 계장님도 이제 좀 주무세요.”

그의 어깨를 가볍게 흔들었다. 졸고 있는 줄 알았던 김 계장이 손을 뻗어 내 손목을 낚아챘다. 당황한 내 눈과 그의 눈이 마주쳤다. 회한의 눈이었다. 22년 전 버스 정류장에서 내 손을 꼭 잡아 주던 수심에 가득 찬 눈이 떠올랐다. 불에 닿기라도 한 듯 손목을 뿌리치고 초소 문을 박차고 나왔다. 눈은 이미 멈춰 있었고 사방이 환했다.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뜨거운 입김이 허옇게 얼어붙었다. 차라리 술에 취해 초점을 잃은 눈이어야 했다. 농담과 허세로 위장하고 있던 그의 맨얼굴을 본 듯해 마음이 불편했다. 오랫동안 방치되고 있는 묵은 애증의 세월이 이젠 지긋지긋했다. 초소로 돌아갈 수 없어 자동차로 향했다. 히터라도 켜고 밤을 견뎌볼 요량이었다. 자동차 문을 여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언니가 도망치듯 초등학교 동창에게 시집을 가버리고 채 1년도 되지 않아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간암이었다. 갑작스러운 일이라 모두들 경황이 없었다. 이상하게도 나는 아버지의 영정을 앞에 두고 내내 쏟아지는 졸음과 싸워야 했다. 기면증 환자처럼 반쯤 눈을 감고 문상객에게 절을 하고 울었다. 잠은 내 몸을 끌어당기던 시퍼런 강물이 되어 나를 허우적거리게 했다. 한동안 나타나지 않던 죽은 오빠의 영혼이 내 목을 끌어안고 물속으로 가라앉고 있을 때 날 선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 저년이 지 오빠 잡아 묵은 것도 모자라 애비가 죽었는데도 잠만 쳐 잔다이.”

병원에 좀 더 있었더라면 살았을지도 모를 남편을 굳이 끌고 나온 엄마를 나무라는 집안 어른들의 탄식에 대한 반발이었을까? 아니면 엄마가 그 무엇보다 두려워하는 동네 여편네들의 수군거림에 대한 방패막이였을까? 어쨌든 엄마의 불호령에 가물거리던 내 의식은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다. 졸지에 과부가 된 엄마는 자식새끼들 줄줄이 두고 먼저 간 무책임한 아버지를 원망하며 장례식 내내 대성통곡했다.

뜨거운 한여름에도 가슴이 시린 나날이었다. 여고를 졸업하자마자 큰아버지의 도움으로 군청 민원실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커피 심부름에 간단한 서류 수발이 전부인 계약직이었지만 나름 직장생활에 재미가 붙었다. 늘 주눅이 들어 있던 내게도 청춘은 감출 수 없는 에너지로 들끓는 봄날의 아지랑이였다. 스물셋 꽃다운 나이에 첫 남자를 만났다.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평범한 집안의 남자였다. 세심하게 배려해주는 자상함에 결혼까지 생각했다. 아들이 좋다 하니 그쪽 부모도 싫다는 내색이 없었다. 그러나 엄마는 특별한 이유도 없이 결혼을 반대했다. 결혼하기에는 내 나이가 너무 어리다고만 했다. 마지못해 상견례를 허락해 놓고 당일에는 아예 자리를 깔고 누워 버렸다. 급체로 약속을 미뤄야겠다는 궁색한 변명을 해야 했다. 문병을 온 남자를 앞에 두고 엄마는 앓는 소리로 내가 결혼할 수 없는 이유를 설명했다.

“저 가스나가 그나마 벌어 보태서 이제 겨우 묵고 사는데 쟈가 시집 가뿌리면 우리는 다 굶어 죽어야 되는 기라. 돈 들어갈 동생들이 줄줄인데 야들 아부지도 없이 내 혼자는 감당이 안 되는 기라. 자꾸 허리도 아프고 다리를 질질 끌고 다니는데 인제는 남의 집 품도 못 팔것고…….”

남자는 모든 걸 감당하겠으니 결혼만 하게 해달라고 했다. 엄마는 남자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다 그러면 너그 마음대로 하라며 역정을 냈다. 버스 정류장까지 배웅을 나온 내 손을 잡으며 그는 걱정 말라고 했다. 날리는 눈발이 떠나는 버스 뒤에서 어지럽게 펄럭이다 흩어졌다. 그날 이후 남자는 점점 멀어져 갔다. 우리 집 사정을 속속들이 알게 된 그쪽 부모도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한동안 엄마에 대한 원망과 믿었던 남자의 배신에 절망하며 휘청거렸다.

지긋지긋한 부양의 의무와 피해의식은 또 다른 남자를 만나도 마찬가지였다. 제대로 피어 보지도 못한 내 청춘의 봄날이 목련처럼 떨어져 볼품없이 시들어 갔다. 특별할 것도 없는 노처녀의 권태로운 일상이 반복되었고 서른 후반이 되자 사람들은 국수 언제 먹여 줄 거냐고 묻지도 않았다. 심지어 동네 여편네들은 죽은 선근 오빠의 귀신이 씌어 시집을 못 간다느니 입방아를 찧어 대는 모양이었다.

 

“여보, 놀라지 말고 들어…….”

평소답지 않게 착 가라앉은 남편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

“저 정근이가…… 처남이 약을 먹었나봐.”

“뭐? 무슨 소리야? 아까 엄마하고 통화할 때도 아무 말 없었는데.”

아까 노인과 나누었던 시니컬한 통화가 떠올랐다.

“지금 병원 응급실로 옮겨 위세척 중인데 아직 의식이 없어.”

“어, 어느 병원이야?”

“영생병원.”

“여보, 어떡하지? 우리…… 정근이…….”

“침착해라 은희야. 전화 안 하려다 처남이 잘못되기라도 하면 당신이 나 원망할 것 같아서……. 지금 눈도 많이 오고 길이 미끄러우니까 일단, 당신은 움직이지 말고 그냥 있어 봐. 지금 국도는 위험하니까 내일 길 뚫리면 나오든지 하라고. 무슨 말인지 알지? 처남도 발견하자마자 바로 병원으로 옮겼다니까 생명에는 지장이 없을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말고. 응?”

전화가 끊겼다. 한동안 휴대폰을 떼지 못했다. 남편의 목소리와 시니컬한 친정엄마의 목소리가 뒤섞여서 들려오는 것 같았다. 한참을 멍하게 운전석에 앉아 있었다. 떨리던 마음이 진정되자 이번엔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텅 빈 축사로 향하던 동생의 야윈 등과 보상금이 나오면 다시 시작하겠다던 그의 갈라진 목소리가 오버랩되었다. 아까 엄마가 전화했을 때 알아챘어야 했다. 동생의 상심이 생각보다 크다는 것을 왜 짐작하지 못했을까? 비상근무로 바빠 며칠째 농장을 찾아보지 못한 것이 자꾸 마음에 걸렸다. 이러저러한 생각의 조각들이 굴러다니며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무엇보다도 그 아이가 사경을 헤매고 있다는 사실이 조급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시동을 걸었다. 아무도 밟지 않은 하얀 눈길이 절벽인 양 겁이 났다.

 

그가 결혼한 후 한동안 나는 면사무소로만 떠돌았다. 어떻게든 그와 같은 곳에서 근무하는 것만은 피하고 싶었다. 그와의 연애는 알 만한 사람들은 이미 다 알고 있었다. 결혼까지 하려 했는데 좁은 동네에서 소문은 당연한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그의 얼굴을 보는 것이 견딜 수 없이 불편했다. 직장을 그만둘까도 생각했다. 그러나 부양의 의무를 짊어진 내 입장에서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가 미웠다. 엄마의 반대로 어그러져 버리긴 했지만 1년도 채 안 되어 다른 여자와 결혼해 버린 그가 용납되지 않았다. 가끔 업무상 군청에라도 가면 그와 마주칠까봐 전전긍긍하고 있는 내 자신이 비참했다. 술래잡기를 하듯 그의 그림자를 밟지 않으려 애썼다.

내색할 수 없는 비밀을 공유한 둣 답답한 세월이 흘러갔다. 그 사이 그에게는 아이가 태어났고, 나는 몇 번의 연애와 이별을 더 겪었다. 유독 내게만은 어렵고 가혹한 결혼이라는 절차에 대해 슬슬 염증이 났다. 노처녀라는 타이틀이 따라붙을 즈음 그의 이혼 소식을 들었다. 다들 쉬쉬했지만 이혼이 드문 시골 공무원 사회에서는 큰 이슈였다. 나와는 상관없는 일, 그 따위 첫사랑의 기억쯤이야 무덤덤하게 퇴색된 줄 알았다.

그러나 다시 군청으로 돌아오게 되면서 몰라보게 추레해진 그의 모습이 상처 위에 말라붙은 피딱지처럼 신경을 자극했다. 구겨진 와이셔츠와 때에 절어 번들거리는 바지가 자꾸 눈에 들어왔다. 무심한 듯 바라보는 그의 눈빛도 부담스러웠고, 의미 없이 던지는 농담도 귀에 거슬렸다. 심한 사투리와 점점 휑해지는 머리숱도 싫었다. 젊은 홀아비와 노처녀 사이에 흐르는 녹슨 연결고리를 은근히 끌어다 붙이려는 주변 사람들의 관심도 가끔 나를 히스테릭하게 만들었다. 이번에는 내가 그에게서 도망치고 싶었다.

정근이 대학을 졸업할 무렵 남편을 만났다. 농기계 수리를 하는 직업 탓인지 거뭇하게 기름에 전 그의 투박한 손이 인상 깊었다. 순박하지만 삶의 굴곡이 느껴지는 주름진 얼굴을 가진 남자였다. 잘난 형들의 뒷바라지를 위해 스스로 대학을 포기하고 돈부터 벌었다고 했다. 미교의 중학교 동창이었는데 허세스럽지 않은 진중함이 마음에 들었다. 형님들이 모두 서울에 있어 결혼을 하더라도 혼자 계신 어머니를 모시고 싶다 했다. 설레는 연애감정보다는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은 편안함이 좋았다. 단단한 벽처럼 느껴졌던 결혼의 절차들이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것이 신기했다. 결혼식 날, 순백의 드레스를 입은 마흔 줄의 누이를 보고 정근은 늙은 신부라며 놀렸다. 남동생의 어설픈 농담에 곱게 눈을 흘기는 나도, 해맑게 웃어넘기는 정근도 뭉근하게 저며 오는 감정을 억누르며 눈물을 찔끔거렸다.

 

작년 겨울 이 지역 야산에 산불이 일어났다. 산 너머에서 시작된 작은 불은 친정이 있는 마을로 번져 넘어오면서 제법 큰 불이 되었다. 넓은 지역에 걸쳐 자라고 있던 아름드리 소나무와 잡목들을 태우며 무서울 정도로 빠르게 마을을 위협했다. 정근도 급히 축사에서 소들을 끌어내며 대피를 준비했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정근이 도시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고향으로 돌아온다고 했을 때 서운한 생각부터 들었다. 결혼까지 미루며 사십이 넘도록 뒷바라지한 막둥이에게 누나로서 바란 것이 있다면 그저 평범한 직장인이 되어 안정된 삶을 살아주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시시한 지방대 출신이라는 꼬리표는 정근을 이 직장 저 직장으로 떠돌게 만들었고, 결국 부초처럼 떠돌던 정근은 엄마와 나의 기대를 저버리고 도시생활을 정리했다. 소를 키워 보고 싶다고 했다. 오랫동안 심사숙고한 계획인 듯 어렵게 말을 꺼내는 정근에게 엄마는 조상 답을 담보로 농협에서 대출을 받아 주었다. 그러고도 부족한 돈은 내가 그동안 모아두었던 적금을 깨서 마련했다. 집 근처 작은 밭에 축사를 짓고 소를 사들인 동생이 나중에 잘되면 이자까지 꼭 갚는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농장을 시작한 지 3년이 채 안되었는데도 마릿수가 꽤 늘어났다. 워낙 관리를 철저하게 해서인지 가축의 등급도 좋은 편이었다. 마을 사람들이 산을 타고 넘어오는 불길에 망연자실하고 있을 때도 정근은 침착했다. 여자들의 과보호 속에 자라 어쩌면 나약하지 않을까 염려스러운 동생이었는데 이젠 진짜 어른이다 싶었다. 소방 헬기가 뜨고 공무원을 포함한 많은 인력이 동원되고 나서야 겨우 불길이 잡혔다. 생명을 건 필사적인 진화작업 끝에 그야말로 불은 마을 코앞까지 와서 멈추었다. 부랴부랴 피난 짐을 쌌던 마을 사람들 모두 가슴을 쓸어내렸다. 불은 마을 뒷산을 황폐하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숲을 터전 삼아 살던 야생동물들에게는 재앙이 되었다. 불길에서 살아남은 멧돼지나 고라니들은 먹이를 구하기 위해 수시로 마을로 내려왔다. 특히 멧돼지는 먹을 수 있는 모든 것을 먹어 치웠다. 배추뿌리에서부터 아직 수확하지 않은 농작물까지 입을 대지 않는 것이 없었다. 심각한 것은 멧돼지들이 무덤까지 파헤치는 것이었다. 무덤에 난 풀의 뿌리까지 먹어치우는 먹성 때문이라고 했다. 아버지의 봉분이 몇 번이나 무너져 있는 것을 본 어머니는 이 몰지각한 짐승들을 향해 온갖 저주를 퍼부어 댔다.

 

하늘은 작은 빛조차 허용하지 않을 듯 완벽한 암흑이었다. 하얀 눈으로 뒤덮인 들판은 태고의 신비로 둘러싸인 듯 절경이었지만 소의 내장처럼 끝도 없이 굽어지는 시골길은 아슬아슬하다 못해 두렵기만 했다. 핸들을 꼭 쥔 손에 땀이 차올랐다. 차창을 지나쳐가는 길가의 낮은 산들이 마치 죽어 있는 거대한 짐승처럼 고요했다. 그 고요가 두려워 라디오를 켰다. 안도감을 주던 잠깐 동안의 음악이 끝나고 뉴스가 흘러나왔다. 자정 뉴스였다.

“전국에서 구제역 방역 활동에 나선 공무원들이 순직하거나 과로로 쓰러지는 사태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경북 회천군 보건소에 근무하는 김 모씨는 지난 5일 오후 과로로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결국 오늘 오후 9시경 숨을 거두었다고 합니다. 김씨는 구제역이 발생한 이후 연일 야근과 새벽근무를 번갈아 해 왔으며 지난 3일에는 살처분 현장에 동원되어…….¨

그때였다. 헤드라이트 불빛이 길 위를 점령한 시커먼 물체를 비추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짐승들. 본능적으로 브레이크를 밟았다. 금속성의 마찰음과 함께 마티즈가 눈길에 미끄러졌다. 길을 가로지르고 있던 놈들도 브레이크 소리에 놀라 멈추어 섰다. 멧돼지였다. 대여섯마리는 되어 보였는데 어미인 듯 덩치 큰 놈 하나와 제법 자란 새끼들이었다. 그들은 불빛 속에 동상처럼 우뚝 서 있었다. 그들의 형형한 눈빛이 타오르는 듯 번뜩였다. 그 모습이 오싹할 정도로 위압적이었다. 조급한 마음에 헤드라이트를 껐다. 숨고 싶었다. 그러자 짐승들은 오히려 방향을 틀어 나를 향해 다가왔다. 녀석들의 거친 숨이 허연 입김이 되어 마구 피어올랐다.

 

“누나, 어떡하지? 얘네들이 좀 이상해. 아무래도 신고를 해야 될 것 같아.”

정근의 전화를 받고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비상근무령을 받고 축사와 집 근처를 철저히 소독하라고 일러둔 다음날이기도 했다. 검역 담당 직원과 함께 농장으로 향했다. 아니라고 믿고 싶었지만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는 무거운 불안은 어쩔 수가 없었다. 검역원이 소의 입을 벌려 세심하게 살폈다. 구제역에 걸린 소들은 입이나 코가 헐거나 콧물이 흐른다. 그리고 발굽이 썩어 궤양이 일어나며 서서히 죽어간다. 20마리 남짓의 가축 가운데 새끼를 낳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암소 한마리가 의심이 갔다.

우선 가검물을 채취하고 다른 소들에게는 예방접종을 실시했다. 예감대로 결과는 양성이었고 신속하게 살처분하라는 통보가 떨어졌다. 지체 없이 가축에게 근육 이완제인 석시콜린을 투여할 수 있는 수의사가 섭외되고 보조원으로 미교가 투입되었다. 뒷덜미에 석시콜린을 맞은 소들이 허옇게 눈을 뒤집고 사지를 떨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태어난 지 일 주일도 채 안된 송아지가 사경을 헤매는 어미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어미 소는 심하게 다리를 떨면서도 악착같이 젖을 물렸다. 보는 이들 모두 눈시울이 뜨거워졌지만 살처분은 냉정하게 진행되었다. 젖을 빨던 새끼마저 죽어 나자빠지는 처참한 모습에 헛구역질이 났다. 그런 내 모습을 지켜보던 미교도 결국 울음을 터트렸다.

“괜찮아, 걱정 마. 어쩔 수 없는 거잖아.”

창백한 그녀의 얼굴을 보며 오히려 위로했다.

“은희야, 미안하다. 내가 딱 그 짝이지? 백정 말이야.”


그녀는 항상 내게 미안하다고 했다. 나 또한 그녀에게 말할 수 없이 미안했다. 우린 너무 어린 나이에 죽음을 알아버려서 그 슬픈 기억 때문에 서로에게 미안했다. 미교를 볼 때면 우리 가족의 불행 속에 그녀를 끌어들인 것 같아서 마음이 아팠다. 긴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상처는 또 다른 죽음으로 덧나고 있었다.

김 백정, 미교의 아버지를 마을 사람들은 그렇게 불렀다. 짐승의 숨통을 끊고 껍질을 벗기고 내장을 가르고 살코기를 정확하게 등분하여 마을 사람들에게 나누는데 그만한 사람이 없었다. 죽은 짐승의 살점과 내장을 빠르게 해체하는 신기한 구경을 하며 마을 사람들은 마른침을 삼켰다. 동네 아이들도 어른들 틈에 끼어 숨을 죽였지만 김 백정의 딸인 미교는 한사코 그 자리를 피했다. 아버지의 직업이 부끄러워서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녀에게 죽음이란 내가 그랬던 것처럼 도저히 이겨낼 수 없는 치명적인 공포가 아니었을까 싶다.

간호사로 25년을 일해 온 그녀였지만 수백 마리의 생목숨을 끊어 놓으며 겪었을 엄청난 스트레스는 짐작이 가고도 남았다. 그날 그녀의 흔들리는 눈빛에서 충분히 아프다는 것을 읽을 수 있었다. 살처분이 끝나자 지체 없이 포클레인이 왔고 동생의 소들은 모두 농장 근처 구덩이에 매몰되었다. 정근은 출장 나온 김 계장과 보상 문제를 상의하고 뒷정리를 위해 텅 빈 축사로 들어갔다. 묵묵히 일만 하는 동생의 야윈 등허리가 소처럼 굽어보였다.

 

멧돼지들이 서서히 자동차를 향해 몰려들었다. 겁에 질려 헤드라이트를 켜고 급하게 엑셀을 밟았다. 뒷바퀴가 요란하게 헛돌다가 순간적으로 튀어나갔다. 앞을 가로막던 짐승 하나가 범퍼에 부딪혔는지 둔탁한 소리가 났고 곧이어 고막을 찢을 듯 요란한 비명이 밤공기를 갈랐다.

발작적으로 휴대폰이 울렸지만 받을 수 없었다. 최대한 눈길에 미끄러지지 않으려 애쓰며 속도를 냈다. 자동차 뒤를 짐승들이 따라오고 있었다. 백미러로 보는 그들의 모습이 더 기괴했다. 코너를 돌다 아차! 하는 순간 마티즈가 눈길에 미끄러져 공중을 날았다. 찰나의 정적 속에서 남편과 딸의 얼굴이 떠올랐다. 엄청난 충격과 함께 눈 덮인 땅바닥으로 자동차가 곤두박질쳤다. 그 와중에도 계속 울어대는 벨소리, 벨소리. 결국 정근이 잘못된 것일까? 다행히 정신을 잃지는 않았지만 팔목이 부러지기라도 했는지 통증이 심했다. 뒷바퀴가 비스듬히 둔덕에 걸쳐져 눈 덮인 들판 위로 헤드라이트 불빛이 쏟아졌다. 눈부신 설국. 아름다웠다. 그 하얀 세상 한가운데 마치 그것만이 존재하고 있는 듯 붉은 표지판과 선명한 노란 글씨가 부각되었다.

 

‘이곳은 가축전염병으로 인해 가축이 살처분 매몰된 장소로 임의 훼손 및 개발, 경작 등의 사용을 금합니다.’

 

경고판을 읽는 순간 또 다른 공포가 엄습했다. 도망가고 싶었다. 사람 살려요, 은희가 물에 빠졌어요. 불빛이 닿지 않는 깊은 들판 어디에선가 절박한 미교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다시 눈발이 흩날렸다. 세상을 매몰시켜 버리려는 듯 눈은 끝도 없이 쏟아져 내렸다. 매몰지 주변으로 거품을 문 짐승들이 짓무른 발굽을 절뚝거리며 하얗게 모여들었다.




<당선소감>

 

생명과 삶의 진실 외면 않는 뜨거운 심장으로 글 써갈 것

 

잔인한 시간이었다. 때론 도망치기도 했다. 그러나 본능적으로 비행해야 할 항로가 인식되어 있는 겨울 철새처럼 되돌아와야만 했다. 내 글쓰기는 이제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당선 통보와 함께 부여받은 소설가로서의 여정에 깊은 두려움을 느낀다. 먼 길을 돌아오는 동안 그나마 단련되었을 내 비루한 날개의 힘을 조심스럽게 점검해 본다.

‘하얀 짐승’은 의미 없이 죽어가는 하찮은 생명에 대한 안타까움에서 시작되었다. 그들의 잔혹한 죽음 뒤에 그것보다 더 고통스러운 인간의 삶이 있다. 생명과 삶의 진실을 외면하지 않는 뜨거운 심장으로 녹여낸 글을 쓰고 싶다.

하늘나라에 계신 김문기 선생님 고맙습니다. 이 순간, 뜨겁게 솟아오르는 울음을 삼킵니다. 이순원 선생님, 제 방황이 너무 길었습니다. 선생님 명성에 누가 되지 않는 제자로 끝까지 살아남겠습니다. 남편 서동덕씨, 아들 상엽, 딸 지수. 별난 아내, 엄마 만나서 고생이 많아요. 사랑합니다.

농협 직원이었던 아버지 덕분에 <어린이동산>을 읽으며 자랐고, 요즘은 <전원생활> 애독자입니다. 농민신문사에 깊은 애정을 전합니다. 마지막으로 저를 소설가로 만들어주신 최인석·임철우 심사위원 선생님 고맙습니다. 좋은 책으로 은혜 갚겠습니다.



◎ 약력

▶ 1969년 경북 고령 출생

▶ 경일대 경영학과 졸업, 경희사이버대 미디어문예창작학과 졸업
▶ 2002년 대구매일신문 신춘문예 동시 당선




<심사평>

 

과장없는 조용한 문장 특출…작가의 침착한 태도 돋보여

 

예심을 통과해 심사위원들 앞에 이른 작품은 열 편, 마지막까지 책상에 남은 작품은 ‘하우스’ ‘태’ 그리고 ‘하얀 짐승’이었다.(열 편 가운데 ‘하우스’라는 제목을 단 작품이 둘이었는데, 이는 희귀한 일이었다. 하우스라는 말이 농촌에서 실용적인 이유로 많이 쓰인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마찬가지였다. 혼란을 피하기 위해 덧붙이자면 최종 예심에 오른 ‘하우스’의 공간적 배경은 꽃집이었다.)

‘태’는 신인다운 패기가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주제와 소재, 인물을 다루는 작가의 태도 역시 당돌했는데, 그것이 장점이면서 동시에 단점으로 작용했다. 도발적이었으나, 한두 군데 무리한 전개가 이어지다 보니 설득력이 현저히 떨어지고 말았다. 아쉬웠다. 무리하지 않고도 뜻하는 바를 전하는 길을 찾아낼 수 있다는 점을 당부하고자 한다.

‘하우스’는 문장과 이야기, 인물을 다루는 솜씨가 가장 능란한 작품이었다. 흔히 말하는 신춘문예용 작품에 가장 가까웠다. 그러나 문장에 지나치게 멋을 부린 태가 보였고, 그런 문장들이 매끄럽게 다듬어진 작품의 결에 가시처럼 남겨졌다. 인물의 지병과 식물의 번식력에 관한 잦은 언급 또한 오래지 않아 그 신선함을 잃었다. 꽃잔디에 대한 묘사는 더러 훌륭했으나, 작가 스스로 거기에 매료된 나머지 다른 서사에는 신경을 쓰지 않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얀 짐승’은 구제역에 걸린 가축들을 살처분하는 일에 동원된 공무원들의 이야기였다. 과장스럽지 않고 조용한 문장이 인상적이었다. 작가의 태도는 일상적·현실적이지만 그 일상적 시선에 포착되는 현실은 때로 잔인하고 때로 참혹하며 때로 슬프다. 작가는 끝까지 침착한 태도를 유지하면서 이야기를 끌어가는데, 그 또한 작품의 성취라 할 만했다.

심사위원들은 어렵지 않게 ‘하얀 짐승’을 당선작으로 뽑을 수 있었다.



심사 최인석, 임철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