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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선작>

 

  과녁 / 김장배

 

  겨운 날 활터에서 낯선 활을 당겨본다

  번번이 빗나가다 운이 좋게 다가가도

  내 인생 한가운데는 맞출 수가 없었다.


  삶도 한낱 무예일까 날과 기(氣)도 무딘 지금

  펄펄하던 지난날이 초점을 흐려놓고

  빗나간 화살 한 대는 행방마저 묘연하다.


  숨 고른 시간 앞에 조용히 활을 내리고

  욕심의 핀을 뽑아 모난 마음 다스린다

  마지막 남은 화살이 명중하길 바라며.



  <당선소감>


  '노력하면 과녁에 명중' 믿음으로 더욱 더 매진


  낯선 길을 여러 해 동안 묵묵히 걸었다. 약학도가 감성을 조율하는 글을 쓰자니 그 흐름이 자꾸만 덜컥거렸다. 턱을 깎고 모를 죽이며 다듬기를 거듭했다. 언어를 조탁하는 일은 수신(修身)과 같았다. 운율이 조금씩 매끄러워지자 시상(詩想)이 살아난다는 느낌이 들었다.

  한때 흐트러지려는 마음을 다잡기 위해 국궁을 취미로 삼은 적이 있었다. 한번 시위를 떠난 화살은 되돌릴 수가 없다. 거리를 가늠하고 바람을 감안해 화살이 과녁의 중심에 꽂히도록 해야 했다. 과녁에 명중시키는 것은 화살이 아니라 전신의 힘이 실려 있는 시위와 그것을 다스리는 마음이었다. 

  멀고 지루한 길이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사막을 정처 없이 홀로 걷는 것 같았다. 사서 고생한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포기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여기서 멈추면 길을 잃은 화살이 될 것 같았다. 목표를 향해 다가가려는 의지와 노력이 있으면 과녁에 정확히 명중한다는 믿음이 힘이 되었다.

  시련 속에서 뽑아 드는 또 한 대의 화살, 시조! 나라 시(詩)인 시조는 난세에 흩어진 마음을 아우르는 명약이 아닐까 싶다. 삼장 육구 열두 마디에 실리는 가락 가락을, 올 고운 국수 면발처럼 뽑아내려면 또 얼마나 먼 길을 가야 할지….

  과분한 자리를 내주신 국제신문과 어설픈 글에 따뜻한 눈길을 보내주신 이우걸, 전연희 심사위원님께 경의와 감사를 드린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도록 더 낮은 자세로 정진하겠다는 다짐을 한다. 그리고 막힌 운율에 혈을 터주신 선생님께 감사드리며 격려를 아끼지 않은 아내를 비롯한 가족들, 애정으로 응원해 준 선후배님에게도 고마움을 전한다.


  ● 1939년 울산 출생.
  ● 약학박사, 철학박사, 울산제일고등학교 설립자 겸 이사장.
  ● 울산광역시 교육위원회 의장 역임.
  ● 2015년 제1회 매일시니어 문학상 시조 부문 우수상, 2015년 제6회 경북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 은상.
 

  <심사평>


  연시조가 갖는 팽팽한 긴장감·리듬감 뛰어나


  심사위원이 읽어나간 작품은 300여 편이었다. 아직도 수준 이하의 맹목적인 투고자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우리 사는 세상의 여러 모습을 노래하는 장르의 특성을 이해하고 형식과 내용의 조화면에서, 그리고 묘사 면에서 높은 수준의 작품들이 적지 않았다. 재독 삼독하면서 마지막 한 편의 선택을 위해 고심했다. 지나치게 고루하거나 통일성이 부족하거나 너무 관념적이거나 음보가 자연스럽지 못한 것, 또는 말부림이 서툰 작품 등을 찾아 권외로 가려내었다.

  마지막까지 남은 작품은 '동백' '모과나무 어머니' '블랙커피를 읽다' '과녁'이었다. 좋은 작품이었다. 이 네 편을 모두 뽑고 일어설 수 있었다면 선자들은 행복했을 것이다. 마지막 한 편을 뽑기 위해 토론하고 다시 읽어보는 시간이 참 길고 지루했다. 섬세한 감성을 신선하게 보여준 작품은 '블랙커피를 읽다'와 '모과나무 어머니'가 두드러졌고, 건강한 개성을 확연히 보여준 작품은 '동백'이 두드러졌다. 시조의 정도에 닿아있는 작품은 '과녁'이 단연 돋보였다.

  시조는 연시조라 해도 한 수 한 수가 독립된 시조로서 문제가 없어야 하고, 주제를 끌고 나가는 끈질긴 힘과 긴장감 그리고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리듬감이 잘 살아있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과녁'은 가장 바람직한 응답을 하고 있었다. 신선함이 다소 아쉬웠지만, 인생의 의미를 이만큼 시조라는 그릇에 녹여 담을 줄 안다면 시인으로 출발해도 좋겠다는 확신을 하고 우리는 이 시인을 밀기로 했다. 남은 시간 잘 갈무리해서 우리 시조 시단에 커다란 족적을 남길 수 있길 기대하며, 축하드린다. 


심사위원 : 이우걸, 전연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