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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선작>

 

  목판화 / 진창윤

 

  집을 나서면서 혜진은 저녁 반찬으로 마트에 새로 들어온 포장 불고기를 먹어보자고 했다. 

  “상추만 더 사면되잖아. 편하겠다.” 

  혜진은 계산대에 포장 불고기가 올라올 때마다 개수를 세고 있는 것 같았다. 표정엔 안타까움이 역력했지만 손님이 이미 선택한 물건을 내려놓게 할 수는 없었다. 그러다 나와 눈이라도 마주치면 몰래 씩 웃고는 했다. 나는 따라 웃는 것 말고는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혜진이 손짓을 했다.  

  “불고기들이 다른 세계로 떠나고 있어.” 

  그녀가 나에게 물건이 꽉 찬 봉투를 건네주며 말했다.  

  그녀는 계산대를 플랫폼이라고 불렀다. 다른 곳으로 가기 위해 거치는 레일이 마음에 든다고 했다. 가끔 물건들 대신 계산대 자동레일에 타고 싶다고. 다른 아르바이트를 찾을 수도 있지만 굳이 마트에서 일하는 이유는 그것뿐이라고 했다. 

  “조만간 내가 레일 위에 올라가는 걸 볼 수 있을지 몰라요. 그건 일종의 예행연습이에요.”

  그녀와 처음 단둘이 술을 마셨을 때 그녀는 농담인지 진담인지 알 수 없는 말을 하며 웃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그녀와 나의 동거가 시작됐다. 

  속이 꽉 찬 봉투 여섯 개가 배달을 기다리고 있었다. 각기 다른 물건이나 식품들로 삼만 원 이상 채워진 봉투들이었다. 트렁크에 배다른 형제들을 실은 다마스가 그르렁 하고 잠에서 깨어났다. 다마스는 억지로 일어나 느리게 움직이는 노년의 몸처럼 굼뜨게 움직였다. 매번 툴툴거리는 소리를 냈지만 나를 마트에 취직할 수 있게 해준 일등 공신이었다. 면접 날 매니저는 ‘관계자 외 출입금지’라고 거창하게 쓰인 문 안쪽에서 나를 맞이했다. 

  “다마스가 있네요.” 

  아직 때가 아닌데 머리가 성급하게 벗겨지기 시작한 것으로 보이는 매니저가 이력서를 보며 꺼낸 첫마디였다. 

  “아버지가 타던 차예요.” 

  “배달에 이용할 수 있는 차가 있으면 채용에 가산점이 붙습니다.” 

  나는 생활비가 필요했다. 그래서 아버지가 타던 다마스가 여전히 아버지 소유이며, 아버지가 언제 다시 나타나서 소유권을 주장할지 모른다는 말은 덧붙이지 않았다. 혹은 말도 없이 다마스만 몰고 사라질 수도 있었다. 그는 종종 그래왔기 때문이다. 

  언젠가부터, 아마도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무렵부터, 아버지가 집에 돌아오지 않는 일이 우리 집에 흔한 일상이 되었다. 짧게는 한두 달씩, 길게는 일 년 넘도록 집을 비웠다. 처음엔 아버지에게 불행한 일이라도 생긴 것이 아닌가 걱정하던 엄마도 그가 결국엔 집으로 돌아온다는 막연한 믿음을 갖게 된 것 같다. 

  그런 엄마의 믿음은 깃털만큼 가벼운 것이었다. 아버지는 엄마의 임종을 보지 못했다. 그는 장례식 마지막 날, 아차 싶은 간격으로 집에 돌아왔다. 아버지는 엄마의 이름을 부르며 울부짖었지만 나는 그것이 엄마가 혼자서 다른 세상으로 가버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다마스를 달래며 첫 번째 배달지 주소를 내비게이션에 입력했다. 280㎖ 야쿠르트, 비엔나 소세지, 물먹는 하마, 신라면, 항균 행주세트, 플로럴향 페브리즈, 그리고 뽀로로가 그려진 어린이용 플라스틱 컵을 기다리는 고객의 주소였다.  

  벨소리가 울리고 곧 여자가 문을 열었다. 아무렇게나 동여맨 머리는 흐트러져 있었고 잠을 자지 못한 사람처럼 창백한 얼굴은 몇 시간 전보다 한층 수척해 보였다. 여자는 배달이 너무 늦은 거 아니냐며 짜증 섞인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대답 대신 묵직한 봉투를 내밀었다. 반투명한 봉투 사이로 뽀로로가 비쳤다. 여자는 하던 말을 멈추고 봉투 안을 들여다보는가 싶더니 서둘러 문손잡이를 찾았다. 닫히는 문틈 사이로 아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아이는 여자와 마트에 올 때도 지치지 않고 울어댔다. 아이를 멈출 수 있는 것은 뽀로로뿐이었다. 종량제 봉투 안에 들어있는 플라스틱 컵이 곧 효과를 낼 것이다.

  날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아파트 단지 내에는 어둠의 속도에 맞춰 공기 중에 음식 냄새가 스며들었다. 양손에 한 개씩 들려 있는 봉투에는 305호 사람들이 먹을 포장 불고기와, 308호 사람들이 먹을 포장 동태찌개가 들어 있었다. 창문을 통과한 불빛들이 어두운 복도에 기울어진 사각형을 찍어내고 있었다. 빛을 징검다리 삼아 301호를 지나고 302호를 지날 즈음이었다. 복도 끝에 까만 어둠이 보였다. 사람 두 명이 누울 수 있을 만한 크기의 둥그런 어둠은 끝을 알 수 없는 통로의 입구처럼 깜깜했다. 그것은 마치 이리로 들어오라고 손짓하는 것처럼 그곳에 있었다. 나는 그것을 우연히 마주친 길고양이를 대하는 것처럼 모른 척했다. 305호 여자에게 봉투를 건네고, 서둘러서 방향을 바꿔 왔던 길을 되돌아 308호로 갔다. 마지막 봉투를 배달하고 뒤를 돌아봤을 때 어둠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웃고 있는 혜진의 손에 검은 비닐봉투가 들려 있었다. 그녀가 먹고 싶어 하던 불고기와 상추가 들어 있을 것이다. 그녀는 다른 직원들에게 하는 것처럼 나에게도 의례적으로 느껴지는 인사를 했다. 내일 또 봬요. 그녀와 눈을 마주치지 않고 고개만 끄덕였다. 나는 그녀처럼 능청스럽게 연기하는 것이 어려웠다. 시선이 오가기라도 하면 내일이라뇨? 우리 실은 같이 살고 있잖아요, 하고 말해버릴 것 같았다. 

  나는 혜진을 생각하며 창고 정리를 서둘렀다. 오늘도 그녀는 세 정거장을 간 후에 버스에서 내려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먼저 들어가서 기다리지 그래요?” 

  밖에서 기다리는 그녀가 안쓰러워서 물어본 적이 있었다. 동거를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혼자 어두운 방에 들어가기 싫어서 그래요. 신경 쓰여요?” 

  “미안해지니까요.” 

  “괜찮아요. 어두운 방에 들어가서 불을 켜야 하는 것 보다는 환한 밖에 있는 것이 좋아요.”

  혜진의 말은 빈말이 아니었다. 그녀는 불을 켜야 할 만큼 어두운 곳을 견디지 못했다. 불을 끄면 잠을 잘 수 없어요, 깜깜한 귀신의 집에는 들어가지 못해요, 극장은 어둡잖아요, 하는 식이었다. 

  “어두운 곳에 가면 배가 아파요. 꼬르륵거릴 때 배 안에서 느낌이 나잖아요? 꼭 그래요. 살아있는 게 계속 움직이는 느낌이 어두운 동안 계속되는 거예요. 처음에는 내 착각인 줄 알았어요. 배 안에 뭔가가 있는 거요.” 

  “배에 병이라도 있는 거예요?” 

  그녀는 그런 거라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더 큰 무언가가 있으니 놀라지 말라는 표정도 덧붙였다. 

  “배에 살아있는 것이, 그러니까 파리나 벌, 반딧불이 같은 것들이 들어있다고 병원을 찾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은 거 알아요? 그게 다 그 사람들의 착각일까요?” 

  나는 그녀의 농담이 지나치다고 생각했다. 내가 그녀에게 푹 빠져있다고 아무 말이나 해서 나를 놀릴 심산이라면 그만두라고 했다. 

  “진짜예요. 병원에 가본 적도 있는 걸요? 결국 의사는 그것을 찾아내지 못했지만. 그러고는 스트레스가 원인일 수 있대요. 알죠? 의사들은 아무것도 모를 때 최후의 보루로 스트레스를 꺼낸다는 거요.”

  그녀가 일어나서 짐을 옮길 때 가져왔던 트렁크를 열었다. 그 안에서 병원 진단서가 나왔다. 그녀가 말한 이야기와 같은 증세가 적힌 종이였다.  

  “스트레스로 인해 배에 무언가가 살 수 있다는 얘기는 처음 들었어요.”

  “당연하죠. 그런 일은 없으니까요. 두 번째 찾아간 의사는 그래도 솔직했어요. 배 속에 들어 있는 것의 정체를 알 수 없다고 했어요. 하지만 원인을 찾으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도 했죠.”

  “원인을 찾았나요?” 

  “찾고 있는 중이에요.” 

  이야기를 듣고 나서도 그녀의 머리가 어떻게 된 거라든지, 그녀가 위험할 것 같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도움을 주고 싶어졌다. 그래서인지 옆에 있는 그녀가 더욱 애틋해졌다.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해요. 내가 곁에 있어 줄게요.”

  그녀가 수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얘기를 들은 날 밤, 나는 밤새 등대 불빛이 바다 위 허공을 비추는 꿈을 꿨다. 등대의 꼭대기에는 혜진이 살고 있었다. 그곳에서 그녀가 땀을 뻘뻘 흘리며 혼신을 다해 불을 밝히고 있었다. 꿈을 꾸는 중이었기 때문에 보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길을 잃는 배는 없겠구나. 나는 등대가 보이는 어딘가에 서서 혼잣말을 했다. 

  두리번거리던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몇 번 그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 간 적이 있었다. 그는 언제나 현관문을 활짝 열어둔 채로 짐을 받았는데, 현관 맞은편 벽 끝에 얼굴을 알아볼 수 있을 만큼 큰 가족사진이 걸려 있었다. 하지만 그 집에서 남자 외에 다른 사람을 본 적이 없어서 사진은 볼 때마다 기묘한 느낌을 주었다.  

  남자가 입은 짙은 회색 트렌치코트가 90년대의 주윤발을 떠올리게 했다. 어렸을 때 내가 살던 집에는, 정확히 말하면 방이라고 해야 하지만, 아무튼 아버지가 모아놓은 비디오테이프가 레고 블록처럼 쌓여 있었다. 상습적인 가출을 하기 전 시절의 아버지는 대부분의 시간을 영화를 보면서 지냈다. 비디오테이프가 VCR 안으로 들어가면 지지직거리던 화면이 멈추고 유리벽 안쪽에서 그 당시엔 바바리코트를 입은 남자들의 활약상이 시작됐다. 그들은 어째서인지 서로를 향해 총을 쏘고 피를 잔뜩 흘렸다. 그들의 사랑과 우정, 의리, 배신 같은 것을 보면서 아버지는 눈시울을 붉혔다. 조용히 눈물을 흘리는 것도 같았다. 그러면 나는 어린 나이에도 아버지의 삶은 퍽 진지하구나 하고 생각했다. 

  나도 삶에 대해 그와 비슷한 태도를 갖게 될 거라는 어릴 적 기대와는 달리 나는 영화를 보며 눈물을 흘리지 않게 됐다. 어머니의 장례식을 치르고 집에 와서 비디오를 틀고 울던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난 후부터였다. 나는 주윤발 대신 주성치를 택했다. 보이는 대로 총을 쏘고, 피를 한 바가지는 더 흘린 것 같은 상황에서도 주성치의 영화는 보는 이로 하여금 울지 못하게 하는 무엇이 있었다. 오히려 아파하는 주성치를 보며 웃음이 나오는 것을 참는 게 고역이어서 그게 마음에 들었다.

  트렌치코트를 입은 남자는 팔 위에 총 대신 애호박이니, 두부니 하는 것들을 들고 있었다. 주성치 생각에서 빠져나올 때쯤 그의 소매 안에서 뭔가가 튀어나오더니 바닥으로 툭 하고 떨어졌다. 와인 오프너였다. 남자가 주성치를 알았더라면, 그것을 집어 아무렇지 않게 품 안으로 넣던가, 적어도 목구멍으로 넘기는 척이라도 했을 텐데. 무엇을 하는 대신 그는 석고상처럼 서서 곧 울 것 같은 표정을 하고 나를 쳐다봤다. 

  나도 모르게 몸이 먼저 반응했다. 나는 이미 한 번 둘러보고 왔던 진열대 반대편으로 다시 넘어가서 새우깡, 자갈치, 홈런볼, 허니버터칩 같은 과자봉지를 정리했다. 뜸을 들이다 생필품 진열대 쪽으로 갔을 때, 트렌치코트 남자가 서 있던 자리에 빨간 오프너가 그대로 놓여 있었다. 그것을 조끼 안쪽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뾰족한 스크루 끝이 자꾸 가슴을 찔렀다. 그럴 때마다 아침 조회 시간에 매니저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요즘 마트에서 물건을 훔쳐가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으니 주의 좀 해주세요. 일일이 다 잡을 수는 없지만 예상치 밖으로 손해가 커지면 일이 복잡해집니다.” 

  “예상치가 뭐예요?” 

  매니저의 말이 끝나고 정육 코너의 김 씨 아저씨한테 물어봤었다.

  “그건 어느 정도 손해를 감수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야. 완벽하게 일을 하는 것 같아도 어디에선가 빵꾸가 생긴다고 하더라고. 아무리 잘 살펴도 없어지는 물건이 생기기 마련이고, 사라지는 돈이 있기 마련이라는 거지. 근데 손가락만 한 것이 주먹만 해지면 그땐 곤란하니까 잘 보라는 거야.”

  빵꾸는, 다시 말해 구멍 같은 건 도처에 존재하는 모양이었다. 내가 처음 까만 구멍을 봤을 때 그것은 작은 점에 불과했다. 감은 눈을 비비면 눈꺼풀에 맺히는 까만 점처럼 찰나로 생겨났다 사라졌다. 그런 이유로 처음 그것을 보았을 때 어떤 잔상에 지나지 않을 거라며 경계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는 사이 그것은 수박씨에서 포도알, 초코파이에서 프라이팬 크기로 점점 면적을 넓혔다. 까만 구멍이 항상 같은 명도를 지닌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주변의 색에 비해 짙었다. 

  어둠보다 더 까만 어둠이라니. 나는 두려움을 느끼기 전에 정체 모를 그것 때문에 내 삶에 뭔가 새로운 것이 펼쳐지고 있다는 얄팍한 기대감을 품기도 했었다. 하지만 인간이라면 이내 그렇듯, 나는 곧 그림자나 어둠, 어둠의 형체 같은 것은 두려움, 공포, 죽음 같은 것과 맞닿아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이르렀고 그 후로 어둠에 알은체하지 않았다. 한 번 눈길을 줬다가는 속을 알 수 없는 심연 같은 그것이 내가 발을 헛디디기만을 기다리며 내 뒤를 졸졸 따라다닐 것 같아서였다. 

  나는 배달을 기다리고 있는 트렌치코트 남자의 봉투에 와인 오프너를 집어넣었다. 그 바람에 봉투가 조금 찢어지기는 했지만 개의치 않을 정도였다. 

  혜진이 이불을 걷고 내 옆으로 들어 왔다. 살갗에 닿는 그녀의 몸이 차가웠다. 

  “그 여자 얘기해 줘요.” 

  “누구요?” 

  혜진은 백합 아파트에 사는 여자에 대해 듣고 싶어 했다. 

  “그 여자는 7동 15층에 살아요. 두 집밖에 없는데 맞은편 현관문이 열리는 건 본 적이 없어요. 우리 마트 고객이 아닌가 봐요. 처음 배달을 간 날, 그 여자가 물건이 빈다고 했어요. 전날 밤에 계산을 끝내고 분명히 봉투에 담는 것을 보았는데 아, 전날 배달 서비스가 끝나서 다음 날 아침에 가져갔거든요. 아무튼 어떻게 그 안에 없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말투였어요. 히스테릭한 말투 때문인지 연극을 본적은 없지만 연극배우가 있다면 저렇게 말하지 않을까 싶었어요. 나는 배달만 하기 때문에 모르는 일이라고 말했어요.” 

  “당신을 의심하던가요?” 

  혜진이 내 쪽으로 돌아누우면서 말했다.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어요. 여자에게 영수증을 보여 달라고 했지만 그녀는 이미 영수증을 버렸다고 했어요. 나는 봉투 안의 물건을 손으로 뒤적거렸어요. 그리고 여자한테 물었죠. 없나요?”

  “없다니까. 차에 다시 갔다 와 봐요.” 

  내가 하는 행동을 빤히 보고 있던 여자는 그럼 그렇지 하는 눈빛이었다. 나는 도둑으로 몰리면 골치 아픈 일이 생길 거라는 두려움에 여자가 시키는 대로 했다. 

  ‘그런데 뭐가 없다고 했더라?’ 

  1층에 도착하고 나서야 여자가 없어졌다고 우기는 물건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숨을 내쉬며 15층을 올려봤다. 여자가 나를 보고 있었다. 몸의 반 이상이 허공으로 넘어온 상태였다. 그냥 놔두면 아래로 떨어져도 이상할 것이 없을 만큼 여자는 위태로워 보였다. 뭐라도 찾아내서 여자에게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마스 트렁크는 비어 있었다.  

  “그럴 리가 없어요. 분명히 없다고요.” 

  여자는 끝까지 배달되지 않은 물건이 무엇인지 말하지 않았고 없어진 물건을 찾아내라면서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나는 마트의 매니저에게 전화를 한 후에 간신히 풀려날 수 있었다. 매니저의 답은 간단했다. 원래 그런 여자야. 곧 텅 빈 복도에 철문 닫히는 소리만 울려 퍼졌다. 그 후로도 여자는 배달을 갈 때마다 똑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마치 잃어버린 물건을 찾아달라고 떼를 쓰는 아이 같았다. 

  “어떻게 된 걸까요?”  

  혜진이 물었다. 

  “뭐가요?” 

  “다들 궁금해하잖아요. 더 이상 물건이 사라졌다느니, 일부러 가져갔다고 하지 않으니까요.”

  여자의 봉투에서는 무엇이 빠져버린 걸까? 여자에게 배달을 다녀오면 종일 그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어쩌면 내가 그것을 찾아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처음 넣은 것은 국자였다. 딱히 어떤 이유가 있기보다는 사람들이 마트에서 잘 사지 않는 물건이어서 그랬던 것 같다. 맨 앞의 국자를 빼고 뒤에 있는 것들을 앞으로 죽 밀어다 놓으면 감쪽같았다. 국자를 받은 후로 여자는 봉투에서 사라진 물건을 찾아 달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이제 괜찮은 것 같아요.” 

  여전히 호기심을 가득 담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혜진에게 말했다.

  “왜 억지 부리는 걸 그만두게 됐을까요?” 

  “상황이 바뀌었겠죠.” 

  천장에서 비추는 형광등 때문에 눈이 부셨다. 혜진이 손바닥을 펴더니 내 눈 위에 가져다 놓았다. 

  “좋겠네요…… 바뀌는 거요.” 

  “바꾸고 싶은 것이 있어요?” 

  혜진은 내 말을 듣고 한참 동안 고민하는 것처럼 보였다.  

  “다시 불을 끄고 잘 수 있으면 달라질까요?” 

  여전히 내 눈을 가린 채 그녀가 말했다. 나는 대답 대신 한 손을 들어 그녀의 눈 위에 올렸다. 

  마트에 있는 물건을 가져다 몇몇 손님들 봉투에 넣기 시작한 것이 그 무렵부터였다. 처음에는 진열장에서 없어져도 티가 안 나는 물건을 주로 넣었다. 그러다 봉투 안에 어떤 질서가 존재하는 것을 발견했다. 일종의 삶의 축소판 같았다. 봉투를 들여다보면 어떤 기능의 샴푸로 머리를 감고, 무슨 향의 비누를 사용해 손을 씻는지, 화장실에서 부드러운 화장지를 선호하는지 알뜰형을 쓰는지 보였고, 옷에 정전기 방지제를 쓰는지, 어느 모델이 광고하는 맥주를 마시는지, 특정 라면에 대한 충성심이 높은지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지 등을 알 수 있었다. 거기엔 시간의 질서 또한 필연적이어서 떨어질 만한 때가 되면 어김없이 상품이 봉투에 담겼다. 그 삶의 질서가 나에게 안도감을 주었다. 나는 점점 더 대범하게 고객이 필요할 만한 것들을 봉투에 챙겨 넣기 시작했다.  

  아침 조회 시간에 매니저가 그의 사무실로 직원들을 불렀다. 주로 매장에서 조회를 하기 때문에 흔치 않은 일이었다. 사무실로 들어가자마자 눈에 들어온 것은 매니저의 책상 옆에 있는 모니터였다. 한두 개가 아니라 자그마치 아홉 개의 화면이 매장 구석구석을 비추고 있었다. 매니저는 잠시 아무 말 없이 서 있었다. 직원들이 충분히 볼 수 있는 시간을 주고 싶은 모양이었다. 몇 초 사이에 모니터에 비치는 화면이 규칙적으로 바뀌었다. 아무래도 차례차례 정해진 장소를 비추는 방식인 것 같았다. 그만큼 CCTV 수가 늘어났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전에는 CCTV 사각지대라 불렸던 공간도 빈틈없이 화면에 들어왔다. 

  매니저가 책상 위에 있는 스틱을 잡고 이리저리 돌렸다. 과거에 유행하던 게임기의 조종기처럼 생긴 막대가 돌아갈 때마다 화면도 이리저리 회전했다. 토도독, 토도독. 스틱 돌아가는 소리가 심장을 노크하는 소리처럼 들렸다. 

  “이게 바로 최신식 360도 회전이란 거 아니겠습니까?” 

  매니저가 호들갑스럽게 목소리를 높였다.  

  “사장님이 특별히 달아주신 거예요. 이렇게 일하는 환경을 신경 써 주신다니까요. 다들 더 열심히 합시다!” 

  매니저가 직원들이 서 있는 가운데로 손을 내밀었다. 아무래도 손을 모으고 파이팅을 하고 싶은 눈치였다. CCTV를 우리를 위해 단 것일 리 만무할 텐데, 하나둘씩 직원들의 손이 탑처럼 쌓였다. 나도 마지못해 그 위해 한 층을 올렸다.  

  매장에서 물건을 정리하는 내내 나는 감시 받고 있는 사람처럼 행동했다. 신경을 쓰지 말아야지 하면, 그것을 의식하느라 더 부자연스럽게 움직였다. 그도 그럴 것이 고개를 들 때마다 CCTV가 보였고, 그것들이 다른 누구도 아닌 나를 감시하기 위해 설치된 것들이라는 생각이 꼬리를 물고 따라 왔다.

  얼굴을 보이면 형벌이라도 받는 사람처럼 고개를 푹 숙인 채 물건을 정리하고 있을 때 여자 구두가 보였다. 여자의 발에 걸려 있는 구두는 언젠가부터 크기가 맞지 않고, 급기야 헐렁거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걸음을 옮길 때마다 나는 덜커덕거리는 소리가 여자를 위태로워 보이게 했다. 신발 위에 두 다리는 점점 뼈를 드러내며 앙상해졌고 지방과 근육이 서서히 빠져나가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였다. 말라가는 몸과 대조적으로 여자의 봉투는 점점 부피가 커졌다. 그녀는 마트에 올 때마다 공을 들여 장을 봤다. 혼자 먹기엔 많다 싶은 양의 식품을 담았다. 그것은 마치 여자가 든 봉투 안의 조화가 서서히 무너지고 있다는 경고 같았다. 

  봉투에 뭔가를 넣으면 막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한데 마땅한 것이 떠오르지 않았다. 결국 여성용품 섹션에서 그것을 찾았다. 반가운 마음에 손을 앞으로 뻗었다가 내려놓기를 반복했다. CCTV가 숨을 죽이고 다음에 펼쳐질 내 행동을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았다. 배달 시간이 가까워져 올수록 마음이 다급해졌다. 결국 나는 물건을 정리하는 척하다 몇 개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지나가던 여자아이가 그것들과 나를 번갈아 보다 황급히 시선을 돌렸다. 나는 떨어진 것들을 다시 진열해 놓다가 재빨리 꾸러미 하나를 조끼 안으로 넣었다. 옆구리에 푹신하고 따뜻한 느낌이 전해졌다. 

  마지막 봉투는 트렌치코트 남자의 집으로 배달되는 것이었다. 봉투 안에 레드와인과 올리브, 치즈 같은 것들이 담겨 있었다. 오랜만에 하는 배달이었다. 남자가 수줍은 미소를 지으면 봉투를 건네받았다.

  “잠깐 들어왔다 가시겠습니까?”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등 뒤에서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나를 소파에 앉게 했다. 막상 초대는 했지만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몰라 당황한 것처럼 보였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여서 지금이라도 급한 일이 생각난 것처럼 일어나서 나가야 하나 싶었다. 

  “와인을 한잔하려는데, 잠시 말동무나 되어 주시겠어요?” 

  마침내 그가 마음을 정해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남자가 주방으로 들어가 있는 동안 나는 멀뚱히 거실 소파에 앉아 남자를 기다렸다. 뭐라도 해야 하나 싶다가 남의 집 살림을 무턱대고 만지는 것이 예의가 아니지 않나, 남자에게 물어볼까 하다가 이것저것 물어보자니 아직 그 정도로 친밀한 관계는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주방 입구 쪽에 있는 와인 냉장고에 시선이 갔다.  

  속이 들여다보이는 냉장고 안으로 와인 병들이 질서 있게 채워져 있는 것이 보였다. 와인 냉장고 옆에는 높이가 천장에 닿아 있는 장식장이 있었다. 집의 구조상 측면만 보일 뿐이었지만 언뜻 보아도 비싼 목재를 써서 정교하게 깎았다는 인상을 주었다. 남자는 우려했던 것보다 꽤 자기 세계를 즐기고 있는 사람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남자의 봉투에 집어넣었던 와인 오프너가 떠올랐다. 이 정도의 술 애호가라면 오프너쯤은 한두 개 구비해놓고 있을 텐데.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장식장의 정면이 보이는 곳으로 갔다. 그저 남자가 수집하고 있는 술이나 보자는 심산이었다. 그러나 그곳에서 마주한 것은 뜻밖의 것들이었다. 값비싼 위스키나 코냑 대신 장식장 안에는 가위, 커터 칼, 와인 오프너 같은 것들이 정연하게 걸려 있었다. 그곳은 온갖 뾰족한 것들의 안식처였다. 

  장식장 내부는 목재와 비슷한 색깔의 벨벳 천으로 덧대어 있고, 두툼한 쿠션 같은 천 위에 꽂힌 핀들이 가위나 칼, 오프너를 붙들고 있었다. 물론 그의 컬렉션에는 내가 그의 봉투에 넣어 두었던 그 빨간 오프너도 있었다. 이렇게 다양한 가위나 칼이 있을 수 있다는 상상은 해보지 못했다. 실은 이렇게 다양하게 뾰족한 것이 존재한다는 것보다 그런 것을 모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상상해 보지 못했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만감이 교차했다. 마트에서 그를 자주 봤다는 이유로 아무 의심 없이 그의 집 안으로 들어온 것이 후회됐다.  

  “안에서 오프너 좀 꺼내 주시겠어요?” 

  그렇고 그런 공포 영화에서 긴장을 고조시키기 위해 사용하는 기법처럼 어느새 등 뒤에 그가 서 있었다. 나는 여차하면 무기로 쓰일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은 심정으로 가장 날카로워 보이는 오프너 한 개를 손에 쥐었다.  

  마트에서 산 와인과 안주가 그대로 식탁 위로 올라왔다. 남자는 마지막으로 와인 잔 두 개를 그와 내 앞에 놓았다. 그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와인 오프너를 넘겨주는 것이 마뜩잖았지만 그것을 들고 버티면 부자연스럽게 보일 게 뻔해 어쩔 수 없이 그에게 오프너를 건넸다. 

  다행히 그의 손에 들린 오프너가 뚫은 것은 코르크 마개뿐이었다. 마른 팔로 안간힘을 쓰며 코르크에 스크루를 돌려 넣는 그를 보며 오히려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피처럼 붉은 와인이 잔에 담겼다. 그는 건배를 제의했다. 나는 와인은 처음인데……하며 어색하게 그와 잔을 부딪치고 한 모금 들이켰다. 상상했던 것과 전혀 다른 건조한 맛의 액체가 목구멍을 타고 넘어갔다. 

  잔을 내려놓은 그의 시선이 내 등 너머에 꽂혔다.  

  “놀라셨나요?” 

  “조금…….” 

  “놀라게 해드릴 생각은 없었는데 죄송합니다. 제겐 너무 익숙한 풍경이라 다른 사람의 시선은 고려하지 못했어요.” 

  “날카로운 것을 모으는 게 취미신가 봐요.” 

  남자는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아뇨, 아닙니다. 취미라는 것은 수집하는 것에 목적을 두는 순수한 행위인데 저는 그렇지 않습니다. 목적을 가지고 산 것들이니까요.” 

  그는 5년 전 아내와 아들아이가 미국으로 간 후에 기러기 아빠가 됐다고 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가슴에 통증을 느꼈다. 그래서 병원에도 가보고 이런저런 검사도 받아봤지만 몸에는 아무 이상이 없다는 얘기만 들었다. 어느 날 밤에는 가슴이 뻥 뚫린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잠에서 깼다. 그것은 그의 가슴보다 훨씬 큰 구멍이었다. 그 날 이후로 그는 자신의 삶이 그 안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다고 믿게 됐다. 그는 종국에 무(無)의 세계에 홀로 남게 될 것이 두려웠다. 그러던 중 그의 눈에 주방에서 쓰는 가위가 들어왔다. 

  “그 작은 물건 하나가 내 고통을 끊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용기가 없었어요. 저 물건들을 사 모을 때마다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실행에 옮기기 쉽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때는…….” 

  남자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그는 마트에서 빨간 오프너를 보는 순간 이번에는 정말 고통을 끝낼 수 있을 것이라 예감했다. 그래서 운명에 이끌리듯 그것을 품에 넣었지만 나에 의해 미수로 끝나고 말았다.

  “그때는 정말 감사했습니다. 눈감아 주신 것도 모자라 봉투에 오프너가 들어 있어서 놀랐습니다.”

  내가 다시 보낸 그 오프너가 가슴에 턱 막히더라고 했다. 그게 거름망이라도 된 것처럼 삶이 턱턱 그 오프너에 걸리기 시작했다고. 그는 내 손을 잡고 감격에 찬 표정을 지었다. 나는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던 계획을 알았더라면 그 오프너를 그의 봉투에 넣지 않았을 거라는 말은 차마 하지 못했다. 

  집을 나서는데 그가 머뭇거리며 상자 하나를 내밀었다. 은색 가위가 들어 있었다. 곡선을 이루는 둥근 손잡이와 끝으로 갈수록 뾰족해지는 날이 분리 없이 하나로 이루어진 가위였다. 그가 내심 가위를 쥐는 나를 보고 싶어 하는 것 같아 양쪽 손잡이 안으로 손가락을 넣었다. 눈이 쨍하게 시릴 정도로 잘 벼려진 두 개의 날이 무엇이라도 가를 기세로 열렸다 닫히기를 반복했다.

  밖에는 어느새 눈이 내리고 있었다. 한참 동안 눈을 맞으며 기다렸던 것에 항의라도 하는 건지 다마스의 툴툴거리는 소리가 사나웠다. 남자가 준 가위를 조심스레 옆자리에 내려놓았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통화 버튼을 누르자 다급히 나를 찾는 혜진의 목소리가 들렸다.

  마트에 도착하자마자 매니저의 사무실로 갔다. 그곳엔 매니저 외에 한 사람 더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백합 아파트 여자였다. 그들의 등 뒤로 아홉 개의 내가 보였다. 매니저는 극적인 연출이라도 하고 싶었던 것인지, 생리대 봉지를 조끼 안으로 넣고 있는 내 모습을 아홉 개의 모니터마다 정지시켜 놓고 있었다. 

  그녀가 한 손에 생리대 봉지를 들고 덜거덕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걸어왔다. 내가 배달하기 전에 가까스로 봉투에 넣어 놓은 물건이었다. 그녀의 이야기 속에서 나는 그녀의 오래된 스토커였다. 필요한 물건을 어떻게 알고 쇼핑 봉투에 넣었는지 그녀로서도 모를 일이지만, 더 참기 힘든 건 이제 사용할 수 없는 물건까지 욱여넣어 그녀를 혼란스럽게 하는 것이라며 소리를 질렀다. 

  그녀의 말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억울함이나 수치스러움, 괴로움 같은 감정들을 구체적으로 꺼내 놨다. 그러는 사이 그녀의 사연 안에 나 말고 다른 남자가 등장했다. 결국 나는 이야기의 뒤편으로 물러났고 그 남자가 이야기의 중심이 됐다. 여자는 남자와 최근 완전히 결별한 모양이었다. 가정이 있는 남자였는데 평생 곁에 있겠다는 약속을 무르고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다고 했다. 

  “나쁜 새끼. 항상 어딘가로 가버리는 새끼들이 문제야.” 

  여자는 제풀에 지칠 때까지 말을 뱉어냈다. 온갖 저주의 말을 퍼붓더니 종국에는 여전히 그를 사랑한다고 울먹였다. 그녀는 그를 데려다 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잠시 나와 눈이 마주치기도 했지만 그녀가 보고 있는 것은 내가 아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어쩌면 처음부터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건지도 모른다. 결국 나뭇가지처럼 앙상해진 몸을 매니저가 부축해서 나가는 것으로 소란은 끝이 났다. 

  침묵과 뒤섞인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매장 안으로 돌아왔지만 혜진의 계산대는 비어 있었다. 멈춘 레일 위에 ‘종료되었습니다’라고 적힌 팻말만 놓여 있었다. 마트에서 세 정거장 떨어진 버스 정류장에서 잠시 혜진을 기다렸다. 그러는 사이 다마스의 시동이 완전히 꺼졌다. 우려했던 일이 결국 일어나고 만 것이다. 시동은 기다리다 보면 다시 켜질 수도 있었지만 나는 다마스를 두고 집으로 걸었다.

  혜진과 동거를 시작한 후 처음으로 방에 불을 켜지 않고 들어갔다. 바깥과 연결된 문을 닫고 나자 마치 내가 있는 방 밖의 세계가 사라지기라도 한 것처럼 고요했다. 아버지의 동굴도 이랬을까. 

  엄마가 죽고 며칠 동안 서럽게 울던 아버지는 어느 밤에 현관 타일에 구두를 탕탕 구르고 나간 뒤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나는 그가 외출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문을 열어보지는 않았다. 아버지가 그해 최저 기온을 기록한 날 회색 양복만 입고 집과 반대 방향으로 가더라는 목격담을 전해준 사람은 세탁소를 운영하는 최 씨 아저씨였다. 내가 외투를 빌려주고 싶었는데, 라며 말끝을 흐리는 아저씨의 얼굴 위로 하얀 입김이 피어올랐다.  

  아버지가 발견된 것은 마지막 가출을 했던 그 겨울이 끝나며 봄이 오던 무렵이었다. 한 사람이 간신히 들어갈 만한 크기의 산속 동굴에서 언 몸이 녹고 있는 것을 길을 잘못 든 등산객이 발견했다. 그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왜 라는 물음을 가장 먼저 떠올렸다.  

  아버지는 평생 자신의 삶을 인정하지 않았다. 여기가 아니라 어딘가 다른 곳에 진짜가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그가 지금 속해 있는 삶은 잠시 머물다 가는 정거장에 불과했다. 그곳에서 나와 엄마는 아버지를 기다렸다. 아버지가 어딘가에서 진짜를 찾으면 우리도 그곳으로 데려갈 거라는 막연한 기대감을 품기도 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삶은 언제나 ‘여기’였다. 단 한 번도 ‘거기’가 된 적은 없었다. 아버지는 왜 동굴로 들어갔을까?

  방의 암흑에 익숙해질 무렵 어둠보다 더 까만 어둠이 허공에 생겼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 눈을 꾹 감았다. 그리고 그것을 향해 손을 뻗었다. 

  팔은…… 그대로 쓱 어둠을 통과해 반대편으로 나왔다. 그냥 그뿐이었다. 그것은 나를 삼키지도, 나를 다른 곳으로 데려다 놓지도 않았다. 나는 어둠에 몸을 뉘었다. 내 몸에 꼭 맞았다. 어둠은 내가 외면한다고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타인이 대신 들어가 몸을 맞춰 줄 수도 없었다. 나의 어둠은 내가 있기에 존재했다.  

  잠시 뒤, 다마스가 툴툴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정류장에 있던 다마스를 이곳으로 가져올 사람은 혜진뿐이었다. 나는 혜진이 다마스에서 내려 방문을 열어주기를 기다렸다. 그녀가 온다면 그녀의 어둠을 핑계 삼아 피했던 내 어둠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놓고 싶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둠도 같이 일어났다. 불을 켰다. 순식간에 어둠이 사라졌다. 하지만 그것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알고 있다. 




  <당선소감>


   내가 하려는 이야기, 의심하며 치열하게 쓸 것


  머릿속에 온통 써야 한다는 생각뿐인 날들이었습니다. 그 무게를 견딜 수 없을 것 같아서 도망쳤다가도 원래 있던 자리로 되돌아오고는 했습니다. 소설이 좋았고, 글 쓰는 것이 좋았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잘 돌아왔다고 따뜻한 환대를 받고 있는 기분입니다. 아마도 혼자 가는 길이었다면 이곳에 설 수 없었을 것입니다. 언제나 곁을 지켜 주는 든든한 나의 가족. 엄마 아빠, 동생 J와 Y, 할머니. 사랑하고 감사합니다. 아무것도 모르면 모르는 채로 쓰면 되는 거라고 용기를 주셨던 황충상 선생님, “너는 결국 계속 쓸 거야”라고 말씀해주신 박상우 선생님, 아이의 작은 마음도 깊게 자세히 들여다보아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신 김서정 선생님, 한 줄 한 줄 부족한 문장부터 다시 가르쳐주신 강영숙 선생님, 감사합니다. 늘 선생님들의 가르침 잊지 않고 쓰겠습니다. 

  백세클럽, 그대들은 나의 둥지 같은 존재들이에요. 백 살까지 함께 써요. 오랜 친구들, W, 그리고 지면에 다 담지 못한 소중한 사람들. 함께여서 늘 고맙습니다. 

  마지막으로, 부족한 글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만의 여정을 시작해 보라고 길을 내어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당선 소식을 듣고 자격이 있을까 두려워하던 마음은 그만 치워두겠습니다. 대신 늘 그래 왔던 것처럼 내가 하려는 이야기가 진짜인지 고민하고, 의심하며 치열하게 쓰는 것으로 그 자리를 채워가겠습니다. 외롭고 지난한 길에서 때로는 뒤돌아보고 머뭇거리기도 하겠지만 그래도 계속 나아가겠습니다 


 

  ● 1982년 경기 안양 출생.

  ● 한국외대 아랍어과 졸업.


 

  <심사평>


  ‘일상’ 자유롭게 다룬 문장 안정적… ‘경향’아닌 ‘솜씨’보고 뽑아 


  본심에 올라온 작품들에는 ‘외부’가 없었다. 거의가 그랬다. ‘작품’으로 덩그마니 있을 뿐, 그것들은 이른바 현실이라든가 일상이라든가 하는 ‘외부’를 작품 안에 반영하지 않았다.

  고립과 단절을 자초하며 작품 저 홀로 낯선 질서를 지어냈다. 인과와 의미 등 현실적 연관 따위 아랑곳 않고 에일리언의 눈을 끔뻑거리며 우리가 대하고 있는 현실을 의심투성이의 눈길로 노려만 보았다.

  왜 그러는지 알겠다. 이러한 작법의 태도와 입장을 이해 못 할 바도 아니었다. 그것은 이미 점점 커져가는 한국소설의 한 물길이기도 하니까. 

  이에 대한 반발로 ‘현실’을 재구성하여 창작된 소설을 당선작으로 뽑은 건 아니라는 말이다. ‘플랫폼’은 어디까지나 경향이 아닌 솜씨로 뽑힌 작품이다. 아직은 작위의 봉합선을 제대로 감추지 못했으나 본심에 오른 응모작들 가운데 문장의 오류가 가장 적고 안정적이며 ‘생존동력으로서의 어둠’이라는 패러독스를 여의하게 다루었다. 소설에 전심전력할수록 행복해진다는 것을 오늘 크게 확인했을 테고 앞으로 더 그러할 것이니 이 새내기 작가에게 어찌 축하를 아낄까.

  이외의 작품들은 높은 실험의식과 패기에 비해 소설 요소의 운용이 당선작에 미치지 못했다. ‘올드 픽쳐스’와 ‘로젠의 다리를 건너는 시간’과 ‘포터를 타고’도 수작이었다. 

  ‘미드’적인 감성이 나름의 문제 의식을 갖고 한국문학에 스며드는 이유를 모를 바는 아니나, 아쉽게도 ‘올드 픽쳐스’의 작가에게는 박민규라든가 오한기의 몇몇 소설이 이룩해 낸 성과를 머지않은 시일 안에 너끈히 따를 수 있게 되리라는 기대를 갖기로 했다. 사랑 혹은 그리움이라는 주제를 물리학 이론 체계로 재구성하는 서사가 최근 영화에서도 소설에서도 주목을 받고 있다.  

  ‘로젠의 다리를 건너는 시간’이 독자의 보다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서는 물리학과 신앙의 경계를 석명하게 인용할 필요가 있었다.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낡은 포터지만 그 ‘포터를 타고’ 달리는 종대와 복구의 안팎을 거침없이 관통해내는 작가의 감각은 참으로 날렵하고도 통쾌했다. 그런데 날렵하다 보니 찬찬하지 못해 문장이 자주 미끄러졌다.

 

심사위원 : 김원우, 구효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