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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선작>

 

  호랑거미 / 성정현

 

내 집은 공중그네 어둠에 주추를 놓고

아무도 깃들지 않은 바람으로 엮은 처마

벼랑을

짚고 짚어도

하루살이만 숨죽이고


언제쯤 우리도 남루한 저녁 한때

끼니 걱정 하나 없이 마음의 빚도 없이

단 한 번

사랑을 위해

날아오를 수 있을까


바지랑대 선회하던 그림자 길어지면

너를 포획하기 위해 중심에 붙박인 몸

열두 번

허물을 벗어

허공으로 길을 낸다




  <당선소감>


   “독자 가슴에 남는 올곧은 작품 쓸 것”

   성장통으로 나를 지탱해준 시조에 사람과 자연·기쁨과 슬픔 담을 터



  아파트 베란다 유리창 너머로 성근 눈발이 날리는 아침, 당선이라는 뜻밖의 전화가 왔습니다. 돌아보면 작은 여행에서 출발한 시조에 대한 열망이 열병으로 바뀌어 늘 제 곁에 남아 있었습니다. 꿈 많은 중학교 시절, 너는 훌륭한 작가가 될 거라며 제 글을 칭찬해주셨던 국어 선생님이 생각납니다.

  불혹이 넘었지만 여전히 성장통으로 나를 지탱해준 시조. 언제부턴가 가슴에 품고 살았던 시어들을 꺼내어 다듬다보니 늘 조바심이 앞서곤 합니다. 그럴 때마다 제 스승들께서는 하루에 3시간, 10년을 밀고 천천히 가다보면 그때는 눈이 조금 뜨이게 될 거라고. 그리고 등단이라는 관문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임을 늘 잊지 말라고 일깨워주셨습니다.

  걸음걸음 길목마다 사람과 자연, 우리 주변의 기쁨과 슬픔의 일상들을 외면하지 않고, 누군가에게는 작은 위안이 되는, 결 고운 나무에 새겨진 판화 같은, 독자의 가슴에 남는 올곧은 시조를 쓰고 싶습니다.

  부족한 글을 뽑아주신 심사위원님, 감사합니다. 초심 잃지 않고 정진하겠습니다. 수많은 고비마다 길잡이 되어주신 여러 선생님들, 특히 노중석·김경호 선생님 감사합니다.

  항상 즐겁게 공부하는 김천 백수문학관 시조아카데미 문우 여러분과 내 시조의 고향인 가슴 속에 영원히 늙지 않는 마흔살로 남은 아버님과 언제나 버팀목이 되어 응원해준 사랑하는 가족들과 작은 기쁨을 함께하겠습니다..

  ● 1972년 경북 상주 출생.

  ● 한국 MHS 심리상담사 재직.

  ● 백수문학관 시조 아카데미 회원.

 


  <심사평>


  호랑거미, 악조건의 치열한 삶 밀도 있게 형상화

  ‘어둠에 주추를 놓고’ 등 표현서 산고의 노력 읽혀  


  우리 심사위원 각자는 신문사에서 따로 제본한 자료를 통해 응모된 작품 전체를 정독했다. 물론 이름까지 지워진 작품만을 대상으로 세밀하게 살필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을 가졌다. 혹독한 추위 속에서도 신춘문예에 대한 뜨거운 열의를 확인할 수 있어 좋았다. 토의에 올릴 각자 추천한 작품을 다시 축조 검토해 최종적으로 서너명의 작품으로 압축했다. 하나씩 대표작을 가려 뽑고보니 어느 것을 당선시켜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뜻 와불’은 ‘고사목 쓰러진’ 몸피의 애잔함이 관심을 끌었고, ‘꼭두서니 바다’는 사설시조로서 가락을 잘 타면서도 잊히지 않는 기억의 절창이 마음에 와닿았다. 오랜 숙의 끝에 당선작으로 올린 ‘호랑거미’는 시적 대상인 ‘호랑거미’를 통해 아무리 악조건이라도 치열하게 살아가는 삶의 단면을 밀도 있게 형상화한 작품이다. 흠이라면 너무 무난하게 시상을 전개하면서 정직하게 마무리를 하고 있어 개성적인 면을 찾기 힘들다는 점이었다.

  그럼에도 이 작품은 시조의 율격을 잘 지키면서도 욕심내지 않고 단아하게 상을 이끌고 있는 장점이 돋보였다. ‘어둠에 주추를 놓고’라든지 ‘바람으로 엮은 처마’ 등은 그냥 쉽게 얻어진 표현들이 아니며, ‘중심에 붙박인 몸’은 마지막 상승 이미지를 확보하기 위한 산고의 노력으로 읽힌다. 투고한 다른 작품들이 모두 일정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 안정적이라는 점이 큰 신뢰를 갖게 했다. 굵은 선의 미학에 보다 관심을 가지고 꾸준히 정진하시기 바란다.

 

심사위원 : 이지엽, 김일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