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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볼트 / 지혜

 

  공장은 산을 가로지르는 국도 근처에 있었다. 오래된 도로 끝에 터널 공사가 한창이었다. 우회하는 길은 보이지 않았다. 도로는 팔차선에서 사차선으로, 사차선에서 이차선으로 점점 좁아졌다. 이윽고 나타난 컴컴한 숲의 초입에는 인적 하나 없었다. 샛길에는 커다란 활엽수들이 양 옆으로 늘어서 있었다. 입구에 놓인 표지판은 녹슨 귀퉁이가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 아슬아슬했다. 얇은 철판 위에 급하게 갈겨쓴 것처럼 보이는 표지판의 글씨는 획과 굵기가 일정하지 않아 마치 어린아이의 낙서처럼 보였다. 나는 갓길에 차를 세우고 표지판이 가리키는 곳을 향해 걸어 들어갔다.

  삼촌의 말대로라면 여기 어디쯤 아니 바로 그곳에 공장이 있어야 했다. 주변에는 건물 그림자 하나 보이지 않았다. 어딘가에서 개 짖는 소리가 났다. 소리는 이따금 멈췄다가 다시 시작됐다. 멀지 않은 곳에 개 무리가 있는 듯했다. 나는 소리를 따라 길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삼촌의 공장에는 이름이 없었다. 상호도 직원도 없이 홀로 공장을 꾸린 지 일 년이 다 돼갔다. 얼마간 걸어가자 성긴 덤불 너머 파란색 슬레이트 지붕의 끄트머리가 보였다. 흥분한 개들의 불안한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잠시 후 공장이 보였다. 회색 컨테이너 위에 엉성하게 지붕을 얹은 조립식 건물이 밭 한가운데 놓여 있었다. 공장이라기보다 작업실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사방을 에워싼 나무는 농업용이라기엔 작고 볼품없었다. 가만히 주위를 둘러보다 그만 발을 헛디딜 뻔했다. 온갖 종의 개들이 건물 뒤편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개들은 검고 누렇고 희고 얼룩덜룩했지만 모두 흙과 먼지에 뒤덮여 꼬질꼬질했다. 열 마리 남짓한 개들은 한 무리라기엔 서로 거리가 있어 보였다. 목줄이 나무에 묶인 개도 있었고 꼬리를 흔들며 제자리를 맴도는 개도 있었다. 개들은 경계하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너는 누구냐. 누구야. 그렇게 묻는 얼굴이었다. 나는 찬찬히 개 무리를 바라봤다. 개들 중 다 자란 잉글리시 쉽독은 보이지 않았다. 

  왔냐. 

  삼촌이 컨테이너에서 나오며 말했다. 컨테이너 안은 온갖 부품과 기계들로 발 디딜 틈 없어 보였다. 입구에는 문 대신 검은 방수천이 걸려 있어 안과 밖을 구분하고 있었다. 나는 삼촌에게 가지고 온 롤케이크를 건넸다. 백화점 식품관에서 산 일본 브랜드의 한정판 제품이었다. 우유 생크림으로 속을 채운 케이크의 가격은 진열대에 놓인 것 중 가장 비쌌다. 일본에서 살다 온 사람에게 일본 브랜드의 케이크를 사다주는 게 옳은 일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다행히 삼촌은 케이크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정이 봤냐. 

  아니요. 

  나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무슨 개가 이렇게 많아요? 

  하나 둘 따라오더니 이제 다 여기 산다. 

  삼촌이 얼룩진 목장갑을 벗으며 말했다. 마디 하나만큼 잘린 왼손 검지 위로 새파란 골무가 끼워져 있었다. 나는 고개를 돌리고 공장이 놓인 밭을 둘러봤다. 손톱만 한 이파리가 겨우 붙은 초목들이 건물 주변을 에둘러 자라 있었다. 개들은 여전히 저만치서 날 보고 있었다. 몇몇은 삼촌을 보며 꼬리를 흔들었다. 

  정이를 데려가라는 전화가 온 건 지난주 일요일 저녁이었다. 정이는 성견이 된 지 얼마 안 된 올드 잉글리시 쉽독으로, 삼촌이 돌아온 후 줄곧 함께 지내고 있었다. 나는 살면서 삼촌을 본 날보다 보지 않은 날이 더 많았다. 내가 태어나던 해 삼촌이 한국을 떠났기 때문이었다. 많은 이유가 있었겠지만 결국 돈 때문이라는 걸 어린 나는 알고 있었다. 삼촌은 일본에서 중국으로, 오스트레일리아로, 아프리카로, 다시 일본으로 전전했다. 마침내 아오모리의 한 공장에 생산직으로 자리를 잡았을 때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떠난 지 칠 년이 지났을 때였다. 

  삼촌이 보낸 소포가 도착하는 날이면 엄마는 이모네 가족을 집으로 불렀다. 이모는 우리 집에서 걸어서 십오 분 걸리는 동네에 살고 있었다. 이모네 집은 여섯 가구가 사는 다세대 주택의 반지하로, 우편함이 따로 없어 툭하면 택배나 편지가 분실되곤 했다. 삼촌이 보낸 커다란 택배 상자 안에는 도자기나 액자, 외국의 식료품, 잡다한 생활용품 등이 스티로폼과 신문지에 포장돼 있었다. 내 이름이 적힌 봉투에는 ‘사랑하는 조카에게’로 시작하는 편지와 지폐가 들어 있었다. 엄마는 봉투에서 지폐를 빼내며 말했다. 

  그래도 삼촌 덕분에 우리가 이렇게 잘 살고 있는 거다. 

  우리가? 

  삼촌이 떠난 지 딱 십 년이 되던 해에 우리 가족은 영구 임대아파트로 이사했다. 단지의 가장 안쪽 동, 즉 가장 싼 구역의 1층 끝집이었다. 베란다 바깥은 바로 아파트 뒷문이었다. 한 사람이 지나다닐 수 있는 좁은 철망이 단지를 둘러싸고 있었다. 단지 바깥으로 나가는 사람들의 발소리가 집 안 어디에서나 들렸다. 나는 창 아래 의자를 놓고 그곳에 올라서서 사람들을 구경했다. 급히 오고가는 사람들, 늦은 퇴근을 하는 사람들, 수업을 제치고 몰래 빠져나가는 아이들이 모두 뒷문으로 지나다녔다. 그즈음 엄마의 표정은 오래된 서류봉투처럼 칙칙하게 접혀 잘 펴지지 않았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크기의 안방과 미닫이가 달린 창고방은 거실 겸 부엌에 서면 한눈에 보였다. 세 사람이 앉으면 발 디딜 틈 없는 부엌에는 결국 식탁을 놓지 못했다. 엄마는 틈만 나면 이사 가야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여긴 곧 떠날 거니까. 우린 잠시 들른 거니까. 그러는 와중에도 세간은 도무지 줄지 않아 이사 때가 되어서는 베란다 창을 떼어 짐을 옮겨야 했다. 

  나는 때때로 삼촌에게 정이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삼촌도 정이를 보면 좋아할 거예요. 외할머니는 정이에게 남은 밥을 줬어요. 우리 집에 놀러오세요. 좁고 따뜻해요. 엄마는 어서 이 집을 나가고 싶대요. 그런 말을 편지에 쓴 적은 없었다. 어느 날은 문득 삼촌에게 쓴 편지가 제대로 도착했는지 물어본 적 없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나는 종종 텅 빈 집 안에 앉아 바깥에서 나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뒷문 앞으로 난 좁은 골목은 차 한 대가 간신히 지나다닐 수 있을 정도였다. 짐을 잔뜩 실은 트럭이나 9인용 승합차가 지나갈 때면 운전석에 앉은 사람의 긴장한 표정이 보였다. 큰길까지 고작 이십여 미터 남짓이었다. 운전자가 떠나도 그들의 기묘한 표정과 얼굴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표정들은 아침부터 밤까지 골목을 돌아다니다 방구석에서 잠든 나의 꿈에도 찾아왔다. 나는 낯선 사람들의 표정을 하나씩 모았다가 심심해지면 그것들을 꺼내 들여다봤다. 어둠 속에서 생생했던 표정들은 눈을 뜨자마자 사라졌다. 사라진 표정 너머 길고 긴 골목의 끝이 보였다. 재건축 예정지인 낡은 아파트가 길 끄트머리에 서 있었다. 소리의 끝은 항상 아파트였다. 우리는 언젠가 저 동네로 갈 거야. 그렇게 말한 사람이 엄마였는지 이모였는지 혹은 낯선 표정의 운전자였는지 이제는 조금도 기억나지 않았다.

  정이는 잘 있어요? 

  직접 보지 그러냐. 

  삼촌은 부러 퉁명스럽게 말했다. 지난 명절 이후 크게 달라진 모습은 없었다. 삼촌은 말없이 뒷짐을 지고 농장을 빠져나가더니 숲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우리는 눈앞에 보이는 샛길로 들어섰다.

  어디 가요? 

  가보면 안다. 

  나는 조용히 삼촌의 뒤를 따랐다. 근처에 야트막한 야산이 있는데 그곳에서 나무도 줍고 땔감도 가져오고 약초도 캔다고 삼촌은 말했다. 나는 입구에서 만난 개들을 떠올렸다. 바깥 생활에 익숙해진 개들에게서 정이 냄새가 났다. 정이는 정말 이곳에 있을까. 시골집 곳곳에는 정이의 오줌이 웅덩이져 있었다. 오줌은 오랫동안 말린 고추처럼 시큼하고 비린 냄새를 풍겼다. 오랫동안 불법체류자로 외국을 떠돌던 삼촌이 집으로 돌아온 날이었다. 그날 저녁 엄마와 마당에 들어섰을 때 이모는 대청에 앉아 울고 있었다. 짐승의 오줌 냄새가 났다. 엄마는 이모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느냐고 물었다. 엄마의 표정이 창백하게 변했다. 정이가 낑낑대며 나에게 다가왔다. 태어난 지 고작 반년이 넘었다는 정이는 한두 살 정도의 어린아이만 했다. 품에 안자 손가락을 핥으며 꼬리를 흔들었다. 축 늘어진 귀 뒤로 듬성듬성 털이 빠져 있었다. 엄마는 어딘가 후련한 표정이었다.

  개들 밥도 주세요? 

  무슨 개들 말이냐. 

  아까 개들이요. 

  그럼 내가 주지. 

  어떻게요. 열 마리는 돼 보이던데. 그 말은 하지 않았다. 삼촌은 긴 나뭇가지 하나를 주웠다. 끝이 Y자로 갈라진 가지는 지팡이 같기도 하고 집게 같기도 했다. 발치의 나뭇잎들을 천천히 치우며 걷는 모습이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한 불교 종파의 승려 같았다. 그들은 불필요한 살생을 피하기 위해 빗자루를 들고 다니며 걸음에 맞춰 빗질을 했다. 혹여나 눈에 보이지 않는 생물들을 밟지 않기 위해서였다. 삼촌이 종교를 갖고 있다는 얘기는 들은 적이 없었다.

  땔감은 뭐하시게요? 

  불 때려고. 

  어디서요? 

  여기저기. 개들도 좋아한다. 

  뭘요? 

  뜨신데. 

  나뭇가지가 땅에 끌려 삼촌이 걸어간 길을 따라 긴 흔적이 남았다. 흔적은 두 갈래의 평행선으로 이어진 꼬리처럼 삼촌을 따라왔다. 문득 나란히 그어진 두 줄의 선이 각각 다른 방향으로 뻗는다면 나뭇가지는 어떤 모양을 하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여기 자주 오세요? 

  어딜 말이냐. 

  여기요. 숲이요. 

  나는 삼촌의 등을 보며 물었다. 구부정한 등 아래 오래된 셔츠 자락이 삐져나와 있었다.

  맨날 온다. 

  개 짖는 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엄마는 잘 있냐. 

  똑같죠 뭐. 

  나는 롤케이크를 고르며 엄마의 얼굴을 떠올렸다. 달고 비싼 것. 그건 엄마가 아름다운 것을 가리키는 단어들의 총합일지도 몰랐다. 케이크를 사가는 건 엄마의 생각이었다. 엄마는 삼촌이 오래 만난 일본인 애인과 결혼하지 않고 한국에도 데려오지 않는 것에 화가 나 있었다. 모두들 삼촌이 왔으니 제사 할 사람이 생겼다고 좋아했지만 정작 삼촌은 그런 일에 조금도 관심이 없는 듯했다. 한동안 삼촌의 관심사는 병원과 관공서, 보험회사가 전부인 것 같았다. 

  사진으로만 보던 삼촌을 실제로 만났을 때 나는 소문으로만 듣던 연예인을 본 기분이었다. 어, 저 사람 어디서 많이 봤는데. 사진에서도 보고 비디오에서도 보고 꿈에서도 보고 엄마의 지갑 속에서도 봤는데. 처음 만난 삼촌은 생각보다 늙어 보였고 사진보다 수척했다. 지난 이십여 년간 편지로만 만났던 삼촌이 눈앞에 있다니. 나는 많이 컸다며 악수를 하자는 삼촌의 손을 뿌리칠 수 없었다. 삼촌은 마르고 얇은 팔뚝에 비해 손이 컸다. 크고 억센 아귀에 힘을 주며 조카님, 하고 말하는 얼굴이 꼭 일그러진 가면 같았다. 

  조카님. 

  네. 

  밤 좀 따자. 

  삼촌은 들고 있던 가지로 나무 위를 툭툭 치더니 길도 없는 풀밭 안으로 들어갔다. 무릎까지 오는 잡초와 활짝 핀 고사리들이 바닥에 가득했다. 정글이 있다면 이런 곳일까 싶게 사람의 흔적이 닿지 않은 깊은 숲속은 바깥보다 온도가 십 도 정도 낮은 것 같았다.

  뱀 없어요? 

  어디 말이냐. 

  여기요, 여기. 

  나는 발바닥 한가운데가 축축해지는 걸 느끼며 삼촌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삼촌이 신은 농업용 장화에는 묽은 잿빛의 얼룩이 가득했다. 습지 주변에서 자란 굵고 창백한 나무들이 땅을 향해 고개를 숙이듯 길고 긴 가지를 바닥으로 늘어뜨리고 있었다. 

  뱀 안 밟게 조심해라. 

  개들 이름은 있어요? 

  그건 왜. 

  불러보게요. 

  아시. 

  네? 

  아타마, 쿠치. 

  그게 이름이에요? 

  쿠치, 하나, 메. 

  메? 

  그래, 메. 

  메가 누군데요? 

  저기 제일 하얀 놈. 

  무리 중에 하얀 개가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볼품없이 비쩍 말라 회색 먼지를 뒤집어쓴 채 잿빛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던 모습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아고, 히토미, 무네, 하라, 코시. 

  삼촌이 개들에게 붙인 이름들은 모두 일본어였다. 개들은 자신의 이름이 일본어인 줄 알고 있을까. 삼촌이 일본에서 오래 살다 온 사람이라는 게 개들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을까. 나는 그것들이 무슨 뜻이냐고 물어보려다 말았다. 어차피 외울 수도 없을 것 같았다.

  한 놈 더 있다. 

  뭔데요. 

  우데. 

  그건 무슨 뜻인데요? 

  삼촌은 잠시 뜸을 들이더니 고개를 들고는 가지 끝에 매달린 밤송이를 바라봤다. 밤송이는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 아슬아슬하게 나무를 붙들고 있었다. 아니 나무가 밤송이를 붙들고 있었다. 나는 밤송이가 매달린 나무 밑동을 발로 찼다. 몇 초 후 나무 위쪽이 조금 흔들렸지만 밤송이가 달린 가지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삼촌이 손에 든 Y자 가지로 밤송이를 툭툭 쳤다. 매달려 있다는 말이 무색하게 밤송이는 순식간에 땅으로 떨어졌다. 밤송이를 놓친 나무가 아주 조금 흔들리는 것 같았다. 밤송이는 크지도 작지도 않은, 어른 주먹만 한 크기였다. 살을 감싼 희끄무레한 가시 덕에 얼핏 희한하게 생긴 꽃처럼 보였다. 

  팔. 팔이란다. 

  삼촌이 조끼 주머니에서 접힌 자루를 꺼내며 말했다. 밤송이를 자루에 담고는 나무를 지나쳐 걸어갔다. 우데. 나는 소리 내서 말했다. 삼촌의 우데가 이리저리 나뭇잎을 치우고 있었다. 바싹 마른 낙엽들이 삼촌의 몸 여기저기 붙어 가시처럼 허공을 향해 날을 세웠다. 우리는 숲에서 한참 동안 밤을 따거나 주웠다. 

  이것 봐라, 실하다. 

  삼촌이 자루 입구를 활짝 열며 말했다. 자루는 벌써 절반쯤 차 있었다. 부드럽게 잡힌 입가의 주름이 마치 휘어진 가지처럼 금방이라도 땅으로 떨어질 것 같았다. 

  해가 질 때쯤 공장으로 돌아왔다. 자루 안은 밤송이와 솔방울, 마른 장작으로 가득했다. 삼촌은 공장 앞 공터에 장작을 쌓아 불을 지폈다. 금세 연기가 피어오르더니 개들이 모여들었다. 삼촌은 불길 안에 밤 여러 개를 던졌다. 개들이 주변에서 삼촌과 나를 보고 있었다. 불을 쬐던 개들이 자리에 드러눕고는 앞발에 턱을 괴고 눈을 감았다. 몇몇은 꼬리를 흔들며 같은 자리를 계속 맴돌았다. 밤 타는 냄새가 사방에 가득했다. 잠시 후 나뭇가지로 삼촌이 밤을 꺼냈다. 새카맣게 탄 껍질을 까 개들을 향해 밤을 던졌다. 제자리를 돌던 개들이 쭈뼛거리며 다가오더니 바닥에 떨어진 밤 냄새를 맡았다.

  메. 이리 와. 

  그런다고 오지 않는다. 

  메! 

  나는 흰 개를 향해 밤 하나를 던졌다. 메는 밤을 보고 뒷걸음질 쳤다가 잠시 후 다가와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았다. 그러더니 김이 나는 밤을 한꺼번에 삼키고 입맛을 다셨다. 붉고 긴 혀를 내민 채 나와 삼촌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다시 저만치 걸어갔다. 

  얘넨 뭘 먹어요? 

  다 먹는다. 

  어떤 거? 

  다. 

  나는 문득 삼촌의 손가락 끝에 걸린 골무를 바라봤다. 삼촌의 손가락이 절단됐단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한창 이삿짐을 싸고 있었다. 칠 년간 살던 아파트에서 드디어 탈출한다고, 그래봤자 이모네 동네의 다세대 주택 이층이었지만 엄마는 한껏 들뜬 표정이었다. 여름에 창문 열고 잘 수 있겠다. 말없이 참고서가 든 박스를 옮기는 나에게 엄마가 말했다. 아파트 베란다에는 방범창이 없어 밖에서 누군가 마음만 먹으면 창을 열거나 망가뜨릴 수 있었다. 옆 동에 도둑이 들었다든가 한낮에 강도가 들었다든가 하는 소문을 들은 이후 엄마는 베란다 창문을 열지 못하게 했다. 아파트에 사는 동안 우리 집에 도둑이 든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나는 언젠가부터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소리에 귀를 기울이지도, 삼촌에게 보낼 편지를 생각하지도 않게 되었다. 아니 어쩌면 아주 오래전부터, 사람들을 구경했던 일 따윈 없었던 것처럼 모든 게 아득해졌다. 

  아무거나 잘 먹으면 좋죠. 

  얘넨 사료 먹는다. 

  삼촌은 그렇게 말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공장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어른 몸통만 한 사료 더미를 들고 나왔다. 

  밥 먹어라. 

  삼촌은 봉지 안에 든 대접으로 사료를 푼 뒤 공터 곳곳에 놓인 그릇에 나눠 담았다. 개들이 꼬리를 흔들며 삼촌에게 다가왔다. 삼촌이 그릇에 든 사료를 휘익 허공에 한 사발 뿌렸다. 개들이 자리에서 멈추고는 삼촌이 던진 사료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너 있어서 안 먹는가 보다. 

  왜요? 

  모르는 사람 앞에선 안 먹어. 

  개들 주제에 꼭 사람 같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저도 모르는 사람 앞에서 밥 안 먹어요. 

  그러냐. 

  당연하죠. 나는 속으로 대답했다. 

  먹다 남은 밤을 도로 자루에 담았다. 해가 저물어 사위가 깜깜했다. 삼촌이 공장 안으로 들어가더니 잠시 후 사방이 환해졌다. 건물에 연결된 간이 조명이 마당 곳곳에 걸려 있었다. 불이 들어온 조명기에 날파리들이 몰려들어 그림자가 졌다. 개 한 마리가 조명 앞에서 서성거리다 잠시 후 모습을 감췄다. 나는 그게 정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건 뭐예요? 

  나는 공장 지붕 한가운데 튀어나온 얇은 철근을 손으로 가리켰다. 검은 천을 젖히자 안쪽에 놓인 컨베이어 벨트가 보였다. 벨트 너머 공장 가운데를 수직으로 가로지르는 둥그런 은색 기둥이 있었다. 기둥 중간에 널찍한 판자가 가로로 설치돼 있어 얼핏 복층 오피스텔의 내부 같기도 했다. 공장 안쪽은 한창 작업 중인 공사장의 일부처럼 보였다. 삼촌이 저기서 잠만 자는지 무엇을 하는지는 다 알지 못했지만 적어도 주거용으로 만든 공간이 아니라는 건 분명했다.

  아시바. 

  아시바? 

  나는 그 말을 따라 했다. 

  우리말로 하면 족장이라고 한다. 

  족장이요. 

  그래, 발 족, 마당 장. 진즉 치울 거였는데, 그냥 뒀다. 

  저게 왜 저기 있어요? 

  너 질문을 되게 잘하는구나. 

  궁금해서요. 

  삼촌이 조끼 앞섶에서 담배를 꺼냈다. 담배와 함께 작은 부품 몇 개가 땅으로 굴러 떨어졌다. 나는 바닥에서 조약돌처럼 빛나는 못과 나사들을 주웠다. 그중에는 처음 보는 모양의 볼트와 너트도 있었다. 

  이건 보루토와 낫토라는 거다. 

  삼촌은 볼트를 너트에 끼우며 말했다. 아니 너트를 볼트에 붙여 돌렸다. 잠시간 볼트를 만지작거리더니 이내 담배를 한 모금 빨았다. 홀쭉해진 양 볼이 마치 움푹 팬 구덩이 같았다. 금세 우물 같은 그림자가 삼촌의 늙수그레한 얼굴 위에 끼얹어졌다. 

  얼핏 보면 보석인지 부품인지 모르겠네요. 

  고레와 보루또토 나또 데쓰. 

  네? 

  아나타와 간코쿠진 데스카. 

  뭐래요. 

  삼촌이 혼자 껄껄 웃었다. 못 알아듣는 게 그렇게 웃긴가. 생각해보니 삼촌이 웃는 모습을 본 건 처음이었다. 보루또와 나또. 삼촌은 일본말을 할 때만 된소리를 냈다. 된장, 고추장 이런 말을 할 때는 안 하면서 나또, 보루또, 카세또, 레포또 라고 할 때면 발음이 달라졌다. 공장 지붕을 뚫고 튀어나온 아시바처럼 호주머니에서 떨어진 볼트처럼 툭 튀어나와 어딘가 모르는 곳으로 굴러다니는 삼촌의 혀, 그 밤송이 같은 발음을 나는 잠자코 듣기만 했다. 옆으로 긴 작은 눈을 아치처럼 부드럽게 휜 모습이 꼭 엄마를 닮아 있었다. 엄마랑 똑같아. 나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아파트 베란다에는 한동안 삼촌이 보낸 어린이용 전자 피아노가 놓여 있었다. 야마하에서 만든 보급용 전자 피아노의 건반은 48개였다. 집에는 피아노를 배운 적도, 칠 줄 아는 사람도 없었다. 어느 날 나는 하릴없이 베란다 밖을 바라보다가 문득 자리를 차지하고 먼지를 뒤집어쓴 피아노의 전원을 켰다. 빨간 불이 들어오자 흰 건반 하나를 눌렀다. 딩, 하고 건반에서 소리가 났다. 음량 버튼을 중간으로 내리고 다시 건반을 눌렀다. 그것이 내가 악기를 만진 최초의 순간이었다. 플라스틱 건반은 속이 비어 강약 조절이 거의 불가능했지만 음을 듣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피아노 본체에는 수십 가지의 악기 소리가 저장되어 있었다. 나는 악기 소리를 켜고 하나하나 눌렀다. 신시사이저, 마림바, 호른, 티파니라는 이름의 악기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도 그때였다. 삼촌은 이걸 다 알고 나한테 보낸 건가? 주변에 피아노라고는 텔레비전과 학교 수업시간에 본 게 전부였다. 나에게 악기는 고장 난 풍금, 문방구에서 파는 리코더, 단소, 캐스터네츠, 트라이앵글 외에는 존재하지 않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본 적도 만진 적도 없는 악기들의 소리가 눈앞에 펼쳐지자 새삼스러운 사실에 나는 조금 충격을 받았다. 

  예쁘구나, 소리가. 

  그랜드피아노와 클라리넷과 심벌즈는 조금도 같은 소리를 내지 않았고 당연하게도 저마다 다른 종류의 신기하고 아름다운 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나는 검지로 도에서 도까지 여덟 개의 건반을 하나하나 눌렀다. 그것은 연주나 연습이 아니라 새로운 물건의 포장을 뜯을 때의 설렘과 비슷했다. 도, 레, 미, 파, 솔, 라, 시, 도. 내가 누른 건반의 계이름을 나는 몰랐다. 음과 음 사이의 거리는 너무 멀고 아득해 ‘도’를 친 이후 무엇을 눌러야 할지 조금도 알 수 없었다. 머리로만 알고 있던 계이름이 눈앞에 펼쳐지자 귓속의 세포들이 소란스럽게 떠들어댔다. 뭐야, 이게 무슨 소리야, 왜 이런 소리가 들리지? 더 이상 베란다 밖의 차소리도, 사람들의 말소리와 발걸음, 취한 사람의 주정과 아이들의 울음, 욕, 침 뱉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피아노를 칠 줄 몰랐다. 건반 위에 자연스럽게 자리 잡은 양손은 처음 만난 학교 선생님처럼 낯설고 단정했다. 나는 무언가에 이끌리듯, 혹은 홀린 듯 건반을 두드렸다. 연필을 잡고 밥을 먹고 씻고 울고 청소하고 그저 존재하던 손이 처음으로 생산적인 일을 하고 있었다. 손가락과 건반의 첫인사는 오랜 시간 동안 격렬하게 이루어졌다. 나는 그것들이 만들어내는 소음에 처음으로 흥분을 느꼈다. 규칙 없는 음악이 손끝에서 뽑아져 나오고 있었다. 그때 창밖에서 누군가 시끄럽다고 소리를 질렀다. 누구야. 어디야. 또 다른 누군가 탕탕 현관문을 두드렸다. 탁탁탁탁탁. 인조 피아노의 달콤한 음색 아래 플라스틱 건반이 눌리는 소리가 났다. 더럽게 못 치네. 누군가 그렇게 말했다. 나와는 아무 상관 없는 일이었다. 무게라고는 잘린 손톱만큼도 느껴지지 않는 가공된 플라스틱 건반들이 일제히 안녕, 안녕 하고 나에게 말을 걸어댔다. 그건 어쩌면 나에게 일어난 최초의 아름다운 일이었다. 

  전자 피아노는 이사 이후 감쪽같이 사라졌다. 나는 엄마가 팔아버렸을 거라고, 지금은 반의 반의 반값도 안 되는 가격일 테지만 그 당시에는 아마 짭짤했을 거라고, 그래서 고기도 사고 공과금도 내고 계란도 우유도 쌀도 이사비용도 삼촌에게 보내는 편지지도 샀을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때 피아노 기억나세요? 

  뭘 말이냐. 

  야마하요. 

  아, 그거. 

  삼촌은 필터 끝까지 담배가 타들어가는 것도 잊은 채 볼트를 손에 쥐고 우두커니 서 있었다. 나는 삼촌 손에 들린 볼트를 바라봤다. 

  너네 집이랑 너네 이모 집이랑 한 대씩 보냈었지. 

  왜요? 

  불씨가 꺼지고 남은 재가 바람을 타고 공터 바닥에 흩날리기 시작했다. 매캐한 연기가 코를 타고 몸속에 들어왔다. 돌연 매운 공기가 코끝을 움켜잡았다. 

  왜 피아노를 보내신 거예요? 

  삼촌이 담배를 입에 물고 공장 안쪽을 바라봤다. 나는 고집스럽게 닫힌 삼촌의 얼굴을 바라봤다. 빛에 반사돼 번쩍거리는 아시바가 꼿꼿하게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때 손가락으로 공장 안쪽을 가리키며 삼촌이 말했다. 

  꼭 나 같지 않니. 

  뭐가요. 

  저거 말이다. 

  삼촌의 녹청색 골무에는 좁쌀만 한 구멍이 나 있었다. 텅 빈 안쪽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불 꺼진 방 안의 컴컴한 공기가 그 작은 공간 안에 모두 들어가 있는 것만 같았다. 나사처럼 튀어나온 손가락 마디마디가 마치 삼촌이 만드는 볼트들 같아서 나는 오래도록 눈을 뗄 수 없었다.

  저 갈게요. 

  정이는? 

  다음에 데리러 올게요. 

  그러냐. 

  삼촌은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잠깐만 있어봐라. 

  그러더니 공장으로 들어가 한참 동안 나오지 않았다. 잠시 후 삼촌이 둥그렇게 뭉쳐진 지폐 뭉치를 건넸다. 뭉치는 야구공보다 크고 배구공보다 작았다. 

  아, 왜요. 

  가져가라. 

  지폐들은 구겨지고 한데 뭉친 것만 빼면 사용감 없이 깨끗했다. 천 원, 오천 원, 만 원, 오만 원이 반죽처럼 뒤섞여 마치 가축 사료 같았다. 나는 됐다고 말하며 삼촌의 손을 밀었지만 아시바처럼 가늘고 단단한 팔이 내 품에 돈뭉치를 밀어 넣었다. 

  가져가. 

  나는 팔 안쪽에 엉성하게 꽂힌 지폐 뭉치를 만지작거리며 민망한 표정으로 삼촌을 바라봤다. 삼촌은 밤송이가 든 자루의 끝을 묶어 손에 쥐여줬다. 

  밤이 좋아. 실해. 

  멀리 안 간다. 자루를 쥐고 멍하니 바라보자 삼촌은 곧장 공장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검은 천을 내리고 얼마 후 안에서 미닫이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다. 문은 보이지 않았지만 몇 겹이고 건물 안에 있어서 닫고, 또 닫히는 듯했다. 타닥타닥 소리를 내는 장작이 꺼져가며 매운 연기를 내뿜었다. 불길 너머 흰 털을 가진 메가 귀를 세우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왔던 길을 도로 걸어 빠져나갈 때는 공장 마당에 설치된 조명 덕을 봤다. 고요한 정적을 깨는 산비둘기의 울음에도 무섭거나 낯선 기분은 들지 않았다. 개들이 컹컹 하고 짖다가 다시 조용해졌다가, 그러더니 나중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게 되었다. 고개를 돌려 공장 쪽을 돌아봤을 때, 크고 무성한 흰 털을 가진 개가 나를 향해 다가오는 게 보였다. 나는 그게 메인 줄 알고 메, 하고 불렀다. 개는 자리에서 멈추더니 고개를 기울이고 나를 바라봤다. 

  정이다. 

  정이야. 

  나는 몇 번이고 정이를 불렀다. 그러나 정이는 자리에 멈춰 서서 고개를 갸웃거리기만 했다. 갸웃갸웃. 내 손에서 잠들었을 때도, 처음 할머니네 집 앞에 버려져 낡은 담요 위에서 깨어났을 때도 정이는 오뚝이처럼 고개를 양쪽으로 흔들어댔다. 정이야. 이리 와. 나는 몇 번 정이를 불렀지만 둥그런 입을 가지런히 벌려 헐떡거리더니 금세 숲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게 메인지 정이인지, 사실 흙과 먼지를 뒤집어쓴 흰 털의 개였는지 나는 정확히 알 수 없는 기분인 채, 손에 든 자루를 질질 끌며 차를 세워둔 곳을 향해 걸어갔다. 

  가는 길에 아시바를 봤다. 

  빈속에 밤을 너무 먹었는지 배가 아팠다. 나는 휴게소가 나오길 기다리며 최대한으로 속도를 올렸다. 밤길이라 도로는 한산했다. 뒤편에서 화물트럭이 다가와 추월하는가 싶더니 잠시 후 백미러 너머로 사라졌다. 나는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무언가 뱃속에 구멍이 난 기분이었다.

  멀리 휴게소의 불빛이 달처럼 떠오르는 게 보였다. 차를 세우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아무도 없는 화장실에서 나는 밤과 먼지와 차가운 숲속의 공기를 한꺼번에 변기에 쏟아냈다. 무언가 찰랑, 하고 물속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나는 그것이 볼트인가, 하고 생각하다가 볼트구나, 하기로 했다. 뱃속이 가벼워졌다. 

  화장실 밖으로 길게 매점이 이어져 있었다. 나는 매점의 끝까지 걸어갔다. 오징어, 감자, 소시지, 핫도그, 핫바, 떡볶이, 순대가 이어지는 복도를 따라 걷다가 반대편으로 돌아 감자구이를 선택했다. 마가린에 겉면이 익은 감자 여덟 알이 일회용 종이그릇에 담겨 나왔다. 감자들은 제각각 둥그렇고 울퉁불퉁하고 깎이고 잘려 먹기 좋은 크기로 부서져 있었다. 나는 그릇을 손에 쥐고 소금과 설탕을 뿌렸다. 한쪽 면이 갈색으로 탄 희끄무레한 감자에서 견딜 수 없는 고소한 냄새가 났다. 어딘가에서 희미한 노래가 들렸다. 근처 가판대의 홍보 테이프거나 주차된 고속버스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였을 것이다. 소리는 한적한 휴게소에 울려 퍼지더니 잠시 후 점점 커다래졌다. 인적 없는 밤의 휴게소에 노래는 썩 잘 어울리는 배경음악이었다. 웅얼거리는 음색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혹은 노래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나는 가만히 서서 음악 소리에 귀를 집중했다. 아주 잔잔한 파도 소리 같은, 혹은 아기의 옹알이 같은 중얼거림이 천천히 나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감자 한 알을 입에 넣었다. 주차장 너머 공터에서 새 건물을 짓는 공사를 하고 있었다. 잠시 후 음악이 끝나자 물속 같은 고요가 주변을 감쌌다. 공사장 근처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건물을 가린 가림막 너머 뼈대와 철근, 아시바들이 보였다. 저게 아시바구나. 무언가 톡 하고 뜨거운 것이 입안에 넘쳐 흘렀다. 채 녹지 않은 마가린 조각이 감자 사이에 끼워져 있었다. 나는 입안의 감자 조각에 혀를 대고 천천히 굴렸다. 뜨겁고 부드러운 감자가 침과 섞여 뭉개지자 희미한 소리의 흔적은 저만치 달아났다. 나는 감자가 사라질 때까지 오래도록 입에 물고 있었다.

  저거, 그거구나. 나는 문득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 하나를 떠올리고는 실눈을 뜨고 오래도록 들여다봤다. 

  침대 밖으로 빠져나온 거인의 발. 누군가 잘라버렸다는 그 발.

  공사장 밖으로 삐져나온 아시바가 하늘 높이 솟아오를 듯 희미하게 빛을 내고 있었다.

  꼭 발 같다. 

  나는 감자를 마저 먹었다.




  <당선소감>


   스쳐간 죽음과 사람들…손잡아주겠다


  차가운 공기가 창틀의 미세한 틈을 비집고 방으로 들어왔다. 공기는 금세 온 집안을 돌아다녔다. 찬 공기는 곧 집의 일부가 됐다. 새하얀 적막으로 가득한 방에서 입김은 금방이라도 얼어붙을 듯 희미했다. 언젠가 지냈던, 보일러가 고장 난 방은 이따금 허공에 떠올라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가벼웠다. 그때에도 나는 이런 비슷한 글을 쓰고 있었다. 다음날이면 파쇄될 초고들의 방에서. 오늘의 소감은 나의 마지막 초고다. 

  지금 울지 않으면 나중에 더 크게 울게 될 거라던 당신의 말을 기억한다. 도무지 그날의 기억이 잊히지 않아 종종 꿈을 꿨다. 꿈에서 나는 죽었다가 살았다가 옛날 사람이었다가 내일 태어났다가 떠올랐다가 가라앉았다가 마침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됐다. 그 꿈의 제목을 나는 아직 모른다.

  쿵쿵, 밑바닥에서 무언가 위를 향해 뚫고 오는 소리. 쾅쾅, 위에서부터 나를 짓누르는 소리. 텅텅, 텅 빈 내부에서 밖을 향해 달려가는 소리. 온갖 소리가 나에게서 밖으로 밖에서 나에게로 움직였다. 나는 안전만을 바랐는데 그건 가장 멀리 있는 것 중 하나였다. 작은 그릇과 의자와 물과 쿠션이 놓인 밝고 환한 방. 나는 여전히 안전한 방 하나를 바란다. 

  나는 기다린다. 소리 소문 없이 집 안에 침입한 매서운 추위처럼 불운과 행운은 언제고 나를 스쳐갔다. 좋은 일도 나쁜 일도 모두 내 탓이 아닌 것처럼 여기고 있노라면 금세 계절이 두 번, 세 번 바뀌어갔다. 여기까지 왔다. 나는 이제 그런 생각뿐이다. 

  지금껏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다. 부모님과 친구들, 선생님들께 고개 숙여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나를 견뎌줘서 고맙습니다. 계속 지켜봐주세요. 그리고 언제나 건강하길, 행복이 그들과 함께하길 바라고 또 바란다. 기회를 준 경향신문과 정용준, 윤고은, 강유정 선생님, 최윤, 황종연 선생님께도 깊이 감사드린다. 

  나를 스쳐간 많은 죽음, 죽은 사람들, 죽음 앞에서 살아난 사람들의 손을 잡아주는 소설을 쓰고 싶다. 나를 도와준 잘 모르는 사람들의 속내를 나는 읽지 못한다. 다만 글자를 알아가는 것처럼 더듬더듬, 오독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마음으로 소설을 쓰겠다고, 오늘 받은 응원을 누군가에게 전할 수 있는, 그런 소설을 쓰겠다고 다짐하며 이 소감을 마친다. 



  ● 1986년 제주 출생. 서울 거주.

  ●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 한신대 문예창작과 졸업.


 

  <심사평>


  간소하고 재치 있는 인간 탐구 돋보여” 


  ‘브라유를 듣는 시간’은 청각장애를 앓고 있는 천문대 직원이 견학차 그곳을 방문한 맹학교 학생들에게 시각 이외의 수단으로 천체의 존재를 느끼게 해준다는 이야기. 점자 체계 발명자 브라유에 관한 서술을 비롯한 몇몇 대목에 재치가 발휘되어 있다. 하지만 사람의 선의에 대한 순진한 믿음에 기초한 이야기여서 재미가 적다. 명랑 동화 같은 느낌이다.

  ‘조류’는 가난과 소외에 시달리는 노동자의 자기의식의 표현으로서 열렬한 데가 있으나 소설로서 범용함을 면치 못했다. 소재는 친숙할지언정 서술은 진부하지 않게 하려는 의욕, 작중 인물들과 환경을 달리하는 독자들에게 공감을 얻기 위한 궁리가 충분치 않다. 작중 이야기를 구조화하는 모티프인 사람이 닭으로 변한다는 환상만 해도 그 의미가 너무 뻔하다. 

  ‘찰리’의 이야기에는 인터넷 사교 네트워크와 문화상품 소비에 자아 감각과 사회생활의 많은 부분을 의존하고 있는 젊은 세대의 감성이 살아 있다. 한 이십대 여성이 인스타그램을 통해 정보를 얻은 남자에게 매력을 느껴 접근했다가 그의 힙스터적 행위의 비밀을 엿본 이후 환상에서 깨어난다는 그 이야기는 청년문화현상을 반영하는 데서 나아가 세대와 계급 격차에 따른 모럴의 차이를 상기시킨다. 이야기의 세목들이 좀 더 정돈되었더라면, 그 세대, 계급 차이를 명확하게 하는 방향으로 압축되고 배치되었더라면 당선작으로 손색이 없었을 것이다.

  ‘볼트’는 단편으로서도 간소한 편이다. 작중 화자가 삼촌을 만나러 시골 야산 속에 있는 그의 공장을 찾아가 잠시 머물다 떠난다는 단순한 스토리 라인을 따라, 오랫동안 불법으로 일본에 체류한 노동자였고 화자의 가족에게 가장과 다를 바 없었던 삼촌의 인상을, 관찰과 추억을 섞어가며 스케치한다. 이야기의 중심에 볼트-아시바-남성의 연쇄를 중심으로 하는 은유적 질서가 형성되어 삼촌에 대한 화자의 동정과 경의가 감상적인 것으로만 보이지 않는다. 서술의 경제학이라는 면에서나 인간 탐구라는 면에서나 돋보인 작품이다. 당선을 축하한다.


 

심사위원 : 최윤, 황종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