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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먹을 잇다 / 송은유

 

  장마가 끝났다.

  어디선가 라디오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산사태가 일어난 마을에 집과 축사가 흙더미에 묻혔다고 했다. 해당지역의 소방본부 관계자들이 구호활동에 나섰다며 피해가 더 커지지 않고 빠른 시일 내에 정상화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선우는 고개를 돌리고 싱크대 쪽으로 발을 옮겼다. 라디오 소리가 등 뒤에서 멀어졌다. 발을 옮길 때마다 마룻바닥이 조이듯 끈적였다. 반쯤 열린 건넌방 문틈으로 아버지의 흰 등이 언뜻언뜻 보였다. 

  주방의 싱크대 앞에 서서 작은 창을 밀었다. 조그만 창 너머로 내다보이는 하늘이 눈이 시릴만큼 파랬다. 금방이라도 푸른 물이 뚝뚝 떨어질 것만 같았다. 선우가 전날 먹고 남은 찌개 냄비에 불을 댔다. 아버지가 욕실로 들어가 문을 닫았을 때 선우는 휴대폰을 찾았다. 날이 갰으니 그동안 계획했던 일들을 실행에 옮겨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신호음이 몇 번 울리지 않아 서 팀장이 전화를 받았다. 상급자인 그에게 휴가 사유를 말했다. 허물어진 담장과 팬 마당을 손봐야한다며 작은 목소리로 우물쭈물 둘러댔다. 서 팀장이 ‘알겠다’고 느린 목소리로 짧게 말했다. 선우는 자신도 모르게 휴대폰을 세게 움켜잡고 ‘고맙습니다’하고 꾸벅 고개를 숙였다. 그 사이 찌개 냄비는 김이 차올랐다. 투명한 뚜껑이 차츰 맹렬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식사를 마친 아버지가 일터로 떠났다.

  선우는 주방을 대강 정리하고 밖으로 나갔다. 마당은 군데군데 빗물에 젖어 있었다. 선우는 젖은 곳을 피해 창고 쪽으로 걸어갔다. 철제로 만들어진 창고 문이 열릴 듯 삐딱하게 닫혀있었다. 선우가 녹슨 손잡이를 잡아당기자 삐걱, 소리를 내며 헐겁게 열렸다. 컴컴했다. 눈을 여러 번 깜박거리고 나서야 내부가 보이기 시작했다. 선우는 대못에 걸려있는 면장갑을 걷어서 꼈다. 먼지가 날려 한바탕 재채기가 났다. 챙겨놓았던 짐 위로 침이 튀었다. 선우는 손등으로 입술을 닦고 그것들을 하나씩 끌어내 차 트렁크에 옮겨 실었다. 트렁크를 닫고 보니 타이어가 조금 주저앉았다. 주저 없이 차에 올랐다. 시동을 걸고 페달을 깊숙이 밟아 눌렀다. 발끝에 짐이 다 실린 듯 묵직한 느낌이 났다. 차는 힘에 겨운 듯 했지만 무리 없이 달렸다. 차안에 열기가 좀체 가시지 않았다. 에어컨을 최상으로 켰지만 뒷목에서 땀이 흘러내렸다. 

  시내를 벗어나니 댐을 두르고 있는 도로가 길게 이어졌다. 댐에는 황톳물이 넘실댔다. 비가 조금만 더 내렸다면 만수위가 될 상황이었다. 둑길은 물살에 휩쓸린 흔적이 뚜렷했다. 가로수와 가로수 사이에 난 관목과 잡초가 폐비닐이나 과자봉지와 섞여 한쪽 방향으로 꺾여있었다. 자주 오갔던 길은 장마에 몸살을 앓고 난 것처럼 초췌했다. 

  세 시간쯤 달렸을 때 눈에 익은 풍경이 펼쳐졌다. 왼쪽 도로 끝으로 나지막한 삼바골의 능선이 선명하게 눈에 박혔다. 선우는 산을 향해 난 긴 도로로 접어들었다. 빗물이 고인 웅덩이를 지날 때마다 차체가 흔들렸다. 선우는 발끝에 더 힘을 주고 핸들을 꽉 움켜잡았다. 들판에서 사람들이 일손을 멈추고 선우 쪽을 바라봤다. 선우는 손바닥에 난 땀을 바지에 쓱 닦았다. 얼마 가지 않아 차를 멈춰야했다. 물웅덩이 위로 나무가 쓰러져 길을 막고 있었다. 선우는 차에서 내렸다. 나뭇가지를 들다말고 흡, 비명을 질렀다. 빗물을 먹고 검게 변한 나뭇가지 아래 뱀 두 마리가 엉겨서 꿈틀댔다. 선우의 손에서 나뭇가지가 떨어졌다.

  때마침 논두렁길을 따라 노인이 걸어오고 있었다. 푹 눌러쓴 모자 때문에 그을린 콧잔등만 보였다. 노인이 다가와 삽으로 땅을 찍었다. 컥, 소리와 동시에 두 마리 뱀이 순식간에 수로로 빠져나갔다. ‘아이고 징글징글해 이놈의 독사, 라고 노인이 읊조리며 몸을 떨었다. 선우가 뒷머리를 쓸어 올리며 네, 하고 답했다. 노인이 쓰러진 나무를 끌어당겨 길 가장자리로 끌어냈다. 모자를 고쳐 쓰며 어서 가보라는 듯 손을 내저었다. 선우가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 다시 차에 올랐다. 차는 또다시 기우뚱거리며 나아갔다. 웅덩이를 지날 때마다 손에 진땀이 났다. 노인의 모습이 룸미러에서 멀어져 한 점이 되어갔다.

  작년 이맘때였다. 점심 식사 후 사무실 서랍을 정리하고 있을 때였다. 휴대폰 벨소리가 아련하게 울렸다. 선우는 서류더미 속에서 휴대폰을 찾아 통화 버튼을 급히 눌렀다. 

  “나 찾지 마라.” 

  엄마가 뜬금없는 말을 했다. 당분간 아는 절에 들어가 좀 쉬고 싶다, 고 말했다. 선우가 왜, 라고 묻자 엄마는 참았던 기침을 쿨럭였다. 무조건 엄마를 말려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부아가 치밀었다. 하지만 왜 그러냐는 말 밖에 다른 말은 입 밖으로 튀어나오지 않았다. 

  “왜요?” 

  엄마는 말을 잘근잘근 씹듯이 뱉어냈다. 

  “잘 살아라. 살아보면 알거다.”

  “그니까. 왜 그러냐고.”

  “살아보면 안다니까 왜 그러긴.”

  전화가 짤깍, 끊겼다.

  아버지는 술에 취해 돌아온 날이면 어김없이 울었다. 한 번 시작된 울음은 쉽게 멈추지 않았다. 애끓는 목소리로 ‘어머니, 아버지’를 불렀다. 초저녁잠에서 깬 엄마는 길게 하품을 하곤 했다. 아이고, 지겨워. 잠이 덜 깬 목소리로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버지는 눈을 감은 채 주먹으로 방바닥을 쳤다. 울음소리와 방바닥을 때리는 동작이 박자가 맞았다. 선우는 이로 혀를 눌러 웃음을 참았다. 엄마가 아버지의 더러운 작업복을 거칠게 벗겼다. 아버지의 안경이 옷에 쓸려 벗겨졌다. 아버지가 울음을 그치고 자신의 몸을 마구 더듬었다. 아버지는 엄마에게 아무것도 손대지 마. 아무것도 만지지 마, 라고 빽 소리쳤다. 엄마가 ‘아이고 내 팔자야’ 하며 손에 든 옷을 마룻바닥으로 내동댕이쳤다. 옷이 바닥에 떨어지며 안경이 튕겨 나왔다. 아버지는 안경이 떨어지는 소리를 듣자마자 비틀대며 걸어갔다. 안경을 집어쓰더니 옷을 움켜쥐고 다시 울기 시작했다. 옷에서 먼지가 피어올랐다. 엄마는 지겨워서 못살겠네, 하며 다가가 내놔요 좀, 하며 옷을 끌어당겼다. 아버지가 옷을 더욱 세게 움켜쥐는 바람에 엄마와 아버지가 줄다리기를 하는 것 같았다. 옷은 두 사람의 손동작에 따라 나풀댔다. 엄마는 성을 내며 옷을 말아 쥐고 휙, 낚아챘다. 엄마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옷을 놓았다. 손목을 감싸며 고통스런 얼굴로 선우를 쳐다봤다. 선우는 고개를 돌리고 마당으로 나가버렸다. 아버지는 오랫동안 울었다. 선우는 마당에 앉아 울음이 그치기를 기다렸다. 아버지의 울음은 자정이 되면서 잦아들었다. 숯불이 재로 변해가듯 서서히 사그라졌다. 

  그믐달이 서편에서 가녀린 빛을 냈다. 문을 열면 아버지의 울음소리가 발칵 쏟아질 것 같아 조용해진 뒤에도 한참을 앉아 있었다. 몸에 한기가 돌아 팔다리는 굳은 듯 뻣뻣했다. 선우는 다리를 주먹으로 두드리며 허공을 향해 하악, 하고 숨을 뱉었다. 그러곤 벌떡 일어났다. 발이 저렸다. 선우는 절룩이며 걸어갔다. 살그머니 현관문을 열었다. 아버지의 코고는 소리를 가르고 마루에 올랐다. 굳었던 몸이 순식간에 훈훈해졌다. 선우는 방에 들어가 쓰러질듯 누웠다. 엄마의 앓는 소리가 들렸다. 선우는 감기는 눈꺼풀을 내버려두었다. 잠이 드는 순간까지 아버지의 울음소리가 귓전에서 떠나지 않았다. 언제까지라도 그칠 것 같지 않은 아버지의 울음소리가. 

  엄마의 목소리는 일관성 있게 차가웠다. 아버지에 대한 기대나 미련 같은 건 없는 듯했다. 엄마의 전화는 짧게 끝났다. 엄마가 떠난 후에도 아버지의 고향 방문은 계속됐다. 아버지는 쑥과 칡넝쿨을 끔찍하게 싫어했다. 무서운 것들이다. 번식력이 좋고 여간해서는 안 죽는 것들이다. 한 번 뻗기 시작하면 골치 아프다. 그러니 바로바로 없애야한다. 땅 속으로 파고들지 못하게 파버려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묘에 뚫린 구멍은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야무지게 막아야한다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묘에 난 잡풀 한 포기에도 진저리를 쳤다. 그렇게 철저하게 관리를 했기에 묘소는 정갈했다. 아버지가 어느 가을 날 묘소 앞 좌우 끝으로 애기단풍나무를 심었다. 그 후론 더 일찍 집을 나섰고 더 늦게 귀가했다. 가뭄이 들 때엔 수통에 물을 받아가기도 했다. 나무는 잘 자랐다. 하지만, 수심이 가득한 아버지의 얼굴은 변함없었다. 날이 갈수록 아버지의 손과 안경은 긁힌 자국만 늘었다. 아버지는 엄마를 잊은 것 같았다. 엄마에게서도 연락 같은 건 없었다. 선우가 몇 번 전화를 해보았지만 그때마다 다른 사람이 받았다.

  장마가 멈추기 전까지 아버지는 매일 먹을 갈았다. 먹을 갈다가 어두워지면 그대로 고꾸라져 잠들곤 했다. 웅크린 아버지의 몸은 작았다. 입을 벌린 채 사나운 꿈을 꾸는 것인지 이따금씩 몸을 움찔거렸다. 손은 나뭇가지처럼 뻣뻣해 보였고 베인 자국과 먹물로 지저분했다. 선우가 아버지의 팔과 어깨에 손을 대고 살며시 밀었다. 순간, 아버지가 벌떡 일어났다. 선우는 너무 놀라 아버지, 꿈 꿨어요? 저예요, 저. 했다. 이버지는 선우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실눈을 뜨고 허공 어딘가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형광등 불빛을 받아 눈에서 기이한 빛이 났다. 아버지가 자신의 몸을 더듬거려 안경이 찾아 쓰고 저리가, 하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러곤 다시 몸을 웅크리고 누워 가볍게 코를 골았다. 사실 그때 진짜 놀란 건 나보다 아버지였던 것 같다. 선우의 가슴에 굵은 빗물이 훑고 지나는 느낌이었다. 

  초여름 장마는 빗줄기를 시시각각 달리했다. 굵게 퍼부었다가 가늘어졌다 흩날렸다가 추적추적 내리기도 했다. 집안은 묵향이 진동했다. 날이 갈수록 향기는 두터워지고 단단해지고 있었다. 장마가 과일의 당분과 땅의 오물을 지우고 비바람이 곡식을 흔들 때 선우의 몸은 어떤 알 수 없는 기운에 이끌렸다. 

  “벌써 먹이 다 됐구나. 비 개면 필방에 좀 가야겠다. 이것 좀 보렴.”

  잠들기 전, 아버지가 무심하게 말했다.

  “아버지, 글씨는 안 쓰시고 왜 그렇게 먹만 가세요?”

  선우가 마른침을 삼키며 노끈을 잡았다. 

  “엄마가 산으로 왜 가셨겠어요?”

  가위로 노끈을 자르려다 말고 재차 물었다. 

  “그딴 소리 집어치워.”

  선우의 손에 들린 가위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아버지가 이맛살을 찌푸리며 헛기침을 했다. 이내 양껏 숨을 들이마시는가 싶더니 발작적으로 기침을 해댔다. 얼굴이 붉어지고 목에 핏대가 불거졌다. 때마침 창이 덜거덕거리고 마당에서 텅 소리가 났다. 선우는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었다. 엄마가 떠올랐다가 지워졌다. 아버지가 기침에서 벗어나 어깨를 들썩이며 숨을 몰아쉬었다. 

  비는 계속 내렸다. 비가 그치면 다시 빈집이 될 것이다. 하지만 비가 내릴수록 지구의 구심력에 의해 집은 땅바닥에 더욱 밀착되는 것 같았다. 아랑곳하지 않고 아버지는 먹을 갈았고 먹물은 걸쭉하게 변해갔다. 글씨는 쓰지 않았다. 먹이 작아지면 필묵함에 넣었다. 글씨라곤 지방을 쓸 때라야 겨우 쓰는 정도였다. 이번 제사는 아버지와 단둘이 지내게 되었다. 선우는 아침부터 질척거리는 재래시장에 가야했고 소형 마트도 들렀다. 아버지와 함께 밤을 깎고 나물을 만들고 전을 부쳤다. 동태포에 물기를 뺀 다음 밀가루를 입히고 계란 물에 적셔 팬에 올렸다. 그러는 동안 손가락은 밀가루 반죽으로 범벅이 되었다. 선우의 얼굴은 점점 홍당무처럼 변해갔다. 빨리 그 일을 해치우고 싶었다. 뜨거운 팬에서 기름이 타 푸른 연기가 피어올랐다. 계란 물에 적신 동태를 달궈진 팬에 올릴 때마다 손등으로 기름이 튀었다. 정신이 번쩍 들만큼 따가운 느낌이 짜증과 불쾌감을 불러 일으켰다. 눈이 맵고 목은 따끔거렸다. 과열된 팬에서 동태전 몇 개가 결국 타버렸다. 선우는 손등으로 눈물을 자꾸 닦아내야 했다. 부엌에 달린 다용도실에서 교자상을 꺼내오던 아버지가 몇 번의 마른기침을 했다. 

  “아버지, 할머니가 감을 좋아했다니까. 감하고 밥, 국만 올립시다. 엄마도 없는데, 몸살이 날 것 같고……. 이게 다 무슨 의미가 있어요.” 

  “헛소리 하지 마. 무슨 벙어리 발등 앓는 소리야.” 

  “죽으면 끝이에요. 아무것도 없다구요.”

  “뭐라는 거냐? 나 죽으면 젯밥도 못 얻어먹겠구나.”

  “아버지, 그게 아니고 죽은 다음은 없다고요.”

  아버지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마루 끝에 한참을 앉았다 일어나 상을 끌어냈다. 지방을 써서 올리고 상에 놓인 음식들의 자리를 바꾸어 놓았다. 향을 피울 때 부엌 창이 덜컹거렸다. 촛불이 너울거리며 그을음을 피워냈다. 선우는 아버지를 따라 절을 했다. 합문 시에 아버지가 방안의 형광등을 껐다. 그러곤 필묵함 옆에 앉아 눈을 감았다. 안경이 흘러내려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괴로운 표정으로 굳어진 주름살이 더 깊어졌다. 아버지의 얼굴에 불안하고 괴로운 빛이 스치곤 했다. 모래가 치듯 비가 부엌 창을 때렸다. 아버지가 지방을 떼어 촛불에 태웠다. 제사상을 접어올린 다음, 필묵함을 열었다. 상자 안에 들어있는 작아진 먹들을 꺼내어 안방으로 들어갔다.

  장마가 시작된 첫날이었다. 아버지는 아침 일찍부터 안경을 닦아 쓰고 마루 끝에 앉았다. 각진 턱 선이나 안경에서 고집이 느껴졌다. 검정 테두리가 아버지의 고집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듯했다. 선우는 가끔 아버지의 안경을 벗겨버리고 싶었다. 아버지가 달라질 수만 있다면 그렇게라도 하고 싶었다. 아버지는 가부좌를 하고서 필묵함을 열었다. 그러곤 정오가 될 때까지 먹을 갈았다. 점심밥은 남겼고 낮잠을 잤다. 잠에서 일어나 그 자리에서 또 먹을 갈았다. 묵향이 주방까지 가득 번졌다. 아버지가 선우를 불렀다. 선우는 마루로 나왔다. 아버지가 곁눈으로 선우를 보며 책 위에서 문진을 치웠다. 

  “이걸 좀 읽어봐라.”

  아버지가 한지로 엮은 책을 선우 앞으로 밀었다.

  “아버지, 회사에서 곧 구조조정을 할 모양이에요. 감사다 뭐다 해서 툭하면 야근하고 그걸 볼 새가 어디 있겠어요. 아버지는 엄마가 궁금하지도 않으세요? 엄마가 왜 나갔겠어요.”

  “뭐라는 것이냐?”

  “다른 묘만 할 게 아니라 조부모님 묘소부터 해야지요.”

  선우는 에이 씨, 속엣 말을 하고 입술을 깨물었다.

  “네 엄마는 내가 싫어서 나간 거다. 내가 산소에 간 것처럼 네 엄마도 뭔가를 찾아 나간거야. 허튼소리 관둬.”

  아버지가 가래를 끌어올려 삼켰다. 선우는 상체를 바로 세웠다. 눈꺼풀이 실룩거렸고 고개가 흔들렸다. 아버지가 인상을 쓰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변함없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선우는 진저리가 났다. 선우는 마당으로 내려섰다. 마당 구석진 곳에 죽은 화분을 괜히 비우고 싶었다. 화분을 거꾸로 들고 바닥에 떨어뜨렸다. 박살났다. 조곡토와 마사토가 마당에 흩어지고 사기 조각이 튀었다. 아버지는 기침이 도지는지 클클거리며 길고도 질긴 기침을 토했다. 선우의 손에서 벗어난 화분은 더 세게 바닥으로 떨어졌다. 길고 지루한 시간이 끝날 것 같지 않는 기분이었다. 마치 자신이 조각난 사기조각처럼 느껴졌고 흩뿌려진 흙처럼 쓸모없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바스러진 흙은 흙탕물이 되어서 하수구로 빠져 내려갔다. 비가 가늘게 내리다가 어느 순간 세차게 내렸고 잠시 멈추기도 했다. 

  한나절 비가 갠 날이었다. 서편 하늘로 커다란 빨대가 비행운처럼 선명한 띠를 그리며 땅에 꽂혀 있었다. 선우는 마루에 걸터앉아 햇볕에 발을 내밀었다. 좀 따가웠지만 기분이 괜찮았다. 선우는 발끝에서 나쁜 습기가 빠져 나간다고 생각했다. 햇빛이 의식까지 파고들어 삶에서 생겨난 습기?슬픔, 절망, 살기, 고독, 분노, 권태, 배신-를 몰아낸다는 자기 역설에 빠져들었다. 그것이 어쩌면 마음의 근육을 부드럽게 하고 삶에 틈이 되어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선우는 갈증이 났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그런 상태로 극한 상태까지 가는 걸 즐겼다. 갈증은 견딜만했다. 때로 죽음 직전의 공포 같은 게 닥쳤지만 현기증이 나면서 짜릿했다. 시야가 흐릿해지면 일어났다. 앞이 깜깜했고 몸이 꺾일 듯했다. 

  목이 말라 물을 마시고 돌아서는데 식탁 위에 주민세 납부고지서와 아버지의 소지품들이 눈에 들어왔다. 잠을 잘 때도 벗지 않았던 아버지의 안경도 있었다. 선우는 잠에 빠진 아버지를 돌아다보았다. 아버지가 웅크린 채 일정하게 숨을 내쉬었다. 

  안경은 보기보다 가벼웠다. 헐렁해서 곧 망가질 것만 같았다. 주홍색의 안경렌즈는 칡넝쿨이 뻗친 듯 긁힌 자국이 빼곡했다. 선우가 안경을 썼다. 안경이 콧잔등에 낮게 걸쳐졌다. 눈앞이 어지러웠다. 마룻바닥에 틈새나 벽에 뚫린 못 자국까지 선명하게 보였다. 선우는 기우뚱거리며 거울 앞으로 걸어갔다. 거울 속에는 아버지와 흡사한 사람이 자신을 보고 있었다. 선우는 건넌방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아버지의 등은 또렷했고 작고 왜소했다. 선우가 다시 기우뚱거리며 걸어가 살그머니 방문을 닫아주었다. 돌아서서 파란 하늘로 시선을 던졌을 때 어지러움이 말끔히 사라졌다. 아버지의 안경은 원래 자신의 것인 듯 편했다. 문 뒤로 아버지의 코고는 소리가 가늘게 들려왔다. 

  안경은 아버지가 식사를 할 때마다 하얗게 김이 서리다가 맑아지곤 했다. 선우는 아버지에게 안경이 낡았으니 새로 맞추자고 했다. 아버지는 잘 보이는데 뭐가 문제냐고 거절했다. 선우는 수저를 내려놓고 또 말했다. 아버지의 얼굴에 당혹스러움과 분노가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아버지가 밥을 한입 몰아넣고 우물거렸다. 선우는 아버지의 얼굴에 스친 분노가 어떤 것인지 짐작되지 않았다. 아버지는 평소답지 않게 급하게 밥을 떠 넣었다. 빠르게 식사를 했지만 다 먹지는 않았다. 선우는 한 번 더 말을 할까 했지만 그만두었다. 아버지의 단조로운 삶에 끼어들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장묘사로서의 일 외에 선산을 관리하거나 장마가 지면 먹을 가는 일이 전부였으니까. 

  아버지는 간혹 숙취 때문에 일을 나가지 못했다. 바람이 심하게 부는 어느 날이었다. 오후로 접어들 때 아버지가 필묵함을 열었다. 한지로 엮은 풀기 없는 책이 바람결에 파닥거렸다. 넘겨질듯 하다가 내려앉곤 하는 것을 문진으로 눌렀다. 오후 햇빛이 마루 중앙까지 들어왔지만 아버지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아버지의 재색 면 티셔츠가 진해지며 등에 착 달라붙었다. 아버지는 간간이 자세를 고쳐 앉았다. 말갛던 물이 탁해지고 묽은 죽처럼 변해갔다. 아버지가 선우를 돌아보며 중얼거렸다.

  “나 여덟 살에 네 할머니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 뒤로 산에서 살다시피 했다.”

  말을 멈추고 쿨럭, 기침을 한 번 뱉었다. 그러곤 오른 손을 허공에 털었다.

  “막막했다. 어찌 살아왔나 신기하다…, 신기해.”

  “….”

  아버지가 먹을 들어 밑면을 보고나서 다시 벼루에 놓았다. 먹을 쥔 손을 돌릴 때마다 묵 향이 물씬 풍겼다.

  “네 할아버지는 병석에 누워있을 때에도 글을 썼다. 나는 먹을 가는 일이 지겨웠다.”

  아버지는 먹물 묻은 손가락을 벽에 대고 쓱쓱 닦았는데 그게 꼭 풀잎 같더라고 했다. 아버지의 목소리는 잔잔했지만 조금 침울했다. 표정은 여전히 할 말이 많아 보였다. 아버지가 벼루에 물을 좀 더 따랐다. 아버지의 손에 먹물이 튀었다. 글씨는 쓰지 않았다. 뭔가 현실에서 몇 발자국 떨어진 느낌, 아버지는 그랬다. 스스로가 고아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거기에서 오는 빈 구멍들 속에 갇혀버린 것인지 몰랐다. 엄마가 떠나고 난 뒤에도 아버지는 여느 때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아버지가 아침밥을 먹다 말고 일어났다. 작업복과 세면도구를 챙기는 모습이 어쩐지 먼지 뭉치처럼 느껴졌다. 가방을 꾸리고 나서 마루 끝에 필묵함을 열었다가 닫았다. 해수기침을 하다가 멈췄다. 아버지가 숨을 거칠게 내뱉으며 모자를 썼다. 가볍게 걸어 밖으로 나갔다. 선우가 뒤를 따랐다. 아버지가 대문 앞에서 몸을 돌렸다. 주문이 많아 두 주일은 걸릴 거라고 말했다. 젊은 사람들이 주 고객이라고 했다. 장마 전에 끝내지 못한 일에 새로 주문해온 일이 있어 일감이 밀렸다는 것이다. 선우는 아버지가 이해되지 않았다. 묘지를 튼튼하게 하지 않으면 산짐승들이 파헤치고 구멍을 낸다고 했다. 그러니까 차라리 시멘트로 단단하게 덮어야 한다는 거였다. 물론 시멘트를 바른 다음에는 초록색 페인트를 칠하거나 인조잔디를 씌우는데 그것은 고객의 선택에 달렸다고 했다. 선우는 아버지의 그을린 얼굴을 찬찬히 바라봤다. 

  엄마가 떠난 뒤, 아버지의 해수 기침은 더 잦았다. 숨이 멎을 것 같은 기침 소리에 선우는 얼어붙는 것 같았다. 마음이 조마조마하고 겁이 났다. 아버지는 날이 갈수록 수척해져갔다. 자주 누웠으나 힘이 나면 고향에 갔고, 그러다 틈이 생기면 습관처럼 먹을 갈았다. 아버지는 그렇게 멀지도 가깝지도 않는 자리에 있었다.

  아버지가 차에 올랐을 때 선우가 말했다. 

  “우리 선산도 시멘트로 쳐버려요.”

  “무슨 정신 나간 소리냐.”

  아버지가 불같이 역정을 냈다.

  “앞으로 제가 알아서 할게요.”

  아버지가 쓸데없는 소리 말라며 차문을 쾅, 닫았다. 차는 짐칸 끄트머리까지 흔들렸다. 낡은 트럭이 달달거리며 골목 끝으로 멀어져갔다. 아버지의 차가 골목 어귀를 돌아 자취를 감추었다. 골목은 이상하리만치 넓고 조용했다. 선우는 몸을 돌렸다. 

  아버지의 시선은 늘 먼데 있었다. 엄마가 바짝 앞에서 말을 할 때도, 선우가 다가갈 때에도 아버지는 먼 산을 바라보았다. 아버지의 눈동자는 어딘가 모르게 텅 빈 것 같았고 무엇인가로 가득 차 있는 것도 같았다. 그런 아버지가 화를 내며 말하는 게 한 가지 있었다. 방바닥이 뜨겁다는 것이었다. 발이 델 것 같으니 보일러를 꺼라. 면서 집안에 보일러 계기판을 죄다 꺼버리곤 했다. 하는 수 없이 미지근하게나마 보일러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그럴 때에도 아버지는 옷 앞섶을 풀어 젖히며 얼굴이 빨개지도록 고함을 쳤다. 발이 델 것 같고, 숨이 막혀 못살겠다고 했다. 엄마는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여러 벌의 옷을 겹쳐 입었으나 한 겨울의 냉기를 물리칠 수 없었다. 엄마는 여름철을 제외하고 나머지 계절에는 늘 감기에 시달렸다. 엄마의 전화로 제각각이던 가족이 더욱 크게 조각나고 있음을 알았다. 선우는 자신이 부속물처럼 살고 있는 건 아닐까, 심한 부끄러움을 느꼈다. 

  선우는 계획한 대로 묘소 앞 가장자리에 텐트부터 쳤다. 애기단풍나무가 닿지 않도록 조심했다. 지지대를 텐트의 외피에 끼워서 땅에 박았다. 땅에 지지대를 박을 때마다 가슴이 요동쳤다. 해가 질 때쯤 텐트가 제법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선우의 얼굴에 만족스런 빛이 어리다 말았다. 그때서야 묘소 앞으로 가 절을 했다. 선우는 할아버지, 할머니, 할아버지, 할머니, 하고 계속 불렀다. 부르려고 해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자신도 모르게 저절로 할아버지, 할머니를 주문 외듯 불러댔다. 선우는 봉분 앞으로 벌러덩 누웠다. 보세요. 할아버지 손자입니다. 제가 어떤 일을 하더라도 용서해 주세요. 선우가 일어나 할아버지를 안았다. 일어나 할머니를 안았다. 할머니, 알았죠, 할머니. 알았죠. 선우가 손바닥으로 잔디를 쓸었다. 손이 씀벅대서 보니 손바닥에 피가 흐르고 있었다. 선우는 베인 자리를 셔츠 모서리로 꾹꾹 눌러 핏물을 닦았다. 선우는 그날 밤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서늘한 바람이 텐트 깃을 흔들었다. 선우는 긴장과 걱정이 뒤섞여 몸을 뒤척거렸다. 쏙독새와 지빠귀의 울음소리가 잦아들었고 얼마 후 그 소리는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눈을 떴을 땐, 희붐하게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바람 한 점 없는 날씨였다. 선우는 마음이 점점 조급해졌다. 일의 순서를 계산했다. 한낮을 피하려면 서둘러야 했다. 제일 먼저, 봉분에서 잔디를 걷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연장은 충분했다. 선우는 소변이 마려워 밖으로 나왔다. 단풍나무를 지나 숲으로 들어갔다. 수풀이 경계가 되는 지점에서 오줌을 눴다. 밤새 고였던 오줌이 풀잎을 적셨다. 선우가 고개를 들었다. 풀이 무성하게 자란 낮은 무덤이 눈에 띄었다. 난데없이 스삭 소리가 나며 봉분 위의 풀잎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띠풀 사이로 초록색 뱀 한 마리가 미끄러지듯 지나고 있었다. 뱀은 구멍 속으로 재빠르게 들어갔다. 소변이 움찔 멈추었다가 다시 쏟아졌다. 뱀은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었다. 몸이 부르르 떨렸다. 선우는 급히 뒤돌아섰다. 자루에서 연장을 꺼냈다. 그런 다음 시멘트와 모래를 붓고 삽으로 섞기 시작했다. 삽자루가 떨렸다. 선우는 여러 번 삽을 놓쳤다. 땀에 젖은 눈이 쓰렸고 셔츠는 젖어 몸에 엉겨 붙었다. 반죽이 적당하게 되었을 때 갈증이 났고 허기가 느껴졌다. 선우는 배낭에서 미지근한 물과 빵을 꺼냈다. 빵은 수분이 말라 부슬거려서 맛을 느낄 수 없었다. 선우는 그것들을 도로 배낭에 넣어버렸다. 정오가 되려면 아직 세 시간은 남아 있다. 인조잔디를 재단하기 위해 단풍나무 그늘로 잔디 묶음을 끌고 왔다. 장갑을 끼고 노끈을 풀 때였다. 언덕 아래서 남자의 고함소리가 났다. 

  노인이 손사래를 치며 다급히 걸어오다 넘어졌다. 노인은 이내 일어나 달리 듯 바삐 걸었다. 선우는 멈칫했다. 노인은 가까이 다가와서 숨을 고르느라 고통스러운 듯 눈을 희번덕였다. 선우를 향해 허공에서 팔을 휘둘렀다. 

  “지금 뭣 하는 것이여?”

  간신히 숨을 고른 노인의 첫 마디였다.

  “묘를 단단하게 하려고요.”

  선우는 거들떠보고 싶지 않았으나 마음과는 달리 공손하게 답했다.

  “그러고 보니 어제 길가에서 본 청년이구먼, 저걸로 어떻게 한다는 것이여?”

  노인의 말에서 역정이 묻어났다. 선우의 기억이 맞다면 노인의 이름은 수경이었다. 산모퉁이에 살며 아버지가 형님이라고 부르는 사람이다. 아버지가 일을 나서며 전화를 했던 모양이었다. 수경 노인이 선우를 올려다보았다.

  “우리 가족이 풍비박산 났어요.”

  “풍비박산이라니. 무슨 소릴 하는 것이야. 당장 그만 두게.”

  노인은 다짜고짜 선우의 말을 들으려하지 않았다. 노인은 연장을 주워 포대 자루에 쑤셔 넣었다. 선우는 노인의 손을 잡았다. 노인이 사납게 노려보았다. 

  “아이고. 자네, 이러면 안 되네.”

  노인은 표정을 바꾸고 울상을 지었다.

  “우리 집안일이에요. 참견마세요.”

  노인은 힘없이 손을 늘어뜨렸다. 

  “안 되네.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네.”

  노인의 목소리는 완강했다. 선우는 노인의 얼굴을 쏘아보았다. 한참을 보고 있자니 아버지와 닮았다. 이마선이나 눈매가 아버지와 흡사했다. 다른 게 있다면 노인은 안경을 쓰지 않았을 뿐이었다. 늘어진 노인의 턱에서 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무언가가 떨어졌다. 

  “아저씨가 모르는 게 있어요.”

  “자네도 모르는 것이 있네.”

  “일해야 돼요. 저리가세요.”

  선우는 노인의 허리를 밀었다. 

  “큰일이구먼. 자네 아버지가 알면 까무러칠 걸세.”

  “엄마까지 나갔는데 무슨 일이 더 있겠어요. 비키세요.”

  “….”

  노인은 허참, 허참 기가 차다는 듯 하늘을 바라봤다. 

  “연락을 하셔도 상관없어요.”

  노인이 여하튼 이건 안 돼. 쐐기를 박듯 말을 던지고 돌아섰다. 내려가다 말고 자꾸만 뒤를 돌아봤다. 노인이 주저하는 발걸음으로 질경이와 잡초를 헤치며 오솔길을 따라 내려갔다. 구부정한 어깨가 탈골된 것처럼 힘없어 보였다. 

  선우가 나무 그늘에 주저앉았다. 그림자가 조금씩 길게 늘어졌다. 선우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연장 자루를 쏟았다. 빠진 연장은 없는지 살피면서 삽을 들었다. 삽을 이용해 일을 해보진 않았지만 그다지 힘들 것 같지 않아보였다. 비온 뒤라서 땅이 촉촉하니까 더 손쉬울 거라고 생각하며 묘에 삽을 댔다. 삽날에 발을 올려 꾹 눌렀다. 삽날이 뭔가에 받혔다. 선우는 삽을 옆에 놓고 다시 발로 눌렀다. 마찬가지였다. 삽 끝은 조금도 들어가지 않았다. 

  선우가 삽을 뉘여 잔디를 밀었다. 삽날에 단단한 것이 느껴졌다. 삽으로 잔디 위를 찍어보았다. 이상했다. 삽은 번번이 튕기듯 했다. 믿을 수 없었다. 삽을 놓고 손으로 잔디를 젖혔다. 흙 속으로 잔디 뿌리가 엉켜 쉽지 않았다. 흙냄새가 물씬 풍겼다. 땀이 봉분위로 비가 오듯 떨어졌다. 다급한 선우의 손가락 끝으로 단단한 느낌이 전해왔다. 느낌은 날카로운 칼날처럼 의식 속으로 파고들었다. 

  선우는 벗어둔 안경을 찾아 썼다. 단단한 정체의 그것이 모습을 드러냈다. 삽을 들어 잔디를 깠다. 더 더 더. 잔디가 밀려난 자리는 온통 까맸다. 선우는 두 손으로 미친 듯이 흙을 쓸어냈다. 돌무덤, 검은 돌무덤이었다. 선우가 돌 하나를 흔들어 뺐다. 그건 너무나도 익숙한 몽당 먹이었다. 흙이 묻는 먹 위로 물기가 툭, 떨어졌다. 선우는 먹을 쥐고 엎드려 아버지 아버지, 하고 아버지를 불렀다. 해넘이 속에서 선우는 오래도록 아버지를 불렀다. 

  애기단풍나무의 그림자가 선우의 발끝에 닿았다. 먹은 잠시 햇빛을 받고 고고한 빛을 냈다. 선우는 쥐고 있던 먹을 제자리에 꽂았다. 마땅히 있어야 할 제 집을 찾은 듯 한 안정감, 그것은 어떤 완벽함이었다. 선우는 잔디를 덮고 손바닥에 힘을 주어 세심하게 눌러주었다. 온몸이 땀에 흠뻑 젖었다. 

  단풍나무가 어스름에 빠지자 몸이 조금씩 말라갔다. 선우는 배낭에서 여벌의 옷을 찾아 들고 산언덕을 내려갔다. 농수로에 가득 찬 물이 날쌔게 흘렀다. 선우는 들판을 가로지르는 농수로 가에 서서 몸을 닦았다. 묵은 때가 벗겨지고 몸이 가벼워지는 느낌이 들 때까지 오랫동안 씻었다. 그러곤 일찌감치 텐트 속으로 들어가 누웠다. 반딧불이가 날고 쏙쏙쏙쏙 쏙독새가 울고, 쓰이쓰이 지빠귀도 울어댔다. 노인이 머물다 간 애기단풍나무는 밤바람을 타는지 스삭스삭 소리를 냈다. 선우는 눈을 감고 그 소리를 담았다. 

  내가 모른다는 것이 무엇일까. 눈을 뜨자마자 수경 노인의 말이 생각났다. 방금 전에 들은 것처럼 생생하게 느껴졌다. 선우는 묘소를 한 바퀴 돌았다. 잔디가 고르게 자랐고 잡초 하나 없었다. 선우는 개어 놓았던 반죽을 마대 자루에 쓸어 담았다. 연장을 자루에 넣고 텐트로 걸음을 옮길 때 노인이 언덕을 올라왔다. 가까이 다가와 주변을 둘러보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더니 노인은 가슴께의 옷자락을 펄럭이며 단풍나무 아래 털썩 앉았다. 한 손으로 이마를 훔치더니 눈을 꾹 감았다가 떴다. 

  “자네도 알아야겠기에……, 오래된 일일세. 동지가 막 지나 눈이 많이 온 날이었네. 동상이 걸려 손등에서 피가 터지고 딱지가 또 벌어지고 한 지독한 겨울이었지.”

  노인의 시선은 먼데 가 있었다. 방에서도 얼음이 얼 만큼 추위가 말도 못했어. 자네 아버지는 몸이 약했네. 오죽했으면 자다 일어나 부엌으로 갔을까. 아궁이에 불을 지폈는데 쭈그리고 앉아서 조는데 그 사이에 불길이 번진 거지. 자네 아버지가 불이야, 소리를 치고 발을 동동 굴렀지만 동네는 잠들어 조용했지. 병환 중이던 자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불속에서 나오질 못했네. 노인이 잠시 침묵했다. 집은 잿더미만 남았는데 동네 사람들이 빈 상여를 내고 무덤을 만들었다고 했다. 아버지는 사철 무덤 옆에서 살다시피 했는데 그때가 되면 남의 집 아궁이에서 재를 긁어다가 묘지에 뿌렸다는 것이었다. 고향을 뜨고 얼마나 되었을까, 여기 오면 종일 뭘 하나했지. 노인은 말을 더 잇지 않았다. 선우는 머릿속이 아득해졌다. 

  아버지 안에 작은 아이는 그렇게 살았던 것이었나. 세상을 이겨나가기 위한 몸부림이었나. 얼어붙은 땅에 뿌리라는 운명의 촉수를 더 길게 뻗어 내리는 애기단풍나무처럼 아버지는 그토록 악착같았나. 선우는 흐릿해지는 시야를 바라보며 손등으로 눈시울을 문질렀다. 노인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잘 생각했네. 잘했어. 그러고는 일어나 허정허정 언덕을 내려갔다. 

  단풍나무 그림자가 선우 위로 길게 달라붙었다. 선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텐트를 정리하고 짐을 옮겨 차에 실었다. 차가 기우뚱거리며 농로를 지났다. 마을 어귀에 선 느티나무를 벗어나자 모든 게 낯설게 느껴졌다. 삐거덕거린 대문조차 묻혀버린 기억 속에서 되살아난듯했다. 마루 끝에는 암적색의 필묵함이 그대로 놓여있었다. 상자 표면이 지저분했다. 선우는 목에 힘을 주고 이를 앙 다물었다. 눈꺼풀이 떨려왔다. 눈언저리를 누르며 집을 나섰다. 거리는 차츰 무채색으로 변해갔다. 필방에 다다랐을 때는 이미 해거름이었다. 문을 잡아당기자 풍경소리가 길게 울려 퍼졌다. 아주머니가 문발을 걷고 나왔다. 핏기라곤 찾아볼 수 없는 창백한 얼굴이었다. 주인은 중앙 진열대로 다가왔다. 그녀는 유리로 만들어진 진열대 위에 놓인 먼지떨이를 세워 턱을 고였다. 그러곤 선우를 빤히 바라보았다. 내부는 서늘하고 정갈했다. 진열대 맨 위 선반에 먹과 붓이 가득했다. 선우는 눈에 익은 먹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저걸 포장해 주십시오. 라고 말했다. 아주머니가 먼지떨이를 놓아두고 익숙한 손놀림으로 포장을 했다. 그러면서 혼잣말을 했다. 똑같네, 똑같아. 선우는 그게 무슨 말인지 궁금했으나 묻지 않았다. 돈을 지불하고 종이가방을 받았다. 손에 무게가 느껴지면서 마음으로는 부드러운 뭔가가 가득 차올랐다. 선우는 어둑해진 거리를 걸었다. 아버지의 낡은 안경도 이제는 바꿔야한다고 생각했다. 

  잠이 오지 않았다. 선우는 마당으로 나가 창고와 대문 사이를 오갔다. 구름 탓인지 마당에 깔린 연주황색 타일이 검어졌다가 제 색을 드러내곤 했다. 선우는 가만히 빨랫줄을 만져보았다. 담장 밖 멀리에서 개 짖는 소리가 어둠을 흔들었다. 끝



  <당선소감>


   더운 날 바람, 추운 날 온기되는 글 쓰고 싶다


  당선자 송은유씨 아침부터 지쳐있었다. 

  출근길에 작은아이와 충돌 때문이었다. 여간해서는 화내는 일이 없던 아이인데 사소한 대화중에 벌컥 화를 내더니 차에서 내려버렸다. 십여 분을 달려 사무실로 오는 동안, 막연한 길을 걷고 있는 건 아닌가, 또 생각했다. 생활에 균열이 생기고 틈이 났구나. 아이가 뛰어가던 뒷모습이 지워지지 않았다. 

  하지만 발걸음은 이제, 출발지에서 너무나 멀리 와버린 느낌이다. 샛길도 없는 오직 외길인 거다. 이 길을 걸으며 주저앉기도 했고 넘어지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문순태, 신덕룡, 이기호, 임환모, 은미희 선생님의 격려로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또한 가까이에서 글밭을 일구는 문우들이 있어 항상 마음 든든했다. 이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안개 속에서 헤매는 저의 손을 잡아주신 심사위원님께도 마음 깊이 감사드린다. 먼 길 지치지 않고 가라는 격려로 알겠다. 소외되고 우울한 이웃에게 웃음과 위안이 되겠다. 더울 땐 시원한 바람이며 추운 날엔 한기를 막아줄 수 있는 글을 쓰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다하겠다. 종종걸음 치지 않고 내 앞에 난 길을 그저 걸어가겠다. 

  끝으로, 여전히 소녀 같으신 엄마와 무한 신뢰와 사랑으로 지켜봐 주고 응원해준 나의 딸 혜원과 다원에게 늘 미안하고 감사하다. 틈이 생기지 않도록 더 사랑하겠다. 그리고 두 남자, 아버지와 남편께 온전히 이 기쁨의 날을 바친다.





  ● 전남 고흥 출생.
  ● 광주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석사과정 재학.
  ● 전남대학교 근무 중.


 

  <심사평>


  주인공 내면 간결하게 이끄는 묘사 돋보여” 


  본심에 오른 작품은 ‘먹을 잇다’ 외 4편이었다. 이 작품들은 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현실의 문제, 기업 사회의 치부를 드러내는 적폐 청산 문제, 인간의 유한성과 기억에 대한 도전적 재구성, 삶의 연륜을 투영시킨 장인(匠人)의 세계를 다루었으나, 대부분 소설의 기본기인 문장 면에서 미흡함을 노출시켜 아쉬움이 컸다. 

  신인의 치열하면서도 안정적인 문장, 인간과 세계를 대하는 태도와 문제의식, 단편 소설의 속성과 규모에 알맞는 서사적인 필력, 주제 관철력을 평가의 중심에 두었다. 이들을 충족한 작품은 ‘송송의 미래’와 ‘먹을 잇다’였다. 전자는 촛불 혁명 과정과 이후 기업 사회에 만연한 문제를 속도감 있게 전개하고 있으나, 일상 언어가 그대로 기술되어 있고, 그것을 작가가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결정적인 한계로 작용했다.

  ‘먹을 잇다’의 특장은 안정적인 서사의 흐름 속에 내면의 파동을 외부로 간결하게 이끄는 묘사와 운용에 있다. 이 작품에서 서사의 매개 장치는 ‘먹’이고, 핵심 사건은 아버지의 울음과 먹 갈기, 그리고 글씨 쓰기이다. 화자는 우는 아비, 먹을 가는 아비와 마주하고 산다. 부모의 죽음에 죄의식을 안고 살아가는 장묘사 아비의 부채감이 자식인 화자에게 이행되면서 해소되는 아이러니한 과정을 군더더기 없는 대화의 운용과 단락 마다 장면을 생성해가는 문장력으로 이끌고 있어 당선작으로 선택했다.

  모든 응모자들에게 격려의 마음을 전하고, 수상자에게 축하와 함께 지속적인 정진을 바란다.

 

심사위원 : 함정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