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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선작>

  우주인 할아버지 / 차승호

  “어른용은 어디 있지?”

  아빠는 몇 시간째 컴퓨터 앞에 앉아 쇼핑 사이트를 뒤지고 있어요. 우주복을 사기 위해서지요. 할아버지가 계신 요양원에서 우주복을 사오라는 전화가 왔거든요. 우주복은 위아래가 붙어 있고 밑이 트인 옷이에요. 아기들이 주로 입는 옷이지요. 밑이 똑딱단추로 되어 있어서 기저귀를 손쉽게 처리할 수 있어요.

  할아버지는 요양원에 계셔요. 벌써 일 년이 다돼가요. 지난겨울 마당을 치우다 쓰러지셨거든요. 그 뒤로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해요. 오른손이 떨려서 밥을 먹는 것도 힘들지요. 어른들은 중풍이 와서 그렇대요.

“아빠, 이번에도 할아버지랑 짜장면 먹나?”

“그럼, 할아버지가 짜장면을 얼마나 좋아하신다고.”

  할아버지는 짜장면을 좋아하셔요. 이가 몇 개 남아 있지 않아서 거의 씹지 않고 삼켜요. 그래도 짜장면을 드실 때 보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처럼 얼굴이 환해져요. 턱받이와 얼굴에 짜장 범벅이 되어도 합죽하게 웃는 할아버지. 할아버지를 닮아서 그런지 아빠도 나도 짜장면을 좋아해요.

“아빠, 손 짜장면이 뭐야?”

“손 짜장면? 면발을 기계로 뽑지 않고 손으로 뽑아서 만드는 짜장면이지. 옛날에는 다 그렇게 했거든.”

  할아버지하고 단골로 가는 요양원 앞 만리장성은 손 짜장면집이에요. 만리장성 주인아저씨는 러닝셔츠 차림에 하얀 위생 모자를 쓰고 있어요. 짜장면을 주문하면 우두둑 소리를 내며 좌우로 머리를 흔들고 밀가루 묻은 손으로 짝짝 박수를 두 번 쳐요. 면발을 뽑기 위한 준비운동인가 봐요.

  그러고는 밀가루 반죽을 늘이기 시작해요. 고무줄처럼 늘인 밀가루 반죽을 빙글빙글 돌리다가 작업대에 쿵쿵 내리쳐요. 마른 밀가루도 팍팍 뿌려요. 늘인 밀가루 반죽을 반으로 접고 또 작업대에 쿵쿵 내리쳐요. 밀가루 반죽을 늘이고 접다보면 신기하게도 어느새 가느다란 면발이 돼요. 한 번 접을 때마다 면발이 곱빼기로 불어나거든요.

“쿵쿵, 쿵쿵, 쿵쿵…….”

‘2×1=2, 2×2=4, 2×4=8…….’

  면발 내리치는 소리에 맞춰 나도 모르게 구구단을 외우기도 해요.

“쿵쿵, 쿵쿵…….”

  면발 불어나는 신호예요. 짜장면이 곧 나올 것 같아요.

“찾았다. 대구에 있는 공장에서 만드나 보네.”

  어른용 우주복을 찾았나 봐요.

“그럼 할아버지가 우주인이 되는 거야? 우주인이 되려면 머플러도 있어야 되는데.”

“머플러?”

“어린 왕자는 긴 머플러를 하고 있잖아.”

“어린 왕자가 머플러를 하고 있다고?”

  어린 왕자는 B612호 소행성을 떠나 지구별에 왔거든요. 그러니까 우주인이 틀림없지요.

“아빠, 어린 왕자 안 봤어? 항상 머플러를 하고 있다고.”

“글쎄, 할아버지는 어린 왕자도 아닌데 머플러가 필요한지 모르겠구나.”

  아빠는 평소에 할아버지 생각을 많이 해요. 요양원으로 모신 것에 대하여 늘 마음 아파해요. 어떤 때는 밥 먹다 말고 멍하니 창밖을 바라봐요. 그러면 나는 할아버지를 생각하는 거라고 짐작해요.

“아빠, 밥!”

  요양보호사 아저씨는 가끔 할아버지가 아빠를 찾을 때가 있다고 해요. 보고 싶어 하시는 것 같다는 얘기예요. 농사일을 하는 아빠는 생각만큼 할아버지를 자주 찾아뵙지 못한다고 안타까워해요.

“앞으로 좀 더 자주 와야겠네요…….”

  말끝을 흐리며 아빠는 멋쩍게 웃어넘기지만 두 눈이 금세 붉어져요. 그럴 때면 나는 얼른 이불 밖으로 나온 할아버지 발을 주물러드리며 아빠에게 말을 걸어요.

“아빠, 할아버지 발 정말 크다. 그치!”



  지난 할아버지 생신 때였어요. 생신은 집에서 보내야 된다며 할아버지를 모셔왔어요. 할아버지도 기분이 좋은지 주름살투성이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어요. 할아버지가 웃을 때마다 주름살도 따라 웃는 것 같았어요. 그런데 기름진 음식을 드셔서 그랬는지 할아버지는 여러 번 설사를 하셨어요. 아빠는 밤새 기저귀를 갈고 물휴지로 할아버지를 닦았어요.

“아빠, 출발 안 해?”

“……….”

  다음날 아빠는 자동차 시동을 켜놓고 한참 동안 출발하지 않았어요. 부릉거리는 자동차 소리만 차 안 가득 떠다녔지요, 운전대에 손을 얹은 채 아빠는 말없이 앞만 바라봤어요. 아빠는 할아버지를 다시 요양원에 모셔다 드리고 싶지 않은 것 같았어요.

“아빠, 울어?”

“울긴 이 녀석아!”

  깊은 한숨과 함께 차가 출발하자 할아버지가 내 손을 꼭 잡았어요. 뼈만 남은 할아버지 손은 생각보다 따뜻했어요. 손가락이 몰려서 조금 아팠지만 나는 가만히 있었어요. 요양원까지 가는 동안 할아버지는 내 손을 꼭 잡고 있었어요. 내 손은 따뜻하게 아팠지요.

“할아버지, 짜장면 먹으러 가야지?”

  우주복을 입은 할아버지가 듬성듬성 남은 이로 벙긋벙긋 웃어요. 기분이 좋으신가 봐요. 우주복을 입고 나니 할아버지는 영락없이 영화 스타워즈에 나오는 우주인 같아요.

“와, 할아버지 짱! 할아버지, 광선검은 어디 있어?”

  내가 엄지를 치켜들자 할아버지가 뭐라고 뭐라고 하셨어요.

“할아버지, 뭐라고?”

“웅얼웅얼, 웅얼웅얼!”

  할아버지는 말을 정확하게 하지 못해요. 할아버지 말을 해석하려면 할아버지 입모양을 살펴야 돼요. 어떤 때는 바짝 귀를 대고서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어요. 이 빠진 우주인 말이라서 어려운가 봐요.

“웅얼웅얼, 웅얼웅얼!”

  우주인도 아니면서 아빠는 할아버지 말을 용케 알아들어요. 할아버지가 무슨 말을 할 때마다 맞장구도 쳐요.

“그류그류, 그렇구먼유.”

  아빠는 할아버지를 만나면 그동안 동네에서 일어난 일들을 시시콜콜 얘기해요. 내 친구 현주네 검정개가 새끼를 다섯 마리나 낳았다는 얘기까지 해요.

“웅얼웅얼, 웅얼웅얼!”

“그렇다니께유, 글쎄!”

  어떤 때 보면 할아버지는 할아버지 말을 하고 아빠는 아빠 말을 하는 것 같아요. 할아버지하고 얘기할 때면 아빠는 항상 사투리를 쓰는데 한 번도 시골을 떠난 적이 없는 할아버지를 위해서 그런가 봐요. 그게 우스워서 깔깔거리며 웃은 적도 있어요.

“아빠는 어떻게 할아버지 말을 잘 알아들어?”

“할아버지 얼굴을 보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다 나타나거든.”

“어, 정말?”

  어른들은 얼굴만 보면 무슨 말을 하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다 안다는 게 정말인가 봐요.

“너희들 얼굴에 다 나와 있으니까 핑계 대지 마라!”

  선생님도 숙제를 해오지 않은 친구들을 꾸중하실 때면 꼭 얼굴에 다 나와 있다고 하시거든요.

“와, 아빠! 선생님 해도 되겠네!”

  휠체어에 옮겨 타고 할아버지는 짜장면을 드시러 가요. 할아버지를 휠체어에 태울 때마다 요양보호사 아저씨랑 아빠는 땀을 뻘뻘 흘려요. 날이 갈수록 할아버지 몸이 굳어가기 때문이에요. 그래도 할아버지와 짜장면을 먹으러 가는 건 즐거워요.

  여느 때처럼 면발 뽑는 모습을 구경하며 모람모람 주방에서 넘어오는 짜장 냄새에 군침을 삼켜요. 주방에서 넘어오는 짜장 냄새는 언제나 군침을 퍼 올리는 마중물이에요. 할아버지는 꿀꺽, 아빠는 꿀컥, 나는 꼴깍. 그러고는 할아버지 한 그릇. 아빠 한 그릇, 나도 한 그릇 짜장면을 먹어요. 맛있어요.

“할아버지, 또 올게.”

  요양원에 할아버지를 모셔다드리고 헤어질 때면 짜장면 사드리러 또 오겠다고 약속을 해요. 새끼손가락을 걸고 엄지로 도장도 찍고 손바닥을 펼쳐 복사도 해요.

“웅얼웅얼, 웅얼웅얼!”

  아침저녁 날씨가 쌀쌀해졌어요. 조심조심했지만 할아버지가 감기에 걸리고 말았어요. 요양원에서 한밤중에 전화가 왔어요. 갑자기 열이 심하게 올라 할아버지를 병원으로 모셨다는 전화예요. 하루에 두 번 면회가 되는 중환자실이래요.

“아무래도 연세가 많으셔서…….”

  의사 선생님이 심각하게 말했어요.

  중환자실 면회를 다니면서 짜장면은 더 이상 먹을 수 없어요. 할아버지가 짜장면을 드시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아니 못 드셨기 때문이에요. 간호사 선생님이 미음만 겨우 드신다고 걱정했어요.

“미음도 몇 숟가락 안 드세요.”

  할아버지는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조차 힘겨워 하셨어요. 우주인 말도 하지 않고 벙긋벙긋 웃지도 않았어요. 정신이 들면 입으로만 힘없이 웃었어요.

“폐렴이 문제야. 환절기를 잘 넘겨야 할 텐데…….”
 
  아빠는 시무룩하게 말했어요.

‘할아버지가 훌쩍 우주여행을 떠나시는 건 아닐까?’

  날이 갈수록 할아버지는 요구르트 한 병도 다 못 드셨어요. 몸은 점점 새우처럼 둥글어졌어요. 얼굴이 무릎 사이로 들어갈 것 같은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자주 깊은 잠에 빠졌어요. 몇 번 잠자는 모습만 보다가 왔어요.

“어디서 전화만 와도 깜짝깜짝 놀랍니다.”

  할아버지 안부를 묻는 동네 어른들께 아빠는 또 시무룩하게 말했어요.

“할아버지!”

“……….”

“아버지, 저희 왔는데 눈 좀 떠 보세요!”

“……….”

  날이 밝았어요. 바람도 불지 않고 햇볕이 따뜻해요. 어제저녁엔 비가 조금 내렸거든요. 아빠는 날씨가 나쁘면 어쩌나 걱정했지만 하늘은 맑고 투명해요. 우주정거장으로 가는 길. 은행나무 가로수가 노란 손바닥을 펼쳐 흔들어요. 할아버지가 우주여행을 떠나시는 날이에요.

  나는 할아버지 사진을 넣은 커다란 액자를 들었어요. 액자 속 할아버지는 환하게 웃고 계셔요. 직장 때문에 자주 내려오지 못했던 엄마가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아요. 고모도 고모부도 슬퍼해요.

  할아버지는 누에고치 같은 우주복으로 갈아입고 나무 캡슐에 들어가 계셔요. 우주여행용 캡슐 속에 잠들어 계셔요. 할아버지는 잠자는 우주여행을 선택하셨거든요. 나이가 많아서 우주여행을 하는 동안 더 늙어버리면 안되기 때문이에요. 어느 때고 할아버지별에 도착하면 깨어나실 거예요. 할아버지도 어린 왕자처럼 의자를 몇 번씩 옮기며 노을을 바라볼지도 모르지요. 노을을 바라보며 내 생각을 할지도 모르지요.

  그런데 할아버지별에도 짜장면집이 있을까요?   할아버지가 지구별에 다시 올 때까지 만리장성 짜장면집이 장사를 했으면 좋겠어요. 할아버지가 돌아오시는 날 할아버지하고 아빠하고 나는 또 손 짜장면을 먹으러 갈 테니까요.


  <당선소감>

   "동화, 생각하는 대로 상상하는 대로 이뤄지는 세계"

  동화와 동시를 쓰고부터 매년 연말이 조마조마하다가 우울했습니다. 그리고 새해가 되면 연필을 더 깎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12월 중순이 넘도록 통보가 없어서 신춘문예하고는 인연이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연말은 우울하게 보내지 말라는 듯 위로의 전화가 왔습니다. 감사합니다.

  동화와 동시를 쓸 때면 늘 ‘마콘도’가 생각납니다. 『백년 동안의 고독』에서 이야기의 무대가 되는 공간이지요.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작품이 갖는 의의보다는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마콘도에 더 매료되었습니다. 마콘도에서는 흙을 먹을 수도 있고, 양탄자를 타고 날아다닐 수도 있고, 연금술로 금을 만들 수도 있는 동화적인 공간입니다. 마녀처럼 오두막에서 수십 년을 지낼 수도 있고, 나무에 묶였지만 나무의 일부가 되어 살 수도 있는 공간입니다. 마법의 공간인 셈입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연필을 깎아야 할지 모르겠지만 마콘도와 같은 나만의 세계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생각하는 대로, 상상하는 대로 보이는 시골집의 밤처럼 말이지요.

  오랜 시간 시를 쓰다가 몇 해 전부터 동화와 동시를 쓰고 있습니다. 결과를 빨리 보고 싶은 조바심이 생기지만 문학에는 왕도가 없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끊임없이, 우직하게 걸어가겠습니다. 천 리를 보고자 누각의 한 층을 더 오르는 마음으로 정진하겠습니다.

  기회를 준 전북일보사와 심사위원님께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충남 당진 출생으로 지난 2004년 <현대시학>에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 시집 <얼굴 문장>, <난장> 등을 펴냈다.


  <심사평>

  "우주여행으로 생 마친다는 전개 참신

  올해 신춘문예에서 동화는 106명이 117편을 응모했다. 이를 전북일보 신춘문예에 출신 김근혜, 이경옥, 장은영 동화작가들의 예심을 거쳐 9편이 본심에 올려졌다.

  전북일보 신춘문예 올해 응모 동화들을 보면 대부분 애완동물, 치매 및 노인문제, 다문화 등의 소재가 많았다. 이 외에도 가족 간의 사랑, 현실비판, 자연보호, 이웃돕기 등의 주제에다가 아이들의 마음세계를 양념처럼 담은 작품들이었다.

  동화의 본질은 어린이를 위해 쓴 문학의 한 갈래로써 동심을 바탕으로 하여야 한다. 따라서 동화를 창작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점은 대상이 어린이임을 항상 유념해야 한다. 그러므로 동화는 아이들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그런데도 올해 신춘문예에서는 성인들의 이야기지 아이들을 위한 동화는 거의 없어서 아쉬웠다.

  본선에 올라온 9편중에서 ‘깜장묵 베프’, ‘홀씨요정 들레’, ‘뻥튀밥 귓밥’, ‘우주인 할아버지’ 4편을 최종심에 올려 몇 번을 읽고 또 읽었다.

  ‘깜장묵 베프’는 다문화 가정이야기인데 제목부터 아무리 통용되고 있는 외래어라고 하지만 ‘베스트 프렌드’도 모자라 ‘베프’라는 줄임말이 동화에서까지 난무하고 있어 심히 걱정스럽다. ‘홀씨요정 들레’는 고향집에 민들레를 남겨놓고 향수를 느끼려는 이야기인데 여기서도 제목 홀씨는 식물이 암컷과 수컷의 교배 없이 이루어지는 생식을 위하여 형성하는 세포로 민들레는 홀씨가 없어 잘못된 표현이다. 이 두 작품은 내용에서도 일상의 이야기를 너무 작위적으로 꾸며서 신선감이 떨어진다.

  ‘뻥튀밥 귓밥’은 허풍이나 거짓말 따위의 속어인 ‘뻥’을 소재로 나쁜 소리를 많이 들으면 ‘왕귓밥’이 생긴다는 내용의 신선한 전개를 했는데 산만한 구성과 과다한 주제의식이 노출되었다. 반면 ‘우주인 할아버지’는 요양원에 계신 할아버지의 기저귀를 손쉽게 갈기 위해 입은 옷을 우주복으로 명명하고 일상을 우주와 결부시켜 마지막에는 우주여행으로 생을 마친다는 전개가 참신해서 당선작으로 뽑았다. 그러나 동화적 감각은 좋지만 이상과 현실의 관계 설정이 모호해서 주제가 빈약했다.

  앞으로 신춘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어린이들에게 미래세계에 대한 비전을 심어줄 뿐만 아니라, 현실에 대한 흥미와 호기심을 불어넣어 창의력을 증진시키는 어린이 세계를 주제로 삼았으면 한다. 우리의 삶에서 작가의 상상력을 끌어들이면 좋은 동화가 많이 나올 수 있다.

 

심사위원 : 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