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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선작>

 

   현우의 동굴 / 성욱현

 

현우의 아빠는 바쁩니다. 일주일에 세 번은 밤에 일을 나가, 이른 점심에 돌아옵니다. 그런 날 현우는 혼자 잠을 자야 합니다.

현우는 잠을 잘 때 텔레비전을 켜 놓습니다. 불도 끄지 않습니다. 무섭기 때문입니다. 이불을 펼치고 눕자 싱크대 아래가 보입니다. 현우가 몸을 뒤집습니다. 어두운 구석에서 지네가 기어 나올 것 같습니다. 현우는 몸을 바로 하고, 천장을 바라봅니다. 형광등 뒤편에서 박쥐가 고개를 내밀 것 같습니다. 불을 환하게 켜 놓아도 어두운 곳은 집 안 구석구석에 있습니다.

방 건너에서 목소리도 들려옵니다. 누군가 계단을 오르는 소리도 들립니다. 변기 물 내리는 소리,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 멀리서 개 짖는 소리도 들려옵니다. 메아리처럼 집안을 맴도는 소리는 밤이 되면 더 잘 들립니다. 현우가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 써봐도 그 소리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집이 꼭 동굴 같습니다.

텔레비전에선 뉴스가 나옵니다. 사람이 나오고 말만 한다면 어떤 프로그램이든 상관없습니다. 그런데 사이렌 소리가 들리더니, 심각한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긴급 속보입니다. 지리산국립공원에서 곰이 탈출했다고 합니다. 주민 여러분께서는 외출을 삼가시기 바랍니다.“

현우는 텔레비전을 끕니다. 괜히 더 무서워졌습니다. 억지로 잠을 자려고 해 봅니다. 그런데 곰이 탈출했다, 곰이 탈출했다, 곰, 곰. 하는 생각이 끝없이 머리를 맴돕니다. 그러다, 현우는 좋은 생각이 납니다.

학교에서 동굴에 살던 곰이 사람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람도 곰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곰이 된다면 동굴 같은 집이 무섭지 않고 오히려 아늑할 겁니다.

현우는 답답한 이불을 걷어버립니다. 양손을 뻗습니다. 곰은 이불이 필요 없습니다. 현우는 이를 드러내 봅니다. 곰은 무서운 게 없습니다. 현우는 숨을 잔뜩 들이쉽니다. 소리를 질러 봅니다.

“우워워!”

쿵쿵!

옆집 아저씨가 소리칩니다.

“시끄러워!”

현우는 지지 않고 가슴팍을 내밉니다. 다리를 잔뜩 벌리고 손을 머리 위로 치켜들고 소리칩니다. 동굴에 침입한 불청객을 내쫓는 곰처럼.

“우워어어!”

쾅쾅!

아랫집 아줌마입니다.

“지금이 몇 신 줄 알아? 잠 좀 잡시다!”

쿵쿵!

쾅쾅!

천둥이 치는 것처럼 쿵쾅쿵쾅!

모두가 현우를 나무랍니다.

평소 같으면 얌전히 이불 속에 숨겠지만 현우는 지지 않고 고함을 지릅니다.

“나는 곰이다, 우워어어어!”

그런데 좀 이상합니다. 쿵쾅거리는 소리가 점점 다가옵니다. 소리는 점점 가까워집니다. 누군가 현우 집 앞에 섭니다.

“당장 문 열어!”

현우는 깜짝 놀라 문 앞으로 달려갑니다. 설마 너무 시끄럽다고 혼을 내러 온 옆집 아저씨일까요? 아니면 종종 술에 취해 집을 잘못 찾는 아랫집 아줌마일까요? 얌전히 자겠다고 말하면 돌아갈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우워어어어!”

현우의 입에서 나온 소리는 말이 아닙니다. 아니, 정확히 곰의 말입니다.

“역시, 여기 숨어 있었구나!”

“우워?”

“곰 사냥꾼이 곰을 무서워할 줄 알고?”

사냥꾼이 현관을 쾅쾅 두드립니다. 현우는 재빨리 안전걸쇠를 걸려고 합니다. 안전걸쇠가 잘 잡히지 않습니다. 현우의 손이 조금 이상합니다.

복슬복슬한 털이 손등을 뒤덮고 있습니다. 몽땅한 손가락 끝에 긴 손톱이 나 있습니다. 현우는 몸을 내려다봅니다. 온몸에 갈색 털이 돋아 있습니다. 새까만 검은 발톱이 자라 있습니다. 현우는 정말로 곰이 되어버린 겁니다.

“새끼 곰을 생각해봐. 어두운 산속에서 벌벌 떨며 널 기다리고 있어. 얌전히 산속으로 돌아가라고!”

“우워어!”

현우는 웃기는 소리 하지 말라고 외칩니다. 현관문이 잘 잠겨 있으면 현우는 안전할 겁니다.

“네가 그렇게 나온다면 어쩔 수 없지!”

철컥. 쾅!

총소리가 났습니다.

현관문에 구멍이 뚫렸습니다. 현관문이 열립니다. 회초리처럼 긴 총을 든 사냥꾼이 현관에 서 있습니다.

“우워어어.”

저는 곰이 아니라 현우라는 아이라고요. 현우는 그렇게 말하고 싶었습니다. 사냥꾼은 현우의 말을 알아듣지 못합니다.

현우는 양손을 젓습니다. 그러자 사냥꾼은 현우를 향해 총을 겨눕니다. 현우의 모습이 위협하는 곰처럼 보였나 봅니다.

그때 총 끝에서 연기가 피어오릅니다. 사냥꾼은 당황한 표정으로 총 끝을 확인하더니 바닥에 버립니다. 재빨리 뒷주머니에서 올가미를 꺼냅니다. 올가미를 머리 위로 돌립니다. 휙휙 돌아가는 올가미가 원을 그립니다.

이대로 당할 수 없습니다. 현우는 자세를 잡습니다. 곰이 돼버렸으니 네발로 땅을 딛는 게 편합니다. 현우와 사냥꾼은 서로의 눈치를 봅니다. 식탁을 사이에 두고 뱅글뱅글 돌기 시작합니다.

사냥꾼이 막 부엌을 지날 때 올가미를 현우에게 던지려고 합니다. 그때 싱크대 밑에서 지네가 기어 나옵니다. 사냥꾼은 깜짝 놀라 펄쩍 뜁니다. 선반에서 박쥐가 날아옵니다. 사냥꾼은 당황해서 올가미를 놓치고 식탁 아래로 숨어버립니다.

현우는 재빨리 올가미를 멀리 던집니다. 벌벌 떨고 있는 사냥꾼이 숨은 식탁 주위를 어슬렁어슬렁 돌기 시작합니다. 현우는 의기양양해집니다. 동굴에선 곰이 가장 강합니다. 동굴은 곰에게 가장 안전한 장소입니다.

식탁을 돌고, 돌고, 또 돌다가, 현우는 배가 고파집니다. 식탁 위에는 아빠가 준비해 놓은 아침 식사가 있습니다. 현우는 침을 꼴깍 삼킵니다. 현우가 다가가자 사냥꾼이 비명을 지릅니다.

“날 잡아먹는다면 또 다른 사냥꾼이 널 쫓을 거야!”

쿵쾅쿵쾅!

“이 밤에 왜 이렇게 시끄러운 거야. 당장 조용히 하지 않으면 경찰에 신고할 거야!”

“저것 봐. 네가 도망친 바람에 모두 밤잠을 설친다고! 난 사냥꾼으로서…….”

현우는 긴 발톱을 긴 주둥이 앞에 가져다 댑니다. 조용히 하라는 신호입니다. 현우의 날카로운 발톱을 본 사냥꾼은 식탁 아래에서 바들바들 몸을 떱니다.

“무서워. 곰이 무서워. 난 사실 곰이 무서웠어.”

사냥꾼이 얼굴을 무릎 사이에 묻습니다.

그 모습을 본 현우는 책상에서 색연필을 찾습니다. 현우는 색연필로 바닥에 글을 적으려고 합니다. 바닥에 낙서하면 아빠에게 혼나겠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넓적한 앞발로 색연필을 쥐기 어렵습니다. 삐뚤빼뚤 글을 씁니다.

-그렇게 무섭다면 아저씨도 곰이 될 수 있어요. 저도 그랬는걸요.

사냥꾼은 물끄러미 현우가 쓴 글을 바라봅니다.

사냥꾼은 곰이 되는 상상을 합니다. 그러자 사냥꾼의 팔에서 검은 털이 숭숭 돋기 시작합니다. 사냥꾼의 두꺼운 입술이 점점 부풀더니 길쭉한 주둥이가 됩니다.

“우워어어. (내가 곰이 돼버렸어.)”

“우워. 우어워. (그래요. 저도 그렇게 곰이 된 거예요.)”

둘은 말이 통합니다. 사냥꾼은 식탁 밖으로 나와 네발로 걸어봅니다. 두 발로 서 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네 발이 더 편한지 금세 땅을 딛습니다. 원래는 손이었던 발로.

“우워. 우워어. 우워워. (큰일이야. 곰이 되어버렸으니. 도망친 곰을 찾지 못하면 다른 사냥꾼이 우릴 쫓을지도 몰라.)”

다른 사냥꾼이 온다면 또 쫓아버리면 됩니다. 그보다는 현우는 혼자 남은 새끼 곰이 신경 쓰입니다. 어두운 곳에 혼자 남겨진 기분을 현우는 잘 알고 있습니다.

“우어어. 우워워! (제가 곰 찾는 걸 도와드릴게요. 곰이 되었으니 말이 잘 통할 거예요!)”

현우는 곰을 찾기 위해 집을 나서려 합니다. 그런데 곰이 된 사냥꾼이 식탁 아래로 쏙 들어갑니다.

“워어, 우워어. 우워어어. (왠지, 이 동굴 밖으로 나가고 싶지 않아. 난 이제 곰이지 사냥꾼이 아닌걸.)”

사냥꾼을 억지로 끌고 나갈 수는 없습니다. 현우는 어쩔 수 없이 혼자 밖으로 나갑니다. 어디선가 개 짖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계단에 개 한 마리가 앉아있습니다. 사냥꾼의 개입니다. 저 개가 곰의 냄새를 쫓아 현우의 집으로 온 것입니다. 개는 곰이 된 현우를 보고 컹컹 짖더니 멀리 달아나 버립니다.

현우는 개를 쫓아 달리기 시작합니다. 네발로 달립니다. 개를 거의 따라잡았을 때, 개가 다리 밑으로 도망갑니다. 현우는 언덕을 내려갑니다. 다리 밑에서 개가 벌벌 떨고 있습니다. 개는 앞으로 가지도 뒤로 가지도 못하고 낑낑댑니다. 오줌을 싸버립니다.

다리 밑에서 불쑥 곰 한 마리가 나옵니다. 아니, 사람 한 명입니다. 긴 주둥이에서 침이 뚝뚝 떨어집니다. 둥근 귀가 쫑긋쫑긋 움직입니다. 그런데 두 발로 서 있습니다. 머리는 곰인데 몸은 사람입니다.

“넌 어디서 탈출한 곰이니?”

“우워우워!”

“곰으로 변한 사람이라고?”

곰 머리 아저씨는 현우의 말을 잘 알아듣습니다. 사람처럼 고개를 끄덕이며 현우의 이야기를 들어줍니다.

“하긴 곰도 사람이 되었는데 사람이 곰이 될 수도 있지. 뭐? 곰을 돌려보내야 한다고?”

곰 머리 아저씨는 고개를 휘휘 젓습니다.

“싫어. 그 좁은 산으로 돌아갈 생각은 없어. 매일 밤 총을 들고 나를 감시하는 사람들도 지긋지긋해!”

곰 머리 아저씨가 산을 탈출한 곰이었습니다.

“날 기다리는 새끼 곰이 있다고? 어쩔 수 없어. 그 애는 어두운 걸 무서워해 변신하지 못하는걸.”

현우는 곰 머리 아저씨의 말에 화가 났습니다. 꼭 현우의 아빠 같습니다. 혼자 자는 게 무서워 아빠를 따라가면 안 되냐고 할 때마다 아빠는 현우를 혼냈습니다. 다 큰 애가 밤이 뭐가 무섭냐고, 현관문을 쾅 닫고 출근했습니다.

“당장 돌아가지 않으면 혼쭐을 내준다고?”

곰 머리 아저씨는 현우를 비웃습니다.

“동굴에선 곰이 제일 무서울지 몰라도, 동굴 밖에선 사람이 제일 무서운 법이야!”

쿵!

그때, 큰 소리가 납니다. 쓰레기차가 쓰레기를 담는 소리였습니다.

곰 머리 아저씨는 가느다란 두 팔로 둥근 귀를 막으며 도망칩니다. 다리 밑으로 쏙 들어갑니다. 식탁 아래 숨은 사냥꾼처럼 몸을 웅크립니다. 무릎 사이에 고개를 묻습니다.

“안전한 동굴을 찾을 수가 없어. 동굴을 찾으면 아이를 데리고 나오려고 했단 말이야. 그 사냥꾼이 쫓아오지만 않았어도 동굴을 찾을 수 있었을 텐데. 총소리가 어찌나 무섭던지. 결국 동굴과 비슷한 다리 밑에서 변신했더니 이렇게 반만 사람이 되어버렸어.”

현우는 조심스럽게 다리 밑으로 들어갑니다. 다리 밑으로 들어오니 곰 머리 아저씨의 말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만약 이 다리가 동굴이었다면 왠지 더 아늑했을 겁니다. 곰이 되어보니 알게 된 사실입니다. 곰 머리 아저씨를 위로하기 위해 넓적한 앞발로 어깨를 조심스럽게 톡톡 두드립니다. 현우 집이 꼭 동굴 같은데. 현우에게 좋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우워어어!”

현우의 말에 곰 머리 아저씨가 고개를 듭니다.

현우는 곰 머리 아저씨를 데리고 현우의 동굴로 돌아옵니다. 식탁 아래에 곰이 된 사냥꾼이 있습니다. 현우는 사냥꾼에게 다가가 귓속말을 합니다. 사냥꾼이 고개를 끄덕입니다.

곰이 된 사냥꾼은 재빨리 총을 등 뒤로 숨깁니다. 곰 머리 아저씨는 송곳니가 보이지 않도록 입을 앙, 다뭅니다. 곰이 된 사냥꾼이 자리를 비켜주자, 곰 머리 아저씨는 식탁 아래로 들어갑니다. 둘은 나란히 앉습니다. 꼭 작은 동굴 안에 있는 곰 두 마리 같습니다. 현우는 사이를 비집고 들어갑니다. 곰 세 마리가 함께 하기엔 식탁 아래는 좁지만 따듯합니다.

신나는 밤이었습니다. 집안을 정리하기에 현우는 너무 피곤합니다. 현우는 순식간에 잠들어 버립니다.

문이 벌컥 열리는 소리에 현우가 잠에서 깨어납니다.

현우가 양팔을 들고 소리칩니다.

“우워어어!”

현우는 달려가 아빠 품에 안깁니다.

“너는 왜 또 식탁 아래에서 자고 있어?”

아빠는 현우를 꼭 안아주다 집 안을 둘러보더니 혼을 냅니다. 집안은 엉망입니다. 현우는 말없이 웃고만 있습니다. 아빠는 현우 말을 알아듣지 못할 겁니다. 아마 사람 말로 해도 알아듣지 못할 게 뻔합니다.

어쨌건 현우는 이제 일주일에 삼일 정도는 혼자 잘 수 있습니다. 동굴 같은 집이 무섭다면 또 곰이 되면 되니까요. 그저 너무 피곤하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현우의 동굴 앞으로 매일 밤 긴 줄을 설 겁니다. 곰이 무서워 곰이 되고 싶은 사냥꾼이나, 사람이 무서워 사람이 되고 싶은 곰들이.




  <당선소감>


   "잠기는 삶이 아니라,  주머니 속에 담고 싶은 삶을 보여주고 싶다"


시작과 맺음이 있다면 무엇이든 간단한 이야기로 여기던 때가 있었다. 그때 내 삶은 거침없이 수면을 가르는 조약돌처럼 단단했다. 망설임 없이 날았고 튕겼고 잠겼다. 세상을 바라보는 내 단상이 그랬다. 조약돌이 아득하게 늘어서 있는 호숫가에 홀로 서 있는 것이다. 눈을 돌리면 아득한 개수의 조약돌과 마주하는 것이다.

아직 던져야 할 돌이 끝없다. 파문이 끊이지 않는 삶 속에서 그렇게 난 고요했다. 시작과 맺음이 있는 이야기가 끝없이 날아오른다. 그런 생각을 하면 감당할 수 없는 삶도 깊고 고요한 하루 속으로 가라앉았다. 고요 속에서 치열하게, 고독하게 글을 썼다. 불행했다.

그러다 동화를 만났다. 나는 이제 아무도 몰래 돌을 주워 주머니에 담는다. 나를 위한 글을 쓴다. 호숫가를 서성이는 치열하고 고독하고 불행한 아이를 위해 쓴다. 잠기는 삶이 아니라, 조금 불편하고 딱히 쓸 곳도 없겠지만 주머니 속에 담고 싶은 삶을 보여주고 싶다. 나는 그들과 함께 주머니를 두둑이 챙겨 호숫가를 벗어날 거다.

유칼립투스를 키우는 어머니와 로봇 팔의 마음을 그리는 아버지. 그들이 내 꿈에 보낸 애정처럼 나도 그들의 꿈에 애정을 보낸다. 내 삶의 강과 같은 삼촌과 숙모들. 어린 시절, 강변에서 커다란 돌덩이를 달궈 삼겹살을 구워 먹은 날을 생생히 기억한다. 내 동화에 밝은 점이 있다면 그들의 모습이다.

동화에 흥미를 느끼게 해주신 박덕규 교수님, 삶을 대하는 태도를 알려주신 최수웅 교수님께 감사드린다. 김리리 작가님께 많은 배움을 얻었다. 작가님의 한마디가 내 문학관을 바꾸었다. 그리고 김지현. 그녀와 나눈 합평은 즐거운 기억이다. 글이 미워질 때마다 그 시절 늦은 밤들을 떠올린다. 심사를 맡아 주신 분들께도 감사를 전한다. 이제 시작이란 것을 잘 안다. 부름에 답하겠다.

곽효정, 김지은. 동화를 함께 쓰자는 그들의 말이 나를 이끌었다. 그들의 열정과 활기를 존경한다. 우리 뱅글라스가 곧 환히 빛날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책방 허송세월의 사장이자 나의 유일한 선배 최진형, 항상 좋은 합평을 해주시는 이유정 님과 심화반 동료들, 내 문학의 고향 아순시온 문우들, 터키의 푸른 어른들. 나의 아픔 나의 해. 모두 잊을 수 없다.

신춘문예 소감의 마지막 문단은 오래 품고 있었다. 아직도 그가 건넨 편지를 외우고 있다. 이 문장이 나를 울게 했다.

‘그게 쉬운 길인지, 어려운 길인지, 좋은 길인지, 나쁜 길인지, 따지지 않고 응원을 보낸다.’

나는 문장을 씹고 또 씹었다. 그렇게 걷고, 달리고, 등단했다. 지면을 빌려 그에게 받은 문장을 갚는다.

‘사랑하는 나의 누나. 나의 작은 테오. 누나 덕분에 나는 수유의 어두운 골방 속 작은 고흐였었지. 내 글은 누나 거야. 나는 누나의 동생이야.’


  ● 1994년 밀양 출생
  ● 단국대 문예창작과 졸업


 

  <심사평>


  도시의 주택에서 혼자 밤을 보내야 하는 아이의 두려움에 깊이 공감한 작품


어린이를 둘러싼 미디어 환경이 급변하고 있다. 2020년을 살아가는 어린이들의 삶과 정서가 동화의 중심에 놓여야 할 것이다. 태평한 회상형의 서사는 어린이와 진지한 접점을 만들기 어렵다.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 접근 방식, 접근 지점 등에서 새로움을 발견하기 어려운 작품이 많았다. 그런 가운데 어린이의 독립적인 시선을 잘 관찰하고 당면 현실을 고심한 작품들을 발견할 때면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몇몇 작품은 날카로운 상상력이 돋보였으나 아직 이야기의 구조를 안정적으로 구축하지 못하여 아쉽게 내려놓았다. 그럼에도 익숙한 관례에 기댄 작품보다는 이러한 도전을 기다린다. 더욱 용기를 내도 좋을 것이다.

'찌릿찌릿'은 전기 인간의 정체를 다룬 글감과 구성이 흥미롭고 문체도 안정적이었다. 그러나 아이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주인공이 벌이는 행동이 과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리고 다시 가짜 초능력자 사냥꾼이 되는 것이 결말이라면 주인공은 지난 과정을 통해서 무엇을 얻게 된 것일까. 찌릿이 학교를 떠나게 된 사건을 너무 낭만적으로 다루려고 한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었다.

'참 재미있었다'는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낼 수 없는 아이의 마음을 일기장이라는 소재로 다룬 작품이다. 일기를 소재로 한 동화가 많지만 이 동화는 인물의 질문이 정직하고 방식이 신선했다. 다만 서사의 흐름과 잘 연결되지 않는 에피소드와 결말로 인해 이야기의 초점이 흐려졌고 감동도 반감되었다. 좀 더 정리한다면 좋은 작품이 될 가능성이 보였다.

'현우의 동굴'은 도시의 주택에서 혼자 밤을 보내야 하는 아이의 두려움에 깊이 공감한 작품이다. 어린이의 공포를 자극적으로 표현하지 않았으나 인물이 놓여 있는 동굴같은 컴컴한 공간의 이미지와 막막한 느낌은 고스란히 살아있다. 이 감정을 곰이 되다 만 사람과 사람이 되다 만 곰의 만남으로 연결시킨 작가의 역량이 돋보인다. 옛이야기의 화소를 적절히 들여오면서도 어린이와 동물의 고립감으로 재해석하는 방식은 매우 현대적이다. 따라서 이 작품을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누군가에게는 이 작품이 최초의 문학일 수 있다. 그 작품이 자라는 한 사람에게 안겨줄 영향을 깊게 생각하는 작품들이 더 많이 등장하기를 바란다.


 

심사위원 : 임정자. 김지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