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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선작>

 

   우리 집에 놀러와 / 박규연

 

건호가 나와 엄마를 폴짝 앞질러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러고는 뒤돌아서서 빙긋 웃는 얼굴을 보니 또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나는 엄마를 슬쩍 끌어당겨 소곤거렸다.

"엄마, 오늘은 건호 그냥 집에 가라고 하면 안 돼? 쟤 만날 우리 집에 가는 거 싫어."

그러자 엄마가 내 옆구리를 쿡 찌르며 눈짓을 했다.

"조용히 해. 건호 듣겠다. 친구한테 그러는 거 아니야."

가슴속에서 끓던 불덩이가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나는 씩씩거리며 건호의 어깨를 툭 밀치고 지나가버렸다.

건호는 매일 학교가 끝나면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낸다. 우리 집에서 간식을 먹고, 나랑 같이 학원에 갔다가, 우리 집에서 저녁도 먹는다. 퇴근한 건호 엄마가 돌아와 건호를 데리고 갈 때까지 내내 우리 집에서 지내다 간다.

"선재야, 건호랑 친하지? 건호네 엄마가 일하느라 늦게 오니까 엄마가 건호를 너랑 같이 좀 돌봐 줄까 하는데, 괜찮을까?"

처음에 엄마가 이렇게 물었을 때, 나는 너무 기뻐서 밤에 잠도 못 잘 정도였다. 안 그래도 혼자 놀기 심심했는데, 건호랑 학원도 같이 다니고, 우리 집에서 저녁때까지 매일 어울려 놀 생각을 하니 가슴이 풍선이 된 듯 들떠서는 실없이 웃음만 나왔었다. 그런데 건호가 자꾸만 얌체같이 구니 이제는 꼴도 보기 싫다. 제발 좀 자기 집으로 가버리면 좋겠다. 성가신 혹처럼 콕 붙어서 만날 쫄래쫄래 우리 집으로 따라오는 게 짜증이 난다.

건호가 엄마 앞에 대고 왼쪽 발을 척 내밀었다.

"끈이 풀렸어요."

엄마가 쪼그려 앉아 건호의 운동화 끈을 묶어주었다. 엄마의 굽은 등이 유난히 처량해보였다.

"뭐해? 얼른 와!"

내가 외치자 엄마가 손을 탁탁 털면서 일어섰다. 건호는 또 쫄래쫄래 우리를 따라왔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엄마가 사과를 깎고, 빵을 데워주었다. 식탁에 건호랑 마주보고 앉았다. 사과 접시가 가운데에 놓이자 눈치 없이 건호가 바로 한 조각을 찍어 입에 넣었다. 주인이 먹기도 전에 손을 대는 건 어디서 배워먹은 버르장머리인지 모르겠다.

"아, 아까 진짜 웃겼는데……."

건호가 낄낄거리며 입을 열었다. 설마 아까 체육시간에 줄넘기하다 넘어진 이야기를 꺼내는 건 아니겠지.

"넌 어떻게 하필 최혜주 바로 옆에서 넘어지냐? 최혜주 놀란 얼굴 봤어?"

딱 저거다. 저렇게 얄미운 소리만 하니 좋게 봐줄 수가 없다.

"조용히 해라."

내가 이를 악물고 중얼거렸다.

"야,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그냥 잊어버려!"

키득거리는 건호의 입 안에서 씹던 사과조각이 툭 튀어나왔다.

"아, 더러워!"

나는 포크를 식탁 위에 탁 내려놓고 일어나 방으로 들어 가버렸다.

나는 혜주 앞에서 망신을 당했는데, 건호는 줄넘기 일등을 했다고 질투하는 건 아니다. 내가 그렇게 속이 좁지는 않다. 공부도 곧잘 하고, 키도 크고, 성격도 털털한 건호가 나는 오히려 좋았었다. 건호랑 더 친해질 수 있을 거란 기대에 설레기도 했다.

그런데 건호는 나와 같은 마음이 아닌 것 같았다. 학원에서 본 내 시험점수를 가지고 놀리기도 했고, 숙제를 하다가 엄마 앞에서 트집을 잡기도 했다. 우리 집에 온 첫날부터 쭈뼛거리며 어색해하더니, 요즘에는 나랑 놀면서도 자꾸만 시계를 힐끔거린다.

학원을 다녀와서도 마음이 풀리지 않았다. 건호는 줄넘기하다 넘어진 걸로 나를 놀려놓고 미안한 기색이 없었다. 먼저 말을 걸어와도 시원치 않을 판에, 학원에서 내내 나를 투명인간 취급했다. 다른 아이들하고만 수다를 떨고 장난을 치는 걸 보니 목구멍에 차올랐던 불덩이가 머리끝까지 솟았다.

입을 꽉 다물고 숙제를 하는데, 엄마가 방으로 들어왔다.

"얘들아, 사골국 끓여놨어. 얼른 숙제하고 저녁 먹자. 너희들 배고프겠다."

건호가 엄마의 말에 인상을 썼다. 은혜를 몰라도 유분수지, 건방짐이 하늘을 찌른다.

"선재야, 손톱이 너무 기네. 손 줘봐. 본 김에 깎아야지, 또 잊어버릴라."

엄마가 손톱깎이를 가져와 내 손톱을 하나하나 깎아주었다. 조용한 방안에 톡톡 손톱 깎는 소리가 울렸다. 톡.

"아!"

내 손톱 하나가 건호의 얼굴로 튀어 오른 모양이었다. 옆에서 숙제를 하던 건호가 얼굴을 문지르며 또 인상을 썼다.

"아이고, 건호도 아줌마가 손톱 좀 깎아줘야겠다. 너희들 손톱 보면 호랑이가 친구하자고 하겠다!"

엄마가 속도 없이 헤벌쭉 웃으며 건호의 옆으로 다가가 앉았다. 엄마는 건호의 손톱도 하나하나 정성껏 깎아주었다. 저런 모습도 못마땅한 것 중 하나다. 아까 운동화 끈이 풀렸을 때도 당당하게 발을 내밀더니, 아주 당연하다는 듯 손을 뻗어 엄마에게 맡기는 모습에 기가 막혔다. 우리 엄마가 자기 엄마도 아닌데, 자기 엄마 대하듯이 굴고, 어쩔 때는 종 부리듯 한다. 엄마가 엄하게 한 소리 하면 좋을 텐데, 엄마까지 건호를 나와 똑같이 대했다. 손톱을 다 깎은 엄마가 자리를 뜨자마자 건호에게 으름장을 놓았다.

"야, 손톱은 너희 엄마한테 잘라달라고 해라. 우리 엄마가 네 종이냐?"

그런데도 건호는 조금도 기죽은 기색 없이 오히려 피식 코웃음을 쳤다.

"너 지금 비웃냐?"

머리끝까지 올라온 불덩이가 화산처럼 터져버렸다.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건호를 확 밀어버렸다. 건호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나를 노려보았다.

"너희 엄마 돈 받잖아. 나 봐주는 대신 우리 엄마가 돈 준다고!"

건호가 이글대는 눈으로 나지막하게 쏘아붙였다.

내 온몸에 뜨거운 화산 용암이 끊임없이 줄줄 흘러내렸다. 식탁 앞에 앉아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하얀 사골국을 쳐다보고 있으니 자꾸만 눈앞이 뿌예졌다.

"너희들 분위기가 왜 이래? 싸웠니? 기분들 풀고 어서 밥 먹어. 국 다 식겠다."

엄마가 물 잔을 놓으며 말했다. 나에게 독한 말을 쏟아낸 건호도 불편하긴 마찬가지인지 창백한 얼굴로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엄마의 재촉에 우리는 할 수 없이 숟가락을 들었다.

엄마가 밤새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애써 끓인 사골국이라 더 맛있게 먹어야 하는데, 화끈거려 손이 가질 않았다. 나는 대신 밥알을 잘근잘근 씹으며 건호가 한 말을 곱씹어보았다.

곰곰이 따져보니 모든 게 맞아떨어졌다. 나 하나 키우기도 힘들다던 엄마가 건호를 돌봐주겠다고 대뜸 나선 것이나, 나에게 하듯 건호를 세심하게 살펴준 것이나, 내가 싫다고 투정을 부려도 건호를 빼먹지 않고 우리 집에 데리고 온 일들이 단번에 이해가 갔다. 돈 없다, 아껴 써라, 잔소리 하던 것까지 모조리 떠올랐다. 나는 훨훨 타는 불에 기름을 붓는 심정으로 사골국을 그릇 채 들어 꿀꺽 마셔버렸다. 주루륵 이마를 타고 땀이 흐르는 느낌이 났다.

"어머! 건호야!"

엄마가 비명을 질렀다. 건호가 먹은 음식을 바닥에 모조리 토하고 있었다. 건호의 티셔츠와 바지에 하얀 국물이 범벅이 되어 뚝뚝 흘러내렸다.

화장실에 들어간 건호는 한참동안 나오지 않았다. 엄마가 허둥대며 부엌 바닥의 토사물을 닦고, 갈아입을 옷을 챙기는 동안 나는 화산이 멈춰버린 것처럼 멀뚱히 서있기만 했다. 그때 마침 초인종이 울렸다. 건호 엄마였다.

"아유, 죄송해서 어쩌죠. 아, 사골국이요……. 괜찮을 거예요. 일단 건호 데리고 집에 가서 나중에 다시 연락드릴게요. 괜히 번거롭게 해드려 죄송해요."

자초지종을 들은 건호 엄마가 민망한 얼굴로 사과를 하고는 서둘러 건호를 데리고 갔다. 엄마가 왔다는 소리에 건호가 화장실에서 나왔다. 내 옷으로 갈아입고 나온 건호는 핏기가 하나도 없는 얼굴에 넋이 나간 듯 휘청거렸다. 힘없이 대문을 나서는 모습을 보니 나까지 마음이 울렁거렸다.

자려고 누웠지만 하나도 졸리지 않았다. 건호가 나 때문에 밥을 먹다 체했나 싶고, 나 때문에 토한 건가 싶고, 내가 그렇게 잘못을 했나 싶었다. 나는 건호를 싫어하지 않았는데, 건호에게 잘해주려고 했는데 왜 이 지경이 되었는지 괜스레 억울한 마음도 들었다. 당장 내일 학교에서 건호를 만날 일이 걱정이 되었다. 밤이 끝나지 않기를 바라며 뒤척거렸다. 엄마도 늦게까지 깨어있었다. 거실에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니에요. 제가 더 죄송하죠. 건호가 사골국을 못 먹는 걸 알았다면 다른 걸 먹였을 텐데……. 아무 말을 안 해서 몰랐어요. 네, 잠자코 먹더라고요. 아무래도 그랬나 봐요. 자기 집이 아니니 불편했겠죠. 제가 더 신경을 썼어야 하는데……. 선재도 철이 없어요. 아직 애라서 배려도 모르고……. 건호가 저희 집에서 지내느라 마음에 상처를 받았을까봐 걱정이네요. 네, 네. 아니에요. 그럼요. 언제 한번 건호랑 저희 집에 같이 놀러오세요. 선재한테도 제가 잘 얘기할게요. 애들은 괜찮겠죠. 금방 잊어버리잖아요."

엄마의 말들이 귓속으로 들어와 꾹꾹 담겨서 가슴속에 차곡차곡 쌓였다. 갑갑한 마음으로 깜깜한 창밖을 바라보는데, 엄마가 방으로 들어왔다.

"선재야, 건호가 우리 집에서 지내는 게 좀 불편해서 그랬나봐. 너랑 엄마 사이에 낀 것 같은 기분이 들었겠지. 눈치도 보이고 그랬을 거야. 학교 가서 건호 만나면 토한 얘기 꺼내지 말고 반갑게 인사해. 싸웠어도 네가 먼저 풀고. 친구끼리는 그러는 거야."

나는 계속 창밖만 쳐다보았다. 엄마와 눈이 마주치면 울컥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엄마 돈 받아? 건호 봐주는 대신 건호 엄마한테 돈 받아?"

방에서 나가려는 엄마에게 입속에서 맴돌던 말을 꾸역꾸역 내뱉고 말았다.

"돈? 그거야…… 건호 간식 먹이고, 저녁까지 먹여준다고 건호 엄마가 고마워서 주는 거지. 설마 엄마가 돈 때문에 건호 봐줬겠니? 네 친구니까 안쓰러워서 그런 건데……. 너희들은 쓸데없는 데에 신경을 쓰더라. 그런 건 어른들이 알아서 하니까 너희들은 그냥 사이좋게 지내면 돼."

다음날부터 건호는 우리 집에 오지 않았다. 이모인지 이모할머니인지 누군가 와서 건호를 돌봐준다는 이야기도 들었고, 혼자서도 집에서 잘 있다는 이야기도 얼핏 들었다. 궁금했지만 물어보자니 내가 무슨 상관인가 싶었다. 학교에서도 마땅히 화해할 기회가 생기지 않아 서로 보고도 못 본 척하며 어색하게 지냈다. 굳어버린 용암덩어리가 가슴팍에 꽉 막힌 듯 답답하기만 했다.

며칠 뒤, 체육시간에 줄넘기 마무리 수업으로 급수 시험을 보았다. 아이들이 우리에서 빠져나온 양떼처럼 우르르 운동장으로 달려 나갔다. 나는 그동안 줄넘기 연습을 열심히 했다. 이번만큼은 멋지게 해내서 지난 번 혜주에게 망신당한 일을 보상받고 싶었다. 하지만 다른 아이들도 열심히 연습한 모양이었다. 다들 폴짝폴짝 신이 나서 줄을 넘었다. 하도 잘하는 아이들이 많아서 슬그머니 주눅이 들었다.

나는 건호와 한 조가 되어 함께 시험을 보았다. 하필이면 같은 조라는 게 께름칙하긴 했지만, 건호를 이기고 싶은 마음 따위는 없었다. 오히려 건호랑 콩콩 뛰는 박자가 기막히게 딱 맞아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한 번씩 줄을 넘을 때마다 내 몸이 하늘로 올라갈 것처럼 가벼워졌다. 나는 4급을 받았고, 줄넘기를 잘하는 건호는 2급을 받았다. 그럭저럭 만족스러웠다. 내가 원래 욕심이 많은 편은 아니다.

수업이 끝나고 교실로 돌아가려고 몸을 돌렸을 때였다. 뒤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이선재!"

건호였다. 건호가 나에게 달려왔다.

"야, 너 끈 풀렸어. 발 줘 봐."

뜻밖의 건호의 말에 물끄러미 발을 내려다보았다. 왼쪽 운동화 끈이 풀어져 운동장 흙에 맥없이 끌리고 있었다. 건호가 쪼그려 앉아 내 운동화 끈을 묶어주었다. 나는 어쩔 줄을 모르고 서 있다가 건호 옆에 같이 쪼그려 앉았다.

"나 끈 묶는 거 배웠다! 잘하지?"

건호가 다부지게 매듭을 묶고는 나를 향해 환하게 웃었다. 건호의 눈빛에 갑자기 눈이 부시는 것 같았다.

"고마워."

우리는 함께 일어서서 교실로 달려갔다. 이번에는 건호를 이기고 싶었다. 건호가 나를 스치며 훌쩍 앞질러 가는데, 나도 있는 힘을 다해 건호를 잡으려고 뛰었다.

"건호야! 우리 집에 놀러와!"

운동장이 쩌렁쩌렁 울리게 큰소리로 외치면서 말이다. (끝)




  <당선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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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르르 아이들 웃음소리가 들린다. 무슨 일인가 싶어서 옆에 다가가 가만 귀를 기울여보면 참으로 별 게 아니다. 저게 뭐 그리 웃을 일이라고 배꼽을 잡을까. 그러다 문득 깨닫는다. 아무것도 아닌 일에 웃을 수 있는 아이들이 나보다 훨씬 큰 사람이라는 걸.

지난 한 해 아이들은 학교도, 놀이터도, 친구네 집도 편히 갈 수 없었다. 내내 마스크를 쓰고 있느라 친구들 웃는 낯도 제대로 보지 못했다. 어른들도 견디기 힘든 팍팍하고 고된 세상 속에서 해맑고 굳세게 성장하는 아이들이 대견하다. 칭찬 받아 마땅하다. 공부나 열심히 해라, 책이라도 한 줄 더 읽어라 다그쳤던 어리석음을 사과하고 싶다.

아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위로하는 글을 쓰겠다. 꼭 읽어주지 않아도 좋다. 까르르 웃고 노느라 책 읽을 시간이 없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잘 된 일이다. 심심하면 놀러오라고 책장만 활짝 펼쳐두겠다.

이 세상에 마법은 없다는 걸 뻔히 아는 나이가 되었어도, 혹시나 내 인생에 단 한번은 마법 같은 일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놓지 않았다. 그런 어수룩한 순진함 덕에 동화의 세계에 뻔뻔하게 발을 들이밀 수 있었나보다.

아이들에 대한 생생한 이야기를 아낌없이 전해주는 찬희와 재희, 응원해주는 남편에게 고맙다. 좀 더 글을 써보라고 고개를 끄덕여주신 매일신문 신춘문예 심사위원님께도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나는 지금부터 책가방에 하얀 종이와 몽당연필과 때 묻은 지우개를 담아 머나먼 길을 떠나겠다. 내가 가진 무기가 미천해도 나는 든든하다. 아이들이 까르르 웃으며 내 귓가에 어디로 가야할지 속삭여줄 테니까. 이제 출발이다.


  ● 1980년 서울 출생
  ● 덕성여대 의상학 전공


 

  <심사평>


  동화, 희망을 이야기하다


300편에 가까운 응모작들 가운데 끝까지 심사자의 손에 남은 작품은 5편이었다.

'나사소년 김민석'(정미선)은 상처를 안고 힘겹게 살아가는 아이들이 서로 이해하고 가까워지는 과정을 재미있는 소재를 동원하여 설득력 있게 그린 동화다. 문장이 질박함을 넘어 다소 거칠어 보이는 것이 흠이라면 흠이다.

'비누꽃'(박진희)은 탄탄한 서사의 틀을 갖춘 작품으로, 저마다 다른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이 서로 마음을 열고 힘을 모으는 모습을 애정 어린 눈길로 그려냈다. 사건 전개가 너무 '모범적'이어서 다음 대목을 쉽게 예상할 수 있는 건 장점일까, 약점일까.

'반창고'(오바다) 역시 비슷한 소재를 다룬 따스한 이야기이다. 글을 읽다 보면 온기를 전해주는 '목수건'과 상처를 감싸주는 '반창고'의 상징성에 주목하게 되는데, 사건 설정이 다소 작위에 흐른 점이 아쉬웠다.

'낮은 계단'(정유나)은 끝까지 당선작과 어깨를 겨룬 무게 있는 작품이다. 장애를 가진 주인공이 계단을 오르는 단 몇 분 동안 일어난 일을 한 편의 동화로 완성한 점부터 신선했다. 현재와 과거를 넘나드는 일인칭 시점의 서술도 밀도 있고 자연스러워 독자를 이야기 속으로 끌어당기는 힘이 느껴졌다. 완성도를 조금만 더 높였더라면 당선작으로도 손색이 없었을 것이다.

당선작으로 뽑힌 '우리 집에 놀러와'는 주제 형상화는 물론 구성과 문장에도 흠 잡을 곳이 거의 없는 수작이다. '일하는 부모'를 둔 요즘 아이들이 흔히 겪을 만한 소소한 일상을 '기승전결'의 완벽한 틀에 담아내어 만만찮은 감동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사건은 대단하달 것이 없고 등장인물도 단출하지만 이야기를 떠받치는 통찰의 무게는 결코 녹록하지 않다. 주인공 '선재'의 눈으로 자신은 물론 상대역인 '건호'의 미묘한 심리 변화까지 서두르지 않고 담담하게, 그러나 의도된 치밀함으로 개연성 있게 묘사한 데서 작가의 든든한 역량을 엿볼 수 있었다. 이번 당선이 작가에게는 더 큰 도약을 위한 출발점이 되기를 바라며, 작품 속 아이들이 보여준 아름다운 화해의 몸짓이 새해 우리 세상을 밝히는 희망의 화두가 되기를 또한 바란다.

심사위원 : 서정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