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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어머니, MRI / 이규원

 

 

미궁 속 당신의 뇌를 나는 전혀 모른다
아는 것은 낮은 코 주름진 눈 옅은 눈썹
쭈글한 얼굴이지만 팽팽했던 연륜 너머

도대체 뇌 속에 뭐가 몰래 스민걸까
보이고 싶지 않을 폐쇄성을 비춰보며
경색된 초미세 혈관 병변까지 들춰낸다

치명적인 과거는 소음 속에 분진 되고
멎을 듯한 들숨과 날숨 근육마저 경직되어
사십 분 그 시간 속이 이어질 듯 떨고있다

시상면矢狀面의 용종과 심란한 비린내
우지 마라 괘안타 살 만큼 살았으니
망望 구십, 턱 막혀버린 깊고 깊은 우물이다

 

 

  <당선소감>

 

   "아프고 힘든 이들 위해 좋은 작품 쓸게요"


  고향은 참으로 많은 사연을 안고서도 묵묵히 견딥니다. 눈물도 웃음도 고스란히 녹여내면서 의연하게 보내주고 맞이하기를 반복합니다. 평생 흙만 사랑하다 흙으로 돌아가신 형부의 영정에 합장하던 중 고향 진부에서 당선 전화를 받았습니다. 서정을 처음 잉태한 곳에서 출산의 소식까지 듣다니… 또다시, 고향은 제 눈가에 눈물이 채 마르기도 전에 커다란 기쁨을 선물하였습니다.

  부모님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았습니다. 내 일정하고는 상관없이 병원을 가셔야 했던 어머니가 때론 버겁기도 하였는데, 부모님은 내 모든 생활을 기쁨으로 승화시켜주는 지지자라는 것에 새삼 목이 메었습니다.

  제 시조 공부의 지침서가 되었던 ‘우리 시대 현대시조 100인선’ ‘현대시조 창작 강의’ 그리고 ‘시클’ 로 힘든 습작의 시간을 보내다가 경기대 한류대학원에서 시조창작을 공부한 것이 많은 힘이 되었습니다. 대학원 학우들, 시와 길 시우님들과 이 기쁨을 함께하고 싶습니다.

  곁에서 묵묵히 지켜보며 언제나 내 편인 짝꿍과 민선, 성진, 재선이 사랑합니다.

  75년여의 공명정대한 언론으로 정평이 나 있는 국제신문사에 당선되어 더 없이 영광입니다. 부족한 작품을 당선작으로 올려 주신 심사위원님들께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아프고 힘든 사람들을 위해 긴장과 절제의 정형 시조 작품으로 열심히 보답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1955년 강원도 평창군 진부 출생. 
● 경기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 경기대 한류대학원 시조창작 전공 석사. 
● 2020년 가람백일장 장원. 
● 시와길 동인.


 

  <심사평>

 

  

삶의 비의 환기하는 힘과 진정성에 감동

 

  심사하는 내내 상반된 긴장감에 휩싸이게 된다. 참신한 발상, 탄력 있는 구성 등을 살피는 매의 날카로운 눈과 작품 속 진실을 찾는 따뜻한 가슴이 팽팽하게 맞선다.

  430여 편의 응모작들은 대다수 우선 시조다운 형식과 운율을 제대로 갖추고 있어 전반적으로는 좋은 작품으로의 면모를 갖춘 듯이 보였다. 그러나 어딘지 기성시인의 작품에서 본 듯한 타성적인 작품, 이미 많이 다룬 내용, 개성이 없는 작품은 실망감과 함께 선외로 내려놓았다.

  꼼꼼히 정독하여 골라낸 20여 편을 다시 10편으로, 3차에서 ‘불야성’ ‘옷수선집, 누리’ ‘꽁치구이’ ‘다시, 동백꽃’ ‘어머니, MRI’다섯 편으로 엄선하였다.

  ‘불야성’은 밤 도시의 화려함에 숨겨진 사람살이의 이중성을 팽팽한 긴장감으로 그려내고 있다. ‘옷수선집, 누리’는 수선하듯 언어를 다듬어 꿰맨 솜씨가 유려하다. ‘꽁치구이’는 유머러스한 여유와 서정의 곡선이 잘 드러났다. ‘다시, 동백꽃’은 도입부의 흡인력과 전체적인 세련미가 돋보였다.

  이규원의 ‘어머니, MRI’는 절제된 감정, 관념어 없는 구체적 정황과 묘사로 자칫 빠지기 쉬운 ‘어머니’란 매너리즘을 훌쩍 뛰어넘는 우수한 작품이다. 삶의 비의를 환기해 내는 힘과 진정성으로 읽는 이에게 감동을 전한다. 또 다른 그의 작품 ‘은유의 방식’은 화자와 대상을 묵직한 붓으로 굵게 그리는가하면 그 간격을 세밀한 필치로 한 폭의 그림을 완성하고 있어 그의 작품에 믿음이 갔다.

  이규원의 ‘어머니, MRI’를 당선작으로 선정하는데 이의가 없었다. 이후 시조단의 활기찬 변화를 예감한다. 형식을 잘 지키지만 갇히지 않고, 음악성을 잃지 않는 시조다운 시조, 자신만의 개성이 담긴 시조가 새해엔 풍성하게 열리리라 기대한다.

  애석하게 당선이 유보된 분들에겐 계속 정진하시라 응원하며 당선자에겐 뜨거운 환호와 박수를 보낸다.

심사위원 : 이승은, 전연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