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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활어 / 황사라

 

속이 보이지 않는 것은 싱싱해요
벌려지지 않는 조개는 살아 있는 거래요

나를 단단히 여미고 싶을 땐 시장에 가요

횟집 옆 원단가게 사장님은
둘둘 말아 놓은 천을 풀어 보여주시는데
아득한 바다가 출렁대는 줄 알았어요

바위에 붙어 있는 게 굴만 있겠어요
저기 좌판 한 자리에 앉아 
수십 년 동안 곰피를 팔아 온 할머니
손등 위에 물결무늬가 깊게 새겨졌네요

흥정은 늘 미끄럽기 마련이지요
손 안의 물고기처럼
자칫하면 놓쳐버리고 말아요

하루하루 쳐지는 나의 감정도 
얼음조각으로 덮어 놓으면
조금 더 신선도를 유지할 수 있을까요

바위에 수없이 부딪치면서도
제자리를 찾아가는 파도
물길을 잃은 적이 한 번도 없다는데요

골목의 해류를 따라가다 보면
지느러미를 펄떡이는 물고기들 

나는 잊었던 기원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만 같아요


 

  <당선소감>

 

   -

  눈 내리는 ktx 안에서 등단 소식을 들었습니다. 무릎 위에 올려놓은 책이 자꾸 미끄러져 내려옵니다. 흘러온 시간을 거슬러 올라갑니다. 2016년 시를 처음 접했습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이듬해였지요. 제가 접한 시들은 예전에 알고 있던 시들이 아니었습니다. 시가 전해주는 의미와 감정의 결도 모른 채 수십 권의 시집을 필사했습니다. 그럴수록 시는 더욱더 혼미한 곳으로 저를 데리고 갔습니다. 불현듯 ‘시는 본래가 그런 것이다’라는 어디선가 본 글이 떠올랐습니다. 삶처럼 시도 그럴 수 있겠구나, 삶과 다를 바가 없겠구나라는 생각도 함께 들었습니다. 앞선 등단자분들께서 하신 말씀이 떠오릅니다. 등단은 시작일 뿐이라고. 오직 좋은 시를 쓰고 싶은 마음이 간절합니다. 

  이산 아카데미 길상호 선생님, 시클 하린 선생님, 걷는 사람 김성규 선생님, 박형준 교수님을 비롯한 동국예술대학원 교수님들, 시로 좋은 예시를 보여주신 많은 시인 선생님들, 감사합니다. 중대포엣, 블루버드 선생님들도 고맙습니다. 크리스티나, 필립보 네리, 너희들이 있어 엄마는 항상 웃을 수 있단다. 마지막으로 전북일보 심사위원 선생님께도 진심으로 감사 인사드립니다.  

● 익산 출생
● 동국예술대학원 문예창작과 졸업


 

  <심사평>

 

  어렵지 않고 자연스럽게 펼쳐 보인 시적 진정성

  이미지의 부조화와 언어표현의 부정교합으로 빚어내는 파격미 혹은 의외적 정서충격도 소통의 가능성을 전제로 했을 때 유의미하다. 투고한 많은 작품들이 새로움의 추구라는 강박에서 크게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다 보니 소통을 염두에 두지 않은 실험적 언어표현을 과도하게 구사한다든지 열린 언어 구조로 너무 많은 것을 독자의 몫으로 떠넘기는 경우를 본다. 의미맥락을 간추릴 수 없거나 일상적 의미맥락에서 너무 멀어진 경우가 많다.

  주제의 치우침 현상 때문에 예심을 넘어서지 못한 작품들이 많았다. 사회적인 주제를 직간접적으로 다루었을 때 변별력을 잃고 또한 상식을 넘어서는 개성을 찾기 어려웠다. 그리고 투고된 많은 작품들에서 산문화 경향이 뚜렷했다. 압축과 생략 그리고 비유를 통해 간접적으로 메시지를 드러내는 (혹은 감추어두는) 시의 언어적 속성을 가벼이 여기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긴 시간 고립된 생활방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이는 문장 특성도 자주 발견되었다. 고립된 시간을 견디며 혼자 읊조리는 독백형, 사변형의 문장들이 그것이다. 배출 혹은 배설과 다른 지점에서 씨 쓰기의 이유는 찾아져야 한다는 점에서 얼마간의 우려를 하기도 했다.  

  예심을 통과한 작품 가운데 마지막까지 논의의 대상이 된 작품은 '아보카도', '밀리터리룩의 이중성', '활어', '검은 고양이'다. 이 작품들과 함께 제출한 다른 작품도 참고하여 시인이 그의 시 세계를 계속하여 펼칠 수 있는 역량이 있는지도 가늠하였음을 미리 밝힌다.

  '아보카도'에서 견디기 힘든 폭염 속 시적화자는 “비닐하우스가 녹아내려 그 안에 자라고 있던 푸른 식물들이 다 타버릴지도 모를 날들”을 떠올린다. 우리가 직면한 위기를 환기한다는 점에서 시사적이다. 

  '밀리터리룩의 이중성'은 위선과 관능과 관음을 도덕으로 위장한 ‘이곳’(도시)에서 ‘그곳’으로의 이탈(혹은 일탈)하고자 하는 자유의지를 표현했다. 시의적절한 문제의식과 함께 많은 장점을 갖고 있음에도 단순 서사에 머물거나 설명적 요소가 강하여 형상화가 미흡하다거나 정서 수준으로 용해되지 못한 점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검은 고양이'는 빚어내는 이미지가 발랄하고 언어가 불러일으키는 상상이 흥미롭다는 점에서 눈이 오래 머물렀다. 하지만 그 이미지와 상상이 과잉된 측면이 있고 그 어떤 메시지로 수렴되기엔 부족한 면이 있다. 

  '활어'는 바닷가의 삶에서 읽어낸 활력과 긍정의 힘을 그려낸 작품이다. 어렵지 않은 표현으로 끌어가는 시의 흐름이 자연스럽고 안정감이 있다. 그가 펼치는 정서에 신뢰를 갖게 하는 노련함이 보인다. 서정성도 잃지 않고 있다. 그 어떤 섬광 같은 새로움이 아쉽지만 새로운 시도를 보여줄 역량을 충분히 감지할 수 있었다. 이의 없이 「활어」를 당선작으로 밀기로 하였다.

심사위원 : 김사인, 복효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