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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보스를 아십니까 / 김만성

  후계자 면접을 보러왔다는 젊은이가 구두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추위 때문인지 젊은이의 뺨이 유난히 붉었다. 나는 손짓으로 자리를 권하고는 찬찬히 젊은이를 바라보았다. 젊은이가 다시 일어나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

“면접 전에 자네 구두를 닦아주려는데 괜찮겠나?”

  비즈니스 정장을 입은 젊은이는 쭈뼛거리다가 구두를 벗어 건네주었다. 버클로 포인트를 준 슬립온 스타일이었다. 끈이 있는 옥스퍼드에 비해 캐주얼 하지만 정장에도 어울리는 구두였다. 대개 손님들의 구두에서는 쿰쿰한 발냄새가 나는데 그의 구두에서는 아로마 향이 풍겼다. 이질적인 향 때문인지 재채기가 나오려는 것을 가까스로 참았다. 구두를 뒤집어보니 굽 좌우가 비슷하게 닳아있다. 반듯한 걸음걸이를 가진 사람이구나 싶었다.

  나는 닦기통 위에 구두를 올리고 잠깐 숨을 골랐다. 광목천조각을 팽팽하게 당겨 검지와 중지에 감고 구두약을 듬뿍 묻혀 쓱쓱 닦아나갔다. 약이 가죽에 골고루 펴지게 솔로 여러 번 문질렀다. 약을 먹은 구두코가 광을 잃고 흐릿해졌다. 나는 한 짝을 젊은이 발 앞에 놓았다. 버클이 달깍 소리를 냈다. 다른 짝도 똑같이 약을 묻힌 후 나란히 놓았다. 젊은이는 광택이 사라진 구두를 바라보며 얼굴을 살짝 찡그렸다.

“약이 스며들려면 시간이 좀 걸리지. 너무 오래두면 굳어버리고, 너무 짧으면 약이 가죽에 스며들지 못해서 구두 광이 이틀을 못 넘어. 이게 타이밍이 중요해.”

  젊은이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발 앞에 놓인 구두를 다시 보았다. 세 평 남짓한 구둣방 안이 답답한지 간간이 심호흡을 했다. 찬바람을 막으려 문을 닫아놓은 구둣방 안은 아닌 게 아니라 휘발유와 구두약 냄새가 뒤섞여 탁하기 짝이 없었다.

  문을 약간 열었다. 열린 문틈으로 찬 공기가 스며들었다. 나는 마른 광목을 다시 팽팽히 손가락에 감고 물에 한번 적셨다가 구두코부터 원을 그리며 서서히 닦아나갔다. 손길을 따라 약을 먹어 흐릿하던 구두가 반짝이며 광이 나기 시작했다. 구두 옆면과 뒤축, 구두 굽까지 꼼꼼하게 문질렀다. 광은 정직해서 손길이 가면 갈수록 더 투명한 빛을 발산했다. 광에도 품격이 있었다. 너무 번쩍거리면 어딘지 가벼워보였고, 너무 무거우면 빛이 나지 않았다. 그 중간 쯤, 너무 번들거리지도 않고, 너무 무디지도 않은 그 중간 쯤, 딱 그 중간이 좋았다. 그 때쯤이면 내 손길이 멈췄다. 그 중간 어디쯤을 사람들에게 이해시키기란 어려웠다. 그건 순전이 그간의 미립으로 얻어진 광이었고, 그래야만 광이 은은하고 오래갔다. 그리고 경박하지 않았다.

  나는 말없이 젊은이의 발 앞에 다 닦은 구두를 가지런히 놓고 구두주걱을 내주었다. 젊은이는 눈이 부시다는 듯 실눈을 뜨며 호들갑을 떨었다.

“와우! 광이 정말 판타스틱 한데요!”

  젊은이는 구두를 신고 이리저리 살피다가 안주머니에서 서류를 꺼내 보이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저의 계획은 구두 타운을 짓는 겁니다.”

  젊은이의 목소리는 라디오 성우를 해도 손색없을 만큼 기름졌다. 가지런한 치아와 반듯한 이목구비는 텔레비전에 나온 아이돌가수를 보는 듯 했다.

“이게 그 설계도입니다. 1층엔 구두카페를 열고 앞 쪽에 현대식으로 지은 구둣방을 여러 개 만들 겁니다. 한쪽 공간에는 사장님의 흉상을 세워 그 정신을 기리겠습니다.”

  계속되는 말에 나는 젊은이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구둣방이 타운이 되려면 건물을 지어야 하는데 그러면 이 거리를 벗어나겠다는 건가?”

“벗어나다니요? 여기는 사장님의 혼이 밴 곳인데 벗어나면 안 되지요.”

“그럼 어떻게 한단 말인가?”

  나는 궁금하다는 듯이 고개를 치켜들면서 젊은이의 대답을 기다렸다.

“바로 저기, 저 옆 건물을 사서 1층에 구두카페와 현대식 구둣방을 만들고 나머지 공간은 임대할 계획입니다. 사장님의 이 구둣방은 이대로 보존해서 전시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구두카페에서는 구두를 닦은 사람들에게 음료를 50% 할인한 가격으로 서비스할겁니다.”

  젊은이의 어투가 자신에 넘쳤다.

“구둣방을 보존한다? 구두는 자네가 직접 닦으려나?”

  미세하게 움직이는 얼굴 근육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나는 그를 찬찬히 바라봤다. 젊은이는 내 시선을 당당히 받아내며 대답했다.

“아닙니다. 저는 총괄 경영을 하고, 구두를 잘 닦는 사람을 공개채용하려고 합니다.”

“이 거리가 옛날에는 번화가였지만 관공서와 금융사가 다 이전하면서 지금은 구도심이 되어버렸네. 쇠퇴하고 있다는 말이지. 구두타운을 현대식으로 짓고 사람을 여러 명 채용하면 수지가 맞겠는가? 그리고 요즘 구두를 닦을만한 사람을 여러 명 구할 수 있을까?”

“단순히 구두만 닦는 곳이 아니고, 관광 명소로 만들 겁니다. 구둣방이 구두타운이 되는 역사를 사람들이 얼마나 흥미로워 하겠습니까. 직업에는 귀천이 없고, 아무리 작은 구둣방에서도 성실하고 끈기 있게 일하면 백만장자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자발적으로 기술을 배우겠다고 오는 사람도 있을 것으로 저는 확신합니다.”

  젊은이는 결의에 찬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물기를 머금은 눈매가 선했다. 패기와 자신감만으로 치면 그동안 만났던 다른 지원자와는 확연히 달랐다. 대학을 갓 졸업이나 했을까. 구두타운과 카페에 관광이라니 가히 파격적이다. 젊은이들이 취업난에 허덕여 나약해졌다는 말은 적어도 이 친구에겐 예외일 것 같았다.

“나는 흉상이니, 정신이니 이런 것에는 관심이 없네. 자네가 나의 후계자가 된다면 내가 가진 돈을 어떻게 쓸 것인지가 중요하지. 건물을 사고 구두타운을 열어도 내 보기엔 돈이 꽤나 남을 것 같은데.”

  나는 그에게서 시선을 거두어들이고는 합판으로 짜 만든 손님용 의자 밑에서 헌 신발 한 켤레를 꺼냈다. 오래전, 아주 오래전, 한 노신사가 맡기고 간 옥스퍼드 구두였다. 붉은 빛이 도는 갈색의 가죽 구두는 잘 닦여 반짝거렸다. 주인의 발 모양대로 늘어진 구두였지만 바로 신어도 손색이 없을 만큼 멀쩡한 상태였다. 노신사는 구두를 맡기고 나서 찾으러 오지 않았다. 그가 어쩌면 세상을 떴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어느 날 불쑥 구두를 찾으러 올까봐 계속 보관하던 터였다.

  신는 사람의 습성대로 구두는 낡아가고 변형된다. 그러기에 구두는 사람을 닮는다. 이 구두는 노신사를 닮아 낡아도 정갈하고 말끔했다.

“이 구두가 어떤가. 누가 신었을 것 같은가?”

  젊은이는 갑작스런 나의 질문에 난감한 표정으로 한참동안 구두를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대답했다.

“이 구두에 대한 답을 하라는 건가요? 아니면 사업계획에 대한 질문이신지?”

“허허! 둘 다일세.”

  젊은이는 안도한 표정으로 다시 자신감에 넘치는 어투로 얘기를 계속했다.

“먼저, 사업계획에 대해서 더 말씀 드리겠습니다. 구두 타운은 사장님 이름을 딴 재단법인이 될 것입니다. 노벨상이라고 사장님도 들어보셨죠. 남은 자금은 재단법인에 출연해서 노벨상처럼 지속적인 사업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노벨상처럼 받는 것만으로도 가문의 영광인 그런 상을 만들어 사장님의 성공을 많은 사람들이 본받도록 할 생각입니다.”

“허허허! 노벨상까지. 너무 과한 말일세.”

  노벨상을 들먹이는 젊은이의 상찬에 나는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젊은이가 다시 노신사의 구두를 집어 들고 한 참을 이리저리 돌려보더니 다시 제 자리로 내려놓았다.

“이 구두는 겉은 멀쩡한데, 너무 오래되어 신을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전시용이 아니라면 새 구두가 필요해 보입니다.”

“새 구두가 필요해 보인다? 헌데 말일세, 어떤 사람들은 새 구두는 발이 아프다며 일부러 헌 구두만 골라 신는 사람도 있다네.”

“그래도 이 구두는 너무 낡았습니다. 새 구두가 잠깐은 발이 아플지 몰라도 금방 길이 들고, 시대에 맞는 디자인과 빛깔로 교체되는 것이 대세입니다. 이런 구두를 신고 나갔다간 이상한 눈초리를 받을게 뻔합니다.”

  나는 일단 이 젊은이를 최종후보자로 올리기로 했다. 부동산 투기를 하겠다는 것이 아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계획이 좀 허망해 보이기도 하지만 돈을 죽이는 게 아니라 살릴 수 있는 가능성이 보였다.

“그런데 합격자는 언제 발표하실 건가요?”

“허허, 급하기는, 일단 돌아가서 기다리게. 합격이든 불합격이든 내 조만간 자네 구두를 한 번 더 닦아주겠네.”

  젊은이의 안색이 금방 어둡게 변했다. 구둣방을 나가다가 고개를 돌려, 구두미용비를 내야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구두미용비라는 말이 신선하게 들렸다.

“요즘 대기업에선 면접비를 준다고 하던데 면접비라고 생각하게나. 허허”

  그가 허리를 깊이 굽혀 인사를 했다. 나는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그동안 스물다섯 명이 면접을 치렀다. 연령층도 다양했다. 40억 원의 잔고가 찍힌 통장을 내걸고 구둣방의 후계자를 구한다는 광고를 신문에 낸 지 한 달이 지났다. 처음에는 장난 전화가 걸려오다가 신문에 기사가 나가자 면접자가 몰려들었다.

  후계자 면접과는 별개로 40억 원을 어떻게 벌었냐며 비결을 묻는 이도 많았다. 지원자 중에서는 40억 원으로 빌딩임대업을 해서 자산을 늘리겠다는 치들이 다수였다. 구둣방에서 구두를 직접 닦는다는 한 사내는 동종업계의 경험이 중요하지 않겠느냐며 자기를 후계자로 뽑아달라고 말했다. 그 사이 내 호칭은 고 씨나 아저씨에서 사장님으로 바뀌더니 어느 사이엔가 회장으로 승격이 돼 있었다. 회장님으로 초고속 승진을 했지만 그만큼 씁쓸했다.

  광고와 기사를 본 단골손님들은 구두를 닦으러 와서 쭈뼛거리며 내 행색을 살폈다. 조심스럽게 정말 후계자를 구하는 것이 맞느냐고 묻기도 했다. 나는 그저 조용히 웃으며 구두를 좀 더 성심껏 닦았다. 그동안 오전과 오후 한 차례씩 빌딩을 돌며 구두를 수거했다. 그런 수고를 덜어주겠다며 손님들이 구두를 직접 들고 찾아오기도 했다. 후계자를 구하면 더 이상 얼굴을 못 보는 것 아니냐며 아쉬워하는 이도 있었다. 복지기금을 운영하는 이사장은 넌지시 자기 단체에 기부하는 것은 어떻겠냐며 한 번도 이야기 하지 않던 복지재단의 구제사업과 장학사업에 대해 세세히 알려주기까지 했다. 갑자기 달라진 사람들의 태도와 관심에 피곤하다면 피곤했고 바쁘다면 바빴다.

  그 사이 구둣방 안의 텔레비전과 라디오는 번갈아가며 한 재벌회사가 후계구도를 완성하기 위해 비상장회사를 상장하여 상속세 재원을 만들었다는 뉴스를 내보냈다. 또 다른 재벌회사에서는 형제간 후계싸움이 벌어지고 있다는 뉴스도 뒤를 이었다. 그런 뉴스가 들릴 때마다 기다리는 손님들의 입에서 쌍소리가 났다. 며칠 후 신문에는 재벌그룹의 후계싸움을 분석한 기사 사이로 조그맣게 나에 관한 기사가 나왔다.

‘이색 후계자 공개 모집-50년 구두닦이, 외길로 번 돈 40억 원 어떻게 쓸 것인지 면접!’

“이거 사장님 이야기 맞지요?”

  신문의 기사를 가리키며 한 손님이 추궁하듯 말했다. 나는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은 채 건성으로 신문을 훑어보고는 닦던 구두를 계속 닦았다.

“이야. 알고 보니 사장님 엄청난 부자시네. 40억이라니. 갑자기 땅이 솟구칠 일이네.”

  손님은 신문에 실려 있는 기사의 다음 구절을 소리 내어 읽었다. 나와는 전혀 무관한 이야기처럼 들렸다. 활자로 세상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순간, 그 이야기들은 부풀려지고 왜곡돼서는 더 이상 내이야기가 아니었다. 그저 나는 오로지, 이 구둣방을 물려줄 누군가가 필요했다.

  내가 처음부터 후계자를 구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다. 얼마 전 겨울이 봄으로 바뀌면서 심한 몸살감기가 찾아왔다. 수시로 열기와 한기가 갈마들더니 종내는 기력이 달려서 도저히 구두를 닦을 수 없었다. 오후 6시가 되기 전에 구둣방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3월로 접어든 거리는 아직 스산하고도 쌀쌀했다. 51년간 사용한 손때 묻은 열쇠로 구둣방의 문을 잠그고 허리를 드는데 선뜩한 바람줄기가 바짓단을 타고 쑥 들어왔다. 한기가 들었다. 나는 그만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눈을 떠보니 병원이었다. 구둣방 앞 화장품대리점 여사장이 걱정스런 눈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내가 깬 것을 보고 여사장이 두 손으로 내 왼손을 덥석 잡더니 호들갑스럽게 말했다.

“어머나 아저씨 살아나셨네.”

  여사장이 움직일 때마다 향수냄새가 진하게 풍겼다. 암전된 세상처럼 잠깐 정신을 놓쳤다 차린 나에게 그 향수냄새는 다른 때 같지 않게 생의 향기처럼 느껴졌다. 본능적으로 그 향을 따라 고개가 돌아가기까지 했다.

“무슨 일이 생긴 줄 알고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세요? 어디다 연락해야 되는지도 모르겠고, 급하게 내가 보호자라고 하긴 했지만, 아휴. 생각 만해도 가슴이 다 철렁하네요.”

  그 소리가 마치 내가 행여 깨어나지 못하면 그 이후의 일까지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하지 않을까, 적이 부담스러웠다는 고백으로 들렸다. 왼손은 여전히 여사장의 두 손에 잡혀있었다. 생각보다 손이 억셌다. 억셌지만 따뜻했고, 억센 만큼 또 든든했다.

“그러게. 일밖에 모르시더니. 내 이럴 줄 알았어요. 살아나신 것이 기적이라니까요”

  살아났다는 말이 그처럼 생소하게 들린 적이 없었다. 왠지 그렇게 살아난 것이 기적이라고 호들갑을 떠는 여사장의 말이 서운하게도 들렸다. 안도감과 걱정이 교차된 목소리였지만 내겐 마치 죽어야 할 사람이 살아났다는 핀잔처럼 들려 나도 모르게 퉁을 놓고 말았다.

“내가 언제 죽었나?”

  아차, 싶어 여사장의 표정을 살폈다. 그녀가 행여 들었을까봐 민망하고 미안했다. 다행히 목소리가 크지 않아 그녀는 듣지 못한 듯 했다. 내 안에서 공명하다가 사그라지는 목소리에 나는 죽음이 내 곁에 가까이 다가왔음을 느꼈다. 그것은 어느 날 조용히 내게 다가와 속삭일 것만 같았다. 그만 이제 가자고…. 그렇게 가버리고 나면 구둣방만 덩그러니 남을 것이다. 모든 건물들이 사라지고 거리에 구둣방만 홀로 남아있는 모습이 환상처럼 떠올랐다. 사각형 컨테이너 구둣방은 이내 하늘로 둥둥 떠올랐다. 구둣방 안에는 수의를 입은 젊은 내가 눈을 감은 채 의자에 앉아 있었다. 나는 생각을 떨쳐 내려고 고개를 흔들었다. 알 수 없는 조급증이 일었다.

  그 조급증은 처음 구두통을 짊어졌던 어린 시절로 나를 데려갔다. 그 전의 기억은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보려 해도 사라진 기억들을 되살릴 수 없었고, 나는 주사위 게임의 주사위처럼 어느 거리에 던져져 있었다.

  구두통을 멘 나는 구둣방이 있는 거리에 서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그런 기억이 있을까. 나를 낳은 부모도 있을 것이고 형제도 있을 것인데 혼자서 구두통을 메고, 벙거지 털모자를 쓰고, 얼굴엔 땟국이 흐르고, 팔꿈치가 해져 솜이 비집고 나온 점퍼를 걸치고는 거리에 홀로 서 있다니. 게다가 나는 열 한두 살쯤으로 보이는 소년의 얼굴이었다.

  곧바로 보스의 지청구가 귀를 때렸다.

“인마야. 얼른 구두 거둬 안 오나. 그래갖고 어디 밥 묵고 살겄나. 싸게싸게 움직이그라.”

  나는 고층 건물을 뛰어다니며 구두를 모아오고 광나게 닦인 구두를 다시 사무실로 바쁘게 날랐다. 한바탕 수선스러움이 지나고 나면 구둣방 안에서 보스와 쪼그리고 앉아 배달음식으로 늦은 점심을 먹었다.

“구두약이 시커멓지만 서도, 이기 마 광이 나는 거 아이가. 우리는 새카만 것을 광으로 만드는 사람인기라. 니도 광나는 것 안 좋나?”

“지는 배 부르는 기 좋심더.”

  보스는 자장면을 한 볼테기 머금은 나의 뒤통수를 사정없이 갈겼다. 하지만 재빨리 입을 다물어 면발은 튀어나가지 않았다. 나는 아랑곳 않고 후루룩 면발을 빨아들였다.

“인마야. 배 부르는 기는 암 것도 아닌 기라. 구두닦이가 마 광에 살고 광에 죽겠다는 맴이 없으면 이 짓 마 절대 못한다. 니는 마 고만 처먹고 광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그라.”

  그 후 내 삶은 세 평 남짓한 구둣방 안에서만 흘렀다. 그 기억이 전부였다. 정부의 거리 미화정책으로 두 평의 구둣방이 구두미화센터라는 간판을 달고 세 평 정도로 넓어진 게 변화라면 변화였다. 내 삶이 두 평에서 세 평으로 넓어진 사이 나는 조금씩 키가 자랐고, 나이도 들었다.

  구둣방은 구두를 신은 온갖 사람이 들고났다. 그만큼 많은 정보가 내게 전해졌다. 은행원과 증권맨, 부동산 중개사에게서는 투자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고, 공무원들은 나라 돌아가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선거철이면 구둣방에 오는 손님들 이야기를 통해 어느 당이 이길 건지, 그리고 국회의원은 누가 될지 감을 잡을 수 있었다. 나는 한 곳에 자리를 지키고 앉아 구두를 닦았고 사람들은 이야기들을 가져와 내게 부려놓았다. 가끔 고급정보라는 판단이 서면 금융상품을 샀고 부동산 투자도 했다. 은행잔고가 조금씩 쌓이더니 꾸준히 늘었다. 구둣방이 세상의 전부인 내게는 돈을 벌어봐야 특별히 쓸 곳도 없었다. 들어오는 돈은 있고, 나가는 돈이 없으니 돈은 모이기만 했다. 한 번 들어온 돈은 구를 때마다 눈덩이를 굴리는 것처럼 덩치가 커졌다.

  구둣방에 오면 가장 먼저 텔레비전과 라디오를 켰고 문을 닫을 때 껐다. 방송에서는 총 맞아 죽은 대통령 소식부터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대통령의 탄핵과 북한의 젊은 지도자와 정상회담을 추진한 대통령의 소식을 전해 주었다. 최근에는 검찰총장을 하던 사람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는 뉴스가 나왔다. 그 사이 수명이 다한 텔레비전과 라디오를 한 번 새로 바꿨을 뿐이었다. 한동안 돈 많은 재벌 회장이 심장마비로 쓰러졌다는 뉴스가 자주 들렸다. 그 사람이 죽기 전에 후계구도를 완성해야 한다며 한바탕 난리가 났다. 전문가들이 방송에 나와 증여와 상속의 유·불리를 따졌다. 죽음보다는 돈 이야기가 많았다. 곧이어 늙은 아버지를 사이에 놓고 형제간 후계싸움을 하는 또 다른 재벌 이야기도 나왔다. 뒤이어 재벌 아버지가 죽자 남매간에 경영권 다툼이 벌어진 기업의 얘기로 떠들썩했다. 뉴스를 들으며 물려준다는 것은 곧 싸운다는 것과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등식이 왜 성립하는지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후계자들 간의 유리한 것과 불리한 것을 설명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내게는 아주 낯설었다.

  재벌들의 상속뉴스가 요란하던 어느 날 방송국 기자가 나를 찾아왔다.

“사장님! 후계자를 구한다는 기사를 보고 취재차 나왔습니다.”

  깔끔하게 정장을 차려입은 여자였다. 바로 뒤로 카메라가 불쑥 따라 들어왔다. 나는 여자의 구두부터 보았다. 통굽의 하이힐을 신고 있었다. 광택이 없고 벨벳 같은 표면으로 보아 스웨이드 소재로 만든 구두였다. 스웨이드 구두는 여간해서는 간수하는 게 쉽지 않았다. 물에 약하고, 오염을 제 때 제거하지 않으면 금방 곰팡이가 번식해 냄새가 났다. 여자의 구두는 새 것처럼 자잘한 보풀이 잘 살아 있었다. 구두에서 정갈한 여자의 성격이 보였다. 베이지색 정장바지에 광택 없는 스웨이드 구두는 썩 어울렸다. 비로소 고개를 들어 여자를 바라보았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40억 원을 걸고 후계자를 구하고 있다는 내용에 대해서 인터뷰를 하고 싶습니다.”

  그동안 만난 기자들은 당연히 내가 인터뷰를 할 것이라 여기고 불쑥 마이크나 녹음기부터 들이 밀었다. 그런데 여자는 내게 조심스런 태도로 동의를 먼저 구했다. 내가 아무 말이 없자 여자가 고개를 깊이 숙여 인사를 건넸다. 나도 목례로 답하고 여자에게 앉으라는 손짓을 했다. 카메라 렌즈 위에서 붉은 빛이 깜빡거렸다.

“일단 구두를 좀 벗어 주겠소?”

  여자가 잠시 망설이더니 미소를 머금고 구두를 벗었다.

“스웨이드군요. 관리를 아주 잘 했네요.”

“어머, 금방 알아보시네요. 방송국 근처의 구둣방에 종종 맡기거든요.”

“허허, 아가씨는 좋은 구둣방을 만난 것 같소. 솜씨가 아주 깔끔합니다.”

  여자가 명함을 건넸다. 내게는 생소한 방송국의 경제부 기자라고 찍혀 있었다. 여자는 가족이 없느냐고 물었다. 거액의 유산이라면 가족에게 물려주면 될 텐데 공개적으로 후계자를 구한다니 좀 이상하다고 덧붙였다. 나는 결혼을 하지 않았고 가족 또한 없다고 말했다. 여자가 나를 유심히 쳐다보더니 불현 듯 외롭지 않느냐고 물었다. 기자로서 묻는 질문치고는 느닷없었지만 나는 그 물음에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잠깐 침묵이 흐르는 사이 나는 정말 외로움을 느꼈다. 그것이 딱히 외로움인지 정확하지 않았지만 한 사람이 그리웠다. 나는 천천히 의자에서 일어나 닦아놓은 구두를 꺼내 신었다. 한발 앞으로 나서면서 기자에게 물었다.

“내 양복과 구두가 어째 잘 어울리는 것 같소?”

  여자는 카메라에 손짓을 했다. 구두를 찍으라는 신호인 것 같았다. 여자가 내 질문에 답을 하지 않고 구두닦이가 웬 양복에 구두냐고 되묻는 듯 의아한 시선으로 나를 보았다. 나는 양복 입은 보스를 떠올렸다. 내게 양복을 선물하겠다고 약속한 보스였다. 그의 이목구비는 기억이 아스라했지만 양복에 구두를 신은 그의 실루엣은 뚜렷했다.

  보스는 큰 키에 호리호리한 체격이었다. 말하기를 좋아했고 목소리가 컸다. 구둣방에 오는 손님들과 얘기하는 것을 즐겼다. 손은 쉬지 않고 구두를 닦으면서 입 또한 놀지 않았다. 손님에게 묻고 또 물었다. 손님이 무엇이라도 질문하면 신나게 대답했다. 손님이 없을 때는 내게 말을 걸었다. 그 수많은 말들이 도대체 어떤 내용이었을까. 그건 기억에 없다. 다만 떠벌이기 좋아하는 보스 곁에는 역시 무엇인가를 말하려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딱히 구두를 닦을 일이 없는데도 구둣방에 찾아와 수다를 떨다가는 사람도 있었다.

  보스는 낮에는 구두를 닦고 밤에는 반짝이게 닦아놓은 손님의 구두 중에서 제일 값비싼 것을 골라 신고 색주가에서 밤새도록 술을 마셨다. 사실은 술이 마시고 싶어서라기보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 색주가로 간 것 같았다. 말하고 술 마시고, 술 마시고 말했다. 색주가의 색시들은 보스의 말을 끊지 않고 잘 들어주었다. 말이 많기로는 보스나 색주가의 색시들이나 서로 뒤지지 않았다. 보스는 구둣방에 들고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했고, 색시들은 색주가를 들고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했다. 웃고 욕하고 비난하고 칭찬했다. 그런 날이면 보스는 어김없이 술독에 빠졌고 다음 날 늦어서야 구둣방에 나오곤 했다.

  단골손님이 많아지면서 보스의 색싯집 출입도 잦아졌다. 그만큼 자주 결근했다. 나는 보스가 어디에 사는지 가족이 누구인지 몰랐다. 그저 구둣방으로 출근해 건물을 돌며 구두를 가져오고, 보스가 없는 날이면 서툰 솜씨로 쉴 새 없이 직접 구두를 닦았다. 구둣방 바구니에 돈이 가득 찰 때쯤엔 보스가 나타나 돈을 가져갔다. 한 번은 색시를 데려오기도 했다. 색시는 짧은 치마를 입고 구두를 신은 채 구두 통 위로 다리를 올렸다. 치마가 걷혀 올라가자 허벅지 사이로 빨간 꽃무늬 팬티가 빤히 내비쳤다.

“삐까번쩍하게 한번 닦아 봐.”

  보스는 아이라며 놀리지 말라고 했지만 색시는 키득거리며 다리를 더 높이 들었다. 나는 눈을 치켜뜨다 말고 더 이상 위를 쳐다보지 못하고 구두를 닦았다. 그녀의 발등에 구두약을 칠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그녀는 내 머리카락을 흩트리며 깔깔거렸다. 보스가 나타나지 않을 때는 가끔씩 그녀가 나타나 보스의 심부름이라며 돈을 가져가기도 했다. 보스가 내게 이 구둣방을 넘겨 줄 수도 있으니 열심히 일하라고 그녀는 말했다. 그 말을 믿지는 않았지만 보스가 있든 없든 나는 열심히 일했다. 구두를 닦는 것이 재미있었고, 특히 구두에 광을 내는 일이 즐거웠다. 그것이 보스와 나의 공통점이었다. 보스는 종종 광을 낸 구두코에 자신의 얼굴을 비쳐보곤 했다. 내 얼굴도 비쳐보라고 했다. 거울처럼 선명하게 얼굴이 비치면 구두가 잘 닦인 거라고 했다. 구두코만이 아니었다. 구두 옆, 앞, 뒤 굽까지 보스는 구석구석 문지르고 비볐다. 어쩔 땐 무슨 숙명처럼 광이 날 때까지 집중했다. 땀방울이 광 난 구두코에 똑 떨어져 또르르 굴러 떨어지는 때도 있었다. 그런 보스를 볼 때 나는 뭔지 모르는 숙연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술독에 빠져서 구두를 닦을 수 없는 날들이 많아지자 보스는 본격적으로 내게 구두 닦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부터 그는 구둣방에 나타나지 않았다. 하루 이틀 사흘이 지나도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런 날이 1년이 지나고, 10년이 지나고 50년이 지났다. 그 색시랑 야반도주라도 한 것일까. 고백하자면 이 세평 남짓한 구둣방의 주인은 그러니까 보스였다. 거리를 떠도는 나를 구둣방으로 데리고 와서 밥을 사주고, 달 방을 얻어주고 구두 닦는 법을 가르쳐 주었던 보스가 내게 물려준 것이었다. 물려준다는 말은 없었지만 나를 구둣방에 두고 그가 사라져 버렸으니 자연스레 내가 맡은 격이었다. 그가 주인이었고 나는 종업원이었다. 종업원이 구둣방을 물려받았으니 기업으로 치면 나는 전문경영인쯤이나 될까. 그런 생각을 할 때면 괜히 어깨가 으쓱거려졌다. 처음엔 그를 기다렸다. 어디서 술에 빠져, 색시에 빠져 숱한 말을 쏟아내며 외로움을 달래고 있겠지만 언젠가 나타나리라 믿었다. 구둣방을 잘 지키면 보스가 나타나 어따 이노므 자슥 잘 꾸려놨네, 하고 칭찬해주기를 기다리던 세월이 흘렀다. 나는 언제부터 그 보스를 잊어버렸을까. 스스로 내 인생의 보스가 되어주겠노라며 자신을 보스로 부르라던 그였다. 그가 보고 싶었다. 나에게 가족이라고 한다면 보스를 빼고는 누구도 없었다.

  보스가 색주가를 드나들면서 술에 절어 구두를 닦아놓지 못한 날이면 이른 아침 구두를 찾으러 온 손님들이 엄청나게 화를 냈다. 그날은 덩달아 나도 손님에게 혼이 났다. 그런 날이 반복되자 보스는 내 손을 잡아끌어 자기 곁에 앉혔다. 구두 통 위에 구두 한 짝을 올리더니 침을 연거푸 뱉으며 잘 보라며 큰 목소리로 말했다.

“이기 마 더럽다고 하는 치들도 있지만 서도 구두는 마, 침으로 닦아야 광이 잘 나는 기라.”

  정말로 손님들 중에는 꼭 침으로만 광을 내달라고 말하는 이가 많았다. 다만 구두 안으로 침이 들어가지만 않게 하라는 당부를 했다. 보스는 구두가 많이 밀릴 때면 침이 고이지 않는다며 투덜거렸다. 그러다 좋은 생각이 났다며 사발 하나를 내게 내밀었다.

“입에 침이 고일 때마다 여그에 뱉그라 잉.”

  내게 일이 하나 더 생겨났다. 건물을 오르내리며 구두를 모아오는 일과 침을 모으는 일. 나는 가끔씩 내가 아는 단골손님들에게도 침을 뱉어 달라고 했다. 어느새 침으로 구두를 닦는 보스의 구둣방은 광을 가장 잘 내는 구둣방으로 소문이 났다. 거리에 구둣방이 서너 개 있었지만 보스에게 단골손님이 제일 많았다. 어떤 손님은 보스에게 구두를 닦으면 광이 오래가는데 다른 곳은 그렇지 않다고 불평했다. 보스는 더 신이 나서 침을 뱉어가며 손을 재게 놀렸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침으로 구두를 닦는 게 무슨 특별한 비법일 수는 없었다. 다만 침의 점액성분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구두를 문지르는 횟수가 많아진 것이 다른 점이긴 했다. 그만큼 광이 더 잘 났던 것이다.

  보스는 말끔한 양복을 입고 구두를 닦았다. 넥타이까지 반듯하게 맨 차림에 반짝거리는 구두를 신고 침을 퉤퉤 뱉어가며 구두를 닦는 모습이 어린 내게는 그렇게 멋져 보일 수 없었다. 양복 입은 그에게 엄지를 치켜 올리는 사람도 더러 있었다. 보스가 구두를 닦으며 말하곤 했다.

“구두란 말이여. 잘 안 보이는 것 같지만 남자를 가장 앗싸리하게 맨드는 악세사리인기라. 구두가 지저분한 사람치고 잘나가는 사람 절대 없다. 삐까번쩍하더란 말 들어 봤제. 사람이 삐까번쩍하려면 반짝반짝 광나는 구두가 기본인기라.”

  그러다 침을 퉤 뱉으며 또 말했다. 뱉어진 침이 구두에 퍼지고 광목천이 지날 때마다 광은 더 살아났다.

“인마야! 니도 마 내가 양복 한 벌 사 주꾸마. 구두닦이가 양복을 입지 않으면 구두의 참 맛을 알 수가 없는 기라. 앞으론 구두를 닦고 나서 꼭 신어 보그래. 광이 양복 바짓단 밑에서 번쩍번쩍 살아나지 않으면 마 구두 다시 닦아야 하는 기라.”

  보스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양복을 사준다는 말에는 귀가 번쩍 띄었다. 결국 보스는 양복을 사주지 못하고 사라졌으나 구두를 닦고 나서 신어볼 때면 보스가 한 말을 어렴풋이 이해할 것 같았다. 대부분 검은색이거나 밤색인 구두빛깔은 어둠을 담고서도 비까번쩍하게 빛을 발하며 양복바지 밑에서 스스로 존재감을 과시했다. 간혹 구두를 신지 않고 양복에 운동화를 신은 사람이 구둣방 앞을 지나갔다. 그걸 보고 보스는 혀를 끌끌 찼다. 나도 따라 혀를 찼다.

“구두와 양복은 세트인기라. 세트!”

  보스는 힘주어 말하며 구둣솔을 더 힘껏 문질렀다. 광으로 번들거리는 구두를 바라보는 보스의 눈빛은 구두코에 비친 백열전등만큼이나 반짝였다.

“양복을 받쳐주지 못하는 신발은 이미 신발이 아닌 기라. 양복에는 삐까번쩍한 구두라야만 제격인 게지.”

  나는 그때 구두와 양복이 세트라는 말을 이해했다. 양복만 입었다고 신사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양복에 걸맞은 광나는 구두를 신었을 때라야 비로소 신사가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나는 보스를 언제부터 기다리지 않게 된 것일까. 그리고 왜 그를 기억에서 잃어버렸을까. 내안에 어쩌면 보스가 영원히 나타나주지 않기를 바라는 욕망이 자라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맹세컨대 그런 마음을 가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자연스레, 정말 자연스레 내가 보스를 닮아가면서 그를 기억에서 잃어버린 것이라 해야 옳다. 손님들이 그랬다. 내가 보스처럼 양복을 입고 구두 닦는 것을 보고는 배우긴 제대로 배웠다고 했다. 한 가지 다른 것이 있다면 나는 보스처럼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 말을 하지 않다보니 손님들이 내게 말을 걸었다. 보스는 말하고 또 말했으나 나는 듣고 또 들었다. 변하지 않은 것은 구둣방에 언제나 얘기가 넘쳐났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쉬지 않고 드나드는 구둣방. 얘기가 넘쳐나는 구둣방. 보스가 내게 물려준 위대한 유산이었다.

  재벌회장이 위독하다는 뉴스가 자주 들렸다. 그 때마다 구둣방에 들른 회사원들 입에서 주가에 대한 정보가 춤을 췄다.

“하, 고마 회장 목심이 우리를 들었다 놨다 하는구먼.”

  그들은 기업지배구조개선주라 불리는 테마주에 투자했다고 말했다. 회장이 위독하다고 하면 주가가 껑충 뛰었고, 건강이 호전되었다 하면 주가는 곤두박질 쳤다. 회사원들이 구두를 닦을 때마다 재벌 회장은 수십 번도 더 죽어야 했으나 죽었다는 뉴스는 끝내 나오지 않았다. 그사이 재벌그룹은 지배구조개선을 위해 연일 다른 뉴스를 쏟아냈다. 주요 계열사를 합병하고, 어떤 회사는 팔았다. 정말로 무슨 구조를 바꾸긴 바꿀 모양이었다. 회장이 죽었는데 발표를 하지 않는다는 루머도 돌았다. 결국 굴지의 그룹은 회장 사후의 후계구도를 완성하기 위해 그룹의 맨 정점에 있다는 비상장 회사를 상장하는데 성공했다. 순식간에 엄청난 상장차익이 발생했다는 보도가 줄을 이었다. 그렇게 한 바탕 회오리처럼 재벌그룹의 후계구도가 완성되고 막을 내렸다. 나는 뉴스를 들으면서 재벌그룹에서는 후계자에게 무엇을 물려주는 것인지 궁금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재벌그룹의 후계구도는 간간히 뉴스에 오르다가 이내 다른 뉴스에 묻혔다.

  어쩌면 후계구도라는 말이 내 맘을 움직인 것인지도 몰랐다. 내게 보스는 구둣방을 물려주었고 구두 닦는 법을 물려주었다. 비까번쩍한 구두에 대해서도 말해줬다. 구두와 양복이 세트여야 한다고도 각인시켰다. 광에 미쳐야 한다고도 했다. 나는 보스가 어쩌면 아직까지 어딘가에 살아 있어 나를 지켜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 색시와 살림을 차리고, 아이를 낳고, 더 이상 구두를 닦지 않아도 되는 직업을 가졌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래서 한번은 꼭 만나고 싶었다. 후계자를 구한다고 광고를 내면 혹 보스가 나타나지 않을까 싶었다. 내가 구둣방을 잘 꾸려가고 있는지 보스처럼 내가 닦은 구두가 사람들을 비까번쩍하게 하는지 그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후계자를 구한다는 구둣방 소식이 지방신문을 넘어서 중앙지에도 보도되자 여기저기 방송국에서 취재요청이 빗발쳤다. 나는 모든 취재를 거절했지만 기자들은 자기들 맘대로 나를 찍어 신문에 싣고 방송에 내보냈다. 어떻게 알았는지 면접을 본 사람들을 찾아내 인터뷰 기사를 싣기도 했다. 아이돌 가수를 닮은 젊은이의 인터뷰도 보도 되었다.

“구둣방 사장님이 제 구두를 닦아 주었습니다. 최고의 솜씨였습니다. 저는 그 솜씨를 그대로 이어받을 청사진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지금 합격여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마도 사장님이 돈을 번 것은 사장님 복장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양복을 입고 구두를 닦는 구두닦이는 없잖습니까? 사장님이 양복을 차려입고 구두를 닦기 때문에 신기해서라도 사람들이 많이 찾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사장님은 타고난 마케팅의 대가입니다.”

  복지재단 이사장도 인터뷰 대열에 끼었다. 그는 나에 대해 극찬을 늘어놓았다.

“그 어르신은 성실함의 표본입니다. 지금까지 한 번도 구둣방 문을 닫는 걸 보지 못했습니다. 구두를 닦는 것도 달인의 경지입니다. 그 어르신이 닦은 구두는 거의 일주일간 광채를 잃지 않습니다. 사실 저는 그 어르신이 평생 모은 돈을 큰 뜻에 쓰리라고 진즉부터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말하자면 우리복지재단과 같은 곳에 기부하는 것도 합당한 후계자를 찾는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사장은 평소 나를 고 씨라고 불렀는데 후계자 기사가 나간 후로 나를 고사장으로 불렀다. 그는 인터뷰에선 나를 다시 어르신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면접에 왔다가 구두를 닦아준다는 제의를 거절하고 갔던 한 중년의 남자는 내가 어떻게 그렇게 큰돈을 벌었는지 의혹을 제기했다. 나에게 정말로 은행에 그만한 돈이 있는지 공개적인 확인을 해야 믿을 수 있다고 했다. 나의 나이를 들먹이며 어쩌면 노인이 치매로 그런 얼토당토않은 이야기를 꾸며낸 것일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방송에서는 양복을 입은 채 웃으며 구두를 닦는 나를 찍어 방영했다. 경제부 기자라고 명함을 건넸던 여자는 외로운 노인이 사람을 찾는다고 보도했다.

“평생을 세 평 구둣방에서 지낸 노인이 전 재산을 걸고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후계자를 구한다고 하지만 기자가 보기에 노인은 자신에게 가족이 될 사람을 찾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노인은 젊은 시절 주먹세계에 몸담았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허망하다는 것을 알고 뒤늦게 조직에서 은퇴해 은둔한 채로 마음을 닦듯 구두를 닦았습니다. 당시 그가 은퇴할 수 있도록 도와준 보스가 살아있다면 꼭 한 번 보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습니다. 평생을 세 평 구둣방 안에서 세상에 속죄하는 마음으로 살아온 노인. 그가 이제 자기의 여생을 함께 할 가족을 찾고 있습니다.”

  보스가 보고 싶다고 했던 나의 이야기를 그녀는 조직으로 이해했던 것일까. 그날 나는 그녀의 구두 관리가 잘 되었다고 말했다. 후계자에 대한 이야기보다, 외롭지 않느냐는 질문에 보스가 보고 싶다고만 했다. 그녀는 조직에 몸담았느냐고 물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그저 붉은 빛이 깜박거리는 카메라를 바라보았다. 그 때 구두를 맡긴 손님이 들어왔고, 인터뷰는 끝이 났다.

  몇몇 언론사의 취재요청은 집요했다. 거절했지만 수시로 찾아왔다. 나는 그들의 구두를 말없이 닦아주는 것으로 인터뷰를 대신했다. 그들은 그 모습을 찍었고 기사로 내보냈다. 단체로 학생들이 찾아왔다. 스마트폰으로 양복 입은 나를 찍었다. 내 곁에 서서 브이 자를 그리는 녀석들도 있었다. 학교를 졸업하면 구두닦이가 되겠다고 말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나는 그저 웃을 수밖에 없었다. 조용하던 내 삶에 그동안 방송에서나 나왔을 법한 일들이 수시로 일어났다. 무슨 재단이라며 찾아와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일을 홍보하며 도움을 요청했다. 수없이 많은 자선단체관계자들이 간곡하게 후원을 해달라고 말했다. 깍두기 머리를 한 건장한 청년들이 몰려와 단체로 구두를 닦기도 했다. 형님이라고 부르며 내게 머리를 조아릴 때는 기가 찼다. 후계자를 구하기도 전에 무슨 사단이 날 것만 같아 괜한 짓을 했다는 후회가 밀려왔다.

  쓰러지고 난 후부터 계속해서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병원에선 고혈압에 빈혈까지 있다며 식사에 신경 쓰라고 했다. 혼자 지내다 보니 식사를 거를 때가 많았다. 손님들의 시간을 맞추다 보면 식사시간도 들쭉날쭉 했다. 내게 스트레스가 있을 리 없었지만 신경성피로도가 높게 나온다고 의사는 말했다. 내가 신경 쓰는 것이라고는 입고 있는 양복이 후줄근해지지 않도록 자주 다림질을 하는 것이었다. 하나 더 있다면 구두를 비까번쩍하게 닦는 일이었다. 손님의 구두는 당연한 것이었고 내 구두 또한 언제나 반짝거리게 닦았다. 보스가 내게 물려준 습관이었다. 아주 단순했지만 구두닦이에게는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마지막으로 다음날 아침에 찾으러 올 구두를 닦아놓자 시간이 8시가 넘었다. 피로가 몰려왔다. 따뜻한 목욕이 하고 싶었다. 집으로 걸어가는 동안 면접을 보았던 젊은이를 생각했다. 패기만만하고, 돈을 허투루 날려 버릴 것 같지는 않았다. 그를 다시 만나면 보스에 대해서 이야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와 보스의 관계를 그가 어떻게 이해할까.

  골목길로 들어서자 가로등 불빛이 사라지고 사위가 어두웠다. 휴대폰에서 젊은이의 전화번호를 찾으러 호주머니에 손을 넣는 순간 뒤통수에서 퍽 소리와 함께 엄청난 충격이 전해졌다. 뒷목이 뜨끈해지면서 끈적끈적한 것이 목덜미를 타고 흘렀다. 나는 손을 뒷목으로 가져가려다가 휘청거리며 쓰러졌다. 왁살스런 손이 달려들어 입을 가로막고 목에 칼을 들이댔다.

“영감! 좋게 말할 때 통장과 도장 내놓으시지.”

  일부러 비튼 것 같은 낮고 굵은 목소리였다. 모자를 눌러쓰고 마스크를 쓴 얼굴이 가물거리며 시야에 어른 거렸다. 눈빛이 유난히 빛났다. 어디서 본 눈빛임이 분명했다.

  뒷골이 욱신거려 눈을 떴을 때 테이프로 발과 손이 묶이고 입에 재갈이 물린 노인이 시야에 들어왔다. 눈을 깜박거리며 감았다가 다시 떴다. 거울로 된 벽에 비친 사람은 나였다. 나는 낯선 이를 보듯이 거울 속의 나를 한동안 쳐다보았다. 뒤통수에 통증이 느껴졌다. 그제야 상황판단이 되었다. 누군가에게 얻어맞고 쓰러졌던 기억이 떠올랐다. 선득하니 날이 선 칼도 기억났다. 목에 손을 대려 했으나 손이 묶여 움직일 수 없었다. 창문에 커튼이 처져 있었지만 빛이 스며들어 방안은 둘러볼 수 있을 정도로 밝았다. 어림잡아 해가 뜨고도 한 참은 지났을 시간이었다.

  지금쯤 구둣방 문을 열어야 했다. 자동차회사와 보험사 영업사원들의 구두가 이 시간쯤에는 전부 배달되어야 했다. 그들은 구두를 서너 개 맡겨놓고 가장 비까번쩍한 구두를 신고 거리로 나섰다. 구두로 말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단골을 잃을 것 같아 불안했다. 몸을 꿈틀거려 보았으나 단단히 묶인 손과 발을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 소리를 내보려 했으나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거울을 보니 청테이프가 입에 붙어 있었다.

  나는 눈을 감았다. 그 때 어디선가 소리가 들렸다.

“영감! 일어났나? 거울을 한 번 보지. 영감이 어떤 상태인지는 알겠지. 지금부터 내가 질문하는 것에 맞으면 고개를 끄덕이고 그렇지 않으면 고개를 가로저어. 알았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려줄 돈이 40억이란 게 사실인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 후계자에게 정말 다 넘겨줄 건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당신 목숨과 그 돈을 바꿀 수 있나?”

  나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럼 당신은 여기서 죽을 텐데 그래도 괜찮아?”

  나는 이번에도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질문을 끝으로 한참 시간이 흘렀는데도 더 이상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방안은 고요로 가득 찼다. 얼마나 시간이 더 흘렀을까. 목소리가 맥이 풀린 듯 물었다.

“후계자를 결정했나?”

  나는 잠깐 망설였다. 젊은이를 떠올리며 이내 고개를 끄덕이려다가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는 묶인 채로 밤을 샜다. 몸이 불편했지만 그런대로 잠을 이룰 수 있었다. 처음엔 공포가 몰려왔지만 목소리가 목숨과 돈을 바꿀 수 있느냐 물었을 때부터 마음이 편해졌다. 내가 40억 원이라는 거금을 걸고 후계자를 찾는다고 광고를 냈을 때, 나는 후계자를 찾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휩싸였다. 누가 구두닦이의 후계자가 되겠는가. 돈 말고 물려줄 것이 나에게 있을까. 내 불안은 그것이었지만 어쩌면 적절한 후계자가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희망도 가졌다. 불안과 희망이 교차했다.

  젊은이는 면접 후에도 여러 번 나를 찾아왔다. 자기가 후계자가 되지 않아도 좋으니 구두닦이로 40억 원을 모은 비법을 알려달라고 말했다. 나는 올 때 마다 그의 구두를 정성껏 닦아 주었다. 그는 끝내 내게서 40억 원을 모은 비법을 듣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그가 내가 닦아준 구두를 신고 나서면서 말했다.

“구두를 이렇게 닦으라는 건가요?”

  나는 그저 웃어주었다. 그는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돌아갔다.

  밖에서 거세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대답이 없자 문이 부서지면서 경찰이 들이닥쳤다. 경찰은 주위를 경계하다가 나를 발견하고는 서둘러 입의 재갈과 묶인 손발을 풀어주었다. 나는 그만 맥이 풀려 침대 위로 쓰러졌다.

  병원 침대에서 깨어났을 때 보스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신기하게 보스는 하나도 늙지 않는 모습으로 줄무늬 양복에 비까번쩍한 구두를 신고 있었다. 내가 눈을 뜨자 무어라고 큰 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그의 입모양만 보일뿐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다시 눈을 한번 깜박이자 보스는 사라지고 경찰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용의자를 기억하시겠어요?”

  나는 빛나던 눈빛을 떠올렸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혹시 보스를 아십니까? 삐까번쩍한 보스 말입니다.” (끝)

 

  <당선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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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사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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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위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