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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새들도 허공에서 날개를 접는다 / 김미경

 

새들도 
날아가다
날개를 접는다

어느 방향 어느 가지 붉은 발목 쉬어갈지

허공에
숨을 매단 채 
날개 잠시 접는다

부러진 발톱일랑 비바람에 뿌려주고

바람이 
떠미는 대로
중심 죄어 다잡는다

들메끈 동여매고
드높이 치솟다가

​길에서 길을 얻는 눈 밝은 새가 되어

아득한 
고요 속으로
귀를 접고 떠간다


 

  <당선소감>

 

   접은 날개 다시 편 새처럼… 더 낮은 자세로 행간속을 날고 싶어

  저 한 마리 새처럼 바람의 말씀에도 귀 기울이렵니다.

  이른 아침, 까치가 요란스레 울었습니다. 햇살처럼 퍼지는 까치 울음과 함께 반가운 소식이 문득 날아들었습니다. 아마도 구름 위를 나는 기분이 이렇지 않을까요.

  그날의 기억이 떠오릅니다.

  창공을 훨훨 날던 새가 갑자기 날개를 접었습니다. 푸른 바닷속을 유영하듯 둥둥 떠 있던 새는 조용히 나뭇가지 위로 내려앉았습니다. 새는 더 바짝 바람의 말씀에 귀를 열고 있었습니다. 잠시 후 다시금 방향을 잡은 새는 날개를 힘차게 휘저으며 하늘 높이 날아올랐습니다.

  길 위에서 종종 길을 잃곤 했습니다.

  날마다 짓찧는 나의 어깨는 더욱 좁아질 뿐이었습니다. 발버둥 칠수록 시조의 길은 멀어지기만 했습니다. 성급한 날갯짓에 떠밀려간 고요는 미처 읽지도 못했습니다. 그 새가 일러주었습니다. 고요 속에도 귀를 열면 바람의 길을 볼 수 있다고요. 허공에도 길이 있듯, 행간에도 길이 있다고요.

  이제야 길이 보이는 듯합니다.

  새로운 세계의 문을 여는 것만큼 가슴 설레는 일이 또 있을까요. 저에게 기꺼이 드높은 시조의 문을 열어주신 동아일보사와 심사위원님께 고개 숙여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더욱 정진하겠습니다. 더욱 낮은 자세로 깊은 행간 속을 날겠습니다. 더 큰 나래를 펼치는 시조새가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1966년 대구 출생
● 이화여대 사범대 졸업
● 대구교육대 문예창작스토리텔링학과 석사


 

  <심사평>

 

  출구를 잃어버린 인간들에게 보내는 ‘담담한 메시지’

  신춘문예는 내일의 문인을 찾는 의미 있는 축제다. 이 축제로 새로운 스타를 발굴하기도 하고, 무기력한 기성 문단이 자각하고 성찰하는 계기를 얻기도 한다. 모순과 파행으로 치닫는 현실을 비판하는 벼락같은 언어나 신음하는 시대를 치유하고자 하는 꿈을 읽기도 한다. 그래서 심사는 언제나 흥미로우면서도 마음 한 편이 무겁고 두려운 일이기도 하다. 풋풋하면서도 남다른 시적 상상력과 개성 넘치는 작품을 찾아내어 독자의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어야 하는 책무가 따르기 때문이다.

  올해의 응모 작품은 대체로 평이한 수준이었다. 실험적인 작품도 특별히 보이지 않았고 가열한 시대정신도 눈에 띄지 않았다. 소소한 일상을 그린 작품이 대부분이었다. 그 가운데 마지막까지 선자들의 손에 남아 있었던 작품은 ‘물론’ ‘알타리 김치’ ‘참새와 탱자나무’ ‘새들도 허공에서 날개를 접는다’였다. 일상의 단면을 재미있게 그리고 있는 작품, 동화처럼 아름다운 사랑을 노래하고 있는 작품이 앞의 세 작품이었다. ‘물론’과 ‘알타리 김치’는 기법과 내용 면에서 신인의 작품이라기보다는 노숙한 스타일의 노래일 뿐 아니라 시대적 울림이 부족하다고 판단됐다. ‘참새와 탱자나무’는 스케일이 좁고 개성 면에서 다소 무표정했다. 그런 점이 보완된다면 당선권에 충분히 들 수 있는 좋은 작품들이었다.

  올해의 영광은 ‘새들도 허공에서 날개를 접는다’에 돌아갔다. 이 작품은 야단스러운 수사도 특별한 기교도 안 보이지만 출구를 잃어버린 현실 속에서 우리가 모색하고 추구해야 하는 응전의 메시지와 시적 미학이 담겨 있다고 봤다.

심사위원 : 이근배, 이우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