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문화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상자 놀이 / 김보나 상자 놀이 / 김보나 내 방엔 뜯지 않은 택배가 여러 개 있다 심심해지면 상자를 하나씩 열어 본다 오래 기다린 상자는 갑자기 쏟아지는 풍경에 깜짝 놀라거나 눈을 떴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건 착각이야 세계는 누군가 눈을 뜨기 전에 먼저 빛으로 눈꺼풀을 틀어막지 나는 상자가 간직한 것을 꺼내며 즐거워한다 울 니트의 시절은 지났고 이 세제는 필요하다 새로 산 화분을 꺼내 덩굴을 옮겨 심으면 내 손은 순식간에 흙투성이가 된다 그래도 돼 뮤렌베키아 줄기가 휘어지는 방향을 따라가도 돼 친구는 이것을 선물하면서 식물은 쏟아지는 빛의 자취를 따라가며 자란다고 말했지 방을 둘러보면 여전히 상자가 수북하다 이삿짐이거나 유품 같다 빈 상자가 늘고 열 만한 것이 사라져 가면 나는 이 방을 통째로 들어 리본으로 묶을 궁리를 .. 좋은 글/시 3년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