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매일신문 신춘문예 수필 당선작] 멀구슬 나무 - 이명길
멀구슬 나무 / 이명길 늦가을 호수는 푼푼하다. 물오리들의 행렬이 물 위로 미끄러지고, 둥치만 남은 물 버들은 잠잠히 하늘을 읽는다. 물속을 거꾸로 인 채 말라버린 연 대궁은 삶을 회상하듯 묵묵하다. 호수가 생의 지론이라도 강의 중인지 물이랑 사이로 바람을 일깨운다. 오랜만에 친구와 근교의 호수공원을 둘러본다. 활짝 열린 하늘은 새털구름마저 지웠다. 낱낱이 떨어지는 햇볕을 이고, 운동을 즐기는 사람들의 발길이 분주하다. 호수 에움길을 벗어나 언덕 위로 발길을 옮기니 이름표를 목에 건 나무들의 표정이 각양각색이다. 간간이 하늬바람이 스쳐갈 때면 신록의 수다가 들리는 듯하다. 언덕 위로 특별한 나무가 있어 눈길이 간다. 멀구슬나무 줄기에 왕벚나무가 업혀 있다. 뻐꾸기나무라 한다. 나무 아래 표지판에는 남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