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조선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 당선작] 빈집의 빈 외투로부터 다시 발화하는 기다림―기형도와 젊은 시인들 / 최의진
빈집의 빈 외투로부터 다시 발화하는 기다림―기형도와 젊은 시인들 / 최의진 1. 발화(發火) 시는 스스로 불태우며 쓴다. 그 불길 속에서 ‘나’를 중심으로 하던 서정의 권위는 해체되었고, ‘나’ 아닌 목소리들의 위계 없는 등장은 이전 세대의 시들이 닿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를 탐색하며 문학의 지평을 확장했다.1) 그렇다면, 시가 지금껏 걸어온 자리는 현재 어떤 의미로 존재하는가?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의미 있는 쓰기를 계속하기 위해서는 불태워온 자리가 단지 잿더미가 아님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헌정은 과거의 시를 현재의 시각으로 다시 읽는다. 그리고 새로 발굴한 의미를 기초로 새로 쓰기를 시도하며, 이미 논해진 의미 이상을 향하여 과거와 함께 걸어간다. 추모가 과거의 권위를 재건하는 위험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