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전북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이영종 / 노숙
노숙 이영종 열차와 멧돼지가 우연히 부딪쳐 죽을 일은 흔치 않으므로 호남선 개태사역 부근에서 멧돼지 한 마리가 열차에 뛰어들었다는 기사를 나는 믿기로 했다 오늘밤 내가 떨지 않기 위해 덮을 일간지 몇 장도 실은 숲에 사는 나무를 얇게 저며 만든 것 활자처럼 빽빽하게 개체수를 늘려온 멧돼지를 탓할 수는 없다 동면에 들어간 나무뿌리를 주둥이로 캐다가 홀쭉해지는 새끼들의 아랫배를 혀로 핥다가 밤 열차를 타면 도토리 몇 자루 등에 지고 올 수 있으리라 멧돼지는 믿었던 것이다 사고가 난 지점은 옛날에 간이역이 서 있던 자리 화물칸이라도 얻어 타려고 했을까 멧돼지는 오랫동안 예민한 후각으로 역무원의 깃발 냄새를 맡아왔던 것일까 역무원의 깃발이 사라진 최초의 지점에 고속철도가 놓였을 것이고 밝은 귀 환해지도록 기적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