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열화되다 - 이승은
열화되다 / 이승은 나무들의 연대가 적요롭다 몸 말아 등선이 고운 태아처럼 묵언수행을 선언한 지난 계절부터 딱 그만 크기의 추를 세우고 조그맣게 서 있다 저 추가 어떻게 뜨거움을 보여줄 것인가 작년 봄 2쪽 그즈음과 같은 모양새여서 땅이 열렸을 때부터 생긴 약속이라고 얼추 들은 터라 새로울 것도 없다고 생각이 넘나드는 순간 추가 넘어졌다 토해낸 숨결 안과 밖 경계선이 무너지고 추는 중심을 잡으려 안간힘을 쓴다 매화꽃 일생 추워도 그 향기를 팔지 않는다는 말도 화르르 소란스럽다 단 한 개의 귀를 지닌 추는 냉정을 잃고 물기에 젖어 파리한 소리는 적막을 뚫고 꽃 이파리 하나 열린다 열화되지 않은 꽃은 없으리 바닥 바닥으로만 음각했던 우리들의 희망이 달리 드러난 것이다 여러 번 꽁꽁 얼어 있던 약속이 심장 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