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동아일보 신춘문예 중편소설 당선작] 그 섬에 코끼리가 산다 / 이서안 그 섬에 코끼리가 산다 / 이서안 항구를 떠난 배가 일몰의 바다로 서서히 젖어 들어갔다. 멀리 떠 있는 배들은 한 폭의 그림처럼 해풍에도 흔들림이 없이 보였다. 다만 내가 탄 배 쪽으로는 세찬 바람이 불었다. 겹겹의 진회색 띠가 수평선 위로 두껍게 드리웠다. K는 화물칸 차에서 눈 좀 붙이겠다며 운전석 의자를 뒤로 젖혔다. 잠 핑계를 댔어도 카메라를 끼고 있어야 마음이 놓이는 그였기에 나는 자리를 비켜줄 요량으로 성큼 2층 선실로 올라갔다. 사람이 거의 없어 휑하기까지 한 선실을 둘러본 나는 바깥 갑판을 바라보았다. 하늘과 맞물린 바다는 어둑해져 시야가 불분명해졌다. 다만 실체가 있다면 배가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물보라를 일으키고 있을 뿐이었다. 소금기와 비린내를 머금은 바람이 나를 향해 훅 들이쳤다.. 좋은 글/소설 4년 전
[2017 경상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과녁 / 이서안 과녁 / 이서안 오른발을 반 폭 든 사내가 투수의 몸짓으로 비수를 내리꽂는다. 힘이 실린 비수는 나무판을 향해 날렵하게 날아갔다. 살진 몸에 비해 꽤 날렵했다. ‘턱’ 힘이 실린 칼이 바람을 타고 나무판 진공에서 숨이 멎었다. 다시 비수는 소리를 내지르며 일제히 판에 꽂혔다. 왼쪽 다리를 절뚝거리며 사내가 나무판을 향해 걸어간다. 구리철사에 휘감긴 칼자루가 광선에 번들거렸다. 단검의 크기는 손바닥 크기로 바지 주머니에 쏙 들어갈 정도였다. 꽂힌 칼들을 하나씩 뽑아낼 때 사내의 옆모습이 서늘하게 느껴졌다. 칼들이 박혀 있을 때는 몰랐는데 멀리서 나무판의 파진 홈들이 일정한 모양을 이루었다. 테두리가 옻칠한 듯 자연스럽게 음영을 이룬 탓이었다. 그것은 희미하게나마 사람의 얼굴 같았다. 민의 촉이 파르르 섰다.. 좋은 글/소설 8년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