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매일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파도는 언덕을 쓸어내린다 / 임재일
파도는 언덕을 쓸어내린다 / 임재일 새벽이 오기 전에 눈이 멀었다. 수평선이 사라졌다. 그래도 난 여전히 바다를 안고 우두커니 서있다. 지난 세기 내내 그랬듯 버티고 있다. 시야의 한편에 걸려있던 푸른빛을 잃었다. 그러나 길을 잃었다는 느낌은 없다. 좌우로 저 멀리까지 바다가 모래를 쓰다듬는 소리가 이어진다. 시간상으론 동이 트기 직전이다. 안개에 뒤덮인 바다는 흐릿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검푸른 하늘 아래에서. 그러나 난 더 이상 바다를 바라볼 수 없다. 난 아직 육지를 등지고 바다를 향하고 있다. 언덕과 바다가 있다. 바다는 쉼 없이 언덕에 다가가려한다. 내 몸으로 그 사이를 가로막고 서있다. 언덕의 편린들이 바다로 흘러가지 않게. 바다가 언덕의 일부를 쓸어내려 삼키지 않게. 지난 세기를 그렇게 흘려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