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광주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누룩을 깎다 - 김해숙
누룩을 깎다 / 김해숙 남자가 항아리 뚜껑을 열고 베보자기를 푼다. 항아리 속에는 밥알이 둥둥 떠 있다. 남자는 항아리 안의 물을 퍼 솥에 넣고 걸쭉해질 때까지 끓인다. 돌복숭아 줄기와 뿌리를 넣고 오전 내내 만든 단술이다. 남자는 단술을 큰 밥그릇에 떠 꿀을 넣는다. 어릴 적 비쩍 마른 남자에게 아버지가 해 주었던 단술이 떠오른다. 남자는 바닥에 누워 있는 아들을 흔든다. 아들은 남자 손이 닿자 이마를 찡그린다. 남자는 그런 아들을 못 본 체 한다. 멱살이라도 잡고 싶지만 이십 년 만에 재회한 터라 참고 있다. “마셔라, 단술이다.”“신경 쓰지 마세요.”“이틀 동안 아무 것도 먹지 않았잖아?”“그냥 두라고요.”“이거 마시고 가라.”“안 간다고, 안 간다고. 안 들려요?”“가. 이제 와서 나랑 살 이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