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한국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정경륜 / 고열
고열 정경륜 수인은 투명한 플라스틱 숟가락에 요리용 럼주를 조심스럽게 따랐다. 8ml를 최대로 하는 작은 약숟가락 안에서 럼주는 순식간에 불룩하게 차올랐다. 금방이라도 파괴될 듯이 럼주의 표면은 그녀의 맥박과 손가락 움직임에 따라 미세하게 떨렸다. 팔꿈치를 식탁 위에 괴고 수인은 오로지 럼주의 작은 흔들림만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 흔들림이 오히려 수인의 안녕을 조절해주는 듯이 모든 것을 압도했다. 간이등의 좁은 빛 테두리 아래에, 이 광경은 누군가 단단히 오므려 매달아놓은 물주머니처럼 팽팽하고 묵직하게 집안을 잡아당겼다. 문득 수인은 입속에 럼주를 털어 넣었다. 짤막한 숟가락 손잡이를 빙글빙글 돌리면서 숟가락을 혀로 천천히 핥아 만졌다. 어떤 상념들이 끊이지 않고 몰려들어 수인에게 기계적으로 이 동작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