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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과 공룡새 / 유희민


- 김대철이 부동산업자 장 씨에게
- 집을 팔지 않고 버티겠다는 것은
- 값을 올리려는 심사는 아니었다
- 그들에게 동네를 떠난다는 것은
- 생계 포기의 위험한 발상이었다

- 동네 사람들이 손수레 끌고나가
- 주머니 불렸던 해운대 바닷가에
- 어느날 큰 조형물이 들어섰다
- 그 거대한 성에 터를 빼앗긴
- 양갈보 아짐은 눈물을 쏟아냈다

- 사람들은 생계 터를 요구했고
- 구청은 차후 협의를 약속하며
- 서류에 붉은 지장을 찍어갔다
- 그러나 다시 만난 일은 없었고
- 마을에 강제집행은 시작됐다

- 거대한 공룡이 자리잡은 터에
- 봄은 다시 찾아오지 않았다
- 그들의 숫자가 불어날수록
- 공룡새들은 이빨 사이에 낀
- 찌꺼기를 쪼아대기에만 바빴다

드디어 해운대 관광 리조트 건축 계획 심의안이 통과되었다. 부산 이미지의 모든 것이라 할 수 있는 해운대 앞에 여의도 63빌딩의 네 배에 가까운 연건평 65만 제곱미터, 108층 1동과 87층 2개 동의 마천루가 생겨난 것이다. 이런 거대한 공룡이 어떻게 그 자리에 산란 터를 두고 몸집을 불렸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공룡들과 함께 그 터에서 살아야 할 일부 행정가들이 그들과 함께 했기 때문이다. 

악어에게 악어새가 있었다면, 공룡에게는 공룡새가 있었다. 거대한 공룡을 대신해 공룡새는 일반인들에게 철저한 비밀에 부치며 마치 북파공작원을 은밀히 보트에 태워 북으로 침투시키듯 진행했기 때문이다. 해운대 해수욕장 인근은 휴가철이 아니더라도 언제나 번잡한 곳이다. 시에서는 여러 형태로 그 해결책을 모색해 왔지만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 환경평가나 교통평가를 했다면 그 지역에 절대 그 공룡이 들어설 수 없는 지역이다. 그러나 어떻게 된 일인지 부산시는 동원된 편법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오히려 보이지 않는 세력에 동조해 버렸다. 환경영향평가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제외해 버렸기 때문이다. 교통영향평가도 마찬가지였다. 시공자에게 '교통 대책을 마련하라'는 조건을 달아 교통영향평가를 생략하고 심의위원 6명이 약식으로 교통영향평가를 정리해 버렸다. 오랫동안 시가 해내지 못한 어려운 과제를 마치 미친년 애 버리듯 그렇게 쉽게 시공자에게 내 던져버렸다.

김대철이 사는 곳은 해운대 바닷가에서 멀지 않은 동네다. 1990년대 후반부터 주변의 땅값이 치솟고 환경이 변하기는 했지만, 난민들 집성촌처럼 겨우 이층집이 몇 채밖에 없을 정도로 발전하지 않는 곳이었다. 대부분 그곳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생활의 터전을 지키며 살아가는 토박이들이 많았다. 또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나이가 많은 노인들 뿐이었다. 어렵게 살았던 까닭에 성장한 자식들은 모두 분가해 옮겨갔고 오롯이 그곳에 깊은 정이 들어 있고 그래서 더더욱 그곳을 떠나기 쉽지 않은 사람들만 모여 살았다. 시에서는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보상을 하고 모두 몰아내려 했지만, 그들이 그곳을 떠나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성수기인 한여름이나 사람의 왕래가 잦은 시간에 작은 리어카를 끌고 바닷가로 나가 사람들이 좋아하는 주전부리를 즉석에서 만들어 팔 수 있었다. 물론 아무나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오랫동안 그곳에서 살아온 까닭에, 작은 건물 모퉁이나 바닷가 한 귀퉁이에 언제나 손수레를 끌고 나와 자기가 장사를 해 왔던 그 자리를 지켜왔던 그렇게 복잡하지 않은 이유 때문이었다. 비록 그 자리가 국가가 소유한 공유지거나 또는 큰 건물의 소유주가 정해진 땅이라고 해도 모두 묵인하고 장사를 할 수 있게 배려를 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더러 단속이나 거리질서 확립이라는 어설픈 시당국의 제재가 있기는 했지만 그럴 때마다 그곳 사람들의 단결된 모습으로 항의해 왔기 때문에 새로 생겨난 거리업자가 아니면 모두 별 탈 없이 생계를 꾸려 나가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어쩌면 그조차도 특혜라면 특혜일 수 있었다. 그곳을 담당하는 파출소나 당국에서도 더 이상의 가판대나 새로운 시설물이 옮겨지는 것은 용납하지 않았지만, 오래전부터 업을 꾸려 살아온 사람들, 특별히 그곳에 기반을 두고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기관에서조차 오히려 여러 가지 공지사항과 동의를 구하는 정도였다. 또 그곳에서 장사하는 사람들도 그런 요구조건을 받아들여 장사를 마치고 나면 주변을 깨끗하게 청소해 주었고 질서를 문란케 하는 취객들에게 피해를 보는 사람이 없도록 주변 분위기를 유화시키거나 홍보하는데 도움을 아끼지 않았다. 

김대철이 그곳을 떠나지 못하는 속내는 따로 있었다. 시로부터 위탁받은 부동산업자인 장씨에게 대 놓고 팔지 않고 버티겠다고 한 이유가 조금이라도 값을 더 올려 받아야겠다는 단순한 심사는 아니었다. 그가 소유한 집은 겨우 16.5평뿐이었다. 명색이 땅은 자기소유로 되어 있었지만 제대로 건축 허가조차도 받기가 쉽지 않은 작은 땅이었다. 그것은 비단 김대철 혼자의 입장만은 아니었다. 주변에 사는 많은 집이 그런 형태였다. 장씨는 그 땅을 팔면 재건축 때 분양권을 준다고 했지만, 김대철의 땅을 모두 준다고 해서 50평에 가까운 큰 아파트 한 채를 거저 받는 것은 아니었다. 그곳에 다시 들어가려면 땅을 팔아서 생기는 돈보다 더 많은 돈을 내야만 입주할 수 있었다. 또 어쩔 수 없이 그 땅을 팔고 다른 곳으로 이사한다고 해도 보상금으로 받은 돈으로는 해운대 일대에 집을 사기란 쉽지 않았다. 그보다 더 아픈 이유도 있다. 늦은 밤, 거리에 손님이 뜸해진 새벽에 걸어서 몇 분 거리에 있는 집으로 돌아와 집 앞 골목길에 리어카를 세워두고 피곤한 삭신을 눕혔다가도, 언제든 눈만 뜨면 허리에 곰방대를 꿰어 차듯 리어카를 질질 끌고 나가면 그곳에서 하루를 보내고 주머니를 불렸던 그 동네를 쉽게 떠날 수 없었던 것이다. 동네를 떠난다는 것, 그 자체가 생계를 포기하는 위험한 발상이었다. 

해가 중천에 떠 있는 시간에 김대철은 바다를 쳐다보며 지나가는 손님을 안주 삼아 소주를 홀짝거렸다. 담배를 꺼내어 불을 붙였다. 연기를 폐부 깊숙이 밀어 넣었다. 술 한 잔을 잔에 따라 반잔을 마시고 '탁' 소리 나게 리어카 한 모퉁이에 잔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손님들에게 팔기 위해 리어카 위에 펼쳐 놓은 오징어 다리 하나를 가위로 잘라냈다. 상품으로 내놓은 오징어 전체를 안주로 먹어버릴 수는 없지만, 더러 혼자 술을 마실 때는 열 개의 다리 중 하나씩만을 잘라 여러 오징어에서 하나씩 잘라낸 다리들을 모아 안주를 만들어 냈다. 사람들이 오징어를 골라 가면서도 다리 열 개가 모두 붙어 있는지를 헤아려 보지는 않았다. 그는 잘라낸 오징어 다리 하나를 질근질근 씹으며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멀리서 부동산을 하는 장씨와 그를 호위하듯 어깨가 떡 벌어진 사내 두 명이 김대철을 향해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속으로 '드디어 올 것이 오는구나!' 했다. 땅을 팔라고 자주 오는 장씨지만 이번에는 행색이 다르다는 것을 눈치 챘다. 해운대 바닷가에서 이십 년 가까이 장사를 해 오면서 산전수전 다 겪은 김대철이다. 그들이 가까이 오기도 전에 그들이 어떻게 나올지 대략 짐작이 갔다. 가까이 다가온 장씨가 김대철을 바라보고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음을 날렸다. 화답이라도 하듯 김대철은 한쪽 구석에 있던 소주잔을 들어 반쯤 남아 있는 소주를 입안으로 털어 넣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장씨가 먼저 짧은 단검을 뽑아 김대철을 향해 힘껏 내던졌다.

"대낮부터 궁디 쳐들고 술 빨고 있으마 크지도 않은 그 집 딱까리가 편안 한기가?"

김대철이 날아든 비수를 고개를 돌려 피하며 장검을 뽑아들었다.

"얼라들 양쪽에 끼 차고 오마, 우리가 오데 겁묵나? 갈 때 가드라도 장씨 모가치에 바람구멍 한나는 뚤버 놓고 가야 안 되긋나? 남이사 중천에 술을 쳐 엥기마 우얗고, 대갈배이에 술을 부으믄 우얀다꼬 맹한 대낮에 얼굴 보자고 그랬는교?"

그들의 대화는 단순한 대화가 아니었다. 비수가 나르고 시퍼런 장검이 번뜩거렸다. 김대철이 하는 품새가 녹녹치 않았는지 장씨는 스스로 몸을 사렸다. 젊은 건달 두 명의 위세로는 씨알도 먹히지 않겠다는 걸 재빨리 눈치 챈 장씨다. 소리 내서 껄껄거리며 쉽게 무장을 해제하고 새색시 같은 손을 내밀었다.

"큭큭크, 너무 그라지 마라카이. 엿판이 넓어도 엿쟁이 지 꼴린데로 썽그러 주는기 장사 아닌가베. 언놈은 나한티 와가, 쪼까 더 쳐 돌라꼬 깝치는 인간도 있고, 한 푼 더 챙길라꼬 빡시게 대드는 새끼도 안 있나. 그케도 내는 니 한티 칠팔월 한여름에 축 처진 소 불알 멩키로 대가리 팍- 숙이고 사정한다 아이가. 내가 엿쟁이 엿판 쪼개는 거 멩키로 팍팍 쓸꺼이께네 이참에 좀 봐도라. 안되긋나?"

"군발이 한티 생리대 줘 봤자, 핏똥 쌀 일 없다 카이 그카요. 내 형편에 좋은 아파트 주 봐야 올케 발 뻗고 누버 있을 일 엄쏘."

대철이는 자신이 입은 군용 잠바를 가리키며 가슴을 탕탕 쳤다.

"……그래? 생리대도 한겨울에 추버서 발 시러울 때 신발 깔창으로 쓸 일이 생길지 우에 알겄노? 정 글타믄 고마 내는 인자 더는 사정 안 할란다. 나중에 후회는 마라."

김대철은 대답 대신 오징어를 자르는 가위 끝으로 앞에 있는 도마처럼 생긴 좌판을 팍팍 찍어댔다. 그런 김대철의 위세에 함께 왔던 건달들조차 아무런 소리 하지 못하고 장씨와 함께 몸을 돌려 천천히 오던 길을 되돌아갔다. 시어머니보다 더 얄미운 게 말리는 시누이라고 했다. 대기업으로부터 중계료를 받는 장씨의 처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었지만, 탐관오리들의 술판에 끼어들어 없이 사는 서민들을 쥐어짜는 장씨는 그곳을 쉽게 떠나지 못하는 모든 사람에게 공분을 사고 있었다. 

공룡이 알을 낳을 수 있는 산란 터를 만드는 것도 순서는 있었다. 제일 먼저 날아든 소식이 보상금을 지급한다는 공고였다. 그 공고문 밑에는 보상금 지급이 끝나면 언제까지 집을 비워야 한다는 문구가 현상범 인상착의를 찍어두듯 굵은 글씨로 못을 박아 놨다. 김대철의 걱정과 우려와는 다르게 그 동네를 떠나겠다고 동의를 한 주민은 이미 80%를 넘어서 버렸다. 해운대 일대의 무허가 건물까지 적당한 선에서 보상해 주었다. 때를 같이해서 또 다른 벽보가 거리에 나붙기 시작했다. 거리질서 확립이라는 경고문이 현수막과 함께 내걸리기 시작했다. 언제나 그래 오긴 했지만, 평소에 해 왔던 행태와 그 강도가 달랐다. 리어카를 놓아야 할 자리에 평소에 없었던 공공시설물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노상에서 장사하는 길거리 사업자라 하더라도 아무 곳에서나 전을 펼치고 리어카를 세워둘 수는 없었다. 시쳇말로 그들만의 명당이 있었던 것이다. 행인들에게 방해를 주어서도 안 되고 또 그들을 단속하는 경찰이나 기관의 눈에 띄게 너무 도로 안쪽으로 튀어나와서도 안 되는 그런 자리여야 했다. 그런 자리를 발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또 어렵게 잡은 그 자리가 명당이 되기까지도 오랜 세월이 닦아놓은 내공이 쌓여야 하는 것이었다. 김대철의 그 명당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사람들의 왕래가 잦았고 조금 소란스러워도 아무도 신경 써 주지 않는 좋은 자리였다. 그러나 그 자리에 어느 날 갑자기 부산국제영화제를 알리는 길이 4미터, 폭 1.5미터, 높이 3미터나 되는 큰 조형물을 만들어 아무도 그곳에 입성할 수 없는 큰 성을 쌓아놓았다. 김대철과 나란히 터를 잡고 장사를 해 왔던 '양갈보 아짐'은 그 자리에 퍼질러 앉아 리어카 바퀴를 붙잡고 높게 세워져 있는 그 거대한 성 위로 눈물을 쏘아 올렸다. 그 아주머니의 행실이 부도덕해서 그런 별명이 붙은 건 아니었다. 그 아주머니의 남편 이름이 '양순보'였다. 처음에는 모두 순보아짐으로 불렀다. 그러나 술을 좋아하고 그래서 주벽이 심한 남편 덕에 남편의 별명이 '양갈보'가 되면서 모두 그렇게 부르고 있었다. 천성이 착한 양갈보 아짐을 두고 사람들이 대 놓고 그렇게 부르지는 않았지만, 양 같이 순한 여자가 술꾼 남편을 만나 고생만 직싸게 한다고 다들 걱정해 주고 염려를 아끼지 않았다.

그보다 더 뼈아픈 사람이 있다. 해운대 바닷가 일대에서 이름을 이야기하면 모를 수 있어도 장사를 하려고 출, 퇴근하는 모습을 이야기하면 모두 고개를 끄덕이는 '김상사' 아저씨가 그 사람이다. 월남전에서 두 다리를 잃고 휠체어에 앉아 장사하는 김상사는 다른 사람이 끌고 다니는 리어카보다 그 크기가 아주 작았다. 김대철과 그렇게 멀지 않은 곳에서 사는 김상사는 장사를 하기 위해 바닷가로 리어카를 끌고 나올 때면 자신의 허리에 줄을 묶고 그 줄 끝을 리어카에 연결해서 두 손으로 휠체어 바퀴를 굴렸다. 작은 리어카는 김상사의 휠체어를 따라 목줄 달린 개처럼 끌려서 바닷가로 나왔다. 집으로 돌아갈 때도 마찬가지였다. 전라도가 고향이라는 그분이 어떻게 부산까지 흘러들어와 살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리어카가 커서는 자신의 힘으로 끌 수 없는 까닭에 작은 리어카를 만들어 장사했다. 그런 김상사를 위해 김대철이 더러 출, 퇴근을 거들어 주고 또 물건을 팔기 위해 자갈치나 어물전에 물건을 떼러 갈 때도 어김없이 김상사의 물건까지 함께 사왔다. 그런 김상사의 시름은 더 깊었다. '염병하고, 보상금 그거 쬐끔 받아서 으치케 사까이-'하는 소리를 염주 굴리듯 하소연하며 리어카와 허리를 연결한 줄을 풀지도 못하고 원망스럽게 조형물을 바라보았다. 그곳에서 장사하는 사람 대부분이 그랬다. 가진 것이라고는 배우지 못한 무식함과 성실함 뿐이었다. 가장 위험한 게 양심적인 바보라고 하지만 실제로 그들은 무식하고 성실한 바보들, 집채만 한 공룡들의 움직임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짓밟히는 민초들이었다. 

전과자들이 감방을 나설 때 하는 소리가 있다. '한번 먹기 시작한 두부는 끊기 어렵다.'라고 한다. 교도소를 나올 때 그들을 맞이하는 그들의 가족들이 다시는 교도소에 들어가지 말라고 주는 두부가 어디 마약이라도 된단 말인가? 두부를 먹는 것도 일제의 잔재였다. 교도소 안에서는 충분한 영양을 보충하지 못하기 때문에 출소하는 사람에게 고단백질의 영양식이 두부밖에 없었던 시절의 관습일 뿐이었다. 또 다른 해석도 있다. 두부처럼 하얗게 살면서 다시는 그곳에 들어가지 말라는 염원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땅의 관료들은 치유할 수 없는 전과를 만들어 내면서도 끝없이 두부를 먹어대는 것이다. 그들에게 있어 두부는 달콤한 마약이었다. 

해운대가 변하게 된 것도 그런 전과자들의 버리지 못한 마약 때문인지도 모른다. 도시의 '중심 미관 지구'로 지정되어 절대 아파트를 지을 수 없다고 했던 그 아름다운 해안선을 따라 그 지역 일대를 '일반 미관 지구'로 바꿔버린 것이다. 범죄자들이 얻은 장물은 조그만 이익이 남아도 쉽게 장물아비에게 넘기는 습관이 있다. 물론 그런 범죄자도 어느 정도 노력은 했겠지만 훔친 물건조차도 어차피 원래의 자기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부산시가 부지를 조성하는 데 든 돈은 2300억 원이었다. 그러나 그 부지를 팔아넘긴 가격은 고작 2333억 원이었다. 국유지를 수용하고 시민의 사유지까지 모두 강제 수용해서 부지를 만들어 이를 시공자에게 헐값에 모두 넘겨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더욱 기가 찬 일은 따로 있다. 녹지, 연결도로, 소공원 따위의 관광 리조트 기반 시설도 부산시에서 부담한다고 한다. 보통은 시공자가 기반 시설을 부담한다. 오백여 세대 규모의 작은 아파트를 지어도 그 앞에 만들어야 할 도로나 기반 시설은 모두 시공자가 만들어 편의를 도모해 주는 것이 일반적이다.

먹이 사슬의 가장 꼭대기에 있는 거대한 공룡이 잡아먹지 않는 생물은 식사를 끝낸 공룡의 이빨 틈을 청소해 주는 공룡새 뿐이었다. 공룡새는 덩치 큰 공룡이 무섭지 않았다. 그들의 이빨 사이에 언제나 마약 같은 먹이가 있기 때문이다. 최소한 공룡의 이빨 사이에서 고기 찌꺼기를 빼내는 그 순간은 그렇다. 

김대철이 우려했던 상황이 드디어 현실로 다가왔다. 흔히들 용역이라고 하는 사내들이 손바닥에 빨간색 고무가 덧입혀진 면장갑을 끼고 이사한 빈집들이 듬성듬성 보이는 공터 근처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하나 둘 떠나간 사람들이 늘어가면서 갈수록 을씨년스러운 패잔병들만 모여 있는 집성촌에 사람이 끌기 시작했지만 언제나 구청 직원들 아니면 머리가 짧고 한결같이 검은색 옷을 차려입은 용역업자들뿐이었다. 장씨가 멀리서 독침을 날리듯 해 대는 소리로는 계약을 끝낸 사람들은 모두 보상금을 받고 그 자리를 떠나고 남아 있는 사람은 이제 겨우 16가구만 남아 있다고 했다. 끝까지 보상금 받기를 거부한 사람들이다. 법원에 공탁금을 걸어 두었다고는 하지만 기어이 남아 있으려는 사람들은 그 돈을 찾아가지 않았다. 그 사람 중에는 휠체어에 앉아 허리에 밧줄을 묶어 리어카를 끌고 다니는 김상사도 있었고, 빈둥거리는 남편을 먹여 살려야 하는 양갈보 아짐도 있었다. 집 밖에 나와 담배를 질근질근 씹어 피우는 김대철 옆에 김상사가 다가와 긴 한숨 소리와 푸념을 김대철의 얼굴에 쏘아댔다.

"포크레인 끌고 온거 본께, 빈 집부텀 허물겄는디?"

"……"

"짜석들이 시위하는 것도 아니고 믓한다고 일도 안 함서 저것을 여다 끌박아 놨으까?"

"걱정마소. 빈집은 그래도, 뻣뻣하게 뻐태고 사는 우리 한티는 그래 몬하요."

"아니여. 저 작것들은 그런 인정 봐주고 허는 인간들이 아니란 마시. 차말로 오데 갈디가 없응께 뻐티고는 있는디……. 살림살이라도 건져야 허는 거 아닌가 몰겄어?"

김대철은 씹어대던 담배를 '퉤' 소리가 나게 손도 대지 않고 입으로 멀리 튕겨냈다. 걱정하지 말라고 김상사에게 이야기했지만, 그 소리는 자신을 위로하는 자괴감일 뿐이었다. 또 사지가 멀쩡한 자신이 두 다리가 없는 김상사에게 해 줄 수 있는 말도 딱히 없었다. 김상사가 두 팔꿈치를 휠체어의 팔걸이에 대고 몸을 조금 숙였다.

"옛말에 당랑거철이라고 했어. 사마구(사마귀)가 지 또래 벌레 중에서 심 좀 쓴다고 굴러 오는 수레바퀴를 막을 수는 없는 것이여. 사람이 살다 보믄 서러움도 꽃이요, 괴로움도 때로 약이 된다고는 해도, 저놈들같이 무작스럽게 막 나가블믄 인자 도리가 없다고 봐야제. 어이 대철이, 안긍가?"

"……"

"어이 대철이, 내가 삭신이 부실해서 술은 잘 안마신디, 낮술 한 잔 헐라는가? 다리 몽생이가 짤려나간 뒤로 술 쪼까 마시믄 자꼬 소변이 메라서 술 끊은 지 삼십 년도 넘었는디, 오늘 자네가 쪼가 심 들어도 화장실에 몇 번 뜸어다 준다믄 내가 한잔 찌끄러 블고 잡네. 으짤랑가?"

"……"

"차말로 오늘은 술이 한 잔 땡긴께 허는 소리네. 인자 으짜든가 작심을 해야 안 되겄냐 그말이여. 나사 딱히 누구하고 상의할 사람도 없고……."

"헛허이, 내참 영감님도……. 술 마시마 술은 내가 더 펄것 같소. 저 잡여르 새끼들 보고 있으마 걍 저 좆만 한 집, 저거 확- 불에 살라쁠고 몸에 신나라도 부가 불 속으로 뛰들어 고마 팍-! 죽고 싶은 심정이요."

답답한 심사야 김대철도 김상사 못지않았다. 김상사도 오죽했으면 평소에 마시지 않던 술을 찾을까 싶었다. 김대철이 술을 마시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나 김상사를 위해 김대철은 김상사 뒤로 돌아가 휠체어의 손잡이를 잡았다. 휠체어는 무겁지 않았다. 장사하면서 몸소 식당에 갈 수 없는 김상사는 언제나 컵라면이나 자장면 따위만을 시켜 먹었다. 그런 김상사가 무거울 리 없었다. 

"쩌그 물꽁네 집으로 가세. 그 집이 문턱이 없응께 들어가기가 쉬울거그만."

김대철을 위한 김상사의 배려가 눈물겹다. 물꽁네 집도 이번에 헐리는 집이다. 그 물꽁네 집은 매운탕을 끓여주는 작은 소줏집이다. 손님이 많지는 않았지만 24시간을 언제나 문을 열고 장사를 하는 까닭에 늦게까지 장사를 하는 동네 상인들이 자주 가는 집이기도 했다. 물꽁네집 주인은 나이가 많은 해운대 토박이 할머니다. 할머니는 보상금을 아들 내외에게 모두 주고 아들이 사는 아파트로 들어가기로 했다고 한다. 그러나 늘그막에 손자들을 봐 주어야 하고 또 며느리의 눈치를 보게 생겼다면서 얼굴 넓게 퍼져 있는 주름살 위에 주름살 하나를 더했다. 평생을 사람들이 자기를 알아봐 주고 찾아오는 그 즐거움으로 장사를 하던 그 할머니는 보상금을 받아들고 그날 하루 문을 열지 않았다. 이미 오래전 죽어버린 남편의 산소에 갔다 오기 위해 꼬박 하루 문을 닫았다고 했다. 아무도 문을 열지 않았던 정월 초하루에도 문을 열어 사람을 기다리던 할머니였다. 그런 할머니였기에 더더욱 그 동네를 떠나기는 쉽지 않았다. 물꽁네집에 들어서자 할머니가 반갑게 두 사람을 맞이했다.

"할메는 언제 가실라?"

김상사가 들어서면서 할머니에게 말을 걸었다. 할머니는 어서 오라고 손을 흔들며 마늘을 까던 양푼을 무릎에서 내려놓았다.

"내사마 은제든지 아들 한티 가믄 그만 아이가. 요새 이 동네에서 질로 콧대 높은 그 장씨한티도 그케 이바구 해 놨다. 옆집 헐리기 전 꺼정은 궁디 깔고 뻐틸란다. 우야겄노? 즈들이 심 없는 할메한티 통보도 없이 집이사 헐것나. 고마 있는 날꺼정 있다가 조용히 갈란다."

"장씨, 그 씨러배 자석이 그런 인정이 있기는 한가 몰겄소. 그래도 할메는 아들이 있응께 신간은 편하겄소이?"

"신간 편할 일이 믓이 있겄어? 장사하다 보믄, 잘해야 본전일 때가 있고, 밑져도 본전일 때도 있다 아이가. 내사 잘 모리것다만도 아들하고 사는 거는 본전도 안 되는 일 같으이 땁땁-하그마는."

"할메도 고상했응께 인자 푹 쉬어야제."

"그래 고맙다. 우짜둔둥 김상사 니도 이참에 잘 해결 해가꼬 존 일 멩그러 봐라."

할머니는 주문도 받지 않고 김상사와 김대철을 위해 매운탕을 장만했다. 수시로 화장실에 모셔다 드려야 할 것으로 생각했던 김대철은 오히려 김상사 보다 더 많이 화장실을 들락거릴 정도로 많은 술을 마셨다. 세상에 화풀이해 댈 수 있는 유일한 물건이 있다면 그것은 좀 힘있게 내려놓을 소주잔과 그 소주잔을 받아 소리를 내 줄 탁자밖에 없었다. 최소한 지금 김상사와 김대철에게는 그랬다.

할머니의 말처럼 옆집이 헐릴 때까지 일하겠다던 그 작은 염원도 오래가지 못했다.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이 하나둘씩 헐려 나가면서 가장 먼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곤란하게 만드는 일은 전기를 끊어 버리는 것과 물을 끊어버리는 일이었다. 단전과 단수가 단순히 사람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만은 아니었다. 밤이 되면 예전에 없던 공포가 생겼다. 촛불을 켜고 하루하루를 살지만 흐느적거리는 그 불빛은 가슴 속에서부터 치밀어 오르는 원통한 울음소리와 불야성을 이룬 해운대 밤거리의 시끄러운 음악 소리와 함께 귀신의 호곡 소리처럼 끔찍하고 견디기 어려운 귀곡성이 되어 하늘에서부터 뿌려졌다. 16가구 중의 9가구가 결국 그곳을 떠났다. 남아 있는 7가구는 정말 어쩔 수 없이 남아 있는 불쌍한 사람들뿐이었다. 그중에는 김상사와 양갈보 아짐도 있었다. 김대철은 그나마 16.5평이라도 되지만 김상사와 양갈보 아짐은 10평도 채 되지 않는 작은 땅이었다. 

단전과 단수가 계속되었지만, 끝까지 버티는 7가구를 위해 구청에서 협상을 제의해 왔다. 김대철을 비롯한 그곳에서 버티던 사람들 모두를 합해봐야 12명뿐이었다. 시위나 싸움에서 시쳇말로 쪽수가 있어야 했지만 젊은 사람 하나 없는 나이가 든 사람들 모두가 그뿐이었다. 그중에 가장 젊은 사람은 김대철이었다. 구청의 제의는 김대철이 생각한 뻔한 것들이었다.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특별 보상을 해 주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순간 대철이의 눈을 뻔쩍 뜨이게 하는 사실이 있었다. 그런 협상을 주도한 사람이 다름 아닌 부동산업자인 장씨였던 것이다. 구청직원이나 건설업자의 직원이 아닌 바로 장씨였다. 모임을 주관한 주최 측은 구청이었지만 구청 직원도, 건설사 직원도 사람을 몰아내는 그 악랄한 행위에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고 자기들과는 무관하게 일을 진행하고 있었다. 사람을 퇴거시키는 일을 민간인과 민간인들의 협상으로 만들어 그 누구도 만약에 일어날 상황에서 책임지지 않고 모두 빠져나가겠다는 심사가 분명했다. 장씨는 그간에 보상해 주었던 서류철을 들어 올리며 다른 사람들에게 해 주었던 보상의 두 배를 주겠다는 파격적인 가격을 제시했다. 사람들이 조금 술렁이기 시작했다. 김대철조차 숨을 죽이고 장씨가 설명하는 내용을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 그때 조용히 양갈보 아짐이 손을 들었다. 장씨가 의미심장한 웃음을 흘리며 양갈보 아짐에게 발언권을 주었다. 무엇이든 물어보면 시원하게 해결해 주겠다는 당당함도 보였다. 생전 남들 앞에서 말을 많이 해 보지 않았던 그녀는 수줍은 듯 일어나 조용히 말을 했다.

"내는요, 콩만 한 집딱까리 날라가는기 문제가 아이라요. 이왕에 그케 편의를 봐 줄 거 같으마 딱 한 가지만 더 봐 주마 좋겄소. 보상금을 두 배로 준다카이 우째우째 딴 동네 이사가가 살아 볼랍니더. 내가 하고자픈 이야기는 여기 있는 사람들은 목구녘이 포도청인 사람들뿐인기라요. 내가 본께네 인자 갈 사람들은 다 떠고 음쏘. 여 있는 사람들 한티는 갯가에 터를 하나씩 멩그러 주가 장사를 계속할 수 있게 해 주마 더 이상 바랄기 없겄소. 그케만 해 주마 우리도 더는 성가시게 안 할라요. 장씨 아제가 것만 쪼까 신경을 써 주소."

양갈보 아짐의 제의에 순식간에 회의장이 또 한 번 술렁이기 시작했다. 장씨는 자신이 어떻게 해 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는지 뒤에 앉아 있는 구청 직원과 건설사 직원의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그러나 구청 직원의 눈빛은 싸늘했다. 건설사 직원은 비웃는 듯한 웃음을 장씨에게 날렸다. 잠시 그들만의 회의가 시작되었다. 열두 사람을 회의장에 남겨둔 채 그들은 모두 밖으로 나가 오랫동안 그들만의 협잡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한참을 기다린 후에야 장씨가 만면에 웃음을 띠며 다시 회의장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변명하듯 여러 가지 이야기를 했다. 일단 다른 보상자들보다 더 많은 두 배의 보상금에 합의하면 그 문제는 다음에 또 회의를 거쳐 장사할 수 있게 해 주겠다는 이야기였다. 실제로 그렇게 해 줄지 의문이었지만 해운대 바닷가에 자판기를 놓을 수 있는 장소를 지정해서 그 분양권을 그들에게 줄 수 있는지 구청에서 법률적 검토를 하겠다고 했다. 그렇게만 되면 굳이 장사하지 않아도 아침저녁에 출퇴근하듯 자판기가 있는 곳으로 가서 팔린 깡통들을 채워 넣고 그간에 모여 있는 돈을 거둬 가면 될 것이라고 했다. 그 제안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런 혼란스러운 분위기를 틈타 장씨는 미리 준비한 서류를 꺼내 들었다. 보상 액수가 두 배라는 것을 일일이 확인시켜 주기도 하고 언제까지 법원에 그 돈을 추가로 공탁시켜 놓을 거라는 이야기도 했다. 그리고 한 사람씩 이름을 불러 자기 앞에 오도록 하고 기어이 도장도 아닌 엄지손가락의 지장을 받아냈다. 가장 마지막에 김대철이 인주를 바른 엄지손가락을 눌러 서류에 인장을 찍었다. 그리고 정확히 그 회의가 있던 일주일 후에 두 가지 통지문이 집으로 날아왔다. 하나는 얼마가 공탁되어 있다는 법원 서류와 언제까지 집을 비우라는 강제집행 통지서였다. 그러나 그곳에 남아 있던 사람들 누구도 강제집행을 하는 그 날짜를 기억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장씨나 구청에서 무언가 추가로 받아야 할 보상이 남아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강제 집행을 하기로 지정되었던 첫날 아침 갑자기 동네가 소란스러웠다. 공룡들의 잔인한 포식이 시작되었다. 골목 어귀에 붙은 공고문 몇 개와 집으로 날아든 통지서 한 통이 최후의 통첩이었던 것이다. 공고문에 실린 철거 지정일 첫날부터 그들은 아직 떠나지 않은 사람들의 집으로 쳐들어간 것이다. 많은 용역직원이 손에 붉은색 면장갑을 끼고 한 손에는 저마다 곡괭이가 들려 있었다. 시끄러운 장비 소리와 사람들의 괴성에 김대철이 튕기듯 집 밖으로 튀어나가 그들의 앞을 가로막았다. 구청 직원을 보자고 악을 바락바락 썼지만, 그 어디에도 구청 직원은 보이지 않았다. 구청 직원 대신 좀 떨어진 용역들 뒤편에 당당하게 서 있는 장씨가 보였다. 늙은 할아버지 한 사람이 용역 앞으로 나갔다. 그리고 언젠가 했던 구청에서의 회의 내용을 설명했다. 그것만 확실하게 해 주면 내일이라도 떠날 수 있다고 크지 않는 소리로 맨 앞에 서 있는 용역직원에게 이야기했다. 그러나 이야기를 좀 들어주는 듯하다가 그 용역은 할아버지를 밀쳐내 버렸다. 그리고 한 사람씩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들어내기 시작했다. 김상사에게 네 사람이 들러붙어 휠체어와 함께 김상사를 번쩍 들고 공터로 옮기기 시작했다. 김대철의 피가 거꾸로 솟았다. 김대철은 골목 어귀에 세워두었던 자신의 리어카에서 밤에 장사하면서 불을 밝힐 때 썼던 석유통을 꺼내 들고 용역들 앞에 섰다. 그리고 보란 듯이 그 석유를 온몸에 들이붓고 라이터를 꺼내 들었다. 

"이 나쁜 놈들, 언놈이든 제일 먼저 쳐들어오는 새끼는 나하고 같이 통닭구이 되는 줄 알아라. 너야? 이 새끼야 니가 행동파 앞잡이야? 이리와 씨팔 같이 죽자."

라이타를 든 오른손을 맨 앞에 있는 용역의 코앞에 대고 한쪽 팔로 용역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기겁한 용역은 김대철을 뿌리치고 뒤로 주춤주춤 물러섰다. 그것도 잠시였다. 언제 김대철의 뒤로 돌아갔는지 또 다른 용역이 김대철의 팔을 비틀고 라이터를 뺏어 버렸다. 그것을 신호로 그곳에 모여 있던 많은 용역이 사람들을 밖으로 끄집어내기 시작했다. 김대철에게도 네 사람이 붙었다. 두 팔과 두 다리를 하나씩 붙잡고 공터로 몸을 옮겼다. 김대철은 입으로 왼팔을 잡은 용역의 손가락을 물어 버렸다. '아-악' 비명을 지르며 한쪽 팔이 자유로워졌다. 안간힘을 쓰며 발을 버둥거렸다. 오른쪽 팔을 잡은 사내를 머리로 코를 들이박았다. 

어느 한순간 짧게 온몸이 자유로워진 김대철은 리어카로 뛰어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평소 오징어를 자르던 가위를 꺼내 들었다. 그때 김대철의 눈에 보이는 사람은 멀리서 그 광경을 보고 있던 부동산업자 장씨였다. 김대철은 가위를 오른손에 불끈 쥐고 장씨를 향해 뛰었다. 그리고 장씨가 몸을 돌려 피할 겨를도 없이 장씨의 얼굴을 향해 가위를 휘둘렀다. 장씨의 얼굴에서 뿜어져 나온 피가 김대철의 얼굴에 흩뿌려졌다. 장씨의 비명과 피 묻은 가위를 들고 돌아서는 김대철의 모습은 마치 지옥에서 피 잔치를 하고 나온 악귀와 같았다. 갑자기 현장이 조용해졌다. 

"덤벼-!, 덤벼-!, 이 개새끼들아."

악을 고래고래 쓰며 피가 묻은 가위를 들고 용역들 사이로 뛰어갔다. 용역들이 이리저리 흩어지기 시작했다. 숨을 씩씩거리던 대철이가 처음 석유를 뿌렸던 자리로 돌아와 땅에 떨어진 라이터를 집어 들었다. 그때 김상사가 급하게 휠체어를 밀고 김대철에게 다가와 팔을 잡았다. 

"어이, 대철이, 대철이-."

김대철은 자신의 몸에 뿌려진 석유에 불을 붙여 분신을 시도하려는 것이었다. 옆에서 그의 심사를 눈치 챈 김상사가 만류해 보지만 그뿐이었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김대철의 뒤통수를 쇠 파이프로 후려치는 용역이 있었다. 김대철은 한 손에 피 묻은 가위와 다른 한 손에 라이터를 든 채로 그 자리에서 정신을 잃고 말았다.

사람들은 한 마리의 제비가 봄을 불러올 수는 없지만 봄이 오긴 온다고 했다. 그러나 한 번 공룡들이 자리를 잡은 자리에 봄은 오지 않았다. 공룡의 이빨을 청소해준 공룡새들은 더 불어난 공룡들의 숫자 때문에 더 많은 먹잇감이 생겨났다. 

장씨는 죽지 않았다. 그러나 가위에 다친 한쪽 눈의 영향으로 두 눈 모두를 잃고 평생 앞을 볼 수 없는 불쌍한 사람이 되고 말았다. 살인죄가 아닌 살인 미수죄로 15년을 선고받은 김대철은 항소심에서도 그 형량이 줄어들지는 않았다. 김대철이 일심에서 판사가 결심 선고를 할 때 두들겼던 장중하고 무거웠던 망치 소리와 다르게 항소심에서 두들겨 대는 판사의 망치 소리는 그저 세상 속에서 들리는 흔한 잡음소리일 뿐이었다. 

심각한 사건이었던 그 기사를 열심히 취재하던 기자도 어느 날 갑자기 공룡새와 한패가 되어 함께 공룡의 이빨 사이에 낀 부스러기를 쪼아 먹기에 바빴다. 부산의 한 언론사가 그 문제를 다루기 시작했다. 그리고 난개발의 문제성을 지적했다. 공룡들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턱없이 부족한 도로와 교통 행정을 위해 '제 2 장산로'라는 우회도로를 만든다고 대책을 내놓았다. 공룡들이 노는 곳에 들어오지 말고 에둘러 밖으로 돌아서 다니라는 공룡새들의 아름다운 공생이었다.

도시는 공룡들이 있어 아름답게 변하고 밤이면 휘황찬란한 불빛을 하늘로 쏘아 올리지만, 한동안 공룡의 이빨을 청소해주던 공룡새는 더는 아가리를 벌리지 않는 공룡들을 바라보며 푸념하듯 하소연을 땅에 뱉어냈다. 공룡은 무서운 새와 다를 것 없다. 그러나 공룡새는 그저 한 마리의 새일 뿐이었다.



[당선소감]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내가 살아있음 느껴


바람이 분다. 옷깃을 세우는 한겨울의 바람 속에서 내가 살아있음을 느낀다. 숯가마에서 그릇을 굽는 장인은 그의 손끝이 무기요, 칼은 잡은 무사는 집 속에 든 칼이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이다. 그러나 글 쓰는 사람은 자신이 쓴 글이 무기가 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다. 사람들이 왜 글을 쓰느냐고 묻는다면 그저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쓴다고 말한다. 글은 마치 주머니 속에 든 송곳과 같아서 대충 쓴 글이라도 끄집어내 놓지 않을 수 없다. 허투루 쓰는 글이든, 작심하고 쓴 혈서든 그게 남에게 보이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허공에 쏘아 올린 말은 독백이지만, 글은 뼈가 있어서 그 위에 살이 붙고 부풀어 올라 생명력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글은 그저 쓰는 것이다. 고독한 작업이지만 남이 봐 주기를 기다리며 양분을 투여한 자신의 글에 살이 붙고 살아 움직일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소설적 감성이 풍부하지 못하다고 스스로 자조적인 판단을 했던 작품이다. 그래서 크게 기대하지 않았지만, 그런 글에 생명력을 넣어주어 살아 움직이게 한 심사위원 여러분께 오히려 그 영광을 돌리고 감사드린다. 더 큰 이유도 있다. 글을 쓸 때마다 디테일 부족이라는 꼼꼼하지 못함이 언제나 그림자처럼 나를 괴롭혔다. 이번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음에도 제 작품을 채택해 주신 까닭에 그 감사함이 더하다.

특별히 부산에 살면서, 국제신문이 인정하는 부산 작가로 이름을 올리게 되어 영광이다. 여전히 바람이 분다. 오랜만에,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내가 살아 있음을 느낀다.

▶약력=1960년 목포 출생. 목포고, 목포 해양대 졸업. 30년 이상 부산 거주. 독서신문사 창립 40주년 신인문학상, 산악문학상 수상.



[심사평] 힘 있고 건조한 문장으로 우리 사회 부조리 그려내


소설은 작가가 자신이 쓴 소설 속의 이야기를 통해 그것이 지금 이 시대에, 또 우리의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에 대해 독자를 설득하고 이해시켜야 한다. 소설 작법에서 자주 말하는 개연성의 문제도 여기에 포함된다. 예심을 거쳐 올라온 작품 가운데 '열대야', '행거', '안녕, 시애틀', '공룡과 공룡새' 네 편을 추린 다음 예심위원과 본심위원이 함께 참가한 가운데 각 작품에 대한 토의에 들어갔다.

'열대야'는 빠르게 읽히는 장점이 있지만, 전체 이야기의 얼개가 치밀하지 못하다. 남녀의 만남이 상투적이고 특히나 여자가 자살 방식으로 아쿠아리움에서 상어에 물려 죽는 것도 그다지 설득력이 없다. 거기에 비해 '행거'는 작품 초반 조립행거의 나사 하나가 빠짐으로써 일어나는 일이 밀도 높은 문장으로 잘 묘사되었다. 그러나 이런 밀도와 긴장이 후반에 가선 전혀 다른 이야기로 대체되면서 흐트러져버렸다.

'공룡과 공룡새'는 문장이 다소 거친 느낌이나 그 나름으로 힘이 있고 작품의 등장인물들이 저마다 살아 움직인다. 몇 년 전 서울 용산재개발 정리 과정을 부산에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모습인데, 우리 사회의 공룡과 거기에 기생하는 공룡새 집단의 모습을 표면뿐 아니라 그것의 이면까지도 깊게 천착해 들어갔다. 군데군데 인물의 목소리보다 작가의 목소리가 다소 격앙된 듯한 부분이 있으나 힘 있고 건조한 문장으로 우리 사회의 부조리한 모습을 설득력 있게 그려냈다는 점에서 당선작으로 올린다. 부디 정진하기 바란다. 

본심 심사위원 이순원 정태규 소설가

예심 심사위원 정인 정혜경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