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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두근두근 오쉬로


(2013년 6월 28일)



화근했던 오쉬로드


  친구들과 비슈케크에서 이틀 정도 휴식을 취했다. 삼겹살도 구어먹기도 하고, 마지막으로 비슈케크를 구경했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건, 짐정리였다. 여행에 필요한 짐들만 챙겨놓고, 나머지는 아는 분께 부탁했다. 아마 내가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다면, 분명 나의 짐들이 한국에 도착해 있을 것이다. 나보다 먼저 도착해있을 짐들을 생각하며, 비슈케크에서의 생활을 정리했다.


  집 주인 아주머니는 고생했다며, 나의 볼에 뽀뽀를 해주었다. 아주머니와 나는 키르기스스탄에서의 생활 막바지에 어떤 사건으로 인해 알게 되었다. 내가 고생한 모습을 아주머니는 계속 지켜봤다. 그런 면에서 아주머니의 격려와 위로는 힘이 되었다.


  열쇠를 반납하고 오쉬를 향해 떠났다. 오쉬까지는 열 두 시간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고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는 좁은 차에 탑승했고, 차는 출발했다.




  오쉬를 가기 위해서는 꽤 많은 도시를 거쳐야 했다. 우리가 잠시 쉰 탈라스도 그 도시 중 하나였다. 



  앞에 탄 꼬마 아이가 나를 바라본다. 자신의 모습을 찍고 있다는 걸, 알고 있는 걸까. 아이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해발 3,000 미터가 넘는 산악도를  지나야 했다. 우리가 쭉 머물던 비슈케크와는 약 2,400 미터나 차이가 났다. 출발할 때는 더웠는데, 고지대에 올라오니 추워지기 시작했다. 6월인데도 고지대에는 눈들이 쌓여 있었다.








  많은 말들이 무리지어 도로 위를 걸어가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이곳에서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차들이 지나가면 말의 주인이 말들을 도로 한 쪽으로 모았다. 차는 자연스레 속도를 줄일 수 밖에 없었고, 우리는 차안에서 말들의 행렬을 흐믓하게 바라봤다.





  고지대를 내려오니 다시 평온한 풍경들이 펼쳐졌다. 도로 주변에는 유르트가 줄지어 있었다. 우리는 이곳에서 잠깐의 휴식시간을 갖기로 했다.





  이곳에선 말젖으로 만든 간식거리와 음료를 팔고 있었다. 나는 키르기스스탄에서 살면서 말젖으로 만든 것을 한 번은 먹어봤다. 짜고 텁텁한 맛에 다 먹지도 못하고 도중에 뱉았다. 

  이날도 현지인이 나에게 맛을 보라며 권하는 걸, 단칼에 거절했다. 한국 사람들이 먹기에는 맛이 너무 강했다.




  우리는 같이 탑승했던 현지인들과 함께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제한된 메뉴에 당황했지만, 배는 채울 수 있었다. 식당 한 쪽에 장식된 짐승의 가죽이 보였다. 우리는 식당 주변을 구경하고, 다시 차에 탑승했다.






  우리는 우즈베키스탄 국경 근처에서 열리는 과일 시장에서 수박과 듸냐를 먹었다. 듸냐는 우리나라의 참외와는 비슷한 과일이었고, 수박은 매우 달았다. 

  우리는 수박을 먹으며, 현지인들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다. 소통에 있어 약간의 문제는 있었지만, 모두들 웃으면서 즐겁게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는 이곳에서 한국에서 1년 정도 일했다는 아저씨를 만났다. 그는 한국말로 우리에게 인사를 했고, 수박 3통을 사더니 우리에게 선물로 권했다. 우리는 감사의 인사를 하고, 차에 실었다. 우리가 먹기에는 양이 너무 많았다. 우리는 수박을 차에 탑승한 사람들에게 나눠주었다. 그리고 1통의 수박만 손에 쥐었다.



  우리는 오후 11시가 넘어서 오쉬에 도착했다. 오쉬는 키르기스스탄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이며, 남부 지방을 대표하는 도시이다. 원래 계획은 게스트하우스에서 숙박을 할 예정이었으나, 게스트하우스는 이미 여행객들로 가득했다. 어쩔 수 없이 우리는 호텔로 갔다. 다행히 호텔은 저렴했고, 짐을 풀고 쉬었다.


  비슈케크에서 오쉬까지는 정말 힘든 여정이었다. 그래서 오쉬에서의 여행이 더욱 기대되었다. 내일은 무슨 일들이 우리들에게 일어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