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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탕제원 / 박은석

 

탕제원 앞을 지나칠 때마다 무릎의 냄새가 난다

용수철 같은 고양이의 무릎이 풀어지고 있던 탕제원 약탕기 속 할머니는 자주 가르릉 가르릉 소리를 냈었다 할머니의 무릎에는 몇 십 마리의 고양이가 들어 있었다. 가늘고 예민한 수염을 달인 마지막 약, 잘못 쓰면 고양이는 담을 넘어 달아난다.

밤이면 살금살금, 앙갚음이 무서웠다. 고양이를 쓰다듬듯 할머니의 무릎을 만졌다 몇 마리의 고양이가 사라지고 보이지 않던 할머니들이 절룩거리며 나타났다 빗줄기가 들어간 무릎의 통증 등에 업힌 밭고랑 한가득 들어 있는 무릎

탕제원 오후는 화투패가 섞인다. 화투 패는 오래 달일 수가 없다 약탕기 안에 판 판의 끗발들이 성급하게 달여지고 있지만 가끔은 불법의 처방이 멱살을 잡기도 한다.

약탕기 속엔 팔짝팔짝 뛰던 용수철 몇 개 푹 고아지고 있는 탕제원, 가을 햇살은 탕제원 주인의 머리에서 반짝 빛난다. 무릎들이 무릎을 맞대고 팔월 지나 단풍을 뒤집고 있다.


<당선소감>

 

"10년간 맴돌던 그늘 벗어나 기뻐"


  제가 사는 곳은 해마다 가장 먼저 폭설이 찾아옵니다. 마치 고요한 은둔처같이 골목과 거리들은 고요합니다. 폭설에 묻힌 저에게 아름다운 소식이 찾아왔습니다. 고맙습니다.

  10년을 그늘에서만 맴돌았습니다. 중심을 흔들면 나뭇가지에 얹혔던 눈뭉치들이 우수수 쏟아졌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모든 사물의 끝에는 시가 있었습니다. 시는 나의 폭설이고 그 폭설의 중심이고 바깥이었습니다.

  당선 전화를 받고 목도리를 두르고 동네를 한 바퀴 돌았습니다. 신천온천탕도 탕제원도 모두 고요했습니다. 그래도 가끔 미끄러운 눈길을 조심조심 걸어 목욕탕 문을 여는 노인들처럼, 술값내기 화투를 치는 탕제원 노인들처럼 그렇게 분별을 잃지 않는 시를 쓰겠습니다.

  부족한 저에게 격려로 이끌어주신 문효치 선생님, 박남희 선생님께 감사 드립니다. 평생 시의 길을 함께 걸어가기로 약속했던 김희숙 시인, 권행은 시인 따뜻하고 심성 고운 두 언니에게 고마운 마음 전합니다. 사랑하는 두 아들 은총이와 기범이에게도 기쁜 소식을! 끝으로 심사위원 선생님께 두근거리는 감사를 드립니다.

  시를 가슴에 품고 꿈을 꾸는 모든 지인들과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박은석 / 1971년 광주 출생. 웅진홈스쿨 교사

 

<심사평>

 

'탕제원' 대상에 대한 따뜻한 시선 잔잔한 감동 '소금꽃' 바다와 사람 생애 상징화하는 솜씨 탁월


  올해 투고된 작품은 많았으나 전체적으로 그 수준은 평이했다.

  최종 심사에 오른 작품은 시 부분에서는 '대장장이 아버지' '피아노는 왜 뿔을 숨겼나' '최신버전 백신 다운로드하기' '탕제원' 4편이고, 시조 부분에서는 '겨울 꽃밭' '블랙커피를 읽다' '소금꽃' 3편이다.

  '대장장이 아버지'는 인간에 대한 따뜻한 성찰과 표현의 아름다움은 돋보였으나, 당대적 현실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는 측면이 아쉬움으로 지적되었다. '피아노는 왜 뿔을 숨겼나'는 피아노라는 시적 대상을 통해 현대적 삶의 고단함과 삭막함에 대해 재치 있고 도전적 자세로 표현해내고 있는 점은 주목되었으나 너무 표현의 신기성에 치우친 점, 이해불가의 내용이 상당수 끼어들어 있는 점 등이 지적됐다. '최신버전 백신 다운로드하기'는 젊은 세대의 목소리로 당대 사회적 특성을 담아내고 있고 표현의 참신성이 돋보였으나, 시적 표현의 형식들이 역시 신기성에 머물러 감동을 주지 못했다. 이에 비해 당선작 '탕제원'은 표현의 묘미와 인간에 대한 따뜻한 관점이 주목을 끌었으며 무엇보다 대상을 참신하게 바라봄으로써 신선미와 함께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는 점이 점수를 받았다.

  시조 부분에서 보자면 '겨울 꽃밭'은 시조형식의 정제성을 잘 지키며 막내고모에 대한 추억을 참신한 표현으로 드러내고 있는 점이 주목되었으나, 표현의 참신성이 떨어졌다. '블랙커피를 읽다'는 대상의 선택이나 표현의 참신성이 매우 뛰어나 주목을 끌었으나 삶과 관련된 주제가 분명치 않다는 점이 한계였다. 이에 비해 당선작 '소금꽃'은 시조형식의 정제성을 바탕으로 바다와 그 바다를 둘러싼 사람들의 생애를 소금꽃으로 상징화해내고 이를 참신한 표현으로 풀어가는 점이 매우 탁월하다는 평을 받았다. 시와 시조 부분에서 공히 훌륭한 작품이 나와 공동 당선을 결정했다.

 

심사위원 : 강은교·이우걸·김경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