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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여우가 시집가는 날 / 권은정

 

사각사각 쏴아아-. 대나무 숲이 노래를 불러요. 외할머니 집 뒤뜰에 있는 대나무 숲에서 나는 소리에요. 지아는 대청마루에 누워서 대숲의 노래를 들어요. 가도 가도 산과 논밭만 있는 시골 외할머니 집에서는 할 게 없어요. 컴퓨터도 없고 친구도 없어요. 마루에서 웅크리고 자는 하얀 고양이 뿐이에요.

지아는 책가방에서 스케치북을 꺼냈어요. 그림 그리기를 제일 좋아하지만 외할머니 집에 혼자 내려온 뒤로는 한 번도 안 그렸어요. 스케치북을 한 장씩 넘겨보았어요. 예쁜 꽃밭 그림, 가족과 바닷가에 놀러간 그림, 동생 그림. 환자복을 입고 병원 침대에 있는 동생 그림이에요.

잘 웃는 꼬맹이 여동생은 강아지처럼 지아를 따랐어요. 지아는 동생과 소꿉놀이도 하고 그림도 그리며 놀았어요. 언제부턴가 동생이 병원 가는 날이 많아졌어요. 같이 놀다가도 동생은 갑자기 잠든 것처럼 쓰러졌어요. 동생이 많이 아프면서 엄마도 자주 못 보게 되었지요. 지아 혼자 학교 준비물이나 숙제를 해야 했어요. 늘 엄마가 데려다 주던 미술학원도 혼자 가고요.

엄마는 동생이 많이 아프다고 했어요. 지아는 언니니까 혼자 잘할 수 있지? 지아의 손을 잡은 엄마의 얼굴은 무척 힘들고 지쳐보였어요. 지아는 하고픈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감기약을 먹듯이 꿀꺽 삼켜버렸어요.

이게 다 동생 때문이야. 그림 그리기 싫은 것도, 할머니 집에 나만 온 것도 다!”

지아는 스케치북을 마당에 던져버렸어요. 그때였어요, 빗방울이 후드득 떨어졌어요. 햇볕이 쨍쨍하고 하늘도 맑은데 갑자기 소나기가 내렸어요. 지아는 맨발로 마당에 뛰어 내려가서 스케치북을 주웠어요. 스케치북이 젖을까봐 품에 꼭 껴안았지요.

지아야, 비 오는 데 거서 뭐하노?”

외할머니가 찐 고구마 바구니를 들고 부엌에서 나왔어요.

할머니, 날씨가 이상해. 햇빛이 나는데 비가 와.”

여우비 말이가. 여우 시집가나 보네. 지 시집가는 거 사람들 보지 말라고 비 내리는 거다.”

에이, 거짓말. 세상에 그런 여우가 어딨어.”

할매가 거짓말해서 뭐할라꼬. 건넛집에 댕겨올테니까 고구마 먹고 있그라.”

지아는 마루에 걸터앉아 여우비를 구경했어요. 하늘은 맑고 구름 한 점 없는데 비가 보슬보슬 내렸어요. 정말 여우가 요술을 부리는 걸까요? 눈부신 햇살 속에 내리는 빗방울은 보석처럼 반짝였어요.

빗소리에 잠이 깼는지 고양이가 앞발을 내밀고 기지개를 켰어요. 고양이는 폴짝 뛰어올라 재주를 빙글 돌았어요. 어느새 고양이가 갓을 쓰고 은빛 두루마기 한복을 입고 서 있어요. 깜짝 놀란 지아는 숨죽이고 고양이를 지켜봤어요. 고양이는 점잖게 헛기침을 하더니 부채를 꺼내었어요. 고양이는 부채를 살랑살랑 부치며 대나무 숲으로 향했어요.

고양이야, 어디가?”

지아가 용기를 내서 고양이를 불렀어요. 고양이는 태연하게 지아를 보았어요.

여우아씨가 시집가는 날이다. 나도 행차에 초대받아서 가는 길이다. 야옹.”

나도 데려가줘, 나도 보고 싶어.”

고양이의 눈이 왕방울처럼 커졌어요.

사람은 시집가는 행차를 보면 안 돼. 들키면 큰일 난다.”

부탁이야, 나도 보고 싶어. 고등어 반찬 너한테 줄게, ?”

고양이는 군침을 꿀꺽 삼켰어요.

, 그럼 한번 뿐이다. 스케치북하고 크레파스 갖고 와라, 야옹.”

지아는 고양이 마음이 변할까봐 재빨리 스케치북과 크레파스를 들고 왔어요.

고양이 얼굴을 그려봐라.”

지아는 번쩍이는 커다란 눈, 뾰족한 귀, 삐죽삐죽한 수염을 가진 고양이 얼굴을 그렸어요. 고양이가 부채로 그림을 톡톡 두드리자, 고양이 가면이 스케치북에서 튀어나왔어요.

고양이 가면을 쓰면 다들 널 고양이로 볼 거야. 시집가는 행차에 가면 절대 말하면 안 돼. 말을 걸어도 대답하지 마.”

고양이 가면을 쓴 지아는 조개처럼 입을 다물고 고개만 끄덕였어요.

막상 대숲에 들어가려니 지아는 겁이 났어요. 대나무들이 빽빽한 숲에 들어가면 길을 잃을지도 몰라요. 고양이는 먼저 대숲으로 들어가 버렸어요. 지아는 허겁지겁 고양이를 쫓아갔어요.

햇빛도 비추지 않는 대숲은 어두컴컴했어요. 파란 하늘도 댓잎에 가려 보이질 않아요. 끝없이 펼쳐진 깊은 대숲을 얼마나 걸었을까요. 커다란 빛덩어리가 보여요. 빛덩어리 위로 비가 내리고, 시끌벅적한 소리가 흘러나와요. 웃고 떠드는 소리, 노래하는 소리, 둥둥 북소리, 찡찡 꽹과리 소리도 울렸어요. 고양이는 빛덩어리 속으로 폴짝 뛰어들었어요. 지아도 고양이 가면이 꽉 붙잡고 들어갔어요.

신기하게도 빛덩어리 속에는 비가 내리지 않아요. 가마를 앞세운 동물들이 긴 행렬을 지어 가고 있어요. 동물들은 오색빛깔 한복을 곱게 차려입었어요. 힘센 멧돼지가 가마꾼이고, 돼지가 앞장서서 나팔을 불고, 소가 북을 치고, 너구리가 신나게 징을 쳐요. 학은 하늘하늘 춤추고 참새는 지나는 길목마다 꽃잎을 뿌려요.

가마에는 금빛털이 아름다운 여우가 색동한복을 입고 화려한 족두리를 쓰고 연지곤지를 찍고 수줍게 앉아있어요. 고양이와 지아는 시집가는 행차 뒤를 따랐어요.

경사스러운 날에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금빛 한복을 입고 갓을 쓴 여우가 나와 인사를 했어요.

초대해주셔서 영광입니다. 약소하지만 제 성의입니다.”

고양이는 예의바르게 인사하면서 찐고구마를 여우에게 건넸어요.

이리 귀한 고구마를. 헌데 옆에 계신 분은?”

여우의 눈초리가 날카롭게 빛났어요. 지아는 고양이 가면을 잡고 고개를 푹 숙였어요. 들킬까봐 가슴이 조마조마했어요. 고양이가 얼른 지아 앞을 막아섰어요.

제 동생입니다. 벙어리이죠. 야옹.”

동물들은 고양이와 지아를 반기며 떡과 과일을 대접했어요. 지아도 노루가 주는 진달래꽃 떡을 맛있게 먹었어요. 동물들이 웃고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자, 지아도 덩달아 신이 났어요.

소나기와 천둥소리에 섞여 바람을 타고 신부 행차는 나아갔어요. 대나무 숲을 지나 산등성이를 넘고, 강을 건넜어요. 신부 행차는 비를 뿌리는 구름떼를 타고 갔어요. 행차 앞에는 작은 여우들이 부지런히 요술로 비구름을 만들고 있어요. 여우들이 꼬리를 흔들 때마다 비구름이 뭉게뭉게 피어나 비가 내렸어요.

여우비는 잘 내리고 있느냐? 사람들이 우리를 봐서는 안 된다.”

갓을 쓴 여우가 작은 여우들을 둘러보며 당부했어요. 고양이가 슬그머니 물었어요.

옛날에는 신부 행차에 사람들도 함께 했다지요?”

갓을 쓴 여우가 고개를 끄덕였어요.

서로 혼사를 축하해주며 교류했지요.”

소가 콧김을 쉭쉭 거칠게 내뿜었어요.

먼저 배신한 것은 인간이야! 2백 년 전인가, 나무꾼이 우연히 신부 행차를 보았지. 이것도 인연이라 싶어 우리는 나무꾼을 극진히 대접했다고.”

너구리가 맞장구쳤어요.

맞아 맞아. 그 나무꾼이 은혜도 모르고 신부의 혼수품을 몰래 훔쳤어.”

고양이가 혀를 끌끌 찼어요.

세상에나, 그런 일이.”

갓을 쓴 여우의 표정이 어두워졌어요.

그 후로 여우비를 내려 사람들이 행차를 보지 못하게 했지요.”

지아는 안타까웠어요. 이렇게 아름답고 즐거운 행차를 사람들이 함께 하지 못해서 말이죠. 구름 아래 마을과 논과 밭이 조그맣게 보였어요. 논두렁길을 외할머니가 가고 있어요. 지아는 반가워서 손을 흔들며 할머니를 부르려 했어요. 고양이가 급히 부채로 지아 입을 막았어요.

신부 행차는 크고 높은 산의 길목에 멈추었어요. 동물들은 드디어 신랑 신부가 만난다며 가슴이 설렌다고 했어요. 그때 까마귀 한 마리가 가마 주위를 날아다녔어요. 동물들은 신랑이 얼마나 멋지고 늠름한 여우인지 자랑하느라 바빴어요. 지아는 까마귀가 순식간에 가마 창문으로 들어갔다가 나오는 것을 보았어요. 까마귀 부리에 반짝이는 물건이 있는 것도요.

내 족두리가 없어졌어요!”

가마에서 여우 신부의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어요. 동물들은 웅성대며 어찌할 줄을 몰랐어요.

큰일이야, 신부가 족두리도 없이 시집을 가다니, 이일을 어째.”

혼사가 깨질지도 몰라.”

여우 신부는 소맷자락으로 얼굴을 가리고 구슬피 울었어요. 아름다운 금빛 꼬리가 힘없이 축 쳐져 있어요. 지아는 여우 신부가 안쓰러웠어요. 족두리를 훔쳐간 범인을 알려주려고 신부에게 다가가는데, 그만 멧돼지와 부딪쳤어요. 지아는 넘어지면서 아얏하고 소리를 냈어요.

뭐야? 저 꼬맹이 사람이잖아?”

멧돼지가 콧바람을 쉭쉭 내며 지아의 고양이 가면을 벗겨냈어요.

사람 아이가 어떻게 온 거야?”

혹시 저 녀석이 족두리를 훔친 거 아냐?”

인간은 우릴 괴롭히니까 그러고도 남지.”

동물들의 눈초리가 사나워졌어요. 겁에 질린 지아는 손사래를 쳤어요.

난 아니에요. 난 족두리를 훔치지 않았어요.”

화난 동물들이 지아를 둘러싸고 무섭게 노려보아요. 고양이가 황급히 앞으로 나섰어요.

잠깐만! 진정하라고. 좋은 날 이러면 되겠어?”

혼사를 망친 건 저 꼬맹이야!”

소가 투레질을 하며 앞발로 거칠게 땅을 찼어요.

족두리가 없으면 시집을 못가. 여우아씨가 얼마나 이날을 기다렸는데!”

족두리 대신에 꼬맹이를 혼수품으로 가져가자!”

갓을 쓴 여우가 지아를 지그시 노려보았어요.

"아이야, 너 하나 데려가도 아무도 모를 거다.“

여우의 목소리는 비단처럼 부드러웠지만 얼음처럼 차가웠어요.

나는 마음을 훔쳐볼 수 있지. 보아하니 넌 가족에게 버림받았구나. 부모는 아픈 동생만 좋아하지.”

여우는 가늘게 눈웃음치며 지아의 귓가에 속삭였어요.

넌 나쁜 아이잖아? 아픈 동생을 미워하고 질투하는.”

지아는 아니라고 큰소리로 외치고 싶었지만 목소리가 나오질 않았어요. 동생이 병원에 오래 입원할수록 지아를 보는 엄마 아빠의 눈빛은 힘들고 지쳐갔어요. 너만은 얌전히 있어. 말썽부리지마. 언니니까 참아. 엄마 아빠도 선생님도 외할머니도 모두 지아는 언니니까 말 잘 듣고 혼자 잘해내야 한다고 당부했어요. 지아는 고개를 푹 숙였어요. 쓰디 쓴 약을 삼켰나 봐요. 목이 따갑고 아파요. 그래서 마음도 아픈 걸까요.

동물들이 커다란 상자에 지아를 가두려고 했어요. 고양이가 다급하게 말렸어요.

기다려! 꼬맹이가 족두리를 찾아줄 수 있어!”

고양이는 품에서 스케치북과 크레파스를 꺼냈어요.

어서 족두리를 그려. 내가 족두리를 만들어 줄게.”

지아는 스케치북을 펼쳤어요. 동생을 그린 그림이 나왔어요. 꽃처럼 밝게 웃는 동생을 보니 눈물이 핑 돌아요. 자그만하고 야윈 동생이 생각나요. 지아는 눈물을 훔치고 그림을 그렸어요. 오색 구슬과 보석이 달린 화려한 족두리가 아니에요. 동생의 머리에 작은 꽃들이 활짝 피어난 화관을 그렸어요. 당황한 고양이는 지아에게 소리쳤어요.

뭘 그리는 거야?! 족두리를 그려!”

족두리는 그릴 줄 몰라. 난 꽃화관을 그리고 싶었어. 동생한테 줄 거야. 빨리 나아서 나랑 다시 놀자고…….”

지아는 스케치북을 품에 안고 울먹였어요. 여우 신부가 사뿐사뿐 다가와 지아를 안아주었어요. 여우 신부에게선 향긋한 꽃향기가 났어요.

아이야, 그것도 참 멋지구나. 족두리 못지않아. 꽃화관을 내게 선물로 주지 않으련? 동생이 건강해지도록 기도해줄게.”

지아는 고개를 끄덕였어요. 고양이가 부채로 꽃화관 그림을 두드리자 꽃화관이 두둥실 떠올랐어요. 여우 신부는 꽃화관을 머리에 쓰고 밝게 웃었어요. 동물들도 곱다며 칭찬했어요.

고마워, 아이야. 동생을 위하는 마음이 담긴 예쁜 꽃화관이구나. 동생은 꼭 건강해질 거야.”

여우가 시집가는 행차가 길을 나서요. 신부 가마를 앞세우고 동물들은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를 부르며 신랑을 만나러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요. 지아는 고양이와 함께 행차에서 빠져나왔어요. 한 걸음 내딛으니, 어느새 대나무 숲 입구였어요. 외할머니집 마당에서 자동차가 멈추는 소리가 들렸어요.

지아야 어딨니? 집에 가자. 엄마랑 동생이 기다리고 있어.”

반가운 아빠 목소리였어요. 지아의 얼굴이 꽃처럼 환해졌어요. 지아는 마당으로 달려갔어요. 동생에게 보여줄 스케치북을 품에 꼭 안고서요. 고양이는 하품을 하며 마루에 누웠지요.

여우비가 지나간 푸른 산봉우리 위에는 아름다운 오색 무지개가 걸렸답니다. <>


<당선소감>

 

동화작가로의 새로운 꿈을 시작합니다

 

  추운 겨울바람이 스칠 때, 당선 전화를 받았습니다. 20년간 꾸었던 꿈을 마침내 이루어준 전화입니다. 사춘기 소녀 때부터 작가를 꿈꿨습니다. 대학도 글을 쓰기 위해 갔지요. 글에 미쳤고 신춘문예에 목매달았지만, 현실은 냉정했습니다. 먹고 살기 위해란 구차한 핑계로 꿈을 포기했습니다. 이루지 못한 꿈은 두고두고 미련을 남기고, 삶은 말라붙어버렸지요.

 

  결혼을 하고 첫애가 세상에 나왔을 때, 잊었던 꿈도 왔지요. 아이가 꿈을 꾸며 자라듯, 나도 꿈을 꾸고 싶다고요. 그렇게 동화를 쓰게 되었습니다. 갓난애를 재우고 밤새 쓰고, 울며 보채는 아이를 업고 퇴고를 했지요. 행복하고 즐거운 꿈을 꾸듯이 동화를 썼지요.

 

  이제는 동화작가로서 새로운 꿈을 시작하겠습니다. 각박한 현실과 이기적인 어른들로 인해 상처받은 아이들이 제가 만든 즐겁고 따스한 환상에서 실컷 놀다가 힘을 내어 앞으로 나아갔으면 합니다. 아이들이 꿈을 잃지 않도록 제 동화가 작은 힘이 되기를 바랍니다.

 

  작년에 경상일보에 처음으로 동화를 보냈습니다. 그때 감사하게도 본심까지 올려주셨지요. 그런데 올해에 저를 택해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가장 크고 든든한 나무 같은 남편과 삶의 희망인 딸 하은이, 저를 응원해주신 부모님과 시어머님께 사랑과 감사를 보냅니다. 아낌없이 격려해주시고 지도해주신 범초 선생님께 감사드리며, 제게 있어 문학의 등불과 같은 유익서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함께 동화의 길을 걷는 든든한 글벗 서림이와 현정언니에게 감사하며, 늘 응원해준 친구들에게 마음을 전합니다.

 

[약력-권은정]

-1982년 부산 출생

-동아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온기획 사보작가

 

 

<심사평>

 

스토리 전개와 작가의 상상력 돋보여

 

  본심에 올라온 응모작은 총 10. 한 편 한 편 꼼꼼히 읽었다. 먼저 6편이 탈락했다. 교실 급우들끼리의 갈등, 할머니와 단 둘이 사는 이야기, 개를 주인공으로 한 에피소드 등 평이한 소재와 뻔한 결말이 거슬렸다. 골라놓은 4편을 재차 읽었다.

 

  땅꼬마 방고흐(신혜경): 땅꼬마로 놀림 받는 예준이가 그림을 그리면서 열등감을 극복해가는 이야기. 키 작은 해바라기에 대비시킨 맑은 동심이 돋보였으나 필요없이 긴 서두의 전개가 흠결이었다.

 

  눈 속에 눈(김명완): 구름버스를 타고 가는 수많은 눈들은 영원히 산다는 히말라야역에 내리는데 설이 눈은 홀로 남쪽 땅의 학교 운동장에서 뛰노는 아이의 장갑 낀 손에 떨어져 녹는다. 별 모양의 자취를 남기고. 신선한 발상이 좋았으나 작품의 주제, 구성이 약한 것이 아쉬웠다.

 

  바람의 말 룽따(이서림): 롯지에 매달려 펄럭이는 줄깃발 룽따는 들반가들의 기도 전령. 세르파 부모를 눈사태로 잃은 리마가 키친보이로 일하는 등반대가 악천후로 등반을 못하게 되자 세르파가 되겠다는 리마의 소원을 전하러 바람과 함께 신들의 산으로 간다. 소재가 특이하고 문장이 깔끔했다.

 

  여우가 시집가는 날(권은정): 시골 외할머니 집에서 지아는 햇빛 쨍쨍한 날 내리는 여우비 이야기를 듣고, 손수 그린 고양이 가면을 쓰고 집고양이를 따라 여우가 시집가는 행렬을 구경하러 떠난다. 스토리의 전개와 작가의 상상력이 빼어났다. ‘바람의 말 룽따 여우가 시집가는 날을 놓고 고심 끝에 상상력이 돋보인 여우가 시집가는 날을 당선작으로 올렸다. 앞으로 정진을 기대한다.

 

[약력-권중수]

-197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동시 당선

-197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74년 한국일보 동화 당선 -<문예중앙> 주간 역임

-동화집으로 <아침이 오는 길> <무지개를 찾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