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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그 녀석 / 이혜수


나는 입을 꾹 닫은 채 앞만 보고 걸었다. 녀석은 내 뒤를 무슨 강아지처럼 얌전하게 따라왔다. 녀석이 여기에 올 줄 몰랐다. 더욱이 나와 같은 조가 되고 이렇게 단둘이 산속을 헤맬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산에서 길을 잃었을 때 대처법을 어느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본 것 같은데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아빠는 돈도 못 벌면서 나한테는 열심히 투자한다. 대체 그 돈은 어디서 나오는지 이상하지만, 아빠의 극성 덕분에 나는 동네에서 가장 비싼 학원만 다닌다. 방학 때에는 별별 캠프를 다 가는데 이번 여름에는 ‘호연지기 리더십’ 캠프다. 겨울에는 해외 어학연수를 보내 주겠단다. 그래 봤자 소용없다. 내가 안 하면 그만이다. 공부가 인생의 전부가 아니고 아빠도 틀릴 때가 있다는 걸 잘 안다. 난 열세 살이니까.

“길을 잘못 든 것 같은데……. 그냥 내려가자. 계곡만 찾으면 산을 내려갈 수 있어.”

녀석이 잘난 척을 했다. 녀석은 유난히 허연 얼굴에 몸은 꼭 멸치처럼 말랐다. 천식에 아토피까지 달고 있어서 늘 주위 사람들의 관심과 보살핌을 받았다. 공부는 곧잘 하는 것 같은데, 그래서 더 재수 없었다. 휴대전화를 보니 벌써 8시였다. 10시 취침 시간까지 두 시간밖에 안 남았다. 산에 오른 지 한 시간도 안 됐는데 한 서너 시간은 흐른 것 같았다. 여전히 공동묘지 이정표는 보이지 않았다. 작은 손전등에서 나오는 빛은 주위의 어둠을 물리치지 못했다. 밤이 가까워지자 기온은 급격하게 내려갔다. 잠바를 입은 나와 달리 녀석은 반팔 티셔츠 차림이었다. 고소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나뭇가지에 얼굴이 긁혔다. 에이 씨. 

“길쭉한 나뭇가지가 있으면 지팡이도 되고 나뭇가지를 쳐낼 수도 있는데.”

또 잘난 척이다. 따지고 보면 지금 산속에서 헤매는 것도 모두 저 녀석 때문이다. 녀석은 상식 퀴즈 게임에서 모든 문제를 다 맞혔고, 장기자랑 시간에는 바이올린을 연주했다. 촌스럽게 무슨 바이올린이냐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조교 선생님과 아이들이 모두 감탄의 눈빛으로 녀석을 보았다. 저녁 자유시간이 되자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녀석 주변에 모였다. 나는 내 자리를 굳건히 지키며 앉아 있었다. 

“……이름이 뭐냐?”

소리 나는 쪽을 돌아보았다. 여자 아이 서너 명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 강재혁.”

“누가 네 이름 물어봤니? 쟤 말이야.”

낄낄대고 웃으며 눈짓으로 녀석을 가리켰다. 나는 얼굴이 너무 빨개지지 않기를 바라며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척 말했다. 

“이재민.”

여자애들은 녀석에 대한 호감을 감추지 않았다. “진짜 바이올린을 잘 켜지 않니?”, “공부 잘하나 봐.” 자기네들끼리 한참 떠들다가 갑자기 나한테 물었다. 

“너 쟤랑 친해?”

“아니.”

여기서까지 저 녀석이 잘나가는 걸 보고 싶지 않았다. 문득 캠프 시작 전 나눠준 주변 안내도에서 본 공동묘지가 생각났다. 어제 물놀이한 계곡에서 좀더 가면 있다고 적혀 있었다. 생각해 볼 사이도 없이, 불쑥 말이 튀어 나왔다. 

“나 지금 공동묘지 구경갈 건데 같이 갈 사람 있냐?”

순식간에 아이들의 관심은 녀석에서 나에게로 옮겨졌다. 이 저녁에 공동묘지, 정확히 말하면 납골당을 간다고 하니 아이들이 놀라는 것은 당연했다. 나 자신도 놀랐으니까.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지? 수습을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하지? 마음과는 다르게 말은 더욱 엉뚱하게 나왔다.

“내가 공동묘지 입구에다 이 모자 걸어 놓을 거니까, 내일 야생화 체험하러 가지? 그때 잘 찾아봐라.”

프로그램 대로라면 우리는 내일 납골당 근처로 야생화 체험하러 갈 거다. 나는 큰소리쳤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아이들을 보았다. 수군대기만 했지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당연했다. 이번 캠프 때 처음 본 사이인데 따라올 리 없었다. 후회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아니야, 성공하면 영웅이 될 텐데 그 정도의 위험은 감수해야지. 나는 애써 나를 위로했다. 취침 전에 돌아올 거니 조교 선생님이 찾으면 적당히 둘러댈 것을 다짐받았다. 뒷산은 나지막하니 만만했다. 이정표도 잘 되어 있어서 그렇게 어렵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밤에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었지만, 뭐 금방 갔다 올 거니까 상관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악! 하는 외마디 소리가 났다. 뒤를 돌아보니 녀석이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어.” 

“뭐? 일어나. 시간 없어. 빨리 갔다 와야 해.”

녀석은 일어나려다 다시 주저앉아 버렸다. 

“나 못 일어나겠어. 다리가 삔 것 같아.”

“에이 씨! 진짜……!”

나는 녀석의 왼쪽 발목에 손전등 불빛을 가까이 대 보았다. 멀쩡한 것 같았다. 발끝으로 툭툭 쳤다. 녀석이 비명을 질렀다. 

“엄살은…….”

“엄살 아니야. 진짜 아파.”

녀석이 내 눈치를 보며 말했다. 

“그리고 형 나 추워……. 우리 그냥 내려가자.”

나는 잠시 말을 잊고 녀석을 쳐다보았다. 맞다. 이 녀석은 내 동생이다. 나는 강재혁, 녀석은 이재민. 우리는 쌍둥이다. 다행히 이란성이라 사람들은 잘 알아보지 못한다. 나와 녀석은 일곱 살 때까지 같이 살았다. 그러니까 우리가 일곱 살까지는 엄마 아빠와 같은 집에서 같이 밥 먹고 같은 성을 갖고 살았다는 뜻이다. 엄마 아빠가 이혼하면서 나는 아빠와 녀석은 엄마와 산다. 나도 엄마와 살고 싶었는데 큰아들은 아빠와 살아야 한다는 할머니의 주장이 먹혔다. 어릴 때부터 자주 아팠던 녀석에겐 엄마의, 그것도 약사 엄마의 손길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더해졌다. 나중에 엄마는 이씨 성을 가진 아저씨와 다시 결혼했고, 녀석의 무난한 학교생활을 위해 강재민은 이재민이 되었다. 

나도 그냥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내가 왜 네 형이냐? 난 너 같은 동생 둔 적 없어.” 

녀석은 새초롬한 표정으로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나는 아까부터 묻고 싶은 걸 물었다. 

“너 왜 나 따라왔냐? 애들하고 같이 있지?”

“엄마가 캠프 동안 형 옆에 무조건 붙어 있으라고 그랬어. 형이랑 좀 친해지라고. 나도 따라오기 싫었는데 온 거야.”

“너는 엄마가 하란다고 다 하냐? 생긴 거나 하는 짓이나 완전 마마보이네.”

“나 마마보이 아니거든. 그리고 엄마가 그러더라. 형 우리랑 함께 살아도 된다고. 새 아빠도 괜찮다고 했대.”

“내가 왜 너희 집으로 들어가냐?”

“아빠 돈 못 번다며? 들었어. 아빠랑 형 지금 빌라 지하에 산다고.”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엄마가 새 남편과 잘 먹고 잘사는 동안, 아빠는 회사를 그만두고 장사를 시작했다. 편의점과 치킨 집을 거쳐서 지금은 대한신문사에서 일한다. 아빠가 처음 대한신문사에서 일한다고 했을 때 나는 좋았다. 대한신문이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많이 보는 신문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지난 겨울 내가 다니는 학원 앞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무슨 신문 보세요? 구독료 1년 공짜에 저흰 상품권 10만 원도 드려요” 하며 흰 봉투를 내미는 아빠를 보는 순간,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아빠는 낡은 잠바를 입고 사람들을 졸졸 따라 다녔다. 나는 아빠랑 마주치기 싫어서 다시 집으로 되돌아갔다. 그날 저녁 아빠는 학원 빠졌다고 엄청 화를 냈다. 쳇, 알지도 못하면서. 

나는 녀석에게 개, 새, 끼라고 했다. 녀석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보다 더한 욕도 할 수 있지만 참았다. 녀석이 집에 돌아가서 고자질할지 모른다. 그럼 족히 한 시간 넘게 아빠 잔소리를 들어야 할 거다. 에이 씨. 잠깐, 아주 잠깐 녀석을 놔두고 나만 얼른 다녀올까 생각했다. 녀석은 깜깜한 산속에 혼자 있게 되겠지. 몸도 약한 녀석이 발목까지 다쳤는데……. 

“아, 맞다!”

녀석은 주머니를 뒤적이더니 뭔가를 꺼냈다. 사과였다. 

“여기 올 때 가져왔어. 심심할 때 먹으려고. 난 과자 못 먹잖아.”

녀석이 사과를 내밀었다. 

“우리 이거 먹자.”

“너나 먹어.”

“나 한 입 형 한 입 먹으면 돼. 형 먼저 먹어.”

풀벌레 우는 소리가 여기저기 끊이지 않았다. 나는 사과를 받았다. 양손으로 사과를 잡고 있는 힘껏 힘을 주었다. 사과는 몇 번 버티다가 두 쪽으로 쪼개졌다. 한 쪽을 녀석에게 주었다. 와삭 녀석은 사과를 한 입 베어 물었다. 나도 먹었다. 사과의 단물이 입 안에 번졌다. 

“엄마 바쁘냐? 요즘 전화도 없더라.”

“응. 얼마 전에 한국병원 조제실로 옮겼어. 거기가 월급은 센데 일이 많나 봐. 엄마 맨날 늦게 와.”

“돈 많이 벌어서 뭐한대?” 

“형 학원비 대느라 그렇지. 몰랐어? 겨울 어학연수 형 먼저 보내 주는 거야. 난 다음에 가래.”

“……!”

의문이 풀렸다. 내가 가장 유명하고 비싼 학원만 다닐 수 있었던 이유를 말이다. 그래서 어쩌라고? 돈 잘 버는 엄마가 아들 학원비 좀 대는 게 뭐 어떻다고? 내가 속으로 중얼거리는 동안 녀석은 계속 말을 이었다.

“형, 아빠는 왜 돈 못 벌어? 대체 뭐해?”

“몰라. 내가 어떻게 알아?”

“왜 몰라?”

나는 말을 돌렸다. 

“너 아까 나보고 함께 살자… 뭐 그랬지? 그게 뭔 말이냐?”

“아 그거…….”

녀석이 나를 흘낏 쳐다보았다. 

“저번에 엄마가 형 집 갔다 왔거든. 지금 집 곰팡이 많다며? 형 고생한다고……. 엄마 막 울면서 새 아빠한테 형 데려오고 싶다고 그랬어. 아빠한테도 전화해서 진짜 크게 소리 질렀어. 형 달라고, 내놓으라고.”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몰랐다. 엄마가 우리집에 온지 몰랐고 아빠한테 그런 말을 한지도 몰랐다. 아빠는 나한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빠는 뭐라고 했대?”

“아빠도 화냈대. 형 잘 있는데 괜히 그런다고……. 근데…….”

“근데?”

“우리 사이가 너무 안 좋은 것 같다고 걱정했대. 형제끼리는 사이가 좋아야 한다고……. 아무튼 엄마 아빠랑 한참 애기했고, 형 문제는 형 스스로 천천히 결정하게 하자고 했나 봐.”

사과 덩어리 하나가 목구멍에 딱 걸렸다. 아무리 침을 삼켜도 내려가지 않았다. 

“형 우리 집으로 올 거야? 나랑 방 같이 써도 돼. 내 방 커.”

“알아. 큰 거……, 갔잖아.”

“어 그랬나?…… 맞아, 그랬지…….”

녀석의 목소리가 한없이 기어들어갔다. 3학년 겨울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12월 17일, 내 생일이었다. 녀석의 생일이기도 했다. 엄마가 나를 지금 사는 집으로 초대했다. 늘 밖에서만 만났지 집으로 초대한 것은 처음이었다. 내가 망설이자 엄마가 말했다. “새 아빠도 누나도 네 얼굴 한번 보고 싶대. 우리 모두 한 가족이니까 괜찮아.” 아빠도 말했다. “한번 가 봐. 재민이 어떻게 지내는지 좀 보고.”

가지 말았어야 했다. 정말 그래야 했다. 녀석 방에서 놀고 있는데 누나의 큰 소리가 들렸다. 

“아빠 내 엠피스리 없어졌어!”

아저씨가 방에서 나왔다. 부엌에 있던 엄마도 앞치마를 그대로 두른 채 거실로 나왔다. 아저씨가 말했다. 

“잘 찾아 봤어? 네 방도 보고? 가방 안도 찾아보고?” 

“방금까지 있었단 말이야. 잠깐 화장실 갔다 온 사이에 없어졌어. 분명히 여기 소파 위에 올려놨다고.”

엄마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무슨 엠피스리?”

“이번에 고모가 보내 준 거요. 그거 여기서 사려면 진짜 비싼데…….”

아저씨도 엄마도 당황한 표정이었다. 

“누가 가져간 거야. 그렇지 않고서야 잠깐 사이에 이렇게 감쪽같이 없어질 수 없어요.”

“누가 가져가? 다 한 집안 식구인데…….”

엄마 말에 누나가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쟤요, 쟤 방금 재민이 방으로 들어갔어요. 제가 화장실에서 나왔을 때 봤어요.”

모든 눈길이 나에게로 쏠렸다. 난 아까 목이 말랐었다. 녀석의 방을 나와서 거실을 지나 부엌으로 갔다. 부엌에서 엄마가 따라주는 우유를 마시고 다시 거실을 지나 녀석의 방으로 들어갔다. 

“난 몰라요. 그거 있는지도 몰랐어요. 재민아, 내가 방 들어왔을 때 뭐 들고 있었어?”

난 녀석을 보았다. 녀석이 내 결백함을 증언해 줄 거라 믿었다. 야, 어서 말해, 뭘 꾸물거려. 나는 눈빛으로 녀석을 재촉했다. 녀석이 고개를 숙였다. 어쩌면 누나의 매서운 눈빛에 기가 죽었는지 모른다.

“난 아무것도 못 봤어요. 형이 뭐 들고 있었는지 안 들고 있었는지……. 못 봤어요. 정말이에요.”

소파 주변을 아무리 봐도 엠피스리를 찾을 수 없었다. 누나는 내 가방을 보고 싶어했다. 엄마와 녀석은 간절히 바라보는 내 눈길을 피했다. 결국 난 내 가방을 열어 보였다. 엠피스리는 나오지 않았고 누나는 울면서 방에 들어갔다. 나는 울음을 꾹 참으며 그 집을 나왔다.

그날 아빠는 엄마에게 전화해서 엄청 화를 냈다. 무시하지 마, 너희들은 뭐가 그렇게 잘났어, 당신은 엄마 자격도 없어, 잘 먹고 잘 살아 등 아빠 입에선 별별 말들이 다 나왔다. 그리고 더 이상 우리에겐 생일 파티는 없었다. 

먹다 남은 사과를 수풀에 던졌다. 녀석을 일으켜 주었다. 녀석의 팔을 내 어깨에 두르게 하고 녀석의 허리춤을 잡았다. 나와 녀석은 그렇게 나란히 걸었다.

“형, 우리 지금 어디 가?”

“몰라, 내가 어떻게 알아? 공동묘지 가야 하는데 너 때문에 못 가는 거잖아!”

“우리 얼른 내려가게 해 달라고 기도하자. 형 교회 다녀?”

“아니.”

“절은? 할머니랑 가?”

“야! 나 그런 거 안 해. 너 기억 안 나? 우리가 엄마 아빠 이혼하지 않게 해 달라고 밤마다 같이 빌었던 거? 그런 거 다 거짓말이니까 하고 싶으면 너나 해.” 

“나도 기억해. 들킬까 봐 우리 이불 뒤집어쓰고 기도했잖아. 그러다 서로 껴안고 울었어. 소리도 크게 못 내고…….”

“웃기네. 너 맨날 크게 울어서 할머니한테 혼났거든? 어른들 일에 조용히 하라고.” 

“할머니 진짜 웃겨. 왜 그게 어른들 일이야? 우리 일이지.”

“엄마 아빠에겐 우리는 그냥…… 그러니까…….”

“진짜 그래. 우리가 뭐 물건이야? 둘이 나눠 갖게…….”

나는 녀석의 말을 받았다. 

“우리가 뭐 포스트잇이냐? 붙였다 떼었다 하게.”

“맞아. 우리가 뭐 사과인가? 둘이 쪼개 먹게.”

녀석은 신이 났다.

“형 나 또 있어.”

“뭔데?”

“우리가 뭐 부부냐? 만났다 헤어졌다 하게…….”

“넌 이재민이잖아? 아빠에다 누나도 있고.”

녀석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녀석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때, 엠피스리를 찾았다는 엄마의 전화를 받았을 때 내 얼굴도 지금 녀석처럼 딱딱하게 굳었겠지. 4학년 여름 방학이 거의 끝날 무렵이었다. “이번에 집을 좀 고치면서 가구 위치도 바꿨거든……. 거기 있더라. 거실 화장실 쪽 책장 뒤에……. 누나가 소파가 아니라 책장 위에 놓고 착각했나 봐. 그게 뒤로 빠진 것도 모르고……. 누나가 너한테 미안했다고 전해 달래. 재혁아, 엄마 마음 알지?” 언제나 그랬듯이 말은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혀끝에서 맴돌았다. 엄마는 모른다. 엠피스리를 찾았든 못 찾았든 난 그날 이미 도둑이었다는 걸 말이다. 엄마의 큰아들도 녀석의 형도 아닌, 누나가 도둑으로 의심하는 그래도 되는 아이였다.

어느새 녀석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에이 씨……. 

녀석은 어릴 때부터 울보였다. 엄마 아빠 이혼 후 우리는 매일 통화했다. 오늘 뭐 했는지, 뭐 먹었는지 서로 애기했다. 한번은 녀석이 내가 보고 싶다며 울먹였다. 돼지저금통을 털어서 녀석에게 갔다. 녀석은 환호했고 엄마는 놀랐으며 아빠는 화를 냈다. 여덟 살짜리가 혼자 가기엔 다소 먼 거리였다. 염창동에서 방배동까지 마을버스 타고 지하철 타고 또 마을버스를 탔다. 

녀석은 고자질을 잘했다. 2학년 때 어떤 놈이랑 크게 싸운 적이 있었다. 물론 나의 날렵한 주먹질과 현란한 발차기로 완벽하게 이겼다. 녀석에게 그걸 말했는데, 녀석이 엄마 아빠한테 얘기해서 나만 엄청 혼났다. 녀석은 자주 아팠다. 같이 살 때에도 천식 때문에 한밤중에 응급실에 자주 갔다. 녀석의 전화가 없으면 십중팔구 아픈 거였다. 다 나은 녀석이 “형 나야” 하면, 그 형이란 단어가 수화기를 통해 들리면 왠지 안심이 되었다. 

나는 녀석의 붉어진 눈시울을 못 본 척 했다. 발걸음만 재촉했다. 

“……학교 재밌어?”

“…….”

“재미있냐고?”

“나 이번에 전교 부회장 됐어.”

“엄마가 학교 엄청 드나들었나 보네.”

“나 스스로 된 거거든.”

“아, 알았어. 아저씨 딸 아니, 누나는 잘해 줘?”

“처음엔 좀 그랬는데 지금은 잘해 줘.”

“어떻게?”

“밥도 차려 주고 간식도 잘 챙겨 줘.”

“그건 나도 잘해.”

“정말? 근데 누나랑은 진짜 놀 게 없어. 형이랑은 야구도 하고 축구도 하고 게임도 같이 할 수 있을 텐데.” 

“당연하지.”

녀석이 헤벌쭉 웃었다. 내리막길에 들어섰다. 길은 더욱 울퉁불퉁해졌다. 나무뿌리가 여기저기 불거져 드러나 있었다. 나는 아래를 보며 조심스럽게 걸었다. 오른발 왼발 오른발 왼발 내 발과 녀석의 발이 착착 맞았다. 일곱 살 때 우리는 대공원으로 유치원 소풍을 갔다. 반 아이들과 두 줄로 나란히 맞춰 걷는데 녀석의 발이 자꾸 틀렸다. 녀석이 같은 발을 두 번 뛰어서 맞춰도 금세 또 틀렸다. 맞추면 틀리고 맞추면 틀리고 그랬다. 선생님이 뭐라 했다. “강재민, 오른발 왼발 맞춰야지” 아니면 “재민이만 자꾸 틀리네.” 

녀석은 울상이 되었고 나는 선생님이 미웠다. 그래서 일부러 나도 틀렸다. 애들이 왼발 할 때 난 오른발, 애들이 오른발 할 때 난 왼발. 덕분에 나와 녀석은 서로 잘 맞았다. 같이 틀렸으니까. 화창한 봄날이었다. 이 날은 내가 녀석과 마지막으로 함께 간 소풍이었다. 마지막으로 엄마가 싸 준 김밥을 먹은 소풍이기도 했다. 맛있었다. 지금은 소풍갈 때마다 학교 앞 분식집에서 김밥을 산다. 한 줄에 1500원짜리 맛나 김밥. 

밤이 깊어지자 어둠은 더욱 짙어졌다. 손전등을 멀리 비춰 보았다. 끝이 보이지 않았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길이 꼭 아빠 모습 같았다. 아빠는 몇 년째 같은 잠바를 입고 겨울을 난다. 신문 팔 때 입었던 그 낡은 잠바는 치킨 배달할 때도 입었던 거고, 편의점 할 때도 입었던 거다. 올겨울 아빠는 그 잠바를 입고 또 무엇을 할까……? 

침묵을 깨고 녀석이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형, 우리 영영 못 내려가면 어떡하지? 죽으면?”

오줌이 찔끔 새어 나왔다. 밤공기가 차가웠다.

“할머니는 맨날 죽어야지 죽어야지 하는데 진짜 건강해. 그러면서 하는 말이 죽는 것도 맘대로 안 된대. 야, 할머니도 못 죽는데 우리가 쉽게 죽겠냐?”

그때였다. 움푹 팬 구덩이에 내 오른발이 빠졌다. 무릎이 구부러지면서 상체가 앞으로 쏠렸다. 난 바닥에 고꾸라졌다.

“어어! 어……!”

나한테 기대고 있던 녀석은 나를 넘어 앞으로 굴러 떨어졌다. 얼굴이 그대로 바닥에 꽂혔다. 아래로 몇 바퀴를 굴러 내려가다 나무 밑동에 부딪혀서야 겨우 멈췄다.

“야! 야……, 괜, 괜찮아?”

나는 녀석에게 기어가 어깨를 붙잡았다. 움직이지 않았다. 덜컥 겁이 났다. 녀석의 코끝에 손을 대 보았다. 숨결이 느껴졌다. 그런데 얼굴에, 끈적거리면서도 따뜻한, 뭐가 묻어 있었다. 손전등을 잡는 내 손이 저절로 덜덜 떨렸다. 나는 녀석의 얼굴을 비추었다. 온 얼굴이 피투성이였다. 이마 한가운데가 찢겨져 있었다. 

“야, 재민아, 일어나 봐……. 야! 야! 강재민 좀 일어나 봐!”

녀석은 희미한 신음만 낼 뿐 의식이 없었다. 어디든 누구한테든 전화를 해야 할 것 같았다. 내 휴대전화를 꺼냈다. 10시 48분. 배터리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1, 1, 9 번호를 누르고 통화 단추를 막 누르려는데, 전화기가 경쾌한 소리와 함께 꺼져 버렸다. 녀석의 옷을 뒤졌다. 녀석의 것은 완전히 부서져 있었다. 넘어지면서 어딘가에 부딪힌 것 같았다. 

이대로 녀석을 보고 있을 수 없었다. 녀석에게 내 잠바를 입혔다. 손전등 끝에 연결된 줄을 머리에 두른 다음 남은 줄을 모자챙에 붙은 끈과 묶어서 손전등을 고정시켰다. 딱딱한 챙이 손전등을 받쳐 주었다. 얼추 광부들이 쓰는 모자처럼 손전등 불빛이 땅바닥을 비췄다. 녀석을 둘러업었다. 

빗방울이 하나둘 떨어지기 시작했다. 나와 녀석의 몸을 때리는 빗방울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좋은 대학 나온 아빠는 말할지 모른다. “어른들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지. 넌 늘 제멋대로구나.” 똑똑한 엄마도 한마디하겠지. “왜 산에 올라갔니? 아픈 동생은 놔두고 갔어야지.” 녀석은 말할 거다. “형, 나 좀 살려 줘.” 우리가 일곱 살 때 나는 엄마를 잃었고 녀석은 아빠를 잃었다. 그리고 또 무엇을 잃었더라?

빗물로 흙은 더욱 미끄러웠다. 한 걸음 한 걸음 디딜 때마다 거친 숨이 저절로 몰아쉬어졌다. 녀석의 허벅지를 받치고 있는 손이 자꾸 풀렸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모든 신경을 곤두세웠다. 녀석을 놓치면 안 돼. 넘어져서도 안 돼. 삐끗해서도 안 돼. 여기를 빨리 내려가야 해. 녀석의 발끝이 땅에 닿을세라 계속 녀석을 추슬렀다. 크고 작은 돌멩이들이 발에 채어 떨어져 나갔다. 몇몇 나뭇가지와 가시덤불이 얼굴을 긁고 찌르며 지나갔다. 녀석의 가냘픈 심장 소리가 귀에 똑똑히 들렸다. 녀석의 가느다란 숨결이 온몸에 전해졌다. 내 뺨 위로 빗물인지 눈물인지 땀인지 알 수 없는 그 무언가가 끊임없이 흘러내렸다. 나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당선소감] 한밤중 산 속이 그렇게 어둡지만은 않았다는 걸…

 

숨이 턱턱 막히고 땅이 쩍쩍 갈라지는, 어느 무덥고 가문 날 내린 단비를 상상한다.
화가 날 정도로 맑기만 한 하늘에 갑자기 먹구름이 끼고 요란한 천둥소리와 함께 빗방울이 후드득 떨어진다. 그 순간, 마을 사람들은 동시에 양동이를 들고 밖으로 뛰쳐나온다. 아이들도 그대로 밖에 나와 비를 맞는다. 춤을 춘다. 하늘 향해 입 벌려 그 비를 받아먹는다. 동네 개까지 돌아다니며 겅겅 짖는다. 큰 동물부터 작은 벌레들까지 기쁨에 겨워 분주히 움직인다. 그 뿐이랴. 마을의 모든 나무와 풀들이 일제히 제 몸을 활짝 편다. 말라 비틀어진 뿌리는 금세 생기를 되찾고 구부러진 줄기는 재빠르게 곧추 세워진다. 모두 살아 있다는 기쁨에, 살 수 있다는 희망에 부르르 몸을 떠는- 그 광경을 떠올린다.
송년 모임 중에 전화를 받았다. 조용한 곳으로 가 통화하고 다시 자리로 돌아와 식사를 마쳤다. 일행과 헤어진 후 제일 먼저 부모님께 고했다. 남편과 아이들에게 말하고 동화 수업하는 곳에도 소식을 전했다. 그 다음? 딱히 할 일이 없었다. 그래서 잤다. 일어나 보니 어느새 비는 그쳤고 마을 우물은 여전히 채워지지 않았다.
끝으로, ‘재혁이와 그 녀석’은 무사히 산을 내려왔다. 아이들은 그렇게 강하다. 또 한밤중 산속이 그렇게 어둡고 무섭지만은 않았다는 걸 말하고 싶다. 하늘엔 별이 빛나고 땅에는 풀과 꽃들이 소리 없이 자라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리고 나도 비로소 집으로 돌아갔다.

▲ 1971년 서울 출생 ▲ 1994년 가톨릭대 중어중문학과 졸업 ▲ 어린이책작가교실 수료

 


[심사평] 억지 감정에 매달리지 않는 작가의 건강함 믿음직

 

응모작 217편 가운데 본심에 4편을 올렸는데 성향이 모두 다르고 제법 완성도를 갖춘 상태라 당선작 외의 작품들도 어떤 경로로든 세상에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집으로’는 죽은 것으로 짐작되는 노인의 스마트폰을 주운 소녀가 노인이 남기고 간 삶의 풍경들을 스케치하는 이야기인데 둘 사이 매개체로 스마트폰이 설정되었다는 점이 흥미롭다. 그러나 설정의 개연성까지 구축해 내지 못한 것은 큰 아쉬움이다.
‘아기 자판기’는 아기조차 설계에 따라 만들어내는 미래 사회를 그린 아기자기한 작품이다. 미래 세계에 대한 상상은 이제 상투적이고 낡은 느낌마저 주는데 그럼에도 이 작품을 놓기 어려웠던 건 유머와 복고적 감수성이 녹아 있었기 때문이다.
‘훌쩍이와 더듬이’는 유쾌하고 사랑스러운 작품이다. 기준에 못 미치거나 다르면 루저가 되는 요즘에 그런 아이들을 따뜻하게 바라보고, 놀리는 아이조차 밉지 않게 사소한 에피소드마저 리드미컬하게 살려낸 것이 이 작품의 미덕이다.
우리는 큰 고민 없이 당선작으로 ‘나와 그 녀석’을 선택했다. 서사를 일구는 문장력이 아주 안정돼 있고 인물의 성격이 억지스럽지 않게 드러나고 현재와 과거를 보여주는 방식이 자연스러워 군더더기를 느끼지 못했다. 가정 해체와 경제적 어려움을 안고 있는 주인공을 기조로 하고도 억지 감정에 매달리지 않는 이 작가의 건강함이 믿음직스럽다. 

심사위원 김서정·황선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