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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양말 / 김정민


“야약사여래님, 저 말더듬지 않게 해해주세요. 치친구들이 놀리지 않게 해해주세요.

나는 말을 잘해요. 혼잣말을 할 때, 생각을 할 때, 꿈속에서 말을 할 때,

노래를 할 때 나는 말을 잘해요. 그런데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 할 때는 말을 더듬어요.

깜짝 놀라도, 화가 나도, 하고 싶은 말이 많아도, 기분이 좋아도 말을 더듬어요.

엄마가 그러는데 내가 말을 더듬는 건 내 머릿속 생각을 입이 따라가지 못해서 그런 거래요.”

“시끄럽던 아이들이 순간 조용해졌어요.

내 얼굴로 거미 한 마리가 살살 기어가는 것 같았어요.

나는 태민이를 노려봤어요. 유치원때부터 친구인 태민이가

나에게 그런 말을 하다니 화가 났어요. 울고 싶었지만 참았어요.

말더듬이에 울보라는 말까지 듣고 싶지는 않았거든요.

태민이는 자기 입을 두 손으로 꼭 누르고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봤어요.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태민이 옆을 지나 내 자리로 갔어요.”


시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엄마는 또 그 아줌마를 만났어요. 오늘도 엄마는 아주 반가워하면서 아줌마 앞으로 가더니 두 손 가득 들고 있던 장바구니를 땅바닥에 내려놓았어요. 지나가던 사람들이 힐끗힐끗 쳐다봐도 엄마는 두 손을 가슴에 모으고 고개를 숙였어요. 아줌마는 절 앞마당에 서서 언제나 우리 엄마를 기다렸어요. 그런데 그 아줌마 좀 이상해요. 목걸이도 하고 팔찌까지 했는데 정작 신발은 신지 않았어요. 날도 추운데 양말도 안 신었어요. 아줌마 발이 너무 시려 보였어요.

 

“엄마, 이 아줌마 발이….”

 

“건우야, 아줌마가 아니고 약사여래불이라니까.”

 

처음 엄마를 따라 이 절에 왔을 때 아줌마의 꼬불한 머리와 둥실한 얼굴, 웃을까 말까 하는 모습이 엄마와 비슷해서 나는 깜짝 놀랐어요.

 

“건우 너도 빨리 약사여래님께 빌어.”

 

“야약사여래님, 저 말더듬지 않게 해해주세요. 치친구들이 놀리지 않게 해해주세요.”

 

나는 말을 잘해요. 혼잣말을 할 때, 생각을 할 때, 꿈속에서 말을 할 때, 노래를 할 때 나는 말을 잘해요. 그런데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 할 때는 말을 더듬어요. 깜짝 놀라도, 화가 나도, 하고 싶은 말이 많아도, 기분이 좋아도 말을 더듬어요. 엄마가 그러는데 내가 말을 더듬는 건 내 머릿속 생각을 입이 따라가지 못해서 그런 거래요.

 

“어엄마, 그럼 내 입이 바보야?”

 

“아냐, 건우 머리가 토끼처럼 빠른 거야.”

 

엄마 말은 틀렸어요. 엄마 말을 듣고 태민이와 이야기할 때 거북이처럼 생각을 해봤지만 여전히 말을 더듬었어요. 말을 하려고 할 때 입술이 달라붙어 빨리 열리지 않았어요. 내 입은 더듬지 않고 말을 잘하기에는 정말 무거운 것 같아요.

 

학교에서 올 때, 시장에서 올 때, 언어치료를 받고 올 때 엄마는 늘 아줌마에게 내가 말을 잘하게 해달라고 빌었어요. 나도 엄마처럼 열심히 빌어야 하는데 오늘따라 자꾸 아줌마의 맨발이 눈에 들어왔어요.

 

“아아줌마, 발 시리지요? 목걸이까지 했으면서 왜 야양말을 안 신었어요?”

 

아줌마는 아무 대답도 안했어요. 하긴 아줌마도 대답하기 힘들 거예요. 아줌마의 입은 나보다도 무거워 보였어요. 부처님은 몸이 금색이라서 해님처럼 가볍게 보이는데 아줌마는 돌로 되어 있어 무거워 보였어요. 자꾸 물어보고 싶었지만 아줌마가 울고 싶어질까 봐 참았어요. 나도 사람들이 내 입을 쳐다보면서 자꾸 물어보면 울고 싶어지거든요.

 

“약사여래님, 우리 건우 말 더듬는 버릇을 고쳐주세요.”

 

날마다 빌어도 아줌마 입이 무거워서 대답하기 힘들다는 걸 엄마는 모르나 봐요. 부처님처럼 아줌마에게 금색 옷을 입혀 주면 엄마와 나에게 ‘소원을 들어줄게. 우리 건우 말을 더듬지 않게 말이야.’ 하고 대답을 해 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쎄에-’ 바람이 불었어요. 내 몸이 오소소 떨렸어요. 엄마의 얼굴에도 소름이 돋았어요. 어휴, 아줌마의 맨발은 얼마나 시릴까요?

 

“건우야, 그만 가자.”

 

아줌마에게 깊게 절을 한 엄마가 내게 말했어요. 엄마를 따라가다 되돌아 온 나는 두 손으로 아줌마의 발을 만져주며 아줌마만 듣게 작게 말했어요.

 

“아아줌마, 조금만 기다려요. 치칭찬 스티커 다 모았으니까요.”

 

“다 모았구나! 잘했어, 강건우. 뭐 갖고 싶어? 골라 봐.”

 

아침에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50개의 스티커가 나란히 붙은 칭찬 스티커 판을 가지고 선생님 앞으로 갔어요. 선생님은 책상 서랍 속에서 선물상자를 꺼내 내 앞에 주었어요. 우리 선생님은 칭찬 스티커 50개를 다 붙이면 선물상자에서 가지고 싶은 선물 하나를 고르게 해줬어요. 선물 상자 속에는 색연필, 양치세트, 지갑 등이 있었어요. 나는 병아리 털처럼 포근포근해 보이는 노란 양말을 골랐어요.

 

“건우야, 여기 파란색 양말도 있는데, 그 양말은 색깔도 그렇고 좀 커 보이는데?”

 

멋진 로봇 그림이 그려지고 내 발에 꼭 맞아 보이는 파란 양말을 꺼내며 선생님이 말했어요. 선생님은 내가 파란 양말을 못 봐서 노란 양말을 골랐다고 생각했나 봐요.

 

“다다른 사람한테 서선물할 거예요.”

 

“아, 그렇구나! 우리 건우 착하네. 어렵게 모은 건데.”

 

선생님이 웃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어요. 칭찬 스티커를 빨리 모으려면 발표를 많이 해야 해요. 나도 친구들처럼 손을 높게 들고 ‘저요! 저요!’하며 발표를 많이 하고 싶지만 친구들 앞에서 발표를 하다 말을 더듬을까 봐 손을 들지 않았어요. 대신 예쁘게 글씨 쓰고, 받아쓰기 백점 맞고, 줄을 똑바로 서서 칭찬스티커를 모았지만 그래도 친구들처럼 빠르게 칭찬 스티커를 모을 수는 없었어요.

 

노란 양말을 받으니 기분이 날아갈 것 같이 좋았어요. 쉬는 시간에 태민이와 동물 흉내 내기를 하며 놀고 있었어요. 태민이는 동물 흉내를 참 잘 내요.

 

“태민아, 너는 도동물 흉내 잘 낸다.”

 

“태민이가 뭘 잘한다고?”

 

옆에 있던 현준이가 갑자기 끼어들었어요.

 

“응, 내가 동물 흉내 잘 낸다고 건우가 그랬어.”

 

태민이가 어깨를 으쓱거리며 대답을 하자 현준이가 입을 삐죽거리며 말했어요.

 

“치, 그깟 동물 흉내 내는 게 뭘 대단하다고, 저번에 봤지? 나 달리기 하는 거. 나 달리기 선수 같지 않았니?”

 

그러자 주위에서 놀던 아이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떠들기 시작했어요. 예림이는 삐치기를 잘하고, 지윤이는 공부를 잘하고, 민석이는 코를 잘 후비고, 준규는 싸움을 잘한다고 말이에요.

 

“건우는 뭘 잘해?”

 

현준이가 내게 물었어요. 나는 매일 약사여래 아줌마에게 기도를 하니까 기도를 잘한다고 말하려는데 태민이가 불쑥 말했어요.

 

“건우는 말을 잘 더듬잖아.”

 

시끄럽던 아이들이 순간 조용해졌어요. 내 얼굴로 거미 한 마리가 살살 기어가는 것 같았어요. 나는 태민이를 노려봤어요. 유치원때부터 친구인 태민이가 나에게 그런 말을 하다니 화가 났어요. 울고 싶었지만 참았어요. 말더듬이에 울보라는 말까지 듣고 싶지는 않았거든요. 태민이는 자기 입을 두 손으로 꼭 누르고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봤어요.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태민이 옆을 지나 내 자리로 갔어요.

 

수업이 끝나고 나오니 교문 앞에서 엄마가 기다리고 있었어요. 달려가서 솜이불 같은 엄마 배에 얼굴을 묻었어요.

 

“건우야, 무슨 일 있었니?”

 

제일 친한 태민이에게 놀림 당했다고 차마 말할 수 없어서 마구 고개를 저었어요. 집으로 오는 길에 엄마는 또 아줌마에게 갔어요.

 

“약사여래님, 우리 건우 말더듬는 버릇 좀 고쳐주세요.”

 

옆에 지나가던 아저씨가 엄마의 기도 소리를 듣고는 나를 쳐다봤어요. 엄마는 그것도 모르고 눈을 꼭 감고 큰 소리로 자꾸 빌었어요.

 

“우리 건우 말더듬는 버릇 좀 고쳐주세요.”

 

난 화가 났어요. 엄마 때문에 저 아저씨도 내가 말더듬이라는 걸 알았을 거예요.

 

“비빌지마! 하하지 말라고!”

 

엄마는 놀래서 나를 봤어요.

 

“저저 아줌마는 엄마 기도 안 들어 줄 거야. 어엄마가 그렇게 비빌었는데 내가 그렇게 비빌었는데…. 드들어줄 거면 버벌써 들어 줬어야 해.”

 

화가 나서 말을 더 더듬었어요. 하고 싶은 말이 많은데 이렇게 화가 난 순간에도 더듬느라고 말도 빨리 못하는 내가 너무 미워 눈물이 나왔어요.

 

“어엉. 마말도 못하면서, 도도돌덩이 주제에, 어어엄마! 엉엉, 이 아줌마 도도돌덩이라 말도 못해. 비빌지 마!”

 

“건우야, 왜 그래?”

 

“추추울까 봐, 추추울까 봐 나는…, 아안 줄 거야. 미미워서 아아안 줄 거야!”

 

아줌마 앞에 주저앉아 엉엉 울었어요. 아줌마는 웃을 듯 말 듯 한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았어요.

 

집에 돌아와 가방에서 노란 양말을 꺼냈어요. 내 발에는 큰 노란 양말을 두 손에 꼈어요. 또르륵 눈물이 나왔어요. 양말 낀 손으로 눈물을 쓱쓱 문질러 닦았어요.

 

“바보! 멍텅구리! 겨울에도 맨발로 있는 아줌마는 바보야!”

 

“내가 바보라고?”

 

“허억!”

 

깜짝 놀라서 쳐다보니 약사여래불이, 아니 아줌마가 내 뒤에 서 있었어요.

 

“건우야! 왜 그렇게 화났니? 아줌마는 건우가 나를 좋아하는 줄 알고 있었는데, 오늘 왜 그렇게 화난 거야?”

 

아줌마가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물었어요.

 

“말을 더듬어서요. 아줌마, 나도 친구들처럼 빠르게 말하고 싶어요.”

 

“건우야, 모든 사람이 다 똑같은 속도로 말할 필요는 없어. 넌 그냥 너의 속도로 말하면 돼.”

 

아줌마의 얼굴을 봤어요. 아줌마는 입이 무거워서 어떻게 말하나 궁금했는데 세상에! 아줌마는 입을 열지도 않고 말을 했어요.

 

“우아! 아줌마. 아줌마는 어떻게 입도 안 움직이고 말을 해요?”

 

“난 마음으로 말을 하거든. 마음이 통하는 모든 사람들과 말을 해. 입은 가끔씩 마음과 다른 말을 할 때가 있지.”

 

“맞아요. 나도요 저번에 공부하기 싫은데 친구들한테 똑똑해 보이려고 공부가 재미있다고 그랬어요.”

 

“그래. 하지만 마음이 하는 말은 믿을 수 있어. 건우 너도 너의 마음으로 말하면 돼. 그러면 느려도 더듬어도 사람들이 알아들을 거야. 마음에도 귀가 있거든. 느려도 괜찮아. 까짓 더듬으면 좀 어때?”

 

아줌마의 말을 듣고 나니 마음이 좀 풀렸어요. 아까 화를 낸 게 슬금슬금 미안해졌어요. 나는 손에 낀 노란 양말을 아줌마에게 내밀었어요.

 

“아줌마, 이거 아줌마 선물이에요.”

 

“어머, 정말 고마워. 안 그래도 겨울이 와서 발이 시렸는데……. 이 양말 정말 따뜻하네.”

 

아줌마는 노란 양말을 신고는 아이처럼 통통 뛰었어요. 펄럭거리는 아줌마의 치맛자락 사이로 노란 양말이 보였어요. 돌로 된 몸이 무겁지도 않은가 봐요. 나는 진짜 아줌마의 모습이 보고 싶어졌어요.

 

“아줌마, 원래 아줌마는 어떻게 생겼어요?”

 

“궁금하니?”

 

나는 고개를 끄덕였어요. 아줌마가 웃으며 내게 다가 왔어요.

 

“자, 봐. 이게 내 진짜 모습이야.”

 

“전화 받아! 건우야! 아니, 넌 왜 양말을 손에 끼고 자니?”

 

엄마 목소리에 놀라 벌떡 일어났어요. 잠이 들었나 봐요. 손에 낀 노란 양말을 봤어요.

 

‘어? 분명히 아줌마가 양말을 신고 있었는데, 나한테 진짜 모습 보여준다고 했는데…….’

 

“건우야, 어서 핸드폰 받아! 태민이한테 전화 왔어.”

 

엄마의 재촉에 손에서 양말을 벗고 핸드폰을 받았어요.

 

“여보세요.”

 

“어, 어 건우야. 저, 저기 아까는 미안해. 정말 미안해. 나, 나는 놀리려고 그런 게 아니고 그냥, 으이구! 내 입은 사고뭉치야. 너, 너도 알잖아.”

 

평소에는 바람에 나풀나풀 흩날리는 꽃잎처럼 말을 잘하는 태민이가 더듬으니 이상했어요.

 

“태민아, 너 왜 갑자기 더듬니?”

 

“아아! 어떻게 해야 사과를 잘 할 수 있나 생각하면서 말하니까 자꾸 더듬네. 건우야! 너도 그런가 보다. 좋은 말, 착한 말 생각하면서 말하니까 더듬나 봐. 넌 항상 좋은 말, 착한 말을 하잖아. 미안해. 우리 계속 제일 친한 친구 하자, 응?”

 

태민이와 전화를 끊고는 참으려고 해도 참을 수 없는 방구 같은 웃음이 자꾸 나왔어요. 입을 뾰족하게 하고 있어도 소용이 없었어요. 엄마가 왜 그러냐고 눈으로 물었어요.

 

“엄마! 느려도 더듬어도 나의 말을 할 거야. 예쁜 노래를 부르듯 내 박자에 맞춰 내 말을 할 거야.”

 

“건우의 말?”

 

“응, 그리고 진짜 더 좋은 건 짜잔! 태민이가 항상 제일 친한 친구 하재.”

 

나는 엄마 손을 잡고 콩콩 뛰었어요.

 

“세상에! 안 더듬네. 건우가 안 더듬고 엄마한테 말을 하네.”

 

내 손을 마주 잡은 엄마가 쿵쿵 뛰었어요. 펄럭이는 엄마의 치맛자락 사이로 노란 양말이 보였어요.

 

 

[수상소감] “약사여래 부처님을 위한 글”

 

그날도 저는 약사여래님 앞을 지나갔어요. 다른 때라면 ‘찡긋’ 눈이라도 맞추고 갔을 텐데, 그날은 도저히 그럴 기분이 아니었어요. 사실 오전에 갔던 모임에서 얼핏 ‘아무개는 연락을 받았다더라, 실력 출중한 모모 씨들이 많이 응모했다더라’하는 소문을 들으며 ‘나는 떨어졌구나’라는 생각에 엄청 좌절하고 기운 빠져 있었거든요.

집에 돌아와 실망감을 반찬삼아 늦은 점심을 먹었어요. 그러다 전화를 받았죠. 제 머리 속에서 “댕! 댕!”소리가 나는 것 같았어요. 맑은 종소리요? 아니, 아니요. 약사여래님이 계신 통해사의 투명한 종소리가 아니라 찌그러진 양은 냄비를 숟가락으로 마구 두들기는 것 같이 정신없는 소리가 났어요. 처음에는 울었어요. 그리고 웃었어요. 그 다음엔 무서워졌어요. 준비도 덜 된 제가 당선이라는 결과를 얻었을 때 그것이 실력이라기보다는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날 밤새도록 제 머릿속의 종소리는 멈추지 않았어요.

약사여래님, 불쑥 불쑥 찾아가 아이들 감기가, 아토피가, 배탈이 낫게 해달라고 하고, 키도 농구선수처럼 쑥쑥 크게 해달라고 떼써서 죄송해요. 약사여래님 힘으로 안 되면 부처님한테 ‘빽’이라도 써 달라고 해서 죄송해요. 문득 너무 염치없다는 생각에 약사여래님께 약속했었죠. 약사여래님을 위해 글을 써드리겠다고….

약사여래님, 진심으로 감사드릴 많은 분들이 생각나네요. 먼저 저를 뽑아주신 심사위원님들께 머리 숙여 감사드려요, 전은희 선생님과 모임 분들, 부모님께 감사드려요. 어느 깊은 밤, 글 쓰다가 감정에 못 이겨 울고 웃던 저를 보고 이상하다 탓하지 않고 “그런 감성이니까 글을 쓰겠지”라고 말해 준 남편에게 이 말을 하고 싶네요. “남편, 고마워!”

준규와 지윤, 약사여래님은 잘 아시죠? 제 동화의 씨앗이 이 아이들이라는 것을, 낳기는 제가 낳았으나 오히려 이 아이들이 저를 키운다는 것을, 가슴이 녹아내릴 정도로 사랑한다는 것을. 약사여래님, 제가 약사여래님 앞을 지나갈 때 아무 이유도 없이 실실거려도, 삼라만상의 고민을 짊어진 것 같은 표정을 지어도 약사여래님, 약사여래님은 아시죠? 제 마음을.

 


[심사평] 최동호 '감각적 표현과 언어구사 능력 돋보여'

 

올해도 지난해와 비슷하게 150여 편의 응모작이 접수됐다. 응모작의 전체적인 수준은 높았으며 소재에 있어서 대부분 상상력 그 자체를 다룬 동화보다는 착한 새엄마와 폭행을 일삼는 새엄마, 다문화 가정, 암에 걸린 엄마 등 현실에 밀착한 동화가 많았다.

응모작 전체를 통독하고 ‘난다의 날개’와 ‘구리구리 당당구리’와 ‘노란 양말’, ‘솔개미 떴다, 병아리 감춰라’, ‘노벨문구 앞 우체통’, ‘우린 너무 달라’등의 작품에 일차적으로 주목했다. 모두 동화가 지녀야하는 기본적인 요소를 갖추고 있었지만 선정을 위해 먼저 3편을 내려놓고 ‘난다의 날개’와 ‘구리구리 당당구리’와 ‘노란 양말’ 등을 최종심에 올려놓고 집중적으로 검토하였다. 마지막 최종심에 오른 작품들은 현실에 기반을 두면서도 구성이나 문체에 있어서 동화의 분위기를 잘 표현하고 있었다.

‘난다의 날개’는 쌍둥이인 줄 모르던 난다와 내가 갈등을 겪다가 같은 형제인 줄 알고 나서 내가 난다의 날개가 되어주겠다는 이야기를 그린 동화이다. 마지막 반전이 돋보였으나 스토리 전개가 평면적이라는 점이 아쉬웠다. ‘구리구리 당당구리’는 환상과 현실을 적절하게 교차시켜 흥미를 끌었으나, 현실적 구체성으로 생동감을 주지 못하고 개성적인 주인공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것이 약점이었다.

‘노란 양말’은 말더듬이 건우가 자신의 장애를 고쳐나가는 과정을 그린 동화이다. 시작 부분은 약간 미흡하지만 약사여래의 맨발을 안쓰러워하는 건우의 따뜻한 마음이 동화를 읽는 내내 독자에게 전해져왔다. 그 마음뿐만이 아니라 건우의 부끄러운 마음을 “내 얼굴로 거미 한 마리가 살살 기어가는 것 같다”라고 한 감각적 표현은 물론 “마음에도 귀가 있다” 등의 문장에서 언어 운용을 자유로이 구사하는 남다른 능력을 보여주었다. 또한, 후반부에 이르러 약사여래와 어머니를 자연스럽게 연결한 마무리를 보면서 이 작가에게 기대를 걸어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선자에게는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더욱 정진하여 큰 작가로 대성하시기를 기원하며, 마지막 순간 아쉽게 탈락한 분들에게도 아낌없는 격려와 성원의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