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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바람만바람만 / 정황수

 

닭잦추는 새벽까지 소실점 없는 거리

잉걸덩이 엄두마저 찬이슬에 스러지나

야속히 돌아누운 등, 그림자로 들썩이고

인터넷 창에 비친 낯선 얼굴 클릭하며

허방다리 너덜 세상 별 하나 잡으려는

덴가슴 저 페르소나 보폭이 너무 짧다

뿌리 잘린 소갈증에 말라버린 강대처럼

() 저리 꿈쩍없이 부대끼며 여위어도

부둥켜, 부둥켜안을 그런 아침 기다린다



<당선소감>

 

우리 고유의 글 세계 알릴 것

 

문학에 대한 굶주림과 갈증 속에 살았습니다. 안동에서 고등학교를 다닌 그 시절 날 아시는 모든 선생님들에겐 난 문학도였습니다. 그러나 세상 굴레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그 길로 가다 보니 애써 가까이 다가서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어디서 무엇을 하든 가슴은 들끓었고 외국생활을 12년 이상 할 때도 필을 놓아본 적은 없습니다. 미국에서, 영국에서,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수십 년 습작을 하다 세상일을 쉬며 제2의 인생을 전적으로 시조에 매달린 것입니다. 당선 통보를 받고 처음엔 얼떨떨하다 정신을 차리고 나니 추운 날씨에도 몸이 화끈거리며 하느님이 나에게 임하시는 것 같이 느껴집니다.

 

설익은 글을 뽑아주신 심사위원 선생님에게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집에 틀어박혀 글을 쓴답시고 서성이는 나를 위로하고 격려하여 준 아내와 이 영광을 같이하고 싶습니다. ·간접적으로 글 쓰는 데 도움을 주신 선생님들에게도 감사드립니다. 잘 압니다. 신춘문예 당선이 글 쓰는 종착역이 아니라 이제 시작이라는 것을. 평생 드러내지 못하고 속에서만 부글부글 끓던 간헐천을 이제는 무자위로 끌어올리려 합니다. 우리 고유의 정형의 틀 속에서 보다 더 활기차고 아름다운 우리만의 글 세계를 알리고 싶은 것이 나의 바람입니다. 우리 이야기를 힘 닿는 데까지 펼쳐 보이고 싶습니다. 더욱더 공부하고 마음을 닦아 앞으로 더욱 정진하겠습니다.

 

1948년 경북 영주 출생 성균관대 경제학과 졸업

우리은행(구 상업은행) 시카고, 런던지점장 역임

6회 가람시조백일장 장원

7회 청풍명월시조백일장 차상



<심사평>

 

언어 다루는 솜씨 능숙하고 안정


응모된 원고를 보며 선자의 가슴은 기대와 열망으로 떨렸다.


선자의 손을 거쳐 남은 작품 미역귀의 바다’, ‘운필일몰’, ‘바람만바람만세 편을 두고 오랜 숙고에 들어갔다. 후보작을 하나씩 되새겨 가며 검토했다.


미역귀의 바다는 소재를 새롭게 보는 시각은 참신하고 착상은 좋았으나 운율을 다스리는 힘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운필일몰은 호흡은 안정돼 있으나 익숙한 언어, 억지스런 우리말이 뛰어난 다른 표현을 감하고 있다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마지막으로 남은 바람만바람만은 제목을 찾아내는 능력이 돋보였다. 바라보일 만한 정도로 뒤에 멀리 떨어져 따라가는 모양을 내면화시키면서 모든 사물에 따뜻한 시선으로 다가가며 부둥켜, 부둥켜 안을 그런 아침을 기다린다고 종장에서 희망적인 의지를 다졌다. 우리 주변의 소박한 이웃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도 긍정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 건강하게 읽혀진다. 다른 작품에 비해 언어를 다루는 솜씨가 능숙하면서 안정돼 있고, 함께 응모한 작품들도 고르게 탄탄해 신뢰를 갖게 했다. 올해의 당선작으로 기꺼이 합의를 했다. 정진과 대성을 빌며 시조단의 새로운 거목이 되길 빈다. 우리 민족의 정형시, 시조를 향해 보여준 다른 분들의 열정에도 감사드리며 시조의 텃밭을 꾸준히 경작하여 다음에는 좋은 결실이 있기를 빈다.


시조는 시절의 노래이다. 현실을 반영하면서 정형률을 지켜야 한다.


시조를 너무 쉽게 생각하고 글자 수만 맞추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는 마음이 들었다. 생경한 언어나 혼자 조탁해낸 언어의 사용은 자제해야 하고 혼란을 주는 경우 주를 달아 독자의 이해를 돕는 것도 고려해야 할 일이다. 몇 년 전의 똑같은 작품을 제목, 내용을 조금 변용해 투고한 작품도 눈에 띄어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신춘이란 이름처럼 새로운 감각과 도전정신, 패기가 절실한 때라는 생각이 든다


심사위원 : 정일근·하순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