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당선작>

 

봄눈 / 김연희

 

사뭇,  

그리운 이는  

사뭇 그리운 채로


뚫린 허공에 낮달이라 걸어두고


홀로 핀 매화 가지에

분 

눈이 오네




<당선소감>


 "초심으로 '詩中有畵 畵中有詩' 길 찾아갈 것"

 

 어두운 벽에 덩그러니 홀로 남은 달력을 못 박아 두고 싶은 12월! 

 마음 졸이던 몇 날이 초조히 흐르다 날아든 당선 소식에 가슴 벅차오르는 기쁨과 그리고, 이내 밀려드는 중압감에 시조공부와 함께 시작된 박물관 산책길에 들어섭니다. 마지막 휴가 나오는 날 기쁜 소식을 안고 온 작은 아이와 기다리던 첫눈이 축복하듯 반겨주네요!

 서예문인화 전공강의 시간마다 모암 윤양희 교수님께서 좋은 시를 선별하여 소개해 주시던 한편 한편들이 저를 시조의 길로 들어서게 했고, 그림을 그린 뒤 畵題를 쓰기 위해 시집과 한시를 찾아 읽으며 나의 그림에 내가 지은 시와 글씨와 전각으로 詩 書 畵 刻을 함께 이루고 싶다는 저의 수줍은 바람에 언제나 한결 같이 멘토가 되어주신 모암 선생님께 머리 조아려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공부한다는 것은 얼마나 많은 것을 모르고 있는지를 날마다 깨닫는 일입니다. 첫 마음을 잊지 않고, 따뜻한 눈길과 느린 걸음으로 '詩中有畵, 畵中有詩'의 길을 찾아 묵묵히 걸어가겠습니다. 

 부족한 저의 글을 올려주신 심사위원님과 부산일보사에 머리 숙여 감사를 드리고, 많은 날들을 함께 해 온 또 함께 걸어 갈 문우들과 어려울 때마다 아낌없이 마음을 얹어주신 선생님들께 깊은 감사드립니다.

 축하를 보내 온 많은 분들께 고마움을 전하며, 글 쓰고 그림 그리는 일에 빠져 소홀했던 가족들과 성탄의 달에 감사와 기쁨을 함께 나누겠습니다.


◎ 약력

▶ 1959년 강원도 태백 출생.

▶ 계명대 서예학과 졸.
▶ 서예문인화작가 겸 방과후학교 서예강사.


<심사평>


  '큐브' 우리 시대의 문제의식 참신한 표현 돋보여 '봄눈' 가락의 묘미, 회화성,연가류의 애틋함 조화

 

 올해 접수된 시작품은 2천 편에 가까웠다. 지난해보다 배 가까이 많게 투고됐다. 시의 저변 확대라는 차원에서 긍정적이긴 하나 다르게 보면 올 한 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이렇게 시로 표현하고 싶으리만큼 힘들고 스산한 삶을 살았구나 하는 것으로 바라보게 된다. 상당수의 시가 생활고에 젖은 내용이거나, 늙음과 관련된 쓸쓸한 감정을 많이 배출하고 있어 그런 생각을 갖게 한다. 어두운 시대상황이 반영되어 있는 것 같아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었음을 밝힌다.

 최종심에 오른 작품은 '주름의 집', '움파', '물의 건축설계도', '자연사박물관', '큐브' 등이다. 먼저 '주름의 집'은 삶의 쓸쓸함을 거미의 집에 빗대어 탁월하게 형상화한 점은 돋보였으나 삶의 문제를 너무 탐미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점이 한계로 제기되었다. '움파'는 파의 움이 싹트는 자연적 현상의 의미를 잘 살려내었으나 표현의 신기성에 머물고 만 점이 아쉬움으로 지적되었다. '물의 건축설계도'는 삶의 외로움을 풍부한 감성과 사물의 참신한 형상으로 표현해내는 점이 눈길을 끌었으나 시대적 문제의식이 빈약하다는 점이 한계로 지적되었다. '자연사박물관'은 뼈 이미지의 특성을 통해 삶의 쓸쓸한 이면을 독창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점이 계속 심사위원들의 눈길을 붙잡았으나 너무 미학적으로 완성되어 있는 점이 신춘작품으로 뽑기에 주저케 하였다.

 이에 비해 '큐브'는 작품 전체가 우리시대의 문제의식을 참신한 발상과 표현으로 드러내고 있고, 무엇보다 투고된 다른 작품들과 함께 동시대를 살아가는 시인으로서 가져야 할 전망에 대한 가능성이 풍부하다는 점이 장점으로 제기되었다. 그래서 심사위원들은 '큐브'를 당선작으로 정하였다. 당선자의 등단을 축하하며 앞으로 더욱 정진하여 한국시단의 빛나는 별이 되기를 바란다.

 미지의 세계를 탐색하듯 한 편 한 편 작품을 읽어나갔다. 소재가 새로워졌다는 점, 형식을 모르는 응모자가 거의 없다는 점, 제목이 구어체로 달려 있어서 친밀감을 느낄 수 있다는 점, 우리 생활과 가까운 노래라서 시조의 현실의식을 잘 표현해주고 있다는 점 등이 선자를 기쁘게 했다. 그러나 특별한 개성이 눈에 띄지 않았다.

 그런 과정에서 서정시로서 시조를 읽는 재미를 선사해주는 '벌초' '어머니의 틀니' '푸성귀 음표 피어나다' '가을 한토막' 등을 발견할 수 있었지만 당선작으로 밀기엔 조금씩 약점이 있었다. 지나치게 예스럽다거나 참신성이 부족하다거나 혹은 상이 너무 평이하고 제목과 내용이 부자연스러운 경우가 있었다.

 당선작으로 정한 '봄눈'은 달랐다. 응모한 4편이 두루 고를 뿐 아니라 넘치는 가락의 묘미와 회화성 그리고 연가류의 애틋함이 잘 어우러져 있어서 단연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 시인의 안목과 능력은 우리 시조시단의 한 이채가 되리라 확신하며 대성을 기대한다.


심사위원 : 오정환·이우걸·김경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