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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스님의 꿈 / 김희원

 

어릴 적 나는 스님에게도 꿈이 있느냐고 물었다

스님은 말없이 미소만 지으셨다

잠자코 비질만 하셨다

그 뒤로 꿈은 속인에게만 있는 것인 줄 알았다

꿈이 많아서 앓아눕던 나는

엄마한테, 내 꿈 좀 버려달라고 했다

늙어 다시 찾은 절에서

비질을 하는 젊은 스님을 본다

꿈이 있었을까

꿈을 버렸을까

마당을 비워내는 비질에서

한쪽으로 쌓이는 나뭇잎이 있다

딱히 쓸지 않아도 좋을 나뭇잎을

스님은 쓸어낸다

애쓰지 않아도 될 것을 애쓰는 몸짓에서

스님도 무언가 매달려 있구나

늙은 손은 염주를 고쳐 잡고

비워지지 않는 빈 마당을 보며

저 은자의 꿈같은 것은 거두어가시라고

어미 마음으로 죽향이나 더 태웠다

 


<당선소감>

 

이제 고무신 탈탈 털고

늙은 마음으로 나서봐야지요

 

내세에서나 들을 법한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 길로 교내 대성전으로 향했습지요. 속울음을 삭힌 뒤에야 불가의 마음으로 유가의 전당을 찾았음을 압니다. 양가 모두 노여워마세요. 단지 속세만 아니면 좋겠다는 심정이었는걸요.


대성전 앞뜰에 쌓인 눈은 여전히 순결하였습니다. 구름의 그림자도 함부로 내려앉지 못했답니다. 저 역시 육욕이라도 번질까 누군가가 남기고간 발자국만 밟고 섰습니다. 정녕 가고 싶은 세계는 저쪽에 따로 두고서요.


제게 있어 시란 그러한 존재입니다. 가까이하고 쓰다듬고 싶으면서도 차마 마음을 먹지 못하는 세계. 저로서는 그 자체가 고귀하고 순결하도록 놓아두는 편이 좋았습니다. 그러던 것이 잘못 날린 머리카락 한 올에 인연이 될 줄은요. 여기(餘技)에 지나지 않을 붓질을 하나의 여백으로 보아주시니, 이 몸은 업을 지어도 단단히 지었습니다.


시력(詩歷)이라 할 것도, 시심(詩心)이라 할 것도 없습니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온몸으로 시를 썼던가, 죽비만 휘두릅니다. 오늘일은 말의 절간에서 차 한 잔 잘 마시고 간다, 생각하렵니다. 이제 고무신 탈탈 털고 늙은 마음으로 나서봐야지요. 생의 여백은 주름진 데서 나오는 것 아니겠습니까. 마침 탑 그림자가 비에 쓸립니다.

 

<심사평>

 


당선 이후 뼈저린 단련 있어야


한 해가 가고 한 해가 오는 시절에는 그런 세월의 한 자국으로 하여금 새삼스레 인간의 예절이 있게 된다. 첫째 거친 말투가 없어야 한다. 서로 은근히 격려하고 상찬하는 아름다운 말씨가 살아나야 한다. 오랜 덕담이 바로 그렇다. 이런 자세로 이번 응모작 가운데서 뽑혀온 작품들을 읽었다.


어디 경전이 따로 있겠는가. 고대 동양에서는 시를 시경이라 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이 응모작들도 그 밑바닥에는 사뭇 경전의 어떤 요소가 들어있지 말라는 법이 없다. 그러나 이것들을 대하는 동안 나에게서 결코 아름다운 말씨로 소감을 적을 수 없게 환멸이 늘어났다. 거의가 말을 비틀어내고 있다. 거의가 말이 삶에서 길어 올리기보다 꾀부리는 헛 장식으로 되기 십상이었다. 이런 것들을 읽어가는 시간조차 아까웠다. 지난해나 지지난 해의 응모작보다 차이가 나는 원인이 뭘까 하고 생각했다. 아마도 막된 세태와 당대 삶의 부화뇌동 그리고 정서의 굴절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이런 것 가운데서 상대적으로 가작 수준의 작품이 거느린 소박한 서술전개가 돋보였다. 억지 복합은 단순 표백을 두드러지게 한다. <스님의 꿈>이 그것이다. 그래서 이 작품은 작품 자체의 긍지보다 다른 것의 언어남용 속에서 눈에 띄는 환경의 덕택 삼아 당선작으로 삼는다. 당선의 기쁨보다 당선 이후의 뼈저린 단련이 있어야 비로소 한 시인의 초상을 이룰 터이니 스스로 채찍의 붓을 들 것.


다음으로 위의 당선작과 견주게 되는 <흰나비>는 장자 호접의 고차원을 그대로 복사한 것인데 그런 복사의 유추를 자기화하는 솜씨가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장자 텍스트가 작자 자신의 텍스트로 환원되는 일은 도식적이면 안 된다. <소금꽃 사리>는 어머니의 장례를 통한 처연한 어머니의 일생과 그 일생의 결말을 깊은 애도로 그려내는데 주지적 서술보다 재래 심성의 어조였다면 그 완성도가 더할 뻔했다. 정진하면 제 그릇을 이루리라. <봄을 만나다>는 설명이 진실을 가려버린다. <철쭉제>는 시조의 자연스러움에 더 다가가야겠다.

 

심사 : 고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