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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내 이름은 바보 / 조병태

 


이쪽저쪽에서 아이들이 수군거립니다.


은미는 학교가 정말 싫었습니다. 집에만 가고 싶었습니다.


은미는 아이들이 자기를 ‘바보’ 라고 하는 것이 정말 싫었습니다.


공부가 끝나고 쉬는 시간에도 아이들은


은미와는 놀지도 않았습니다.


어쩌다 아이들이 노는데 슬쩍 끼어들면


아이들은 벌레 보듯 하였습니다.


“선생님, 저는 은미가 삼학년이 되도록


한글 한 자도 읽지 못하기에


‘바보’가 된 줄만 알고


지금껏 ‘바보’ 취급만 했습니다.


그러니 그 어린 것이


그 숱한 고통을 받아가며


이 애비를 얼마나 원망 하였겠습니까?


선생님! 고맙습니다!

은미 아빠의 눈에서는


참회의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습니다.”



우리나라 서해의 안면도, 그 끝자락에 반달 같이 떠 있는 아름답고 조그만 섬, 미도가 있습니다.

섬 주변에는 고기잡이 그물들이 여기저기 쌓여있고 아낙들은 자갈밭 위에 그물을 넓게 펴고 그 위에 잡아온 고기들을 펼쳐 널고 있었습니다. 작은 고깃배들은 통통통 분주하게 물살을 가르며 오가고, 어부들의 몸놀림이 더욱 빨라지고 있었습니다. 봄 한철이 한 해중 고기가 가장 많이 잡히는 시기라고 하였습니다.

은미는 이 섬에서 멀리 떨어진 우도에 있는 우도초등학교에 입학을 하였습니다. 미도에는 학교가 없기 때문에 아빠의 배를 타고 우도에 있는 학교로 가야했습니다.

학교에 가면,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학교 합숙소에서 잠을 자고 낮에는 공부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토요일에 아빠가 배를 타고 오셔서 은미를 태우고 집으로 돌아가곤 하였습니다.

은미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빠 엄마와 동생들과 헤어져 혼자 합숙소에서 잠을 자게 되었습니다. 은미는 너무 무섭고 외로워서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밤새도록 이불을 뒤집어쓰고는 울음소리를 참아가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가족들이 너무 보고 싶었습니다.

공부 시간에도 엄마 생각뿐, 선생님의 말씀은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유리창 너머 바다를 바라보며 혹시나 아빠가 배를 타고 은미를 데리러 오지 않을까 하고 기다려 보지만 아빠는 오시지 않았습니다. 토요일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담임선생님께서는 공부를 못한다고 매일매일 꾸중만 하셨습니다. 그렇게 일 년, 그리고 또 일 년이 지나갔습니다.

은미는 아무리 공부를 하려고 해도 되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은 이런 은미를 보고 답답한 표정을 지으며 말씀 하셨습니다.

“최은미!, 너는 이제 조금만 있으면 삼학년이 되는데 글자 한 자도 모르니? 너 진짜 큰일이구나!”

은미는 아무런 말도 못하고 고개만 푹 숙이고 눈물만 뚝뚝 떨어뜨렸습니다. 아이들은 까르르 웃었습니다.

“야, 은미 진짜 바보인가 봐, 지금까지 한글 한 자도 모르지 않아.”

이쪽저쪽에서 아이들이 수군거립니다. 은미는 학교가 정말 싫었습니다. 집에만 가고 싶었습니다. 은미는 아이들이 자기를 ‘바보’ 라고 하는 것이 정말 싫었습니다. 공부가 끝나고 쉬는 시간에도 아이들은 은미와는 놀지도 않았습니다. 어쩌다 아이들이 노는데 슬쩍 끼어들면 아이들은 벌레 보듯 하였습니다.

“야! 바보야! 너는 저리로 빠져, 너 하고는 안 놀아!”

하며 은미의 가슴을 팍 밀어버립니다. 그러면 은미는 뒤로 퍽하고 넘어졌습니다. 은미는 일어나 엉덩이를 툭툭 털면서 운동장 구석으로 걸어갔습니다. 구석에 앉아서 엄마를 생각하며 울었습니다. 울다 지치면, 혼자 공기놀이를 하였습니다.

저녁이면 아이들은 은미가 더럽다며 옆에서는 잠도 자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이 은미를 모두 싫어하니까 선생님은 은미를 출입구 문이 있는 맨 끝 자리에 혼자 자게 하였습니다. 겨울에는 차가운 바닷바람이 문틈으로 스며들어 코가 시리도록 추워서 이불을 푹 뒤집어쓰고 자곤 하였습니다. 은미는 어딜 가나 외톨이었습니다. 왜 모두들 은미를 괴롭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일들이 있을 때는 가끔 은미는 죽고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었습니다. 은미는 자신이 ‘바보’라는 것이 너무너무 슬펐습니다.

삼학년이 시작되던 해 미도에도 학교가 생겼습니다. 이제 그 지긋지긋한 합숙소 생활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합니다. 은미는 날아 갈듯이 기뻤습니다. 온 가족이 같이 지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동생 은용이도 미도초등학교 일학년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일학년 입학식이 있던 날, 은미는 엄마와 함께 새 학교에 갔습니다.

입학식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담임 발표가 있었는데, 은미 담임선생님은 김진웅 선생님이었습니다. 깔끔한 옷차림에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고, 매우 인자한 모습이 참 좋아 보였습니다. 그 날 밤은 가족들이 모처럼 모두 모여 학교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은미 아빠는 미도학교의 학부형 회장이 되셨습니다. 은미 아빠는 우도로 학교를 다니던 은미의 마음을 아셨는지 미도에 학교를 세우는데 앞장을 서서 열심히 일을 하셨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은미 아빠가 하시는 일에 언제든지 열심히 협조해주었습니다.

어느 날 은미네 집에 우도초등학교 박우철 선생님이 찾아 오셨습니다. 박우철 선생님은 우도초등학교에서 일학년과 이학년 때 은미 담임선생님이었습니다. 잠시 후 미도 학교 김진웅 선생님도 오셨습니다. 은미 아빠는 선생님들과 무언가 중요한 말씀을 나누고 계셨습니다.

“김진웅 선생님! 우리 은미를 일학년으로 내려 주십시오.”

은미 아빠는 신중하게 말씀 하셨습니다.

“아니, 왜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김진웅 선생님께서 의아한 표정을 지으셨습니다.

“은미가 삼학년이 되었는데도 글자 한 자도 읽지 못합니다. 아마, 어렸을 때 경기를 많이 해서 ‘바보’가 된 것 같습니다. 그러니 다시 일학년으로 내려 주십시오.”

은미 아빠는 간곡하게 부탁하셨습니다. 은미 아빠는 은미가 ‘바보’라는 것이 몹시 부끄러운 모양이었습니다. 옆에서 듣고만 있던 박우철 선생님이 은미 아빠의 말씀을 거들었습니다.

“회장님 말씀이 맞습니다. 은미는 아무리 지도해도 전혀 따라오지를 못합니다. 정말 정상 아이가 아닌 것 같습니다.”

은미는 박우철 선생님이 밉고 한없이 원망스러웠습니다.

이튿날 아침, 김진웅 선생님께서 은미를 교무실로 부르셨습니다. 선생님은 일학년 국어책을 책상 위에 펼쳐 놓으시고 은미에게 읽어 보라고 하셨습니다. 은미는 물끄러미 책만 바라보며 고개를 푹 숙인 채 아무런 말이 없었습니다. 선생님은 연필로 글자 한 자씩을 짚어가며 읽어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은미는 아무런 대꾸가 없었습니다.

“은미야, 한 글자도 모르겠니?”

선생님은 은미의 등을 다정하게 쓸어 주셨습니다.

“네.”

은미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대답하였습니다.

“은미야, 괜찮아. 지금부터 열심히 배우면 돼, 걱정하지 마, 알겠지?”

“네.”

은미는 고개를 숙인 채 오른손으로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하였습니다.

그 이튿날부터 김 선생님은 아이들이 공부를 마치고 돌아간 뒤, 은미를 위한 특별 지도계획을 세워서 별도로 한글을 지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며칠이 지난 후, 첫째 시간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칠판에 ‘이’자를 크게 써놓고 아이들을 향해 말씀하셨습니다.

“읽을 수 있는 사람 손 들어봐요!”

“예, 저요! 저요!”

아이들이 모두 손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은미는 손을 들지 않고 눈을 깜빡거리고 있었습니다. 요즘 며칠간 선생님이 두꺼운 종이로 글자 모양을 만들어 가지고 왼쪽에 동그라미 모양을 한 종이와 오른쪽에는 연필처럼 길쭉한 모양의 종이를 놓고 수십 번 알려 주신 ‘이’자가 생각이 났습니다. 은미는 손을 들까 말까 하다가 겨우 손을 반쯤 올렸습니다. 선생님은 은미를 뚫어져라 살피다가 손을 올리려는 모습을 보고는 얼른 은미를 부르셨습니다.

“최은미! 한번 읽어봐요.”

은미는 일어나지 않고 앉아서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다정한 목소리로 은미를 부르셨습니다.

“은미야! 한 번 일어나서 읽어 보렴.”

은미는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섰습니다. 그리고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이”

순간 교실은 쥐죽은 듯 조용해지며 아이들은 의아한 눈빛으로 은미와 선생님을 번갈아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때 선생님께서는 미소를 지으며 말씀 하셨습니다.

“야! 은미 참 대단하다. 우리 은미를 위하여 칭찬의 박수를 보내자.”

선생님은 크게 박수를 치셨습니다. 그러자 아이들도 은미를 바라보며 힘찬 박수를 쳤습니다. 은미는 어리둥절하며 어찌할 줄을 몰라 했습니다.

그날 은미는 난생 처음으로 선생님께 칭찬을 받아보았습니다. 학교에 입학하여 지금까지 한 번도 칭찬을 받아 본적이 없었습니다. 매일 선생님께 꾸중만 듣고 벌을 받고, 아이들한테 놀림만 받았을 뿐입니다.

집에 돌아온 은미는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생각했습니다.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너무 좋아서 잠도 오지 않았습니다.

다음 날도 선생님께서는 은미를 칭찬 하시며 또 다른 글자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은미는 더욱 열심히 글자 만들기 공부를 하였습니다. 집에 갈 때도 글자 만들기 카드를 가지고 가서 열심히 글자 만들기 놀이를 하였습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갔습니다.

아침 시간에 선생님은 노란 분필로 칠판에 커다랗게 ‘아’ 자를 쓰셨습니다.

“읽을 수 있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저요! 저요! 선생님 저도 시켜 주세요!”

아이들은 모두 자기를 시켜달라고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손을 들었습니다. 은미도 손을 들었습니다.

선생님은 은미를 보시고

“은미야, 이 글자도 읽을 수 있니?”

하고 물으셨습니다.

은미는 일어서서 지난번보다 약간 큰 목소리로

“아, 입니다.”

하고는 자리에 앉았습니다.

“야! 은미 진짜 잘 읽는다.”

아이들은 신기한 듯 큰 소리로 떠들었습니다.

“은미, 대단하구나! 정말 대단해! 우리 다시 한 번 더 큰 박수.”

선생님이 말씀하시자, 아이들은 모두 함성과 함께 칭찬의 박수를 보내 주었습니다. 선생님과 은미는 매일 같이 학교가 끝난 다음에는 글자 공부를 하였습니다. 선생님이 밖에서 작업을 하실 때는 은미는 선생님 옆에서 나뭇가지를 꺾어서 땅바닥에 글씨를 썼습니다. 선생님이 가르쳐주신 글자를 혼자 중얼거리며 열심히 썼다가 지우고를 수없이 반복하였습니다.

때로는 몹시 힘든 때도 있었습니다. 아무리 쓰고 읽어도 도무지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너무 힘들어서 공부를 그만두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아이들이 손가락질을 하며 ‘은미는 바보다, 은미는 바보야??하고 놀림 받던 생각을 하면 정신이 번쩍 들곤 하였습니다. 은미와 선생님은 배우고 가르치는데 최선을 다 했습니다. 은미는 차츰 글자를 알아가는 것이 무척 재미있었습니다. 특히 선생님께서 사다주신 재미있는 그림동화책을 읽을 때는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몰랐습니다.

여름 방학이 시작되었습니다. 은미는 서울에 계신 이모님께 편지를 썼습니다. 삐뚤빼뚤 줄이 잘 맞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받침이 있는 글자가 많이 나와서 편지를 쓰는데 애를 먹었습니다. 그래도 겉봉투에 주소와 이름까지 써놓고 나니 퍽 자랑스러웠습니다. 은미는 편지봉투를 책상 위에 놓고 밖으로 놀러 나갔습니다. 기분이 참 좋았습니다.

해가 질 무렵이었습니다. 은미 아빠는 술 한 병과 생선이 들어있는 바구니를 들고 학교에 올라왔습니다.

“김 선생님! 일 좀 슬슬 하셔요. 그러다 몸살 나겠습니다.”

“회장님이 웬 일이십니까! 늦은 시간에......,”

선생님은 일손을 멈추고 은미 아빠와 쉼터 의자에 앉았습니다. 내려다보이는 바닷물이 호수처럼 잔잔했습니다. 은미 아빠는 술과 안주를 내려놓고 선생님께 권했습니다. 그리고 은미 아빠는 호주머니 속에서 뭔가를 하나 꺼냈습니다. 편지봉투였습니다. 선생님은 웬 봉투인가 하고 의아해 하셨습니다. 그러자 은미 아빠가 말을 꺼냈습니다.

“이 편지, 은미가 쓴 것 맞습니까?”

편지 봉투를 받아가지고 살펴보던 선생님이 태연하게 말씀 하셨습니다.

“예, 은미가 쓴 것 맞는데요.”

“아니, 진짜 은미가 이 편지를 썼다는 말입니까?”

“예, 그렇다니까요, 은미가 쓴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왜요?”

“아니, 우리 은미가 글씨를 쓸 줄 안다는 말입니까?”

“예, 은미는 지금 국어책도 거의 다 읽을 수 있고, 어린이 신문도 어려운 글자 몇 자 빼고는 거의 다 읽습니다.”

선생님은 은미아빠에게 그 동안 은미가 열심히 공부한 과정을 자세히 설명해 주셨습니다. 선생님 말씀을 다 듣고 난 은미아빠는 고개를 들어 먼 바다를 바라보시며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셨습니다.

“허허! 세상에! 은미가 책을 읽다니, 해가 서쪽에서 뜰 일이구먼......,”

은미 아빠는 눈물이 글썽글썽 하시더니 더 이상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하셨습니다. 그러고는 선생님의 두 손을 꼭 잡고 선생님을 바라보셨습니다.

“선생님, 저는 은미가 삼학년이 되도록 한글 한 자도 읽지 못하기에 ‘바보’가 된 줄만 알고 지금껏 ‘바보’ 취급만 했습니다. 그러니 그 어린 것이 그 숱한 고통을 받아가며 이 애비를 얼마나 원망 하였겠습니까? 선생님! 고맙습니다!”

은미 아빠의 눈에서는 참회의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습니다. 은미 아빠와 선생님은 꼭 잡은 두 손을 놓을 줄을 몰랐습니다.

이 때 은미가 책을 들고 올라왔습니다.

은미아빠는 은미를 번쩍 들어 올리며 바다를 향해 크게 소리쳤습니다.

“우리 은미 만세! 만만세!”

붉은 저녁노을이 두 부녀를 향해 아름답게 비춰주고 있었습니다.

 


<당선소감>

 

72세에 영광, 나이는 숫자

 

불교신문사로부터 신춘문예 동화부문 당선 통지를 받고, 난생 처음 가슴의 경련을 느꼈다. 교직 생활 40년을 마치고 글을 쓰고 싶은 충동에 65세의 나이로 한서대학교 문예창작학과에 입학했다. 졸업 후에도 몇 년 동안을 도서관을 찾았다. 덕분에 졸업 후 4년 뒤에 시인으로 등단하였고, 특히 이번에는 72세의 나이로 이런 크나큰 영광을 차지하게 되니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되었다.

어린이들과 평생을 같이 생활했던 것이 동화를 쓰는 데 큰 도움과 밑거름이 된 듯 싶다. 맑고 깨끗한 어린이들의 아름다운 마음에 조금이라도 밝은 영향을 줄 수 있는 동화를 계속 쓸 수 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여생을 어린이들에게 바치고 싶다. 어린이는 우리의 희망이 아니던가! 무엇보다도 열심히 지도해 주신 한서대학교 문창과 교수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늘 옆에서 용기를 북돋워 준 가족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끝으로 부족한 저의 작품을 선정해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깊은 감사를 올리고 불교신문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한다.

 


<심사평>

 

동화, 감동과 서사 흥미로워

평론, 비평기능 생략 아쉬워

 

이번 동화부문 응모작을 읽으면서 이야기문학이 만들어낼 수 있는 따스한 감동과 흥미로운 서사에 몰입할 수 있었다. 어린아이들 사이의 우정과 갈등, 불교적 세계에 눈을 떠가는 순수한 동심의 세계, 곤충, 동물, 무정물 심지어는 하루살이나 눈송이까지도 인격화해서 세계를 확장하는 의인화된 이야기들, 전통적 가치를 되살리는 설화류의 재생, 원만한 가족관계를 이루지 못하는 다문화가족의 갈등과 감동적 화해, 신기하고 흥미진진한 우화적 서사 등등 여러 유형의 작품들을 흥미롭게 읽었다.

문학작품을 통해 얻게 되는 흥미와 갈등은 엄숙한 체계와 논리에 의해 연구되는 과학이나 사상에서는 좀체 찾기 힘든 것들이다. 합리적 이성이나 엄밀한 논리에 의해 만들어지는 여러 학문이 인간을 설득시키고 이해하게 하는 힘은 대단한 것이다. 그러나 고양된 정서와 심미적 언어에 의해 탄생되는 문학의 전율과 감동은 그런 것들과 구분되는 위대함을 갖는다. 인간은 이성의 뼈대만으로 만들어진 존재가 아니라 기쁨과 슬픔, 고통과 환희, 절망과 희망 같은 심리적인 요인들에 의해 더 많이 행복해지거나 불행해질 수 있는 존재인 것이다.

당선작 ‘내 이름은 바보’는 초등학교 2학년이 지나도록 한글 한자도 읽고 쓸 줄 모르는 여자아이의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쓰고 있다. 같은 또래의 아이들은 물론 담임선생님이나 심지어 아버지까지도 이 아이를 바보로 생각한다. 그러나 전학을 가서 새로 만난 담임선생님은 방과 후 특별지도를 통해 아주 서서히 글자를 익히게 하고 마침내 교과서나 신문까지도 읽고 편지도 쓸 줄 아는 아이로 바뀌게 만든다. 아이의 기쁨은 말할 것도 없지만 자식을 바보로 여겼던 아버지는 한없이 뉘우치며 기쁨의 눈물을 흘린다는 이야기다. 이 작품은 깊은 감동과 함께 문득 아이들의 교육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요구하기도 한다. 작품의 서술은 안정적이고 무난하며 화려한 수사에 의존하기보다는 정확한 언어와 문장으로 무리 없는 진술이 빛을 더해준다.

이밖에도 인간의 선행과 악행에 대한 교훈적이면서도 감동적인 우화 ‘흙단지’, 윤회에 대한 소년의 소박한 이해를 그린 ‘새야, 새야, 파랑새야’, 젊은 어머니의 치매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 소년의 이야기 ‘분홍 포스트잇’, 시줏돈의 의미 있는 이해를 다룬 ‘스님과 뻥튀기 할머니’, 타계한 조부와 손자 사이의 아름다운 사랑을 그린 ‘딱지치기’, 다문화가정의 이야기인 ‘부처님과 새 가족’, 잠깐의 꿈으로 가족의 소중함을 새삼 깨닫는 ‘불꽃놀이’ 등 기억하고 싶은 작품들이 많았지만 지나치게 현실과 거리가 멀거나 서술능력에서 결함을 드러냈거나 이러저러한 이유로 입선되지 못한 아쉬움을 남겼다.

금년에도 평론 당선작을 만나지 못했다. 많은 응모작들은 종교적 철학적 담론들이거나, 텍스트를 통해서 자신의 단편적인 독서경험을 반영한 사상적 웅변이거나 비평적 지향이 보이지 않는 고전감상문인 경우가 많았다.

 

심사 : 홍기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