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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미노타우로스 사냥꾼 / 권행백

 

그가 안 보이는 게 오히려 이상했다. 박은 소들을 겨누던 가늠자에서 눈을 떼고 어깨를 돌렸다.

 "형님, 강씨 못 보셨수?" 

 이장이 시큰둥하게 고개를 저었다. 대단한 구경거리라도 되는 양, 소 돼지가 죽어나가는 농장마다 찾아다니며 지켜보던 강이었다. 오늘이 이장네 마무리 작업 날인데….

 작년 여름 마을에 들어온 강은 어수선한 첫겨울을 보내고 있다. 살처분이 몰고 온 분위기 탓이다. 박은 이장과 담장 하나 사이로 이웃이었고, 강 또한 박의 집 바로 옆에 거처를 잡았다. 이천읍내에 산다는 그의 딸이 혼자 된 아버지를 가까이서 돌봐드릴 요량으로 구한 집이었다. 거기는 노부부가 아들을 따라 서울로 합치는 바람에 비어있었는데, 때마침 찾아온 강의 딸이 헐값에 세를 얻었다. 외풍이 심한 벽이며 낡은 지붕들은 강이 고쳐서 사는 조건이었다. 

 "새벽부터 어디 멀리 갔나? 경운기를 빌려달라더니…."

 "농사짓는 사람도 아닌데 그걸 뭐에 쓰려고요?"

 "그 속을 내가 알겠나, 자네가 알겠나."

 "......"

 "또 아픈 거 아녀? 대충 일 끝내고 건너 가봐."

 "같이 가봅시다."

 "난 좀 쉴라네, 피곤하고 심란해서…."

 이장의 양쪽 흰자위에 실핏줄이 도드라져보였다. 밤새 눈을 붙이지 못했는지 푸석한 얼굴이었다. 궂은일로 잔뼈가 굵은 그도 연일 이어지는 작업에 지친 것 같았다. 오늘따라 박의 눈엔, 쉰셋인 자신보다 세 살 위인 이장이 열 살은 더 먹어 보인다.

 "그나마 형님은 다행인줄 아쇼. 아랫마을은 겨우 절반 건졌다는데."

 이장이 눈꼬리에 주름을 잡았다. 

 "거기야 균이 발견되었으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지만…."

 꼬리를 감추는 말끝에 불평과 원망이 묻어 있었다. 그는 노인들뿐인 이 마을에서 십년 넘게 청년회장직을 맡아보다가 등 떠밀려 이장이 되었다. 벌써 3년이 지난 일이니, 박이 이천읍내의 동물병원을 폐업하던 봄이었다. 그때도 겨우내 구제역 살처분에 동원되던 끝에 수의사노릇을 청산했다. 차마 못할 짓 같아서였다.

 

 소들이 서로의 틈새를 비집고 들이받았다. 우리 안이 더 좁아보였다. 목표물이 자꾸만 박의 시선을 비켜갔다. 이번에도 노란 날개가 달린 주사바늘이 우사 안쪽 벽에 맞고 소똥위로 떨어졌다. 밖에서 털털거리는 기계음이 점점 커지다가 잠잠해지더니 기침소리가 마당을 건너왔다. 강이 돌아온 모양이었다. 잠시 후, 눈살을 찌푸리는 그가 시야에 들어왔다. 축사 출입문 옆, 담장대신 줄지어 세워둔 장독대 뒤는 그가 아침마다 햇볕바라기를 하는 자리다. 핏기 없는 얼굴로 밭은기침을 할 때마다 왼손에 쥔 연필이 흔들린다. 장독뚜껑에 올려놓은 스케치북 위에서 강의 손놀림이 바쁘다. 박은 이내 얼굴을 돌려 가늠자에 다시 시선을 꽂았다. 강이 무엇을 그리는지 짐작이야 하지만 관심을 둘 겨를이 없다. 화가가 늘 하는 일이려니….

 인력들이 돈사로 몰려간 뒤로 비명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오십 미터 이상 떨어진 거리에서도 몽둥이와 삽날로 돼지를 패대는 소리가 들린다. 이쪽에서도 눈치 빠른 황소가 눈알을 뙤록이며 앞발을 들어올렸다. 돈사 앞 배추밭을 파서 비닐막을 깔아놓은 구덩이는 하늘을 향해 아가리를 쩍 벌리고 있었다. 집채 하나가 들어갈 깊이였다. 포클레인 삽날에 찍혀 떨어진 것들을 흔적도 없이 삼켜버릴 구멍밑이 아스라했다. 네발 달린 짐승은 한 번 미끄러지면 그걸로 끝이다. 줄을 세워 몰아가지만 눈치 빠른 몇은 대열을 이탈한다. 주로 나이든 놈들이다. 매질의 대상은 그놈들일 것이다. 돼지는 피하지방층이 두꺼워 주사를 놓는데 애를 먹는다. 주사약값을 아끼고 층층이 쌓아 흙을 뿌려가며 산 채로 묻어버릴 좋은 핑계다. 묵은 분뇨냄새가 콧속을 후비듯 파고들었다. 박은 문득 피 냄새를 맡은 것 같았다. 메스꺼웠다. 그는 머리를 흔들어 묵은 기억을 털어냈다. 키 낮은 철문 위에 팔꿈치를 올려 조준하던 박은 총신을 내리고 허리를 폈다. 어차피 마취총으로 해결될 문제는 아니었다. 답답한 마음에 해보는 것일 뿐, 오백 마리도 넘는 소들에게 한 방에 9천 원씩이나 하는 주사용 총알을 쓸 예산도 없었다. 살처분명령에 손을 놓아버린 축사 꼴이 파장한 장터다. 돈사 앞 채소밭에서 시커먼 비닐조각들이 떠나지 못한 철새처럼 푸드득거린다. 찬바람에 반쯤 찢겨나간 비닐하우스가 그 옆에서 맥없이 몸을 뒤튼다.

 "박원장! 그만두소!"

 몇 발짝 떨어져 지켜보던 이장이 다가왔다. 차마 제 손으로는 못하겠다던 그였다. 그의 미간에 깊은 주름이 잡혀있었다.

 "휴우…."

 이장의 벌어진 앞니 사이로 진한 니코틴 냄새가 빠져나왔다. 담뱃값 인상 때 끊었다더니, 어지간히 속이 타는 모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구제역이 발견된 곳으로부터 반경 오백 미터 안쪽이라는 이유만으로 이장은 멀쩡한 소들을 죽여야 하는 처지였다. 이른바 예방조치였다. 아직 감염되지 않았으니 시세대로 보상해준다는 국가시책도 그의 미간을 펴주진 못했다. 하마터면 강이 몰고나갔던 경운기도 매몰(埋沒)리스트에 오를 뻔했다. 균이 발견되면 농장에 있는 물건은 쇠못 하나까지도 파묻어야하니까. 부농의 꿈이 눈앞에서 사라지고 있었다. 축사를 지을 때 진 농협 빚은 아직 절반도 갚지 못한 상태였다.

 "일이나 합시다. 피한다고 될 일도 아니고."

 박의 재촉에 이장이 마지못해 우사 안으로 발을 담갔다. 날뛰던 소들이 온순해졌다. 멀리 도망치던 놈들도 그에게 머리를 들이밀었다. 먹이를 받아먹던 습관이었다.

 "진작 잡아줄 것이지."

 박의 대거리에 이장은 말없이 코뚜레를 잡은 손에 힘을 줬다. 박이 꼬리를 들어 올렸다. 항문근처의 얇은 피부에서 정맥을 찾아 주사바늘을 찔러 넣었다. 근육이완제였다. 소들이 무릎을 꺾기까지는 일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바늘이 가죽을 뚫고 들어갈 때마다 이장이 얼굴을 외로 꼬았다. 그의 입가에 허옇게 버캐가 끼어있었다. 박은 마취제를 생략한 채 염화석시닐콜린을 주사했다.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건 안락사가 아니니까. 소가 저항할 수 없게 만들 뿐. 그렇게 하면 운반이 쉽긴 해도 의식 있는 상태에서 심장마비로 죽어가는 것이라 고통이 뇌에 그대로 전달된다. 가뜩이나 미간을 세우는 이장에게 그런 설명까지는 하지 않았다. 그걸 알려주더라도 마취제를 구입해서 이중으로 작업을 할 여유가 있을 리 없다. 이번에도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시멘트 바닥에 암소가 머리부터 박으며 큰 덩치를 부려놓는다. 이장은 고개를 돌려 지붕 밑 열린 틈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의 눈길을 따라가던 박의 시야에 멀찌감치 마을의 초입을 지나는 움직임이 들어왔다. 검정색 승용차 세대가 정자나무 곁을 꺾어 돌아 언덕 위 골프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아침부터 세월 좋구먼."

 이장이 혼잣말처럼 운을 떼었다.

 "누군지 몰라서 그래요?" 

 "그 인간들을 내가 알아 뭐하게."

 이장이 그걸 모를 리 없을 터, 박은 슬그머니 대화의 꼬리를 삼켰다. 화요일 아침이면 어김없이 나타난다는 그의 신분은 캐디의 입을 통해 알게 됐지만 박은 그를 가까이서 본 적이 없다. 성수기에도 그는 언제나 앞뒤로 한 팀씩을 비워두고 라운딩을 했다. 경호상의 이유였다. 이장은 턱을 옆으로 돌리며 구시렁거렸다. 그래도 그 이가 다스릴 때가 경제가 성장되어 살기가 좋았다는 둥, 무슨 교육대를 만들어 깡패들을 혼내줬다는 둥…. 부지런히 연필을 움직이던 강이 스케치북을 탁 접었다. 이장의 목소리를 듣기라도 한 듯 그가 혀를 털었다. 실향민 집안인 이장과 남쪽에서 올라왔다는 강은 자주 언쟁을 한다. 지난 화요일 오후에도 강은 퉷 소리가 나게 가래를 돋우어 뱉었다. 더러운 놈! 그의 검지 끝이 골프장에서 빠져나오는 검은 세단을 향해있었다.

 "자네도 다니지 않나?"

 갑자기 생각이 났다는 듯 이장이 박에게 눈을 맞췄다. 좁은 바닥에서 소문이 그의 귀를 비켜갈 리 없었다. 박은 얼굴을 돌려 헛기침을 하며 주사기에 다시 약을 넣었다.

 지역유지들과 어울려 치던 골프는 박에게도 중독성이 있었다. 동물병원을 정리한 뒤로 그린피는 근처에서 송아지 출산이나 도우며 벌어볼 셈이었다. 그런데도 살처분 작업만은 피하고 싶었다. 일단 작업이 시작되면 공수의(公獸醫)나 동물을 다룰 줄 모르는 외부 인력들만으로는 어림없는 일이었다. 아무튼 소나기는 피하고 보는 게 상책이었다. 박은 슬그머니 마을을 빠져나가 따뜻한 태국쯤에서 겨울을 나고 돌아올 궁리를 하고 있었다. 앞마당 매화가 봉오리를 열기 시작하면서 박의 걱정이 사그라들던 참에 뜬금없이 꽃샘추위가 구제역을 몰고 올 줄이야.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내 소들은 자네가 꼭 처리해줘야겠어. 허리를 꺾는 보건소장의 신신당부도 거절했던 박의 발목을 이번엔 삼십년 지기인 이장이 잡았다. 처음엔 외지인을 소 닭 보듯 하던 이장이었다. 그가 태도를 바꾼 것은 박이 수의학과를 졸업했다는 사실을 알고부터였다. 편리한 현실 앞에서 사사로운 감정은 사그라지게 마련이었다. 

 

 갑자기 송아지가 울기 시작했다. 주사를 맞고도 삼분 가까이 버티던 어미가 쓰러졌다. 길어야 일분인 다른 소에 비해 젖을 물린 암소는 시간이 많이 걸렸다. 빨던 젖꼭지가 입에서 빠져나가자 송아지는 쓰러진 어미의 복부에 주둥이를 다시 묻었다.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렇다고 송아지부터 죽였다간 결사적으로 달려드는 어미소에게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모르니까.

 "후우, 나도 죽어서 좋은 데 가긴 다 틀렸어."

 말없이 소의 눈을 가리며 머리를 붙잡던 이장의 탄식이었다. 자식 앞에 용빼는 재주 없긴 짐승이나 사람이나 별반 다를 것도 없었다. 딸자식을 돌보느라 눈을 편히 못 감은 아버지와, 남편의 심기를 살피며 노심초사하던 어머니가 박의 가슴언저리를 묵직하게 누르고 들어왔다. 그 일만 아니었어도…. 

 그 당시 고3이었던 박은 도청사수대에 자원했다. 교련복을 입고 카빈소총을 어깨에 걸고 있는 자신이 독립투사보다도 더 자랑스러웠다. 도청건물 안에서 백오십 명의 인원이 무장한 채로 농성을 했다. 닷새를 버텨내자 음식이 떨어지고 부상자들에게 필요한 약품도 없었다. 밖에서 들리는 총소리와 군부의 무력진압 경고방송이 공포감을 증폭시켰다. 때마침 지도급 대학생들이 긴급회의 결과를 발표했다. 버틸 상황이 못 되니 떠날 사람은 떠나도 좋다는 취지였다. 먼저 나간 자들은 이 도시를 탈출하여 우리의 참상을 외부에 알려라. 박은 빠져나갈 명분을 놓치지 않았다. 동지들을 두고 떠나는 죄책감이 한결 누그러졌다. 그날 절반 이상이 바리케이드 밖으로 나왔다. 박도 잠시의 갈등을 뒤로하고 밤길을 헤쳐 집으로 향했다. 가족에 대한 걱정이 우선이었다. 대문을 두드려도 반응이 없자 담장을 넘었다. 밤늦게 친구들과 어울리다 입에서 술내가 날 때쯤이면 아버지의 눈을 피하느라 익숙해진 행동이었다. 어둠속에서 바람을 타는 총소리와 대로변의 긴장이 그림자처럼 마당으로 따라 들어왔다. 거실을 통해 그의 방까지 들어가는데도 인기척이 없었다. 잠시 후 안방에서 무슨 소리가 난 것 같았다. 고양이 소리 같기도 하고 신음소리 같기도 했다. 그 순간, 예리한 면도날이 허리께를 베고 지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문을 열어젖힌 안방에 부모가 있었다. 뒤로 맞댄 두 개의 식탁의자에 부부가 등을 대고 앉은 모습이었다. 등받이엔 손목을, 의자의 앞다리엔 발목을 이삿짐에나 붙이는 녹색 테이프로 묶어놓은 상태였다. 입에도 테이프가 붙어있었다. 지친 듯 숨을 고르는 부모로부터 들은 이야기는 충격이었다. 가슴속에 품었던 의협심과 사명감이 한순간에 녹아내렸다. 세상도 변했는데 우리 같이 나눠먹고 삽시다. 대로변에서 한 블록 떨어진 골목 안쪽의 마당 깊은 단독주택에 느닷없이 들어온 그들의 일성이었다. 동네 총각들 같기도 해서 물 좀 마시자는 요구에 어머니가 대문을 열어준 뒤였다. 총을 들고 복면을 썼지만 그저 시위대의 모습이려니, 아버지는 장하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마당에 들어와 강도로 돌변한 그들이 서랍과 장롱을 뒤졌다. 돈이 될 만한 것들은 쓸어 담듯 들고나갔단다. 주먹을 쥔 민주시민들과 라디오에서 나오는 폭도들이 박의 머릿속에서 시계추처럼 움직이다 서로 엉켜들었다. 가슴에서 흙탕물이 일었다.

 시위대열에 끼어들었다는 대학생 누이가 귀가한 것은 그로부터 이틀이 지난 뒤였다. 골목까지 쫓아온 군인들에게 끌려가는 걸 보았다는 이웃이 있었다. 누이의 티셔츠는 가슴 아래로 찢겨있었고 베이지색 면바지에는 핏자국이 묻어있었다. 그녀는 어기적거리며 힘든 걸음을 옮겼다. 부어오른 뺨엔 혁대로 맞은 듯한 두 줄이 선명했다. 분노와 허탈이 교대로 박의 가슴을 훑고 지나갔다. 애국심이 있던 자리엔 넋을 놓아버린 누이가 들어와 앉았고 그녀를 기약 없이 돌봐야하는 현실만이 부려놓은 짐짝처럼 가족 앞에 놓여있었다. 누이는 잠을 자지 못했고 스스로를 방안에 가두더니 이윽고 정신병원을 들락거리기 시작했다. 박의 가족은 고향을 떠나 연고가 없는 경기도 이천 땅에 자리를 잡았다. 그게 벌써 삼십년도 더 지난 일이다. 누이는 갇혀있던 병원의 화장실 천정 수도관에 자신을 매달았다. 오십이 넘도록 짝을 만나지 못한 딸자식 걱정을 술로 달래던 아버지가 세상을 하직한 직후였다. 

 

 "이봐 강형! 몸 생각 좀 해야지. 그만 들어가."

 그가 못들은 척 미동도 없었다. 삼월로 들어섰지만 이틀 전 내린 눈이 그의 앞마당에 피어난 매화를 덮고 있었다. 반쯤 녹은 눈의 반질반질한 표면에 아침볕이 반사됐다. 그 틈으로 빨간 꽃잎이 핏방울처럼 도드라졌다.

 "추워, 그만 들어가."

 박이 다가가 강의 어깨를 재우쳐 흔들자 그가 속삭이듯 말을 이었다.

 "자다가 불려 나온 거야."

 그러니까 꿈속으로 날아온 꽃향기에 홀려 홑겹 티셔츠 한 장을 입은 채로 뛰어나왔다는 거였다. 아래는 덜렁 팬티뿐, 찬바람에 언 다리가 보랏빛이었다. 종아리의 상처가 보였다. 강의 눈가에 물기가 배어 있었다.

 "오늘은 이걸 그려야겠어."

 강이 배시시 웃었다. 막 쪼개놓은 차돌의 단면 같았던 첫인상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박과 갑장인 강에게는 처음부터 특별한 구석이 있었다. 강은 박이 미처 예상하지도 못한 한마디로 화제를 마무리 짓곤 했다. 파란 불꽃이 이글거리는 눈빛이었다. 무릎이 튀어나온 하늘색 추리닝바지에 어수룩한 말투와는 결이 다른 힘이 있었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깊이에서 끌어올리는 카리스마 같은 거였다. 거무튀튀한 피부와 사각턱은 깊이 파인 입가주름과 조화를 이뤄 그를 고집스런 사내로 보이게 했다. 그는 오른쪽 팔다리를 제대로 쓰지 못해 왼손으로 지팡이를 짚고 몇 보를 걸은 다음 허리를 뒤로 자주 꺾었다. 살집 없는 몸에 키가 껑충한 강은 애주가였다. 그는 아침부터 불콰한 얼굴로 술내를 풍기곤 했다. 몇 잔에도 갈지자걸음을 보였지만 그렇다고 술주정을 한 적은 없었다. 누룩을 제 손으로 빚어 술을 담그는 솜씨도 일품인데다 술독을 여는 날엔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넉넉한 품도 있었다. 그가 옆집에 들어오고 한 달이 조금 못되었을 때였다. 집들이라는 걸 했다. 외톨이로 사는 데 익숙해졌다는 그도 토박이들끼리 뭉치는 농촌에서 버티자면 통과의례를 피하긴 힘든 노릇이었을 터. 낡아빠진 집에 생기가 돋고 있었다. 벽지를 바꾸듯 여기저기 벽에 그림을 그려놓기도 하고 마당에는 폐가 나빠지기 전에 만들었다는 조각품도 두어 군데 자리를 잡았다.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처럼 생긴 석상이 먼저 박의 눈에 띄었다. 중장비로 끌어내려 앞마당 매화나무 아래에 내려놓을 때부터 눈여겨보았던 물건이었다. 마리아의 품에 안겨있어야 할 예수가 없었다. 비어있는 품안에 누구나 안길 수 있도록 만든 작품이었다.

 "나는 머리보다 몸뚱이를 믿는 인간이라서…."

 강이 툭, 한마디를 던졌다. '눈으로만 보세요.'라는 조각전 경고문에 익숙한 박이 잠시 망설일 때였다.

 "아름다움은 감각의 세계에만 존재하지요."

 만져보고 보듬고 싶은 그리움이 몸으로 육화되었을 거라는 강의 부연설명이 오랫동안 박의 귓바퀴를 이명증처럼 맴돌았다.

 "이제 망치질은 안합니다."

 돌가루를 마셔야하는 조각 작업을 그만둔 뒤로 강은 회화에 집중하는 것 같았다. 그가 툇마루에 내놓은 그림들도 이상하긴 마찬가지였다. 여자의 음부만을 확대하여 원색으로 화려하게 묘사한 작품들이 여럿이었다. 소음순은 싱싱한 꽃잎처럼 촉촉했고 그 시원의 깊이에서 당장이라도 윙 하고 꿀벌이 날아오를 것 같았다. 젖가슴도 하나만을 따로 떼어내 곧 벌어질 꽃봉오리처럼 그려놓았다. 박의 호기심을 눈치 챘다는 듯 그가 말을 이었다.

 "전체를 조망하다보니 부분의 아름다움도 새싹처럼 돋아나더군요."

 알쏭달쏭했지만 넓은 눈을 가지라는 뜻 같긴 했다.

 "나는 옳고 그름을 기준으로 세상을 보지 않아요. 그저 아름다운 것과 추한 것이 있을 뿐."

 그의 세상 보는 눈이 남다른 것 같긴 했지만 미술에 문외한인 박에게는 먼 나라 이야기였다. 파장분위기에서 강이 박의 어깨를 잡았다. 예닐곱 둘러앉았던 노인들이 돌아간 직후였다.

 "담도 없고 몇 걸음이면 갈 텐데 서두를 필요가 있겠소."

 그의 눈길이 장님처럼 아득했다. 그를 두고나오기엔 묘한 죄책감 같은 것이 박을 사로잡았다. 강이 이 마을에 첫발을 담그던 날, 그의 딸이 얼굴에 홍조를 띠며 어렵게 꺼내던 부탁이 있었다.

 "폐암으로 투병중이세요. 아직까지는 항암치료를 잘 이겨내고 있지만…. 진통제와 수면제가 없으면 견디지 못해요. 오래전에 얻은 골병으로…. 무슨 일이 생기거든 전화 좀…."

 연락처를 적어주던 그녀는 내친김에 한 가지 부탁을 더 했다.

 "시간 날 때마다 아버지랑 읍내 목욕탕에 다녀오시면 안 될까요?"

 돌이 갓 지난 아기를 업고 군내버스를 타고 들어온 그녀가 화장기 없는 얼굴을 주억거리며 꺼낸 말이었다. 자가용을 굴릴 형편은 못되는 듯 했다. 그녀가 내민 손에는 만 원짜리 몇 장이 들려있었지만 박은 넣어두라고 했다. 

 일순배가 더 돌고, 취기에 사투리가 섞여들었다.

 "함경도 출신들이 여러 집인갑소잉."

 이장네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그거야 뭐… 나야 그런 데 별로 신경을 안 쓰고 살다보니…."

 하루에도 몇 번씩 얼굴들을 마주치는 마을에서 행여 패가 나뉠까 걱정스러웠다. 박이 머뭇거리자 강이 턱을 올리며 재우쳐 물었다. 

 "혹시 고향이…."

 상대의 의중을 떠보는 듯 말끝을 반음쯤 살짝 내렸다올리는 박의 남도식 어투가 반가웠던 모양이었다. 허를 찔린 기분이었다. 갑자기 가슴이 먹먹해지며 답답한 느낌이 밀려왔다. 첫날 나눈 인사로 서로 이름과 나이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그 이상 개인사를 섞을 생각은 없던 터였다. 고삐 풀린 강의 억양이 박의 귓속을 후벼댔다. 박은 눈을 내리깔았다. 강의 오른쪽 종아리 뒤 함몰된 상처가 박의 눈을 찔렀다. 작고 단단한 물체가 앞쪽을 향해 사선으로 뚫고 지나간 자국, 항문처럼 거뭇하게 주름져 들어간 구멍이었다. 순간, 피융 하는 소리를 들은 것도 같았다. 박은 머리를 흔들었다. 기억을 떼어내는 게 쉽지 않았다. 그가 평생토록 진통제를 먹으며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 이유가 짐작되었다. 강이 헛기침을 하며 꺼내던 말을 도로 집어넣었다. 잠시 침묵이 흘렸다.

 "읍내에 좋은 목욕탕이 들어섰더라고. 아침물이 깨끗하겠지."

 얼결에 박의 입에서 나온 반말이었다. 박은 던지듯 약속을 잡으며 주섬주섬 신발을 꿰었다.

 

 이른 아침부터 강이 매화에 코를 대고 킁킁거린 지 족히 한 시간은 되었다.

 "이러다 얼어 죽으면 아름다움이 다 무슨 소용인가."

 "박형, 나는 개처럼 살다 갈라네. 개는 어제 짖어댄 것을 후회하지 않고 내일 먹을 것을 걱정 안하지. 이제 때가 되지 않았나."

 "허허, 별 쓸데없는 소리를 듣겠구먼."

 박은 그를 부축해 방안으로 들어갔다. 그리던 그림이 벽에 비스듬히 세워져있었다. 그를 눕히고 커튼을 열어젖히자 그림속의 윤곽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살처분 당하는 소를 그리는 중이었다. 선글라스에 얼룩덜룩한 군복의 사내가 언덕 위에서 축사를 바라보고 있었다. 지휘봉을 쥔 것으로 보아 명령하는 자인 듯했다. 가까이서 보니 사람의 몸통에 황소의 머리였다. 안쪽으로 휜 두 개의 뿔이 갈아놓은 듯 날카로웠다. 인육을 즐겨먹었다는 그리스신화 속의 난폭한 괴물을 멀찌감치 숨기듯 그려놓은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사내가 들고 있는 지휘봉의 끝은 구덩이를 향해있었다. 그쪽으로 줄지어 끌려가는 돼지들의 얼굴은 사람이었다. 불현듯 TV화면에서 자주 보았던 영상들이 해파리처럼 떠올라 반투명으로 그림을 덮었다. 박의 망막에서 오래된 그림자가 걸어 나왔다. 팬티 한 장만 걸친 채 포승줄에 엮여 끌려나오던 사람들이 있었다. 백주에 대로에서 내리찍던 발길질과 곤봉. 폭도로 불리던 그들의 겁먹은 눈. 사명감 뒤로 두려움을 숨겼을 뿐, 다가오는 적에게 총 한 방 쏘지 못할 순한 눈동자들이었다. 민주주의가 피를 먹고 자란다는 이야기도 그들과는 무관한 구호였다. 박은 얼굴을 찌푸렸다. 그림 아래쪽에서 등을 보인 남자가 자신일 터, 주사기를 들고 있는 걸로 보아 틀림없었다. 죽어가는 순간에도 송아지에게 젖을 물리는 암소의 얼굴 부분엔 섬세한 붓질 자국이 있었다. 암소의 눈에서 떨어지는 눈물 위로 빛이 동그랗게 반사되었다.

 "이런 걸 왜 그리나, 자넨 아름다운 것만 그린다면서." 

 "잘 보라고, 소를 붙잡고 있는 사내와 저 어미 소의 표정이 닮지 않았나. 그들은 지금 같은 마음일 걸세. 내 눈에는 그게 아름다워."

 소의 얼굴을 껴안고 물기어린 눈으로 먼 산을 바라보는 이는 이장이었다. 의외였다. 통성명을 한 뒤부터 강과 줄곧 옥신각신하는 이장인데…. 아침에 같은 수탉의 알람을 듣는 것 말고는 닮은 점이라곤 없어 보이는 두 사람, 문득 그들의 틈을 좁혀놓은 엉뚱한 사건이 뇌의 주름 사이에서 빠져나와 그림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강이 집수리를 대충 끝내고 가을도 깊어졌지만 마을노인들은 여전히 강을 데면데면하게 대했다. 노인정을 들락거리던 강이 드디어 고스톱 판에 끼어들었다. 이장의 늙은 아버지와 말을 튼 효과였다. 점당 백 원짜리를 치던 노인들의 주머니에 돈이 떨어지자 강의 머릿속에서 치기가 번뜩였나 보았다. 강은 지폐를 그려서 노인들에게 선물했다. 노인들도 강의 그림이라는 걸 모르지 않았지만 신기해하며 진짜 화폐처럼 자신들의 쌈짓돈에 섞어 판을 돌렸다. 그중엔 누런 오만원권도 있었는데 강은 이장의 아버지에게 한 장을 따로 드렸다. 돈 그림들이 너덜너덜해질 때쯤, 팔십 넘은 나이에도 목에서 쇳소리가 나는 이장의 아버지가 면사무소 앞 장터나들이를 했다. 그의 손엔 강의 그림이 들려있었다. 어스름해진 파장의 좌판에 앉아 거나하게 막걸리를 마시고 거슬러 받은 잔돈으로 그는 택시까지 불러 타고 마을로 돌아왔다. 다음날 아침, 이장이 경찰서로부터 호출을 받았다. 대폿집 여자의 신고로 경로를 추적한 형사는 강을 쉽게 찾아냈다. 지폐위조혐의였다. 애초에 위조를 할 생각이었으면 싸구려 칼라복사기라도 동원했겠지만 그는 미세한 선까지 모두 손으로 그려가며 색칠도 했으니 말 그대로 회화작품을 만든 셈이었다. A4용지를 오려 양면으로 한 장을 완성하는데 이틀씩 공을 들였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손그림이라는 걸 누구나 알 수 있었다. 더구나 신사임당의 인자한 얼굴이 들어갈 자리에 그는 닭이나 쥐를 그려 넣기도 했다. 한 다리만 건너면 호형호제하는 지역사회에서 노인의 실수는 슬그머니 유야무야 되었다. 술집주인에게 곱빼기로 배상을 하는 조건이었다. 위조지폐를 직접 유통시킨 것도 아니라서 강 역시도 혐의를 벗었다. 하지만 조사과정에서 곤혹스런 과거가 그를 괴롭혔다. 국가전복을 기도하다 복역했다는 그는 정권이 여러 차례 바뀌었음에도 여전히 자유롭지 못한 것 같았다. 그가 풀려나온 날 이장이 술자리를 만들었다.

 "아버지 때문에 고생하셨는데…."

 이장이 쑥스러운 웃음을 던졌다. 깎지 못한 턱수염에 흰털이 반쯤 섞이고 눈곱이 낀 모습이었지만 강의 표정은 밝았다. 강이 큰 키를 세워 침을 튀기며 열을 올렸다. 자신의 새로운 실험이 성공했다는 것이었다.

 "진정 아름다운 건 우리의 믿음이지요. 화폐란 그 믿음을 먹고 사는 생물입니다. 사회적 신뢰를 잃는 순간 휴지조각이 되는 거요."

 그의 주먹이 허공에서 망치질을 했다. 그러고 보면 적어도 노인정 안에서는 강의 그림이 구성원간의 합의와 신뢰를 바탕으로 화폐역할을 톡톡히 한 셈이었다. 그 뜻을 아는지 모르는지 노인들은 여전히 구제역과 떨어지는 소값을 걱정하며 술잔을 돌렸다.

 며칠 뒤, 이장이 읍내 목욕탕에 따라왔다. 세 남자는 서로의 등을 밀었다. 옳고 그름의 분별이 사라진 욕탕에서 강의 불거진 갈비뼈와 앙상한 어깨만이 눈에 밟혔다. 탈의실로 나오자마자 강이 쓰러졌다. 멈추지 않는 기침에 그가 가슴을 움켜쥐며 몸부림쳤다. 거무죽죽한 피가 입에서 쓸려나왔다. 앰뷸런스를 불러 위기는 넘겼으나 박과 이장은 마주보며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박은 자리에 강을 눕히고 이불을 덮어주며 아랫목에 손을 넣었다. 바닥에 온기가 남아있었다. 핏기가 돌아온 강의 얼굴을 일별하고 방문을 뒤로 닫았다. 문득, 중요한 물건을 잃어버린 느낌이었다. 세상엔 오로지 미추(美醜)가 있을 뿐이라…. 결국, 미를 발견하여 오늘 그것을 사랑하다 사라지면 되는 것이었다. 그러니 매화향기에 눈물을 흘리는 강에게는 권력을 향한 탐욕과 생명을 짓밟는 잔인함이 추하게 보일 만도 했다. 눈이 순한 구성원들의 합의와 신뢰를 짓이겨버린 자, 이제는 유유히 골프장으로 들어가는 그 인간을 향해 침을 뱉는 심정을 알 것도 같았다. 해장국이 간절했다. 허허로운 속이 숙취 탓만은 아닌 듯싶었다. 몇 달 전만 해도 하루의 왕진일정을 빼곡히 수첩에 적어 넣던 아침이었다. 요즘은 새 생명을 위해 수의사를 불러주는 전화는 없다. 농가마다 어떻게 죽일까를 궁리할 뿐. 수입이 줄자 아내는 억눌러왔던 불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재산만 나눠주면 나는 집나가서 혼자 살라요."

 그도 그럴 것이, 시누이 뒤치다꺼리가 끝난 뒤에도 중풍으로 거동이 힘들어진 시어머니가 며느리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지칠 만도 했다. 며칠 전부터는 어머니가 아내를 죽은 딸의 이름으로 부르곤 했다. 이번엔 치매였다.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외동딸도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집을 나갔다. 딸은 취직을 하더니 사귀던 남자와 동거를 시작했다. 아비의 반대는 소용없었다. 다 큰 자식이 제 갈 길을 가는 것일 뿐, 뭐라 말릴 계제도 아니었다. 아내는 오히려 병객이 줄을 잇는 집구석에 자식을 붙잡아두려는 이유가 뭐냐고 따지고 들었다. 문득 묵직한 외로움이 젖은 외투처럼 박의 어깨를 둘러쌌다. 세상에 눈을 감고 돈맛을 즐기며 소시민으로 살아온 죄 값인가…. 잊고 지내던 부채감이 명치를 찌르고 들어왔다.

 

 구덩이의 흙을 뚫고나오는 비명이 멈춘 지 보름쯤, 헐레벌떡 달려온 이장이 박의 손부터 잡아끌었다. 입맛 없는 아침밥을 뜨던 참이었다.

 "가보면 알아."

 읍내 병실에 누워있는 강의 몰골은 처참했다. 오른 쪽 눈은 심하게 부어오르고 멍이 들어 광대뼈 아래까지 먹빛이었다. 그가 왼쪽 눈으로 힘겹게 웃고 있었다.

 "그 인간이 추해서 두고 볼 수가 없었어."

 말이 새는 느낌이 들었다. 강이 입을 벌렸을 때 그의 앞니가 부러진 것을 비로소 알았다.

 "빨대로 물마시기 좋겠지?"

 강의 농담에 박은 웃을 수 없었다. 병원에 따라온 경찰서 지구대 소장은 양측이 서로 없던 일로 합의했으니 돌아가겠다고 했다. 박과 이장은 그를 붙잡고 전날 벌어진 자초지종을 들었다. 대낮부터 취기에 젖어있던 강이 이장의 경운기를 몰고 나간 것은 해가 기운을 잃고 누렇게 바랠 때쯤이었다. 경운기가 길어진 그림자를 매연처럼 끌며 시멘트 포장도로로 들어섰다. 골프장 정문을 바라보고 이백여 미터 쯤, 경운기를 세워놓고 길을 막았다. 싣고 간 소똥을 길 위에 뿌려놓고 강은 길섶 농수로에 숨었다. 봄볕의 온기가 쑥내 묻은 바람결에 스며있었다. 이윽고 골프장을 빠져나온 검은 승용차 석대가 경운기 앞에 멈춰 섰다. 주변에 사람이 보이지 않자 어깨 벌어진 사내들이 승용차에서 하나 둘 내렸다. 코를 쥔 사내들이 기웃거리며 주위를 살폈다. 지루했는지 가운데 승용차의 뒷문을 열고 늙은 사내가 나왔다. 그 때였다.

 "에라 이 더러운 놈!"

 강이 절룩거리며 달려들었다. 왼손에 지팡이가 들려있었다. 휘청, 강이 중심을 잃고 넘어졌다. 오른다리가 허방을 디딘 탓이었다. 기어갔다. 손을 뻗으면 지팡이 끝이 목표물에 닿을 것도 같았다. 뒤차에서 나온 젊은 사내가 강의 등을 차서 바닥에 쓰러뜨렸다. 그는 고꾸라진 강의 목덜미를 구둣발로 밟았다. 강의 얼굴이 소똥에 처박혔다. 끄응, 신음소리를 들은 사내는 구두밑창을 강의 어깨에 문질러 닦았다. 그 사이 또 다른 사내가 앞차의 트렁크를 열어 골프채를 꺼내 휘둘렀다.

 "싱겁게 끝난 테러사건이죠 뭐. 하마터면 골치 좀 아플 뻔 했는데…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으니 다행이죠."

 병원을 나가던 지구대 소장이 멋쩍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들의 폭력은 정당방위였고 목숨만 붙어있는 강이 가해자였다. 

 이틀 후, 강을 집으로 옮긴 것은 그의 고집 때문이었다. 지금 퇴원하면 안 된다는 의사의 지시는 소용이 없었다. 그는 딸의 전화번호를 누르는 박에게도 손사래를 쳤다. 산소호흡장치를 코밑에 붙이고 돌아온 강의 몸에 열이 심했다. 밭은기침과 각혈을 반복하는 그의 눈에서 초점이 사라지고 있었다. 바로 눕지도 못했다. 골프채로 맞은 뒷머리의 함몰상처가 깊었다. 핏기 빠진 얼굴에 피멍든 눈으로 그가 다시 빙긋이 웃었다.

 "어차피 갈 때가 됐는데 뭘."

 그렇잖아도 병원을 나올 때 처방전을 내밀며 의사가 박에게 해준 말이 있었다. 며칠 넘기지 못할 거라는. 혀를 차던 이장이 슬그머니 방문을 열고 나갔다. 고개를 가슴에 묻은 박은 긴 숨을 토해냈다. 강이 자다 깨다를 반복하며 밤새 뒤척였다. 삼십오 년 전으로 돌아가 꿈을 꾸는지도 몰랐다. 밤이 길었다. 이불에서 빠져나온 강의 종아리가 박의 시야를 비집고 들어왔다. 근육이 말라버린 그곳은 고서(古書)의 표지처럼 부스러질 듯 허연 각질로 덮여있었다. 박은 자라처럼 목을 움츠렸다. 그리고는 팔을 엇갈려 양어깨의 소름을 쓰다듬어 내렸다. 해묵은 부채감의 뿌리가 강의 다리에 닿아있었다. 박은 두 손으로 강의 발목을 잡아 슬그머니 이불속으로 밀어 넣었다. 강의 눈 주위로 부어오른 피부가 금방이라도 찢어질 듯 얇았다. 투명해진 강의 피부 아래로 스르르, 다른 얼굴이 끼어들었다. 박 자신이었다. 진저리를 쳤다. 그날 도청을 빠져나오지 않았더라면….

 새벽이 파랗게 창문을 타고 넘어왔다. 누워있던 강이 손을 뻗어 윗목에 세워둔 항아리를 가리켰다. 술병이었다. 박은 강의 허리에 베개를 받쳐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통증이 몰려드는 모양이었다. 찡그리는 것으로 보아 진통제도 그를 외면하는 듯했다. 아름다움의 상징이던 몸이 안으로 가시 돋친 갑옷이 되어 그를 옭아매고 있었다. 항암치료로 듬성듬성 빠진 반백의 머리칼이 축축했다. 온몸에 식은땀이었다. 박은 코발트빛 대나무 문양이 새겨진 백자의 긴 목을 쥐었다. 

 "그래, 건배 하세, 더 늦기 전에…."

 안주는 없었다.

 "박형, 목욕탕…, 정말 고마웠어."

 반쯤 뜬 강의 눈에 물기가 고여 있었다. 이번에도 강이 입꼬리로만 웃었다.

 "그거 갖고 있지? 소에게 놓아주던…."

 침묵이 똬리를 틀었다. 박은 대답 없이 술을 따랐다. 온종일 비워둔 위벽에서 찌르르한 자극이 느껴졌다. 다른 때 같으면 환자에게 술을 권하지 않았을 것이나 말릴 이유가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양은사발에 두잔 씩을 거푸 주고받았다. 석잔 째, 강의 목울대가 다시 오르내리는가 싶더니 잔을 잡은 손이 아래로 툭 떨어졌다. 방바닥에 술이 흐르고 그의 호흡이 가팔라졌다. 양끝으로 먹빛을 먹은 형광등의 흐릿한 불빛이 엎질러진 액체 위로 내려앉았다. 깔아놓은 요의 귀퉁이가 누릿하게 젖어들었다. 박은 옆으로 쓰러진 강의 어깨 위로 이불을 끌어올렸다.

 긴장과 피로가 덤벼들었다. 박은 벽에 등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 멀리서 들리던 아우성이 점점 가까워진다. 송아지 울음소리. 젖을 물리던 암소가 박을 향해 돌진해온다. 다리를 떨며 버티던 암소가 입에 거품을 물고 노려본다. 자세히 보니 사람의 얼굴이다. 누이였다. 그녀의 젖은 눈동자에 핏발이 서있다. 누군가 그녀의 심장을 향해 총을 겨누고 있다. 군복 입은 사내다. 뿔 달린 머리를 끄덕이며 그가 비릿한 웃음을 흘린다. 방문이 열린다. 누가 들어오는 것 같다. 지폐 위조혐의로 조사를 받고 나온 뒤 열변을 토하던 강이다. 상처 없는 얼굴에 수염을 길렀다. 티를 버리고 옥에 집중하소. 그가 속삭인다. 숨을 쉴 땐 호(呼)가 먼저야, 흡(吸)이 아니고. 가진 자의 눈엔 아름다움이 보이지 않는 법, 모두 비워서 참을 수 없을 만큼 가벼운 존재가 되면 비로소 자신을 오브제로 던지는 거지. 행동은 그럴 때 나오는 거야. 강을 똑바로 바라볼 수 없었다. 멀쩡하게 살아있다는 이유만으로도 부끄럽기에 충분했다. 날 보내줘 제발. 우리 둘 중 하나는 가야해. 강이 귓속에 숨결을 불어넣듯 속삭인다. 박은 소스라치듯 어깨를 끌어올리며 눈을 떴다.

 강은 악몽을 꾸는지 감은 눈을 자주 찡그렸다. 신음소리가 방바닥에 깔렸다. 그가 쥐어짜듯 몸을 비틀었다. 그의 혼이 감각의 통로를 빠져나오는 게 쉽지 않아보였다. 지루하게 가다서기를 반복하던 시간이 박의 가슴속으로 들어와 끝동만 남은 심지 위의 불꽃처럼 파닥거렸다. 박은 눈꺼풀을 힘껏 밀어 올렸다. 피멍든 강의 얼굴을 뚫을 듯 지켜보았다. 박은 얼핏, 무슨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불어난 계곡의 물길 아래로 구르는 바위, 그것이 쪼개지는 소리 같기도 하고 깊은 땅속 어느 구덩이에서 지표를 뚫고 나오는 함성으로 들리기도 했다. 아니, 차라리 거룩한 명령이겠지 싶었다. 심장이 쫓기듯 발길질을 해댔다.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앓는 소리에 털을 바짝 세워 웅크리던 긴장이 이윽고 좁은 방안을 털고 나섰다. 눈 밑이 달아오르고 두 손바닥이 축축했다. 박은 어금니를 깨물었다. 마당으로 나가 승용차에서 휴대용 약품 상자를 꺼내 되돌아왔다. 강의 코밑에 붙어있던 호스가 보이지 않았다. 푸르스름한 얼굴이었다. 토막토막 뱉어내는 기침 섞인 숨소리가 가래사이를 빠져나와 방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박은 강의 손을 감싸 쥐었다. 화가의 손이 거칠다는 생각을 했다. 가죽만 남은 팔뚝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마침내 주사기를 집어 들었다. 마취제였다.

 "잠깐이면 돼, 문턱 하나만 넘으면…."

 박의 목소리가 겨우 목구멍을 넘었다. 무슨 말인가를 더 하려다 울컥, 말꼬리를 잘라 뱃속으로 밀어 넣었다. 강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 이것뿐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바늘이 정맥을 타고 비스듬히 길을 찾았다. 강의 손끝이 가늘게 떨렸다. 강이 미간에 잠시 주름을 잡는 듯 했으나 눈을 뜨진 않았다. 박은 주사기 손잡이에 엄지를 얹어 힘을 주었다. 콧날이 시더니 이내 목구멍이 매캐해졌다. 잠시 후 지혈하던 솜을 떼어내고 그 자리에 주사바늘을 다시 꽂았다. 이번에는 근육이완제였다. 호흡과 심장박동이 멈출 차례였다. 이윽고 기침이 멎더니 숨소리가 잦아들었다. 강의 얼굴은 오히려 평화로웠다. 거추장스런 허물을 벗어던지고 한껏 가벼워진 강이 미추의 구별이 없는 곳으로 날아오르고 있었다.

 강의 머리맡에서 박이 재배(再拜)를 올린 것은 한 시간이 더 지난 후였다. 창문 밖이 환해졌다. 




<당선소감>

 

"이제부터라도 고향이야기를 더 많이 쓰고 싶다"

 

 대학입시에 떨어지고 추레한 시절이었다. 끔찍했던 그날 이후, 노량진에서 학원을 같이 다니던 친구들 몇이 보이지 않았다. 가족 걱정에 고향으로 급히 돌아간 그들이 영영 돌아오지 못했다. 허망했던 기억은 35년이 지난 지금도 내 가슴속에서 자주 흙탕물을 일으킨다. 이번에 광남일보에서 뽑아준 소설은 고향동무들에게 바치는 나만의 헌사였다.

 혹자는 또 그 이야기냐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가해자들은 여전히 권력의 중심에서 부귀영화를 누리며, 부끄러운 줄도 모른다. 시민정신의 부담으로부터 벗어나려는 군중은 피해자를 가해자와 같은 도마 위에 올려놓고 난도질한다. 지역감정이라는 죄목은 굽어진 칼날이 된 지 오래다.

 문학은 은유로 포장되지만 정의감마저 은유 속에 묻어버릴 수는 없다. 부릅뜬 눈으로 옳지 않음을 지적하는 일, 소설의 사명이라 믿는다. 하여, 이 작품이 갖는 의미의 진앙지는 전라도 땅이어야 했다. 광남일보의 문을 두드린 이유다. 아직도 해결되지 못한 식민지의 잔재와 4.3, 그리고 광주는 영원히 꺼지지 않는 화두여야 한다. 인류가 아우슈비츠를 잊으면 나치의 광기는 되살아날 것이다. 문학이 기억을 잃으면 미래도 잃게 된다. 살처분이라는 명목으로 죄 없는 목숨들을 산채로 묻을 때 나는 오월의 그날을 떠올렸다. 나는 면도날로 심장을 조금씩 베어내는 기분으로 이번 응모작을 써내려갔다. 내게 이 작품은 그래서 더욱 각별하다.

 내 소망을 들어준 광남일보에 뭐라 고마움을 표해야할 지 모르겠다. 이렇게 감격스런 크리스마스이브는 처음이다. 이틀 전 마침 서울의 다른 신문사로부터 당선연락을 받은 터였다. 

 하지만 내겐 '미노타우로스 사냥꾼'으로 응모했던 남쪽의 사냥소식이 얼마나 간절했는지 모른다. 밀린 방학숙제를 마친 기분이다. 마시지 않아도 취한다. 작가가 좋을 글을 쓰자면 좋은 소재에 주목해야 한다. 가장 좋은 소재는 익숙한 소재다. 주춤거리지 않는 글이 거기서 나오므로. 그런 익숙함이 오롯이 배어있는 곳이 고향이다. 좋은 글은 그러므로 고향이야기일 확률이 높다. 단순한 진리를 가르쳐주신 조동선 선생님께 감사의 큰 절을 올린다. 이제부터라도 고향이야기를 더 많이 쓰고 싶다.

 

약력

▲ 1962년 전북 정읍 출생

▲ 경희대 한의과대학 졸(한의학박사)

▲ 2013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우수저작 당선

▲ 2014 재외동포문학상

▲ 2015 한국소설 신인상

▲ 2016 불교신문 신춘문예 당선 

 


<심사평>

 

"방향성 잃지 않고 뚝심있게 밀고 나가" 

 

 험한 세상에서 살아가기가 녹록치 않을 텐데, 참으로 많은 분들께서 고투의 흔적이 역력한 금쪽같은 작품들을 응모해주셔서 무엇보다 감사했다. 

 비정한 세상에서 인간의 윤리적 의무와 생의 가치와 의미를 성찰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고 펜으로 치열하게 응대한 작품들은 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다시 한 번 넌지시 일깨워주었다. 

 폭력과 거짓이 난무하는 시대의 야만성에 집중포화를 맞은 탓인지 많은 작품들에서 죽음이 빈번하게 표현되고 있었다. 실존의 절멸인 죽음은 주로 자살의 형식으로 표현되었는데, 등장인물들의 죽음은 당면한 문제와 고통에 대해 너무 손쉬운 해결책으로 제시된 측면이 강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지긋한 나이대의 응모자들의 작품들은 불행한 현재를 보상받기 위한 '좋았던' 과거를 회고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었다. 감상의 과도함이 서사의 완결성을 해치거나 인식의 팽팽한 긴장감을 느슨하게 풀어헤쳐버린 결과로 이끌었다. 

 본심에는 '두 개의 그림자', '즐거운 일기', '미노타우로스 사냥꾼'이 올라왔다. 

 '두 개의 그림자'는 사람에게서 죽음의 그림자를 보는 능력을 가진 의사를 주인공으로 삼아서 삶과 죽음의 본질에 대해 진지하고 섬뜩한 질문을 던진 작품이었다. 주제는 강렬하고, 디테일은 섬세했지만 결말은 안이하게 처리되어 아쉬움을 남겼다. 

 '즐거운 일기'는 끝내 성숙한 어른이 되지 못한 채 이른 죽음을 맞이한 엄마를 회고하는 조숙한 장녀의 시점에서 게접스러운 삶의 세목들을 냉정하게 들여다본 작품이었다. 환멸과 슬픔을 잘 교직했던 능숙함을 마지막 문장까지 고집스럽게 밀고 나갔으면 좀 더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 싶었다. 끝으로 당선작으로 밀어올린 작품은 '미노타우로스 사냥꾼'이었다. 

 미노타우로스는 황소 머리에 인간의 몸을 한 신화 속 괴물이다. 이 작품은 구제역에 걸린 소들의 살처분에 동원된 인물들을 전면에 등장시키면서 역사의 학살대에 놓였던 도시와 학살자, 끝내 처단하지 못한 과오를 문학적인 수사와 표현을 적절하게 구사하면서 글에 팽팽한 긴장감을 부여했다. 주제의 선명성과 탁월한 논증력과 명쾌하고 생생한 표현력이 소설의 방향성을 잃지 않고 뚝심 있게 밀고 가는 장점이 돋보였다. 새로운 길에 선 당선자에게 문운이 늘 함께 하길 기원한다.

심사위원 : 이화경